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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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UTION
작품등록일 :
2024.03.07 16:45
최근연재일 :
2024.11.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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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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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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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보고서 7. 일희일비 사고

DUMMY

1998년 8월. 최대 사무실.


“가자”


“어디를 가?”


돌발스러운 나의 말에

정신이의 눈은 놀란 토끼가 되었다.


“어디긴, 짐 가지러 가야지”


“내 짐? 지금?”


“미룰 필요 없잖아. 빨리 갔다 오자.

이제부터 우리 할 거 많아.

오늘 정리를 다 해놓고

내일부터 바로 업무 시작해야해”


“어··· 알았어”


서둘러 움직이는 내 모습에

정신이가 당황하며 따라나선다.


정신이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사용할 물품들을 옮겼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쓰는 컴퓨터라 그런지

꽤나 무거웠지만 정신이의 마음속 짐을

덜어주는 거 같아서 오히려 기운이 났다.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정신이 짐을 옮기는 데만 집중했다.

혹시라도···

만일 하나라도··· 정신이가 말했던

그놈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괜히 마주쳐서 그 술집 놈에게

어떠한 빌미도 주고 싶지 않았다.


차에 실을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에

짐만 챙겨 서둘러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니··· 이젠 우리 사무실이다.

정신이와 나의 공간.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난 정신이가 일할 자리를 준비한다.


이미 돌아오는 차 안에서 구상을 마친 상태였다.


회의실에 놓여 있던 책상을 가져와

내 자리 바로 옆에 붙여버리곤

정신이를 슬쩍 보았다.


“정신아, 일단 책상은 이렇게 쓰자.

내 책상이랑 나란히 붙여서”


“으··· 이거 회의실에 있던 책상이잖아.

그럼 회의실은 어떻게···”


“그거야 하나 더 사면되지.

일단 당장 업무를 봐야 하니까 이렇게 하자.

그래야 바로바로 일에 대해 얘기도 할 수 있고.

업무 효율성이 좋을 것 같아”


내 사심이 잔뜩 들어간 자리 배치다.

일도 일이지만 정신이를 바로 옆에서

보고 싶으니까···


“아··· 이거 너무 미안한데···”


“에이. 같이 있기로 한 이상.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컴퓨터 세팅부터 해보자”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저녁이 되기 전

모든 정리를 다 마칠 수 있었다.


“최대. 혼자 다 했네.

짐도 옮기고, 내 자리도 다 정리해주고···”


“뭘··· 한 것도 없는데.

뭐 그냥 몇 개 옮기고, 놓고, 꽂고.

그게 다인데?”


내 책상과 나란히 붙어있는

정신이의 책상을 보니

정신이와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이 났다.


화진양에게 살짝 미안해졌지만

이건 같이 일을 하는 동료에 대한

나의 배려이자 사업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정신아. 정리는 다 마쳤으니

오늘은 집에 들어가 좀 쉬고

내일부터 제대로 시작해보자”


“알았어. 최대.

내일 일찍 나올게.

이렇게 해 놓으니 좋다···. 나도···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내일부턴 더 좋아질 거야.

내일 이쪽으로 출근해야 해.

너네 사무실로 가지 말고”


“알겠어. 힛”


이제 정신이가 웃는다.

많이 안정된 것 같다.


“집으로 데려다 줄게. 가자”


“아냐. 생각해 봤는데.

그건 너무 오버야.

너도 가정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집을 데려다 줘···”


“어허~ 당분간만 이래도.

오전에 내가 약속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와주겠다고.

너 안정 찾을 때까지 만이야”


“그래도 좀 그렇지 않을까?

누가 보기라도 하면···”


나에게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지

정신이가 많이 머뭇거렸지만

난 밀어붙였다.


“누가 보면 어떠니?

우리는 비즈니스를 같이하는 사람인거고.

그보다 먼저 우린 친구잖아.

이상하게 생각하는 놈들이

이상한 거 아니냐?”


“음··· 괜찮을까?...”


그럼. 괜찮고 말고 정신아···

어차피 이것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니···

그냥 이것까지만 허락해 줘···


무엇보다 난···

널 지켜주고 싶어.


“자, 더 머뭇거리면 차 막힌다.

출발”


정신이의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어제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 났다.


술에 취한 정신이가

날 택시기사인 줄 알고 목적지를

말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뭐야. 혼자 웃지 말고 같이 웃어.

뭐가 재밌길래”


내가 혼자 피식거려

정신이가 샘이 난 표정이었다.


“아니, 어제 너가 뒷좌석에 기대서 자고 있다가

갑자기 나한테

‘아저씨, 진심아파트로 가주세요’

그러는거야. 크큭.

