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조폭의 제주도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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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세미
작품등록일 :
2024.03.06 00:20
최근연재일 :
2024.04.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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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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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백종훈

DUMMY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느꼈던 원칙 하나! 얽힌 실타래는 반드시 풀린다. 시간이 걸릴 뿐. 그리고 그 해결의 시작은 바로 시작점이다. 윤기 나게 둘둘 말려있어야 할 실타래가 미로처럼 꼬여버리게 된 바로 그 시작!


그 시작인 안승백 사장에게서 이른 아침 전화가 왔다.


“내 코가 석 자인 것은 맞지만서도......”


평소 활기차고 걸걸하던 목소리가 아니다. 한 옥타브 낮아진 차분함 음성. 큼, 잠깐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코가 석 자인 것으로 따지자면 차이장님 쪽이 더 급한 것 같아서예. 물건들이라는 기 다 생물(生物)이라서 수확도 수확이지만 제때 팔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아입니꺼? 일이 이 지경이 됐으니 차이장님 속이 말이 아닐낀데.”


기껏 제주까지 나를 보러 왔는데 식사 한 번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대구로 보낸 안승백이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마주 앉아 밥을 먹은들 편하게 목구멍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테고.


“별말씀을요, 아직은 견딜 만합니다. 안 사장님 쪽은 어떻습니까?”


“일단 모레쯤 수성궁 영업부장이란 자슥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더. 우야튼 잘못이야 지가 한 기 아입니꺼. 사정 얘기하고 썩은 물량만큼만 싹 다 교환해주겠다고 해보려구예. 배상금이니 뭐니 난리를 치겠지만서도 그기 말이 되지 않는 얘기 아입니꺼. 손해를 보면 지들이 얼마나 손해를 봤다고 배상금입니꺼? 이건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도둑놈 심보라예.”


다시 걸걸해지는 안승백의 목소리.


“교환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쪽에서 원하면 저희 역시 물건을 새로 보내드릴 거고요.”


“어데예, 차이장님 쪽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지 역시 물건들이 택배로 오면 일일이 두 눈으로 확인한다 안 캅니까. 분명 수성궁 쪽 물건도 아무 이상 없다는 걸 똑똑히 확인했구예. 독박쓸 때 독박쓰러라도 따질 것은 따져 봐야지예. 차이장님까지 독박 쓰실 이유 없습니더.”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내가 봐도 뭔가 석연치 않은 상황. 따질 것은 따져봐야 했다. 하지만 상대가 수성궁이다. 걱정이 앞섰다. 안승백 성격 역시 보통이 아니었지만 덩치들이 작정하고 쳐놓은 덫이라면 혼자서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치 양 한 마리가 입맛을 다시는 늑대 떼 소굴로 제 발로 들어가는 꼴.


“무리는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배상금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저도 기꺼이 도울 생각이구요.”


“하이고 와예? 지가 마 괜히 수성궁으로 들어갔다 매타작이라도 당할까봐예?”


“그,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괴않습니더. 이래 봬도 시장바닥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몸이라예. 그깟 왈패들 따위에 쫄 것 같음 차라리 불알을 떼고 말지예. 걱정마이소 마, 지가 잘 알아서 할 테니까.


부러질 정 꺾일 사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불안감이 앞섰다. 조폭의 생리를 너무 몰랐다. 어린 양 따위가 메에에- 소리를 높인들 들어줄 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쩍 입을 벌리고 한 입에 집어삼키려 할 뿐.


“그나저나 주문이 끊겨 물량이 많이 쌓이고 있을긴데 요즘 우예 하고 계십니꺼?”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계속 창고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구요.”


“카지만 봇물 터지듯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시기 아입니꺼? 제때 물량을 처리하지 못하면 차 이장님 쪽도 이만저만 손해가 아닐낀데.”


큼, 다시 헛기침. 안승백이 말을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차이장님, 백종훈이라고 잘 아시지예?”


