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2. 신과함께 서곡
테이블에 있는 티슈를 정신이에게 건냈다.
“괜찮으세요?”
티슈를 받은 정신이는 몸을 바로하고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나이 먹으니 눈물만 많아져요.
아. 창피해. 씨”
“아닙니다. 저도 눈물 많아요.
울보예요”
“저 오늘 생일이예요. 사실은···”
“엇, 아··· 죄송해요.
제가 괜히 시간을 뺏었나 봐요”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구요.
저한텐 너무 고마운걸요.
사람의 마음을 느껴본 게
정말 오래된 일이라서요”
정신이의 눈물···
이 아름다운 여자가 무슨 사연이 있을까?
뭐가 이리 아팠을까?
내 마음도 괜히 아파왔다.
“저 어릴 땐, 제 생일이 너무 좋았어요.
7월 7일. 럭키세븐 이거든요”
“아, 그렇네요. 오늘이 7일이구나···”
“근데 4년 전. 제 생일에
남편이 죽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난 차마 뭐라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살했어요. 제 생일날.
저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미친 새끼···”
난 흠칫 놀랐다.
이 아름다운 여자의 입에서
욕이 나올 줄은 몰랐었기에.
“어머, 죄송해요.
하··· 이래서 제가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는데···”
“괜찮습니다. 누구나 욕 하잖아요.
저도 해요. 욕”
나의 말에 정신이가 웃어주었다.
눈가엔 눈물이 가득한 채.
“고마워요. 최대표님.
제가 그동안 생일을 잊고 살았는데
오늘은 저를 위한 파티 같았어요”
“아뇨 아뇨. 제가 감사한 걸요.
사무실도 이쁘게 꾸며 주셨고
저녁에 이렇게 시간도 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정신이는 다시 감정을 추스른 듯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친구 할까요? 히힛”
“영광이죠”
“그럼. 담부턴 말 놓기. 알겠죵?”
“좋아요”
다시 보자는 약속을 남기고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정신이의 집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주었고
그녀가 탄 택시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곤 집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많은 생각이 피어났다.
생일날 자살한 남편을 둔 여자라···
내가 상상도 못 할 아픔이겠구나···
이렇게 천사 같은 여자에게
왜 그런 시련이 생겼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도 얼마나 아플까?
이 여자··· 내가 도와주고 싶다.
위로해주고 싶다.
내가 꼭 힘이 되어주리라···
택시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온통 머릿속은 온통 정신이의 생각뿐이었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려본다.
이제 집이다. 생각 그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니 딸아이가 달려온다.
“아빠”
달려온 아이를 힘껏 안았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
“어, 아빠는 일하다 조금 늦었어요.
저녁은 맛있게 먹었어요?”
“네. 엄마가 고기 만들어 줬어요”
“고생했어요. 여보”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까지 한
나의 아내 화진이다.
“응. 밥은 잘 챙겨 먹었어?”
“은아랑 불고기 해서 먹었어.
은아가 좋아하더라고”
“잘했네”
“자기는? 저녁 잘 챙겨 먹은 거야?”
“그럼. 먹는 건 잘 챙겨 먹고 다니니까 걱정 마.
이제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 다 끝나서
그쪽 대표님하고 같이 저녁 먹었어.
사인물 관련해서도 굉장히 전문가시더라고.
앞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
“잘 됐네. 안 그래도 자기가
전혀 안 해본 일을 어떻게 하나 걱정됐는데···”
“걱정 마세요. 화진양.
조만간 회사에서도 현장 하나 소개해 준다니까
곧 일 시작될 거 같아.
인테리어 대표님도 도와주신다고 하니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잘 할 거야. 믿어. 당신”
“고마워. 나 씻는다”
“네~”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아내다.
구조조정을 당해 실직자 신세가 되었을 때도
날 안심시켜 주던 사람이다.
외벌이 가장이 실직했을 때
제일 불안한 건 본인일 텐데도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고마운 사람.
그런 사람이 나의 아내 화진이다.
고단했던 몇주간의 고민과 피로를
샤워기로 씻어버리며 다짐을 해본다.
꼭 성공하리라
보란듯이 일어나리라!
1998년 8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 감사합니다. 비제이기획 입니다 』
『 어이구. 최 과장.
아니지. 아니지.
이제 최 사장님이라 불러야지 』
『 누구시죠? 』
『 이거 서운한데?
그새 내 목소리도 까먹었나 보네. 』
『 하팀장님? 』
『 그래, 나다. 쨔샤. 크큭 』
『 아이, 뭐예요. 회사로 몇 번 전화했었는데
맨날 외근 나갔다고 하더만···
연락 안돼서 걱정하고 있었잖아. 』
『 걱정보단 좀 놀라게 해주려고
아침 일찍 전화했지. 크크. 』
『 왜요? 뭔 일 있어요? 』
『 병재 너. 회사에 있을 때
수원 현장 하던 거 있지? 』
『 문화재 이슈 때문에 스탑 됐었잖아요. 그거. 』
『 다 해결됐다. 인허가 준비도 다 끝났어. 』
『 진짜? 』
『 그래 임마. 그거 너 해.
