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4. 드러나는 상처 1
정신병···
정신병 환자라고?
얘기만 들어봤지 감도 안 잡힌다.
드라마에서 보면 병원에 갇혀
막 묶여 있고 그러던데···
“내 정신병 때문에 남편이 죽은 거야.
내가 남편을 죽인 거야···
내가··· 나 때문에···”
“음··· 정신아···
음.. 글쎄···
내가 지금 무슨 얘길 해야 할지···
어떤 말이 맞을지 잘 모르겠는데···
니가 어떤 상황이었을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감히 난 짐작도 못해···
하지만···
이 말은 해주고 싶어...
남편분은···
음··· 니가 죽인 게 아니라는 거···”
“니가 뭘 안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너 때문 아니니까···
두 사람의 상황은 내가 잘··· 모르지만···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각자 생각이 다르잖아.
그 다름으로 인해 생긴 결과를
정신이 너의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을 거 같아···
고인껜 죄송하지만···
그 분은 스스로 선택하신 거야.
본인이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그러니 정신이 니 탓이 아니라고···”
“아니야···
내가 하는 말, 행동에 많이 힘들어했어.
내 광기가 무섭다고 했어···
나 때문에 선택한 거야···”
정신이의 예쁜 눈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정신이가 슬퍼한다···
정신이가 힘들어한다.
위로해 주고 싶다. 어떻게라도···
“혹시··· 미안하지 않았을까?”
“뭐라고?”
“너 때문에 괴로워서가 아니라
너에게 미안해서 그러시지 않았을까?
미안해서··· 그래서 선택하신 거 아닐까···?”
“미안해서···?
미안··· 해서···”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셨다길래···”
“그걸 기억해?
지난달에 한 말을?”
“그럼··· 고작 한달 전 일인 걸”
한 달이 아니라 몇 달 전이라도
정신이 네 말은 다 기억했을걸···
내내 네 생각 많이 했으니까···
“오히려 본인 때문에
너가 아파간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너에게 미안해서···
아마··· 그러지 않으셨을까···”
정신이의 눈에서 보석 같은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이게 아닌가?...
오히려 기분이 더 상했을까?
하··· 어떻게 하지?
한동안 말이 없던 정신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너 어떻게···
이런 말을 하니?”
“내가 너무 주제 넘었나 보다···
난··· 그냥···”
“한 번도 생각 못 했어”
“으.. 응?”
“나한테··· 미안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못했어.
그냥 내가 죽도록 미워서···
복수하는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
고마워. 최대···”
“응? 최대?”
“최병재 대표. 줄인거야. 힛”
그녀가 웃는다.
울다가 다시 웃는다.
내 말이··· 위로가 됐을까?
“막 이름 부르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대표는 넘 딱딱하고..
최대해. 너.
최대로 고마워”
“어..어. 기분이 좀 나아졌다면
다행이야”
“처음이야. 내게 이렇게 말해준 사람.
울 아빠 이후에 처음이야”
“아.. 그래?”
“아빠 살아계셨을 때.
항상 내게 하시던 말이 생각나네.
신아. 네가 틀린 게 아니라
각자의 세상이 다른 거야··· 라고···
늘 그러셨는데···
너 꼭 우리 아빠 같다. 힛”
“아버지. 멋지시네”
“이미 죽은 사람 생각을 알 순 없지만.
너가 말한대로 생각하면
내가 좀 덜 아프겠다”
“그래. 너가 중요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아프지 말고”
“고마워. 최대.
하···
밤새우고, 밥 먹고, 울었더니..
나··· 졸려. 흑.
완전 방전됐나 봐···”
“내가 집까지 태워다 줄게”
“아냐, 방향이 완전 다른데···”
“괜찮아. 어차피 나도 서울 가야 하는데, 뭐”
“그럼··· 나 강남까지만 태워다 주라. 히”
“어. 그래. 근데, 집이 그쪽은 아니잖아?”
“어.. 잠깐 들를 곳이 있어서”
“어이구. 피곤할 텐데···
집에 가서 좀 쉬지. 알겠어.
강남까지 데려다줄게. 나가자”
점심값을 계산하려는 나를 잡아끌며
정신이는 계산을 했고
수원 갈빗집에서 나와, 정신이를 차에 태우고
우린 서울로 향했다.
정신이는 고단했는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조수석에 앉아 쌔근쌔근 코를 고는
정신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내 차에 누워
나에게 기대어
몸을 맡긴 채 곤히 자는
정신이···
자는 모습마저 천사 같은 정신이에게
왜 그런 안 좋은 일이 생겼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정신이를 바라보니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 내가 지켜주고 싶다.
보호해주고 싶다.
아프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
이 기분··· 동정심일까?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홀로 수많은 생각을 하며
강남 부근에 진입했을 때
정신이가 눈을 떴다.
“엇?! 최대!!!
나 잤어? 코 골았어?”
화들짝 놀란 정신이가 날 보며 다급히 묻는다.
“아냐. 쌔근쌔근 잘 자던데.
엄청 피곤했나 봐. 자료 만드느라 밤새 잠도 못 자서”
“아씨. 이거 민폐인데.
조수석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잠이나 자다니. 미안해”
“미안하긴. 잠깐이라도 이렇게 눈을 붙이는 게 낫지”
“어? 벌써 강남이네.
