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18. 신이주신 세계 2
정신이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자기 이렇게 보니까 되게 섹시하다. 특히 자기는 정장 입었을 때 엄청 섹시해”
과감한 스킨십과 탐스러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정신이의 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고··· 고마워”
“그러니까 한번 하자고. 나 하고 싶어”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음음. 그리고 예지몽은 밤이었는데··· 어두운 배경이었어”
정신이는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하, 그러면 밤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야. 울 자기 너무 애태우게 만드네?”
“조금만 참아보자. 나도 엄청 하고 싶은데. 꿈에서 본 장면을 확인하고 싶어”
그제야 정신이는 꽉 끌어안았던 내 목덜미에서 손을 스르르 풀었다.
“아니..? 이렇게 꼬리를 흔들어 대는데 반응이 없어? 너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지? 뭐··· 고자라던가··· 게이라던가?”
헉! 고자라니! 이 최병재를 뭘로 보고!
“아니거든. 멀쩡하거든. 넘치거든!”
“풉~ 그럼 하루에 두 번도 가능해?”
“세 번도 될걸?”
“미쳤나 봐. 우리 나이에 무슨. 거짓말 좀 하지 마”
“거짓말 아닌데?”
“그렇게 해봤어? 와이프랑?”
“아니··· 나 와이프랑 안 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왜 안 해?”
“안 한 지 오래됐어.. 한 10년쯤?”
“미친 거 아니야? 너 진짜 고자 맞지? 내가 속았네. 속았어!”
“그런 거 아니고··· 와이프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 아기 태어난 이후로 한 적이 없어”
“하··· 최대.. 아니, 우리 자기.. 이거 물건이네··· 근데? 세 번이 되는지 어떻게 알아?”
“혼자서 해봤으니까···”
“자위?”
“아, 좀! 그만 물어봐. 민망하게!”
“안되겠다. 너 오늘 집에 가지 마라”
“어? 엉?”
“하루만 나랑 같이 있어주면 안 돼? 하루만···”
“어.. 그래.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이리 와 봐”
정신이는 내 손을 잡고 새하얗고 커다란 침대로 이끌었다.
“잠깐만 누워있다 가자. 손만 잡고 있을게”
5성급 호텔 스위트룸의 침대에 누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푹신하고 고급스러운 향이 난다. 침대에서도”
“5성이니까. 청소 위생 모든 게 완벽하지”
“내 친구 이름도 오성인데··· 한오성”
“오아. 친구 이름 좋네. 오성과 한음이야? 힛”
“맞아. 30년 지기. 내 단짝 친구. 그래서 내 별명이 한음이었어”
“한음이? 한음.. 한음. 한음이도 이쁘다. 병재보다 괜찮은데?”
침대에서 정신이를 바라보며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으니
정말 내 부인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랑스러워···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계속 같은 반. 신기하지?”
“오잉? 그게 가능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우리도 항상 신기했어. 선생님들이 작정하고 만들어 주지 않는 이상 그렇게는 안 될 텐데··· 항상 같은 반이 됐어. 신기하게도··· 심지어는 대학교도 같은 지역··· 정말 웃기지?”
“운명이네. 두 사람. 떼려야 뗄 수 없는”
“신이 너가 내 운명이야”
정신이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너도. 내 운명.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정말 남편 같네”
“어?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꼭 부부 같아. 우리”
정신이가 입술을 쭈욱 내민다.
나의 입술이 정신이에게 자석처럼 끌려들어 갔다.
달콤하고 부드럽다.
“우리 자기 키스 잘 하네. 진짜 여자 경험 없는 거 맞아?”
“키스도 안 한 지 오래 됐는데···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 안날 정도로”
정신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어떻게 참고 살았어? 혼자 세 번 할 정도면 성욕이 강하다는 소리인데?”
“어쩔 수 없었으니까··· 아기 태어나고 워낙 애가 예민해서 계속 안고 달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뭐 그렇게 그런 생활이 익숙해진 거지··· 와이프는 아기랑 같이 자고. 난 따로 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고··· 와이프는 그런 거에 별로 관심도 없고···”
“참 신기한 물건일세··· 우리 자기는···”
“그런가···”
정신이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이상하게 보일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말이 거짓말이거나 몸에 무슨 문제가 있거나··· 풉”
“거짓말 아니래도··· 진짜인데··· 치···”
정신이가 내 가슴에 손을 댔다.
“거짓말 탐지 시작합니다”
정신이의 손바닥이 내 가슴의 여기저기를 탐색한다.
“오, 단단한데. 자기? 운동 했어?”
“운동은 뭐 이것저것. 꾸준히 하지”
“이제 내 거야. 자기는. 나만 바라봐”
“너 밖에 안보여”
정신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내 손을 끌어당겼다.
“풉. 올라가 보자. 클럽라운지로”
“클럽? 클럽을 가?”
“아니 춤 추는 클럽말고 클럽라운지”
“아”
“허락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이곳에서 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
정신이가 보여주는 세계
객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증 더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직원은 깍듯하게 허리 숙여 우리를 맞이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클럽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유럽의 왕실이다.
조명, 테이블, 바닥··· 그리고 사람들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보인다.