“백종훈이라면?”


“맞습니더. 요즘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그 양반! 요식업 바닥에서는 잔뼈가 굵은 인물이라는 것도 잘 아시겠고예?”


물론 잘 알았다. 백종훈, 요식업계의 전설! 수십억 빚더미에서 연 매출 삼천억 원의 요식 브랜드 ‘헤븐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수장!


‘골목 랩소디’란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날리더니 최근에는 예성읍 살리기 프로젝트로 대박을 l고 있었다. 금수저 출신임에도 서민적인 외모, 격식을 따지지 않는 친근함으로 예비 식당 창업자들의 멘토 중의 멘토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인물.


그런데 갑자기 백종훈이라니!


“지가 말은 안 했습니더만 백 사장하고는 호형호제하는 사이 아입니꺼? 지금이야 떵떵 잘 나가지만 그 양반 사업 초창기에는 사업한다고 말아먹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였지예. 지도 마 덕분에 돈이 떼인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투자다 하고 버텼지예. 그 양반, 사업이 망해 땡전 한 푼 없어도 눈빛이 마음에 들었지예. 아, 이 양반은 믿을 수 있겠다카고.”


흠칫했다. 처음 듣는 얘기! 설마, 백종훈과 안승백이 연결되어 있을 줄은.


“그런데 백사장이 헤븐 코리아로 대박을 치는기라예. 덕분에 지도 마 제법 돈을 만졌고예. 그래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혹시나 싶어 백사장한테 연락을 넣었지예. 사정이 이러이러한데 차 이장님 쪽 물건을 해결해줄 수 없겠냐고.”


설마!


“후훗 아다리가 딱 맞아 떨어지는기 백사장이 내일 제주로 촬영을 간다고 하네예. 뭐, 골목 랩소디 제주 편을 찍는다는 뭐다 카면서요. 그런데 사정을 말하자 혼쾌히 백사장이 연화리를 한 번 찾는다고 하네예. 차이장님 연락처도 이미 드렸고예.”


“그, 그게 정말입니까?”


“하모예. 백사장, 그 양반 한 입으로 두말하는 양반이 절대 아니라예. 물론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숨통이라도 트이라고예. 이캐저캐 차이장님 속이 지금 말이 아닐낀데.”


마음이 뭉클했다. 서로가 코너로 몰리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도 안승백이 나를 챙기고 있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고,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실 줄은.”


“하핫 아입니더. 우야튼 서로 뭐라도 해봐야카지 않겠습니꺼. 애써 키운 물건을 똥값에 넘기기에는 너무 아깝다 아입니꺼?”


안승백이 호탕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창고에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감귤과 브로콜리들! 누군가에게는 돈주고 사먹으면 그만인 과일 한 개지만 누군가에게는 피와 땀이었다. 가격만 낮추면 물량을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연화 삼촌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좋은 농산물을 제값에 받고 팔자는 게 연화 삼촌의 존재 이유! 그런데 급하다고 물건을 땡처리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백종훈이라......!


생각지도 못한 인연, 하지만 겪어봐야 했다. 과연 인연이 될지 악연이 될지는.


* * *



“헐, 대박! 백종훈이요? 헤븐 코리아의 그 백종훈요?”


사무장인 이채연의 놀란 목소리.


“그, 그 말이 진짜꽈?(사실입니까?) 게믄(그러면) 백종훈이 연화리를 방문한다 이 말 아니꽈?”


덩달아 울려 펴지는 동철이 녀석의 놀란 목소리.


“아직은. 하지만 기다려봐야지. 안승백 사장이 운을 뗐다고 하니까.”


리사무소로 복귀. 이채연과 동철이 녀석에게 일단 사정을 얘기했다. 둘이 눈의 커질 만큼 커졌다.