회사에 승인도 다 받았어. 』
『 형··· 』
『 형만 믿으라고 했잖아. 짜샤.
니가 총대 메고 회사 나갔는데.
내가 총알을 만들어줘야지. 당연히. 』
『 고마워. 형··· 하팀장님··· 』
『 이 자식은 형이라고 했다가
팀장이라고 했다가. 크크.
아무튼 공사비 예산으로 10억 빼 뒀으니까
니가 한번 잘 만들어봐. 』
『 10.. 10억?? 』
『 뭐 외주비, 인건비, 기타 잡비 등등
빼면 30프로는 안 남기겠냐? 』
『 형··· 』
『 야. 시끄럽고.
내일 아침에 현장에서 미팅하기로 했으니까
명함 챙겨서 수원으로 와. 끊는다. 』
태성이형···
에이앤건설에서 내가 제일 따랐던 멋진 형···
구조조정 통보받은 날.
내 손을 꼭 잡고 밤새 술을 마시며
같이 울어주던 따뜻한 형···
사무실 인테리어까지 다 해놓고
아무 일도 없어
한달간 불안에 시달렸는데
드디어 프로젝트가 생겼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보자!
내일 오전 10시··· 수원이라···
김정신···
정신이가··· 사무실에 있으려나···?
갑자기 전화해서
내일 같이 가자고 해도 괜찮을까?
에이, 몰라.
전화받으면 가는 거고.
안 받으면 함께 할 운명이 아닌 거겠지.
그래도 보고싶긴 하다···
지난번 받았던 명함을 매만지며
그녀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초조했다.
끊을까?
하.. 또 떨리네···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고객감동, 공감디자인. 김정신입니다. 』
『 저··· 』
『 네. 말씀하세요. 여보세요? 』
『 저 최병재입니다. 』
『 최대..
야! 병재야! 』
『 아이. 깜짝이야.
잘 지내셨어요? 』
『 야. 죽을래?
말 놓기로 했잖아.
남자가 한 입가지고 두말하냐? 』
한달만에 듣는 천사의 목소리.
다시 행복해졌다.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난다.
『 어.어. 그랬지. 』
『 야. 너 어떻게 지냈어?
왜 이렇게 연락을 안 하냐?
얼마나 기다렸는데··· 』
『 아, 미안···
할까 말까 많이 고민하다
딱히 일이 없어서. 』
『 아이, 뭐야. 꼭 일 아니더라도.
연락하기로 했잖아.
남자가 먼저 데이트 신청하고 그러는 거야.
내가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해? 크큿. 』
역시 유쾌한 정신이.
술 자리 한번 했을 뿐인데.
오랜 친구처럼 대해준다.
마음이 편해진다.
『 알겠어. 전화 자주 할게.
저.. 정신아. 혹시 말이야. 』
『 어. 말해. 』
『 좀 급작스럽긴 한데. 내일 오전에
업무 스케줄이 어떻게 돼? 』
『 할 일이야 많지. 왜? 먼데?
데이트 신청이야? 』
데이트.. 크..
말만 들어도 좋다. 야.
『 어··· 아니··· 데이트는 아니고.
내가 전에 회사 다닐 때. 준비하던 현장이 있는데.
이제 스타트 될 거 같아.
내일 실무 미팅 한다는데.
정신이 너가. 같이 가줄 수 있을까 해서. 』
『 야. 장난해? 』
그렇지···
하루 만에 갑자기···
미팅 가자고 하는 건 무리겠지?...
『 너무 갑작스럽지?
너도 스케줄이 있을텐데··· 』
『 하.. 병재.. 답답하네.
야! 그런 건 스케줄이 있어도
열일 제쳐두고 가야지.
오전이 아니라 새벽도 괜찮아.
어디야? 장소. 』
『 어. 수원인데. 오전 10시. 』
『 야. 내가 또 수원..
내 나와바리야.
미팅 끝나고 맛난 거 사줄게.
아이고. 우리 이쁘니.
아침부터 이렇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고맙네. 울 병재. 』
진짜···
같이 가주는 건가···
정신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
『 괜찮겠어? 시간? 』
『 야. 내가 약속 다 캔슬 해서라도.
너랑 무조건 같이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
『 고마워. 정신아··· 』
『 얘가 퇴사한지 얼마 안 돼서
개념이 안 잡혔네. 풉.
니가 고마운 게 아니고.
내가 고마운거야. 』
『 뭐 그런 게 어딨어.
서로 같이 일할 수 있어서
고마운 거지. 』
『 병재야 』
『 어. 정신아. 』
『 사랑해 』
『 어? 』
『 일 줘서 고맙고. 사랑해. 』
사랑.. 한다고?
심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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