나 한참 잤나 보다. 아주 개운하네. 헤헷”
“좀 더 잤으면 좋았을 텐데.
낮 시간이라 차가 덜 막혀서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렇다···
비록 차 안이지만
이렇게라도 정신이를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솔직히 그랬다.
“최대! 최대!
나 저기 앞에 신호에서 세워줘.
요 근방이야”
“어. 그럴게. 괜찮겠어?
아직 비몽사몽일 텐데”
“아냐. 아주 개운해. 고마워.
데려다줘서. 진심으로.
오늘 좋은 얘기해줘서 더 고맙고”
“고맙긴.
내가 더 고마워.
오늘 회의 멋지게 해줘서
덕분에 내가 위신이 좀 선거 같아.
덕분이야. 정신아”
“헤헷. 땡큐.
오. 나 여기서 내릴게”
난 신호등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는 정신이를 보니 걱정된다.
“피곤할 텐데 조심해”
“엉. 친구 좀 만나고 들어갈 거야.
걱정 마. 최대~ 안전운전!”
그렇게 정신이를 보내고
난 차를 몰아 강북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 회의 때 있었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왠지 집으로 가기 싫었다.
계속해서 정신이의 여운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난다···
남자 친구인가?
그래··· 정신이는 이쁘니까···
남자친구가 있을 수 있지···
하긴··· 저렇게 이쁜데
애인이 없는 것도 이상하겠지···
정신이에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 해졌다.
정신이가 남자친구가 있던 말던
그게 뭐라고··· 내 기분이 왜 이럴까?
난 그저 정신이와 같이 일하는 동료일 뿐인데···
나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신이가 만들어준 사무실.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모던하고 심플한
감각적인 사무실.
또 정신이 생각이냐?
정신 좀 차려라.
최병재!
고작 몇 번 봤을 뿐인데
시도때도 없이 정신이 생각만 하는
내가 웃겼다.
책상에 앉아 오늘 회의자료를 다시 보며
앞으로 해야 할 세부 스케줄표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음··· 이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오늘 미팅 결과를 궁금해하고 있을
나의 아내 화진이가 떠올랐다.
화진이에게 전화를 해줘야겠다.
『 여보세요 』
『 화진양. 나예요. 』
『 어? 여보. 미팅 끝났어? 』
『 응. 아주 아주 잘 됐어. 대 성공이야 』
『 우와. 거봐. 내가 잘 될 거라고 했잖아.
축하해 여보. 』
『 고마워. 다 당신이 믿고 응원해준 덕분이야.
당신도 알지? 내가 몇 번 얘기했던 수원 프로젝트. 』
『 그럼. 회사 다닐 때도 그 현장 때문에 고생했잖아. 』
『 맞아. 그 골치 덩이리가 이젠 복덩이가 됐어. 』
『 다행이다. 이게 분명 좋은 신호탄이 될 거야.
당신의 새로운 시작에 훌륭한 파트너가 될 거 같아. 』
『 응. 맞아. 은아는?
학교 갔다 왔어? 』
『 응. 그림 그리고 놀고 있어.
제법 잘 그려. 』
『 그래. 은아랑 저녁 잘 챙겨 먹고 있어.
나 회의자료 정리 좀 하려고. 』
『 왜··· 오늘은 일찍 오지. 』
『 막상 프로젝트 시작된다고 하니.
진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빨리 빨리 정리해 보려고. 』
『 그래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
『 알겠어. 걱정 말고. 』
그렇게 화진이와 통화를 마치고
난 업무에 집중했다.
에이앤 재직 시절 마케팅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페이퍼워크엔 자신 있었다.
그간 경험을 토대로 향후 진행될 스케줄표를 짜 보았다.
와··· 스케줄 대로만 쭉 진행된다면
3~4개월 뒤엔 큰 돈도 만질 수 있겠는 걸?
그동안 마음 한편에 항상 자리했던
걱정과 불안이 해소되는 느낌이다.
그래. 날 믿고 도와주는 분들과
하나하나씩 하다 보면···
모두가 지옥이라는 이 IMF ···
분명 나에게는 기회일 것이다!
페이퍼 정리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너무 늦었네. 화진이가 기다리겠다.
내 사무실. 내 회사로 들어가는 첫 번째 프로젝트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일했나 보다.
책상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불을 끄려는 순간
사무실 전화가 다급하게 울린다.
엥? 이 시간에 웬 전화?
밤 10신데???
『 네. 비제이 기획입니다. 』
『 여보세요? 최대님? 』
『 네? 여보세요? 』
『 거기 최대님 사무실인가요?
자꾸 이 아가씨가 최대 최대 하는데···
이름이 최대세요?
이름이 뭐 이래··· 』
최대?
최대? 응? 최대???
이건. 낮에 정신이가 한 말인데···
뭐야 이거?
『 네. 전 최병재 고요.
별명입니다. 최대···
근데 누구십니까? 』
『 아. 별명이시구나.
전 강남경찰서 조일권 순경인데요. 』
『 네? 경찰이요? 』
『 네. 최대님.
아.. 아니. 최병재 씨라고 하셨죠?
이쪽으로 좀 와주셔야겠어요. 』
뭐? 경찰???
왜? 이 시간에 경찰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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