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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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UTION
작품등록일 :
2024.03.07 16:45
최근연재일 :
2024.11.24 17:28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79
추천수 :
0
글자수 :
85,691

작성
24.11.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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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보고서 15. 선을넘는 자들

DUMMY

정신이는 아무 대답없이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은 후 입을 열었다.


“어떻게 넘을 건데? 선?”


“난··· 정신이 니가 내 여자였으면 좋겠어···”


“선을 넘어보자며···? 그래. 어디까지 넘어볼까?”


“어?”


어디까지 넘어볼 거냐는 정신이의 말이 내 머리를 흔들었다.

선을··· 어디까지···

어디까지···

그래··· 맞다···

너무 충동적으로 내뱉어 버린 것이다.

불쑥 들어온 정신이의 고백에··· 난··· 그저 본능에 끌려 말해버린 것이다.

그냥 정신이가 내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었을 뿐···

그 다음은 생각해 본 적 없다···

난···


나의 침묵을 정신이가 깨고 들어왔다.


“최대··· 나 되게 어렵게 꺼낸 말이야. 너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

내 진심을 무시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아니야. 정신아. 무시한 거 아니야. 나도 니 생각 오랫동안 했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생각했어··· 솔직히 그래. 그냥 나 혼자만의 상상이었으니까···

그 다음에 뭘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었으니까···

그런데 너가 날··· 좋아했다고 말해주니까··· 나도 고백한 거야. 나도 널 좋아한다고···

니 진심··· 무시한 거 아니야. 정신아”


“최대. 너도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아.

차라리 한번 자자고 해. 나 그렇게 비싼 여자 아니야

그게 더 현실적이지 않니?”


“야! 김정신!”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순간 식당안의 모든 사람들이 우릴 주목했다.

난 재빨리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의 고갯짓을 전달했다.

주위 시선들이 분산되자 정신이가 혼을 내며 내게 속삭였다.


“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조용히 말 안해?”


“김정신. 내가 갖고 싶은 건 네 몸이 아니야···

너의 마음이지···”


“내 마음 가져서 뭐 하려고.

최대. 다시 잘 생각해 봐. 내 감정과 너의 감정은 좀 다른 거 같아”


“그럼 넌? 너의 진심은 뭔데? 뭐가 하고 싶었던 건데?”


“결혼”


“뭐?”


“난 말했잖아. 최대 너가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심이야? 나랑 결혼하고 싶어?”


“웅. 하고싶어. 근데, 못해”


“뭐야. 한다고 했다가 못한다고 하는 건?”


“난 지금 혼자야. 하지만 최대 넌 아니야. 그러니까 못해. 그래서도 안되고.

난 여기까지야. 괜찮아. 그래도 고백했으니까. 이걸로 충분해”


“난 안 괜찮아”


내 말을 들은 정신이가 피식 웃는다.


“풉. 웃겨. 안 괜찮으면 뭐? 어쩌려고? 최대, 넌 그런 사람 아니야. 끝까지 멋진 아빠, 멋진 남편 해. 넌 그게 어울려”


“나 사실··· 너한테 말하지 못한 게 있어···”


“뭔데 또?”


호기심이 발동한 듯 정신이의 눈이 더욱 커졌다.


“사실은··· 내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우리 처음 만나기 하루 전날···

꿈에서 널 미리 만났어”


“우리가 만나기도 전에 내 꿈을 꿨다고? 그게 말이 돼? 말 좀 지어내지 마. 최대. 이게 취했네”


“지어내는 거 아니야. 진짜야”


“뭐야? 예지몽? 뭐 그런거야? 최대, 너 진짜 신끼 있어?”


“없어. 그런 거 없어. 근데 진짜 나왔어. 내 꿈에. 니가”


“뭐 어떻게 나오던?”


정신이는 아주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음··· 그게···”


“하. 답답해. 빨랑 말해. 속 터지겠어”


“그게 말이야··· 너랑··· 막···”


“막. 뭐? 뭔데?”


“그거 있잖아··· 남자랑 여자랑 자는 거···”


“섹스했다고?!”


갑자기 커진 정신이의 목소리에 내가 놀라 다급히 정신이의 입을 막았다.


“야. 조용히 말해. 다른 사람들 듣겠어”


“푸핫, 너랑 나랑 꿈에서 잤다고?”


“어··· 아주 격렬하게···”


난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진짜야? 너랑 나랑 만나기도 전에 꿈에 나왔다고? 그걸 믿으라고?”


“진짜야. 그래서 다음날 너보고 놀라서 얼었던 거야..”


“최대, 너 있잖아. 막 야동 보고 그러냐? 그런 거 많이 보면 꿈에도 나오고 그런다던데?”


“이씨, 아니라니까···”


“나 맞아? 확실해?”


“맞아. 아주 선명했어”


“신기하네. 니 꿈이 진짜라면 우리 자겠네? 예지몽이 맞다면?”


“어?”


내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서 그런 건지···

정신이는 말하는 내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우리 언제 자?”


“김정신, 그만 좀 놀려”


“장난 아닌데. 진짜 꿈에 나왔다며. 우리 운명이네”


“그 후에도 또 꾸었어. 니 꿈을”


“또? 이번엔 뭐하디?”


“둘이 손을 잡고 꽃길을 걷는 꿈”


“우아. 우리 결혼하는 거야?”


