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하게 죽을 것이오.

운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없을까?
그리고 운명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부여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는 신이 운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신은 운명을 읽어내고 그 흐름을 조정하도록 인간을 도울 뿐.
하지만 그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대놓고 엿을 먹인다면 어떨까?
가령 주말마다 성당에도 꼬박꼬박 다니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어느 날 신의 계시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계시라는 것이 그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는 일이라면 어떨까?
겨우 붙잡은 행복이라 생각한 것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에 증오를 품을 정도의 일이라면 말이다.
아니면 이런 예는 어떤가? 어느 한 청년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주말마다 성당에 가서 신께 자신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도와달라며 기도하는 것도 있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어느 날 그 청년에게 계시가 내렸다.
너는 꿈을 이룰 수 있지만 홀로 죽을 것이라고. 네가 사랑하는 이와 너를 사랑하는 이 하나 없이 홀로서 죽게 되리라고.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다른 이와 사랑에도 빠졌으며 그 결실까지 보았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결국 가족과 멀어져 버렸다.
가족은 붕괴하였으며 이러한 운명을 내려준 신을 저주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에도 잘못된 점이 있음을 알고 반성했지만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렇게 신을 원망하는 한 아이와 신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알고 후회하는 노인이 만나게 되었다.
신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너는 미래를 알았음에도 결국 그 미래를 만들어내지 않았느냐.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신의 비웃는 듯한 말에 노인은 강하게 반박했다.
"그럼 이 아이의 운명은 어떻소? 그대의 계시라는 헛소리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 이 아이가 세상을 그림자로 뒤덮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탓이오. 세상을 미워하게 만든 당신 탓이란 말이오."
"이미 운명으로 정해진 것은 알고 있어도 바꿀 수 없다. 그대가 직접 증명해 보이지 않았는가? 계시를 듣고자 한 것은 그대들이고 나는 그대들을 돕기 위한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잖소."
노인의 반박에 신은 세상이 떠나갈 듯 웃었다. 이미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바꾸지 못한 자의 말이라니. 하지만 뒤이어진 노인의 반박에 웃음을 그치고 만다.
"나는 이 아이의 곁에서 행복하게 죽을 것이오. 내 사랑을 줄 것이오. 이 아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할 것이오. 그렇다면 그대의 계시라는 것도 틀린 것이 되겠지."
"뭐라!!"
"두고 보시오. 이 아이는 세상을 그림자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으로 비추는 아이가 될 것이오."
노인은 웃었다. 세상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그것이 그의 복수이고 이 아이의 복수가 될 테니까. 필멸자가 신에게 할 수 있는 작은 복수 말이다.
하지만 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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