“마, 말도 안돼! 그럼 얘기 끝난 거 아니에요? 백종훈이 나서면 완전 대박일 텐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아직 연락 온 것도 아니고 결정된 것 역시 하나 없는 상황이야. 그냥 알아만 두라고. 다른 분들한테는 확실해지면 말을 건네고.”


“게도 시작이 반 아니꽝게. 정말 잘 되신게마씸. 나도 산처럼 쌓여만 가는 물건을 어떵헐건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신디.”


한우 농장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 동철이 녀석이 수시로 창고를 들락거리며 재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때마다 나만큼이나 속이 타 들어가고 있었을 게 분명할 터.


“피이, 오빠가!”


이채연이 장난스레 도끼눈을 하고 동철을 노려봤다.


“그럼 산처럼 물건이 쌓여만 가는디 걱정이 안되크냐? 백종훈이 됐든 누가 됐든 일단 빨리 처리하는 게 상책이주게.”


“어머, 이 오빠 터진 입이라고 말하는 것 좀 봐. 아이구 그러셨어요, 그런 분이 어제는 성대와 진석이 오빠랑 읍내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그렇게 마셨어요, 대리기사까지 부르시면서.”


“이, 임마 그건 하도 열불이 터져 그런 거 아냐. 일은 빵빵 터지는디 빠져나갈 구멍이 어신 것 같아서.”


동철이 화들짝 놀라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니까!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이 구멍도 파보고 저 구멍도 파봐야지 술이나 마시고 있으면 어쩌냐구? 아이구 어떤 여자인지 오빠 마누라 될 사람 안 봐도 뻔하다. 지지고 볶고, 볶고 지지고 고생길이 훤하네요 뭐.”


“야, 이 채연 너 정말!”


“왜요, 서동철씨! 바른 말 하니까 뜨끔하시나요? 그럼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지.”


고양이와 쥐, 토끼와 거북이다. 아옹다옹 알콩달콩!


“후훗 음식이란게 지지고 볶아야 제맛이 나는 법이니까. 고생길을 거쳐야 행복이란 것도 보이고.”


흠칫, 이채연과 동철이 나를 봤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말이 그렇다고. 사람 인연이란 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이, 이장님!”


“혀, 형님!”


새빨개진 얼굴로 둘이 동시에 소리를 높였다.


서동철과 이채연, 회귀 후 만난 청춘남녀다. 동철이 나의 오른팔이라면 이채연은 나의 왼팔! 국수를 먹었음 하는 마음 간절했다.


“소리는, 일단 백종훈은 덤으로 알고 추가로 창고를 계속 알아봐 줘. 백종훈이 우리 손을 잡아주면 다행이지만 운만 믿고 가기에는 위험이 너무 커.”


예상치 못한 백종훈의 등장! 분명 기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처리해야 할 물량이 산더미였다. 백종훈이 어찌어찌 도와준다 한들 제한적일 게 분명할 터. 계속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알았쑤다, 사무장 말대로 술이나 빨지 말고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녀라 이 말 아니꽈?”


“어머 신기해라.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네. 난 오빠 귀가 여태껏 장식인 줄 알았다니까.”


“야, 이 채연 너 정말!”


“그러니까 열심히 하라구요. 괜히 나한테 책 안 잡히려면.”


“후훗 자리 비켜 줘? 참기름이 고소하니 금방 뜨끈뜨끈한 전이라도 나올 분위기인데.”

“이, 이장님!”


“형님까지 무사 정말 경 햄쑤광!”


솔솔 피어나는 참기름 냄새. 순간 쾅 문이 열리며 분위기가 일순 바뀌었다.


“차, 차 이장 빨리 밖에 좀 나와봐사여케(나와봐야 하겠습니다) 누가 좀 찾아와신디.”


이채연 엄마인 부녀회장 장씨 아줌마!


평소와 다르게 잔뜩 긴장된 표정이다.


“찾아와? 누가 엄마?”


이채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제 엄마를 봤다.


