회귀 조폭의 제주도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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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세미
작품등록일 :
2024.03.06 00:20
최근연재일 :
2024.04.23 11:18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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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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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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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그 녀와의 데이트

DUMMY

역시 제주는 제주다.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겨울치고는 제법 좋은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살랑 흔들리는 나뭇가지, 입고 있던 패딩은 진작 벗어 던져야 할 정도로 따스한 땅의 기운.....!


머리 위로는 햇볕이 쨍쨍인데 멀리 보이는 한라산은 여전히 설국이다. 실감이 났다. 내가 제주에 있다는 게.


그런데,


다시 브로콜리를 캐려고 칼을 든 순간,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 추워하는 정도! 패딩을 다시 입었다. 사각사각- 컨테이너 세 상자를 브로콜리로 채울 때쯤에는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었다. 금방 다시 눈이 퍼부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브로콜리는 날씨가 추울수록 대박이다. 동그란 봉오리가 찰진 돌멩이처럼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개당 수익도 훨씬 높아지고.


사각, 사각-!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지만 이내 이마에 땅이 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브로콜리의 밑동을 캐고, 컨테이너에 담고, 가득 차면 트럭까지 옮기는 것을 온전히 혼자서 해야 했다.


어제는 동철이와 진석이와 성대가 발 벗고 나서줘서 대박이었지만.


그 녀석들도 제 코가 석 자인 놈들이다. 바쁘기로 따지면 나보다 몇 배는 바쁠 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많은 일을 어머니와 단둘이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 무릎이 완전 아작이 난 것일 테고. 당신 몸 부서지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모종을 심고 농약에 비료에 잡초 제거까지 얼마나 이 아들을 도왔을 것인가.


예전 내 어머니도 그랬다. 한 달 내내 쉬는 날이 없는 것은 기본, 사람 쓰면 남는 게 없다고 하루 열 시간 이상씩을 아버지와 단둘이 식당을 지키셨다.


어리석게도,


난 당연히 부모님의 일상이 그런 줄 알았다. 운동한다고 가물에 콩 나듯 집에 들렀고 그때마다 두 분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씩씩하고 밝았으니까.


하지만 두 분이 돌아가신 뒤에 비로소 알았다.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는 하루하루,


두 분 다 병을 주렁주렁 달고 사셨다. 당뇨에 고혈압, 디스크에 무릎 통증까지. 차라리 몸만 아팠으면 다행이었다.


두 분이 한 날, 한 시에 손을 잡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놈의 돈, 돈, 돈! 사람에 대한 배신, 사람을 죽여놓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람들의 그 낯 두꺼움!


거칠게 브로콜리 밑동을 내리쳤다. 댕강댕강- 밑동들이 속절없이 잘려 나갔다.


어째서,


나라는 놈은,


그렇게 눈치가 없었던 것일까.


그깟 시합이 뭐라고,


어머니 아버지한테 사랑한다고, 그 흔한 따스한 말 한마디 못 건넸을까.


쉭, 쉭-!


속절없는 아쉬움, 나에 대한 분노!


후유, 그래도 다행이다. 모셔야 할 분이 다시 내게 주어져서. 효자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극정성으로 모셔볼 작정이다. 차대풍의 어머니이자 나의 어머니를.


순간 들려오는 빠아앙- 하는 자동차의 경적음.


흠칫 앞을 봤다.


박스 형태의 앙증맞은 소형 자동차가 스르르 도로가로 멈춰 섰다. 덜컥, 이내 문이 열리며 내리는 얼굴,


정인경이었다, 나의 절친이자 용성읍을 이끄는 수장!


* * *


“후훗 무식한 것 여전하구나, 차대풍 너? 어떻게 이 많은 것을 혼자서 캐려고 그래?”


정인경의 얼굴! 거짓말 조금 보태 완전 연예인이다. 고운 턱선에 하얀 피부, 눈망울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게다가 겨우 서른 중반의 나이에 읍장을 꿰찬 지성미와 단호함까지! TV를 틀면 예쁜 얼굴로 열변을 토하던 어떤 여성 정치인을 닮았다. 아나운서 출신에 모델 뺨치는 얼굴,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의도의 능구렁이 같은 꼰대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당당함까지.


그런데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정인경의 소탈함.


차에서 내리더니 뒷문을 열어 깨끗이 포개져 있던 작업복을 덧입었다. 반짝 윤기 나는 구두를 벗어 던지고 이내 장화로 갈아신고 인경이 꺼내 든 것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


“오해하지 마, 요즘 읍장들 트랜드야. 책상 아니고 오다가다 이렇게 주민들 옆에서 손 보태주는 거. 딱 삼십 분이야. 그 이상 낼 시간도 없고. 그러니까 부려 먹을 생각 마. 오케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손목까지 끌어올리더니 인경이 퉤-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허걱, 뭐 읍장님이 이래.