결혼이란 생각은 해본적도 없지만

정신이와 만난 건 운명이라 믿으며 지내왔다···

보고 있기만 해도 좋았고

옆에 앉기만 해도 설렜고

같이 걸으면 마치 내 여자 같았다.

지켜주고 싶었고, 한 번이라도 안아보고 싶었던 너···


“그냥 스쳐갈 인연은 아닌 거 같아. 분명··· 특별해... 나에게 너는···”


“야, 최대. 선수네 선수. 묘하게 사람 흥분시키네”


“나 지금 진지해. 자꾸 그렇게 놀리면 집에 간다”


토라진 내 모습에 정신이는 환한 미소로 날 쓰다듬어 준다.


“나 집에 데려다 줘”


처음이었다.

항상 내가 집에 데려다 줄 땐

미안해하고, 이제 데려다 주지 말라며

날 말리던 정신이었는데

처음으로 먼저 말했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그래. 가자”


난 먼저 일어나 정신이의 손을 잡아올렸다.

처음 만났을 때의 악수처럼

또다시 짜릿한 전율이 몸속에 퍼졌다.


식당 문을 열고 나서니 매서운 눈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 눈 온다. 히힛. 아, 따뜻해”


정신이는 슬며시 내 팔을 감아 팔짱을 낀다.

택시를 잡으러 갈 때도

택시를 타기 직전까지도

정신이는 내 팔에 꼭 붙어있었다.

팔짱을 낀 채 날 올려다보는 정신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추운 날이지만 정신이가 있기에 전혀 춥지 않았다.


아. 팔짱···

이거 꿈에서 본 장면···

지금 이게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정말 예지몽이 맞아떨어지는 건가

엉겁결에 고백은 했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때마침 택시가 도착했고

우린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기사님, 마포에 진심아파트로 부탁드려요”


정신이가 다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꿈같던 일이 하나둘씩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정신이가 내 어깨에 살짝 기대며 입을 열었다.


“최대”


“응”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같이 한번 가볼래?”


“난··· 가보고 싶어. 너랑 손잡고···”


내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어깨에 기댄 정신이에게 들릴 정도로

매우 크게 뛰고 있다.


정신이와 내가 만들어 가는 길

그 길의 끝

그곳은 분명 천국일 것이다.

꼭 그렇게 만드리라 다짐하는 순간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넘고 있는 선.

지금 잡고 있는 손.

아무한테도 들키지 마”


“절대로··· ”


들키지 않을게

그리고 놓치지 않을게


택시가 한참을 달리는 동안에도 우린 서로에게 기댄 채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택시가 어느덧 정신이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였고

아쉬움을 남겨둔 채 택시에서 내려야 했다.


“에이. 벌써 다왔네”


“그러게··· 춥다. 조심히 들어가”


“나야 뭐 이미 집에 왔는걸. 최대가 조심히 들어가야지”


“알았어. 조심히 갈게. 어서 들어가. 집에 들어가는 거 보고 갈거야”


정신이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거리며 입을 연다.


“저기 최대. 아니 자기야”


“어?”


자기야···

정신이의 입에서 자기야 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정신이의 자기···

머릿속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순간

정신이가 내게 안겨 입을 맞춘다.




첫 키스···

정신이가 내게 준 올 한해 최고의 선물.


아··· 쓰러질 것 같다.


“도장 찍었다. 이제 아무 데도 못 가. 최대. 그런 줄 알아!”


“정···신아···”


“나 들어갈게. 자기도 조심히 들어가”


그렇게 사라지는 정신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미 출입문으로 들어가 정신이가 안보이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기···

내가 정신이의 자기···

정신이가 내 꺼··· 내 여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난 제자리에 서서 꿈속을 헤맸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서 정신을 못 차리던 그 순간.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뒤를 돌아보니 30대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잘 빼입은 정장 코트에 어울리지 않는 라면박스 하나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날 부른 건가?


“저요??”


“아, 네. 지나가다 우연히 봤는데 왕비랑 무슨 사이세요?”


“왕비라뇨?”


“아, 왕비라고 하면 모르시나?

아까 택시에서 같이 내린 여자요. 김정신이요. 김정신 또라이”


왕비? 또라이?

이 새끼는 뭐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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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보고서 17. 신이주신 세계 1 24.11.19 10 0 10쪽
16 보고서 16. 양아치의 제보 24.11.18 11 0 13쪽
» 보고서 15. 선을넘는 자들 24.11.17 9 0 9쪽
14 보고서 14. 마주보는 진심 24.11.16 10 0 10쪽
13 보고서 13. 다가오는 운명 24.11.15 9 0 11쪽
12 보고서 12. 바람후의 햇살 24.11.14 10 0 10쪽
11 보고서 11. 몰아치는 바람 24.11.13 9 0 9쪽
10 보고서 10. 사생결단 승부 24.11.12 12 0 11쪽
9 보고서 9. 무너지는 정신 24.11.11 11 0 12쪽
8 보고서 8. 권모술수 달인 24.11.10 11 0 10쪽
7 보고서 7. 일희일비 사고 24.11.09 9 0 12쪽
6 보고서 6. 드러나는 상처 3 24.11.08 8 0 11쪽
5 보고서 5. 드러나는 상처 2 24.11.07 7 0 10쪽
4 보고서 4. 드러나는 상처 1 24.11.06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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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고서 2. 신과함께 서곡 24.11.04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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