“그게,,,,,,,”


장씨 아줌마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꾹 입술을 깨물었다.


“찾아오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누가 절 찾아왔다는 말씀입니까?”


장씨가 잠시 나를 보는가 싶더니 툭 내뱉듯 말을 던졌다.


“누구긴 누구라, 백경덕이 그 인간이 찾아와신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고 주렁주렁 부채까지 셋이나 들고.”


* * *


“하핫 이거, 이거 역전의 용사들이 여기 다 모여 계셨군. 초상집일까 봐 어쩔까 싶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성큼 밖으로 나섰다. 백경덕이 껄껄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 뒤로 보이는 세 명의 양아치들! 아들인 백상구와 두 명의 똘마니, 바로 노랑머리 김신기와 문신덩치 조은세.


“바쁘실텐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신지.”


“하핫 바빠도 챙길 것은 챙겨야지. 가는 길이 달라도 명색이 용성읍 한식구 아닌가. 식구가 어려움에 처했다는데 나 몰라라 하면 그게 어디 사람이겠나?”


백경덕이 껄껄 웃으며 소리를 높였다. 히죽 웃으며 눈빛을 번득이는 세 명의 양아치들이고.

“염려해주신 덕분에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여기저기 방법을 찾아보고 있구요.”


“호오, 방법이라?”


“백 이장님 수완만큼 하겠습니까? 그저 동네 분들께 민폐나 되지 않게 죽어라 뛰는 중입니다. 혹시 방법이 있으면 길을 알려주시고요.”


“예끼, 이 사람! 나야 이미 뒷방 늙은이 아니겠나? 도와주고 싶어도 기운이란 게 없어. 이것 참, 마음 같아서는 뭐라고 도와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역시 교활한 능구렁이.


한마디 한마디에 잔꾀가 넘쳐흐른다. 부전자전, 백상구가 누구를 닮아 저렇게 양아치인가 했더니 영락없은 제 아버지다. 백경덕에 백상구, 참, 기가 막힌 조합이다.


“아이구 그러니까 남들 다 가는 고속도로 놔두고 무사 경 사서 고생이꽈? 연화 삼촌 덕분에 우리 정낭 팜도 사기꾼 취급이라마씸. 아무리 아니라고 목청을 높여도 같은 용성읍 아니냐고 전화가 빗발치고.”


백상구가 히죽 웃으며 죽는소리했다.


“그 점이라면.......”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양아치들의 전형적 모습! 상처 입은 이를 보면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소금을 뿌리며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진을 빠지게 하고 피를 토하게 한 후 서서히 말려 죽인다. 제 눈앞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때까지.


“내가 사과하지. 미안하다. 괜히 우리 쪽 때문 정낭 팜이 피해를 보게 돼서.”


“아, 아니 형님! 그게 무슨 말이꽈? 미안은 무사 우리가 미안허우꽈? 염연히 브랜드가 다른디?”


동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동철이 말이 맞아게. 우리가 무사 미안허여! 욕을 먹어도 우리가 욕을 먹고 망해도 우리가 망허는 건디.”


이번에는 장씨 아줌마!


“아이고 두야! 아버지 봠지예? 챙겨준다고 와도 이 지랄들 아니꽝게. 좀 도와줍써허믄 우리도 생각을 바꿀지 모르는 일인디.”


백상구가 히죽 웃었고.


“뭐, 뭐 야, 백상구!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뭐, 지랄?”


동철이 발끈 소리를 높였다.


“아, 미안! 나의 미스테이크!”


백상구가 장난스레 한 손을 올려보았다.


“야 백상구, 너 정말!”


동철이 주먹을 확 치켜들었다.


“그만해.”


나의 낮지막 묵직한 음성.


“혀, 형님.....!”


“그만하라고. 어쨌든 일이 걱정돼서 찾아온 손님들이잖아. 그 마음이 고맙고.”