“바쁘잖아. 쓸데없는 짓 하지마.”


쿨한 척 모르는 척, 댕강 다시 칼질했다. 이런 미친, 갑자기 왜 이렇게 심장이란 놈은 뛰는 거야.


“후훗 오해라지 말라니까. 말했잖아, 주민들을 위한 열린 서비스라고. 딱 삼십 분만 한다, 그럼.”


서걱, 서걱 인경이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에 가느다란 손.


그런데 칼질이 장난 아니다. 나의 칼질이 힘이라면 인경은 기술! 브로콜리 밑동을 정확히 부위에 맞춰 댕강댕강 잘라냈다.


“조금 전에 정낭 팜 조합원 둘이 네 쪽으로 갔다며?”


흠칫 인경을 봤다.


“오해는 말고. 리사무소 들렀다 오는 길이야. 그런데 사무장이 그러더라. 정낭 팜에서 조합원 두 사람이 연화 삼촌 조합원으로 가입하겠다고 왔었다고.”


인경이 헝클어진 머리를 뒤쪽으로 쓸어올리며 가만히 나를 봤다.


“후훗 어떻게 갈수록 너랑 백이장은 사사건건 으르렁이니? 개와 고양이야, 아님 물과 기름이야 두 사람? 둘이 그럴 때마다 읍장 정말이지 못 해 먹겠다는 생각이야. 원팀이 되도 모자랄 판에 사사건건 아옹다옹이니.”


사사건건 으르렁이라고? 백경덕과 내가?


그랬었나, 내가?


“후훗 하지만 나는 대풍이 네 편! 13개 마을, 난다긴다하는 마을 이장들이 백이장 앞에서는 찍소리 한 번 못하는데 너만은 다르잖아. 할 말 다 하고 오다가다 한 번씩 내 편 되어주고..”


정인경이 피식 웃었다. 뭔가 사연이 많은 눈빛.


“그렇다고 편 가르는 것은 아냐. 명색이 마을 이장단 회장님이시잖아. 백이장님과 잘 해 보라고. 둘이 싸워 마을에 하나 좋은 거 없으니까.”


병 주고 약 주고는 인경이 사각사각 칼질을 했다. 놀랄 만큼 익숙한 솜씨.


“후훗 읍장님으로서 명령?”


멈칫 동작을 멈추고 인경이 나를 봤다. 하지만 이내 미소 띤 얼굴로 툭 내뱉듯이 말을 던졌다.


“아니, 친구로서 부탁! 다시는 다치지 말고 잘 살았음 하는 마음이고.”


분명 프러포즈는 아닌데,


자꾸 두근거리는 내 마음. 뭐지, 이 분위기는.


“후훗 일 안 해? 할 일이 산더미라며?”


아, 그렇지 산더미처럼 일이 밀렸지. 사각사각, 애써 인경의 시선을 피하며 칼질을 했다.


쏴아아- 바람이 인경과 나를 훑고 지나갔고


텅텅, 컨테이너에 하나둘씩 브로콜리들이 쌓였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고 지랄이람.


사각사각, 브로콜리 밑동이 잘리는 소리....!


두근두근, 내 심장이 주책없이 뛰는 소리.


신기했다.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자그마치 읍장님이랑 단둘이서 브로콜리를 캐는 그림이라니.


“미안해, 다시 한번! 병원에 가봤어야 했는데.”


몇 분이 지났을까,


사각사각, 칼질하며 인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흠칫 인경을 봤다.


“바빴어, 정말! 시간 내보려 했는데.”


당연히 바빴을 것이다. 읍장이라는 게 놀고먹는 자리가 아니다. 용성읍내 13개 마을을 시시콜콜 돌아다니며 챙겨야 할 일이 산더미였을 터.


“후훗 시간 내려 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 해. 마음만으로 충분.”


아이쿠, 갈수록 가관! 내가 이렇게 달콤한 말이라니.


“후훗 정말?”


“응, 정말!”


아, 그랬다. 인경이 얘랑은 초등 때부터. 물어놓고 내가 모를까 봐 확인하고, 다시 물어놓고 내가 잊을까 봐 확인해주고. 그래서 우리 별명이 껌딱지였다. 다른 말로 실과 바늘! 정인경 옆에 차 대풍, 차 대풍 옆에 정인경! 알나리깔나리, 코흘래기들이 손짓하며 놀려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기억들. 내 기억이었지만 나로서는 전혀 접하지 못했던 기억들이었고.


인경과 가만히 서로를 마주 봤다. 쏴아, 불어오는 바람, 서로를 보는 촉촉한 눈빛.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투박한 목소리.


“허헛 두 사람, 보기 좋군. 알콩달콩 일도 하며 데이트라, 꿩 먹고 알 먹기다 이건가.”


흠칫 인경과 뒤를 봤다.