그래서 알게 됐어. 니네 집”


“아이씨. 창피해.

또 다른 사고 친 건 없어?”


“없어. 갈 땐 얌전히 갔어.

나중에 택시비는 줘야 된다. 크큿”


경찰서에서 있었던 사건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정신이 성격에 더 고민만 많아질 테니까···


“최대. 고마워”


“아이, 그런 소리 이제 그만 하래두”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널 만난 게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서”


“풉. 무슨 행운까지야.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앞으로 잘 해야지”


“일을 떠나서··· 자칫하면 나···

정말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

다시 병원으로 잡혀 들어갔을지도 몰라.

내가 내 상태를 잘 아니까···”


“병원에 잡혀 가다니?”


“정신병원···

내 상태면 강제입원 해야 돼.

응급환자로···”


그 정도로 심각한 건가?

정신병이라는 게···

내가 보기엔 살짝 우울해 보이는 것 밖에

정신이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


“모든 게 최악이었던 순간에 너를 만난 거야.

다 포기하려던 순간에 최대가 날 살린 거야···

그때 최대가 인테리어 해달라고 전화를 안 했다면···

같이 프로젝트 진행하자고 연락을 안 줬다면···

그리고 어제 날 데리러 오지 안 왔다면···

아마 난···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


“정신아···

음···

난 있잖아··· 이제···

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


“그럴게. 이제 안 아플게.

정말 열심히 살 거야”


“주제넘은 소리일 수 있겠지만

지나간 일은 너무 생각하지 마.

너를 위해서야. 그리고···

너 죽을 운명 아니야. 아직은”


“니가 어떻게 아냐? 웃겨. 최대”


어떻게 아냐고?

알지. 왜냐면 이제 네 옆엔

내가 있을 거니까.

안 흔들리게 잡고 있을 테니까.

못 죽어. 김정신.


“암튼 그런 게 있어.

다 왔다. 여기 내려주면 돼?”


정신이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정신이 집에 도착했다.


“응응. 태워줘서 고마워. 최대님~”


“낼 지각하지 말라고 태워준거야.

나중에 일 잘 되면

택시비는 몰아서 줘야된다”


“예썰~ 큭. 운전 조심해. 최대~”


운전대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지루했다.

꽉 막힌 퇴근길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정신이와 함께 있을 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모든 생각에 기준이

정신이가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모르겠다··· 그냥 가보자.

이 끝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일단 한번 가보자.

이제···

앞만보고 달릴 테니까.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차게 악셀을 밟았다.

그렇게

정신이와 나의 배가 출항했다.


에이앤건설의 수원 프로젝트.

홍보관 인테리어 및 사인물 전체 시공을 도맡은

대형 프로젝트.


우리 둘은 프로젝트에 관련된 모든 것을 같이했다.


에이앤 건설 미팅을 갈 때도.

현장조사를 위해 외근을 나갈 때도.

밥을 먹을 때나, 야근을 할 때나.

밤에 잠자는 것 빼곤 모든 것을 같이했고

약속한대로 퇴근 후 정신이의 집까지

항상 데려다 줬다.


회사에 출근한 순간부터

정신이의 집으로 데려다주는

마지막 일과까지.

모든 하루가 둘이 공유하는 일상이 됐다.

정신이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매 순간마다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고

실무를 잘 모르는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난 정신이가 하기 힘든

기획파트 전반에 걸친 일들을 책임졌고

에이앤 건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업체 관리를

맡으며 정신이와의 업무를 나눠서 진행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에이앤건설 마케팅 실무를 담당하던 홍보기획자.

우리 둘의 업무조합은 환상적이었고


업무가 진행될수록

우리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제이기획과 공감디자인이 합작한

결과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사장, 이거 죽이던데?』


『벌써 보셨습니까? 팀장님. 퀵 보낸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요』


『이미 회장님 보고까지 마쳤어』


『엥? 벌써? 뭐가 이리 빨라? 태성이형. 원래 안 그러셨잖아요』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빨리 보고드렸지. 회장님도 기다리는 눈치셨고. 야. 병재야』


『네. 팀장님.』


『회장님이 이번 홍보관 컨셉이 너무 좋다고, 앞으로 에이앤건설의 모든 프로젝트에 니네 컨셉을 다 적용하라고 하신다』


『헉! 정말? 말도 안 돼』


『아예 모든 단위세대에 다 적용시키래. 벽지며 마루며 조명이며··· 암튼 니네가 제시한 컨셉이 회장님이 그동안 그려왔던 거란다. 참나원. 우리 그동안 뭐한거니? 쳇』


『감사합니다. 팀장님. 다 형님 덕분입니다』


『내가 고맙지. 이렇게까지 잘해줘서. 고맙다. 김정신 대표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너무 고생하셨다고···』


『넵. 꼭 전달하겠습니다.』


『김대표. 잘 모셔라. 보물이다. 보물.』


『걱정 마십시오. 팀장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사무실로 걸려온 태성이 형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정신이는 참고 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뭐래? 뭐래? 뭐라셔? 뭐가 말도 안 되는데? 뭘 전달하라고 하시는거야?