“고마워마씸? 이 인간들이 마씸? 보면 모르쿠과? 불난 집에 부채질하러 온 것들 아니 꽝에. 이웃사촌이라고 도와주지 못할망정 어떻게든 지랄햄신고 떠보젠들 마씸!”


“야, 서동철 이 씹새야! 말이면 다인 줄 알아? 정말 이 자리에서 한 번 뜰까?”


“그래, 이 씨바야. 한 번 떠, 떠보자구!”


으르렁거리는 서동철과 백상구.


하지만 나의 눈에는 하룻강아지들. 맞짱들 자신은 없으면서 기세에 밀리기 싫어 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해결책은 하나!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기만 봐도 오금이 저릴.


“못 들었어, 그만두라는 말.....!”


눈을 가만히 치켜들었다. 동철이 녀석과 백상구가 흠칫 나를 봤다.


고수는, 주먹으로 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 바로 눈싸움! 눈빛 하나면 웬만한 덩치들 무릎 꿇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물며 이런 하룻강아지들쯤이야.

“너희 둘만 있는 자리 아니야. 보는 눈 역시 많고. 어쨌든 잘해 보자고 찾아온 손님들 아니야.”


순간 어색한 침묵.


백경덕 역시 마찬가지! 하긴, 예전의 차대풍이 아닐 것이다.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눈빛 하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터.


“사, 사람하고 왜 그렇게 목소리를 깔고 그러나. 젊은 혈기에 소리 한 번 높인 것 갖고.”


“죄송합니다, 그렇게 느끼졌다면.”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분명 지금의 내 처지는 최악의 상황! 하지만 우는소리를 해서는 안 됐다. 조금의 틈도 보여서는 안 됐고. 하소연이란, 틈이란 사람한테나 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백경덕은 사람이 아닌 하이에나! 호시탐탐 내 목을 뜯을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됐습니다. 저 역시 백이장님께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뵐 테고요.”


“하핫 당연히 그래야지 제주에 괜히 괸 당 문화란 게 있는 게 아니잖은가. 힘들면 서로 도와야지. 그게 사람 사는 정이기도 하고.”


큼- 백경덕이 주위를 둘러보며 크게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다행이야.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지 않나. 위기가 기회라고 이번 일만 잘 넘어가면 다시 기회가 오겠지.”


병 주고 약을 주고는 백경덕이 씨익 웃었다.


“아, 그리고 말이야 한 가지 더!”


백경덕이 뚝 웃음을 멈추더니 한걸음 다가왔다.


“여차하면 연화초 애들 용성초로 보내게. 없는 애들을 당장 어디서 데리고 올 수도 없고 있는 애들이라도 고생을 덜 시켜야지. 현재로서는 연화초와 용성초가 합치는 게 최선이야. 안 그런가?”


아픈 곳을 찔렀다. 연화 삼촌만큼이나 중요한 일, 연화초의 분교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하지만 산 넘어 산. 연화 삼촌 일에 치여 기획안을 구상하는 것은 시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마을마다 사정이란 게 있는 법이니까요. 어쨌든 말씀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백경덕이 미간을 꿈틀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고 싶었겠지만 나는 소가 아니고 호락호락하게 주도권을 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장고가 때로는 악수가 된다는 말을 명심하게. 괜히 고집부리다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아이고 아버지 그만 가게마씸. 잘난 분들이니까 알앙들 제 앞가림들쯤은 허겠주마씸. 괜히 우리가 남의 일에 감내라 밤 내라 할 필요가 뭐가 있쑤가? ”


백상구가 카악, 거칠게 바닥으로 가래침을 뱉어냈다. 뒤에서 킥킥 웃는 노랑머리와 문신 덩치.


“후훗 아무래도 그래야겠구나. 이거야 원 말이 통하지 않으나, 그럼 어디 한 번 잘해보게.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고.”