탕- 고급 차에서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중년의 사내, 바로 백경덕이었다!


용성리 마을 이장이면서 용성읍 13개 마을 이장을 이끄는 용성읍 마을 이장단 회장! 그리고 용성읍 최대 영농조합법인인 정낭 팜을 이끄는 수장!


* * *


누군가와 닮았다 생각했다.


어디서 봤을까, 어디서.


흠칫 백경덕을 봤다. 백상구, 노랑머리와 문신 덩치와 함께 내가 읍내에서 참교육을 시켰던 양아치!


인경과 나를 살피는 번들거리는 눈빛, 미소 띤 얼굴에 보이는 비열함! 부전자전, 역시 그 양아치에 그 양아치!


“후훗 읍장님께서 여기까지는 어인 행차신가. 이렇게 손수 칼질까지 다 하시고.”


백경덕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인경을 향해 씨익 웃었다.


인경이 가만히 노려보듯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읍장이니까요. 아시겠지만 읍장이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책상이나 지키고 있는 것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구요.”


“호, 열린 행정이라 이건가, 주민들 삶 속을 속속들이 파고드는.”


“그래야 나라에서 주는 녹봉 받는 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주민을 위한 머슴이니까 한껏 다가가야죠. 그게 무슨 일이든.”


나를 향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말투!


공손한 말투였지만 낮고 차분했다. 괜히, 인경이 읍장이 아니었다.


“후훗 오랜만에 우리 읍에 자랑할만한 목민관 한 명 탄생하셨군. 나중에 공덕비라도 세워줘야 하겠어.”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비웃듯 백경덕이 툭 말을 뱉어냈고.


“그런데 백 이장님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로.”


백경덕이 힐끗 나를 보더니 담배를 퉤 뱉어내고 발로 거칠게 비벼댔다.


“후훗 나 역시 명색이 마을이장단 회장 아닌가. 마을 이장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곧 마을 이장들 일이기도 하고.”


의미심장한 말투로 백경덕이 나에게 미끼를 던졌다.


“볼 일이 있어서, 우리 차대풍 이장님한테. 그럼 이유가 됐나?”


아무리 생각해도,


볼수록 영락없는 백상구였다. 한껏 예의를 갖춘 말투지만 마치 바짝 날이 선 시퍼런 칼을 들고 나에게 달려드는 기분.


“후훗 그렇습니까, 그럼 어디 들어볼까요, 저를 만나자고 한 이유?


쥐고 있던 칼을 컨테이너 위애 내려놓고 몸을 바로 했다. 둘 사이에 오가는 싸늘한 기운, 인경이 본능적으로 정색인 표정으로 나를 봤다.


”대, 대풍아....“


”후훗 궁금해서. 눈 코 뜰새 없이 바쁘실 분께서 어떻게 여기까지 친히 나를 찾아오셨나 싶기도 하고.“


백경덕이 꿈틀, 나를 노려봤다.


어이쿠, 무서워라. 천하의 다마네기, 나 강대풍을 상대로 이런 무서운 눈빛이라니!


궁금했다. 후훗 도대체 나를 상대로 어떤 겁을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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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 혼자가 아니다 24.04.23 36 2 14쪽
29 백종훈 24.04.19 45 1 20쪽
28 위로 24.04.16 59 1 11쪽
27 함정 4 24.04.14 63 1 13쪽
26 함정 3 24.04.11 64 1 11쪽
25 함정 2 24.04.07 66 1 14쪽
24 함정 1 24.04.04 84 1 13쪽
23 실타래 24.04.03 91 1 16쪽
22 바늘과 실 24.03.30 91 1 14쪽
21 새끼 손가락의 약속 24.03.29 91 2 13쪽
20 양아치의 법칙 24.03.28 105 1 12쪽
19 판을 벌이다 24.03.27 107 1 14쪽
18 묘책 +2 24.03.26 130 1 12쪽
17 나는 아빠다! 24.03.23 139 1 13쪽
16 악연 +2 24.03.22 138 1 14쪽
» 그 녀와의 데이트 24.03.21 139 1 11쪽
14 양주먹 놔두고 말싸움이나 하라고 24.03.21 133 1 14쪽
13 조합원 +2 24.03.19 149 2 13쪽
12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24.03.17 147 2 12쪽
11 백경덕 24.03.16 162 2 13쪽
10 나의 절친은 읍장님 24.03.14 177 2 13쪽
9 아내 24.03.13 196 2 13쪽
8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4.03.12 185 2 14쪽
7 포제당 24.03.11 198 2 10쪽
6 참교육 24.03.10 204 3 13쪽
5 이렇게 따스한 밥이라니! 24.03.09 214 2 12쪽
4 어머니 24.03.08 243 2 14쪽
3 토끼같은 딸 24.03.07 269 2 11쪽
2 연화리장 차대풍 +2 24.03.06 29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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