“아이고, 김대표님. 진정하세요”


“하, 궁금해 죽겠는데! 빨랑 말 안해?”


“정신아”


“어어”


“에이앤 회장님 보고까지 마쳤고. 회장님이 너무 만족하셨대”


그제야 정신이는 긴장이 풀렸는지 활짝 웃어 보였다.


“오예, 나이스!”


“그리고 이번 홍보관 컨셉을 아예 에이앤 공식 컨셉으로 지정하라고 하셨대”


“헉! 진짜? 세상에. 으아!”


“앞으로 지어질 애이앤건설 아파트에 이번 홍보관 컨셉이 그대로 적용될거래. 이번 인테리어 그대로”


“으아, 최대. 나 잘했나 봐. 힝”


정신이는 기쁨의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고마워. 정신아”


“아냐. 최대가 다 도와준 걸 뭐. 난 그냥 내 역할만 한 건데”


“태성이 형이 너 보물이라고 잘 모시랍니다. 김대표님”


“헤헷. 팀장님도 참. 비행기를 잘 태우셔. 히히”


몇 주간 밤을 새워가며 준비한 인테리어 컨셉이

에이앤건설 회장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정신이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 대성공이었다.

물론 홍보관 오픈전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첫 시작의 관문을 성공적으로 넘어버린 역사적인 날이었다.


“정신아. 고생했어. 집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실까요?”


“엇. 최대. 실은 말이야···”


활짝 웃던 정신이가 갑자기 우물쭈물 거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어.. 그게.. 실은 오늘 권기철 이사님이랑 저녁 먹기로 해서. 미안해. 최대”


“권기철 이사? 그 사람은 광고회사 사람이잖아? 너가 그 사람을 왜 만나?”


“어. 그게. 우리 이번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광고팀하고도 계속 컨택했었잖아. 업무 때문에 집에서도 권이사님하고 통화를 몇차례 했었거든··· 나도 이번 컨셉 준비하면서 물어볼 것도 있었고···”


“그.. 그래? 연락을 하고 지냈던거야?”


“응.. 일 때문에 몇 차례 통화하다가 집에서도 사적으로 몇 번 통화하곤 했어. 오늘 권 이사님이 저녁 사주신다고 해서. 최대 너가 걸려서 거절할까 생각도 했는데···”


“아냐아냐. 정신이 니 스케줄인걸. 내가 뭐라고. 난 신경쓰지마”


애써 웃어 보이는 내 모습에 정신이가 안절부절 했다.


“최대···”


“정말 괜찮아. 정신아. 맛있는 걸로 사달라고 해”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이

배신감으로 물들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뭐지? 이 기분? 정신이가 누굴 만나건 말건···

그건 정신이의 선택인데···

왜 내가 기분이 이렇지··· 뭐지.. 이거···

그런데 왜··· 하필이면 권이사야? 그 능구렁이 같은 새끼를··· 정신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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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보고서 17. 신이주신 세계 1 24.11.19 10 0 10쪽
16 보고서 16. 양아치의 제보 24.11.18 11 0 13쪽
15 보고서 15. 선을넘는 자들 24.11.17 9 0 9쪽
14 보고서 14. 마주보는 진심 24.11.16 10 0 10쪽
13 보고서 13. 다가오는 운명 24.11.15 9 0 11쪽
12 보고서 12. 바람후의 햇살 24.11.14 10 0 10쪽
11 보고서 11. 몰아치는 바람 24.11.13 9 0 9쪽
10 보고서 10. 사생결단 승부 24.11.12 12 0 11쪽
9 보고서 9. 무너지는 정신 24.11.11 11 0 12쪽
8 보고서 8. 권모술수 달인 24.11.10 11 0 10쪽
» 보고서 7. 일희일비 사고 24.11.09 10 0 12쪽
6 보고서 6. 드러나는 상처 3 24.11.08 8 0 11쪽
5 보고서 5. 드러나는 상처 2 24.11.07 7 0 10쪽
4 보고서 4. 드러나는 상처 1 24.11.06 9 0 10쪽
3 보고서 3. 정신이의 고백 24.11.04 7 0 13쪽
2 보고서 2. 신과함께 서곡 24.11.04 7 0 9쪽
1 보고서 1. 꿈에서본 그녀 24.11.03 1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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