백경덕이 씨익 웃어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뚜벅 앞으로 걸어갔다. 노랑머리가 재빨리 차의 뒷문을 열자 백경덕이 이내 올라탔다. 탕탕, 이내 거칠게 차 문을 닫고 올라타는 백상구와 문신덩치! 이내 부릉 시동이 거는가 싶더니 재빨리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썩을 놈들,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유분수가 있지 에라이, 이 못된 종자들 같으니라고.”


장 씨 아줌마가 퉤, 멀어져가는 차를 향해 침을 뱉었다.


“정말 엄마까지 왜 그래! 백 이장, 저런 인간일 줄 정말 몰랐어?”


이채연이 발끈했다.


“아니까 더욱 열불이 터지지. 저런 인간들한테 감내라 밤 내라 가당찮은 훈수나 듣고 앉아있으니.”


잠깐의 침묵.


“혀, 형님.....”


서동철이 무겁게 나를 불렀다.


“후훗 미안하다. 일이 이 지경이 돼서.”

“미안하긴 뭐가 미안허우까. 다 잘 해 보자고 하는 짓인디.”


“맞아게. 우리 차이장 애쓰는거야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디 어떤 놈이 뭐랜 헐꺼라. 어떵 이번만 잘 견뎌보게게. 그게 우리도 살고 마을도 사는 길 아니라게.”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나의 비타민들!


조폭 시절 인간관계라는 것은 철저히 주고받기식! 돈이 되면 형님 아우고 그 반대면 적이고 원수였다. 사람의 정 따위 찾아보려야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비정한 거리!


회귀 후 가장 내가 뿌듯해지는 순간!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백경덕같은 양아치들도 넘쳐나는 세상이었지만.


순간 삐링- 울리는 전화음. 폰을 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천천히 폰을 귀에 갖다 댔다. 밝고 호탕한 사내의 목소리!


“혹시 차대풍 이장님 되시남유?”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 누군가 싶었다.


“그렇습니다만......!”


“하이고 맞구만이라유. 처음뵙겠시유, 저 백종훈이라고 합니다. 안승백 사장님 소개로 이렇게 연락드렸구유.”


흠칫!


백종훈,


헤븐 코리아의 수장 바로 백종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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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종훈 24.04.19 43 1 20쪽
28 위로 24.04.16 58 1 11쪽
27 함정 4 24.04.14 61 1 13쪽
26 함정 3 24.04.11 63 1 11쪽
25 함정 2 24.04.07 63 1 14쪽
24 함정 1 24.04.04 81 1 13쪽
23 실타래 24.04.03 90 1 16쪽
22 바늘과 실 24.03.30 90 1 14쪽
21 새끼 손가락의 약속 24.03.29 91 2 13쪽
20 양아치의 법칙 24.03.28 104 1 12쪽
19 판을 벌이다 24.03.27 105 1 14쪽
18 묘책 +2 24.03.26 129 1 12쪽
17 나는 아빠다! 24.03.23 138 1 13쪽
16 악연 +2 24.03.22 137 1 14쪽
15 그 녀와의 데이트 24.03.21 139 1 11쪽
14 양주먹 놔두고 말싸움이나 하라고 24.03.21 133 1 14쪽
13 조합원 +2 24.03.19 149 2 13쪽
12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24.03.17 146 2 12쪽
11 백경덕 24.03.16 160 2 13쪽
10 나의 절친은 읍장님 24.03.14 176 2 13쪽
9 아내 24.03.13 195 2 13쪽
8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4.03.12 185 2 14쪽
7 포제당 24.03.11 196 2 10쪽
6 참교육 24.03.10 203 3 13쪽
5 이렇게 따스한 밥이라니! 24.03.09 211 2 12쪽
4 어머니 24.03.08 242 2 14쪽
3 토끼같은 딸 24.03.07 266 2 11쪽
2 연화리장 차대풍 +2 24.03.06 29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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