“보이지? 브이아이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야. 큰 회사들은 바이어 접대하면서 이런 곳에서 회의도 하고 밥도 먹고 해. 비즈니스지”
“아. 그렇구나. 정말 여기는 새로운 세상이다”
“앞으로 나랑 있으면 익숙해질 거야. 창가 자리로 가서 앉자”
새끼오리가 엄마를 따라가듯 난 정신이를 바짝 쫓아갔다.
“어때?”
“너무 고급스럽다. 내가 이런 곳에 와보다니···”
“자기는 이런 곳이 어울려. 당신 그런 남자야. 내 남자는 내가 꼭 지켜줄 거야”
“고마워. 난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이렇게 신경 써줘서”
“내 남자한테 하는 건데. 뭐가 고마워. 당연한 거야”
“나도 앞으로 많이 해줄게. 진짜 많이”
“자기는 마음으로 날 사랑해 주면 돼”
당연하지. 정신아.
마음은 이미 진작부터 널 사랑하고 있었어.
“신아. 이런 곳 너무 좋다. 우리 자주 오자. 이렇게 높은 곳에 와있으니 무언가 내 신분이 상승되는 느낌이야”
“그럼. 누구 남잔데. 잘 어울려. 자기한테. 음식 가지러 가자”
정신이와 함께 어깨를 비비며 클럽라운지 음식을 담아보았다.
클럽라운지의 음식들은 모두 최고급 메뉴들이었다.
“자기 초밥 좋아해?”
“그럼. 없어서 못 먹지. 나 음식 가리는 거 없어”
“역시 최대. 난 음식 잘 먹는 사람이 좋더라. 어? 여기 장어도 있다. 자기 많이 담아. 밤에 힘써야 하니까. 히히”
“이런 거 아니어도 힘은 넘치거든요”
라고 말하면서도 난 장어초밥을 수북이 담았다.
탐스럽게 보이기도 했고 왠지 필요할 것 같았다.
“딤섬도 있다. 나 이거 되게 좋아해”
“딤섬이 뭐야?”
“중국식 만두라고 생각하면 돼. 한번 먹어봐”
정신이가 추천하는 메뉴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고급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자리로 돌아왔다.
“어때?”
“너무 맛있어. 처음 먹어보는 맛이야”
“히히. 내가 더 맛있을 걸?”
“으···”
난 얼굴이 빨개졌지만 정신이의 야한 농담이 싫지 않았다.
아니··· 사실 좋다.
그냥 꿈만 같다.
이런 새로운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말들을 정신이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자기야. 우리 돈 많이 벌자. 이런 곳에서 자기랑 계속 즐기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해”
“꼭 그럴 거야.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자기야. 우리 사무실 강남으로 옮길까?”
“왜? 신이가 인테리어도 예쁘게 해준 사무실인데”
“일도 많이 하려면 직원도 뽑아야 하고. 그러려면 좀 더 큰 사무실 필요하잖아. 큰 회사들도 강남에 다 몰려있고. 그리고···”
“그리고?”
“나 자기랑 사업자 새로 하나 내고 싶어. 회사 이름도 바꾸고. 비제이기획 촌스러워”
“치···”
비제이기획은 그냥 내 이름을 따서 영어약자로 지은 회사명이었다.
그냥 단순하게···
강남의 사무실이라···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
정신이와 내가 여러 직원들을 거느리며 강남 사무실에 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서울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강남 사무실이라···
“한번 생각해 봐. 강남도 강남이지만. 자기랑 나랑. 뭔가 의미 있게 사무실을 새로 내고 싶어서 그래”
“그래.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수원 프로젝트로 회사 통장에 여유가 있으니까.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나도 돈 가져올게. 똑같이 반 투자할 거야”
“신이 너가 왜··· 우리가 번 돈 있는데···”
“사무실 구하고 세팅하고 직원들 늘리면. 돈이 한두 푼 들겠어? 나도 보태야지. 우리 사업인데”
우리 사업···
이렇게 말해주는 정신이가 고맙고 든든했다.
“난 내 남자 어디 가서 기죽어 있는 꼴 못 봐. 돈이 필요하면 돈을 구해 올 것이고. 일이 필요하면 일을 가져올 거야. 넌 내 남자니까”
“고마워. 얘기만 들어도 든든하다. 신아. 우리 잘될 거야”
“진짜야. 돈은 내가 해올게. 걱정 말고”
“걱정 안 해. 너만 옆에 있으면 돼”
“항상 옆에 있을 거거든. 껌딱지처럼. 히히”
너무나도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정신이.
내 여자 김정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신이와 함께 라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그런데 말이야. 문득 든 생각인데”
“또 뭐야. 불안하게”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 아까 방에서. 자기가 날 하도 거부하니까 그냥 넘어갔는데”
“거부라니. 큰일 날 소리.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데. 거부라니···”
당황하는 내 얼굴을 보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정신이가 말을 이었다.
“낮이어도 호텔에선 어둡게 분위기 연출할 수 있는데?”
“어떻게?”
“암막 커튼 지고 조명을 무드 등으로 연출할 수 있거든”
“아? 진짜? 그렇게 조절할 수 있는 거야?”
“그럼. 5성급 호텔 스위트룸인데. 장난해?”
“몰랐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정신이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던졌다.
“그럼 우리 밥 먹고 내려가서 확인해 볼까?”
“으응?”
“나 급해. 하고 싶어”
나의 심장박동이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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