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7)

놈의 선전포고와 함께 휘둘러진 대검을 재빠르게 하베스터를 꺼내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기에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할 수 없어 공격을 막아내고도 땅을 굴러야만 했다.
“미친···.”
아무리 자세가 불안정 했다 고해도 사람의 몸을 이렇게까지 굴려버릴 수 있는 완력이다.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완력에 나는 바로 죽음의 권능을 쓰려고 했다.
“모든 것을 품어 낳은 위대한 어머···. 뭐지?”
하지만 지배의 마력이 움직이질 않는다. 분명 마력이 느껴지기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심지어 두통까지 몰려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통까지 겹친 내가 당황하는 사이 백조의 기사가 다시 대검을 내 머리 위로 내려찍으려 했고 나는 그걸 낫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동시에 ‘이건 막을 수 없다.’ 라는 어떤 강렬한 직감이 들었다.
어쩌면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 찰나의 순간 집사가 날 잡아당겨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고···고마워.”
“주인님, 서둘러서 놈을 죽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째선지 지배의 마력을 쓸 수가 없어.”
“예!?”
“못 쓴다고.”
더 이야기를 할 새도 없이 이어지는 백조의 기사의 공격이었지만 다행히 이제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가까스로 공격을 피할 수 있었고 뒤이어 하얀색의 번개가 백조의 기사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귀를 찢을 것만 같은 커다란 굉음은 그 벼락을 맞은 존재가 살아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지만 번개를 몸에 직격으로 맞고도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번개가 잠깐의 시간을 벌어주기는 했기에 그사이에 조금 떨어져 있던 도나텔로가 그 대검을 받아냈고 그 뒤를 이어 한스와 우리엘도 합류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패를 가져올 걸 그랬군요!!”
백조의 기사와 제법 합을 나누고 있는 도나텔로가 시선을 끄는 동안 한스와 집사는 기사의 주위를 돌며 예리한 눈으로 약점을 찾으면 어떻게든 공격을 시도했다. 어떤 두꺼운 갑옷도 비어있는 틈이 있는 법이라면서.
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냉기 마법을 준비하긴 했지만 저 거구를 얼릴 수 있는 마법이나 저 두꺼운 플레이트 메일을 뚫을 만한 마법은 아쉽게도 가지지 못했다.
대체 뭘 해야 하지···.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나에게 당장이라도 틈이 보이면 기사에게 번개를 내리꽂기 위해 양손에 마나를 모아두고 있는 우리엘이 내게 다가왔다.
“이안도 쓸 수 없는 모양이군요.”
“여기서부터 불가능한 것 같아. 아까까지는 문제없었으니까.”
“그보다 알렉스님은 왜 저기서 구경만 하는 겁니까.”
“알렉스가 아니니까. 온다!”
“그게 무···. 이런!”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백조의 기사가 자신과 상대 중이던 도나텔로의 망치를 무려 검을 쥐고 있는 주먹으로 올려 치며 받아쳐 내고는 그대로 그 무지막지한 대검을 내리꽂았고 그와 동시에 그 날카로운 참격이 공기를 가르며 진공파를 우리 쪽으로 날려왔다.
그 진공파를 가까스로 피해낸 나와 우리엘이었지만 그런 공격을 거의 정면에서 받아버린 도나텔로는 그렇지도 못한지 조금 떨어진 곳까지 굴러가 드러누워 있었다.
“저게 말이 되는 건가···?”
“좀 전에 그건 마력조차 아니군요. 저런 기술을 쓰는 검사는 마인중에서도 없었습니다.”
“망할, 내가 간다. 지원 잘해라.”
“죽지나 마십쇼.”
도나텔로의 곁으론 소피아가 달려갔다. 괜찮을 거다. 명색이 성녀라 신성 마법이나 기도를 쓸 수 있기는 하다고 했으니까.
백조의 기사 앞에 도착한 나는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놈의 갑옷에 일단 다짜고짜 주먹질을 하는 건 피하기로 했다. 아니, 주먹질을 하긴 할 거다. 라이언 교수와의 싸움에서처럼 아예 저 갑옷을 냉기를 통해 깨부숴버리는 방법을 쓰려면 아무튼 때려서 냉기를 부여하긴 해야 할 테니까.
다만 지금의 파티는 전위가 압도적으로 모자라다. 그나마 비슷하게나마 전위에 설 수 있는 것이 나와 집사뿐이니 말을 다 한 것 아닐까. 거기다 가벼운 경갑이라도 입은 집사와 달리 난 이번에 그저 할아버지가 주신 로브를 입고 있을 뿐이다.
덕분에 누군가 시선을 끌어줄 수가 없기에 거의 목숨을 걸고 이 짓을 해야 한다. 망할···.
“날파리 같은 것들이!!!!”
저 말도 안 되는 완력이 다시 한번 발휘되며 날카로운 대검의 칼날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저 검이 휘둘러졌을 뿐임에도 거기서 만들어지는 풍압에 뒤로 텀블링을 하며 자세를 다시 잡아야만 했다.
“이게 말이···.”
“정말 인간인지 의문이 들 정도네요.”
“인간이길 빌자, 흡!!”
다시 파고들어 놈의 허벅지에 주먹을 내질렀다. 갑옷을 파괴해야 한다면 허벅지다. 다리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그만큼 공격도 방어도 불리해지니까.
처음에는 집사와 한스도 내가 뭘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내가 몇 차례나 같은 곳을 공격하고 슬슬 갑옷에 서리가 끼기 시작하자 뭘 하려는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이제 약점을 찾기보다는 조금 더 성가시게 굴며 내가 조금이라도 더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우리엘도 작은 빈틈이 보일 때마다 전격을 꽂으며 기사의 움직임을 주춤하게 했다.
그런 와중에 멀리서 구경하며 박수만 치고 있는 티마이오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차라리 알렉스가 있었다면 강신이라도 썼을 텐데···.
아니, 쓸 수 있을까. 애초에 지배의 마력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인데.
다시 한번 파고들어 공격할 기회를 노리는 때에 마법의 영창이 끝난 우리엘이 한스의 이름을 외쳤다.
“한스!”
“예!! 핫!”
“니어 저지먼트!!!”
기사의 뒤로 돌아가 등에 무언가를 꽂은 한스의 대답과 함께 우리엘이 마법을 발동시키자 푸른색 번개 구슬이 기사의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서는 이내 한스가 꽂은 단검에 연속해서 번개를 내리꽂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영창한 마법답게 수십차례가 넘게 내리꽂히는 번개에 기사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구슬을 어떻게든 쳐내려고 팔과 검을 휘저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이내 기사는 검을 땅에 꽂아버리고는 그대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번개가 그친 다음에도 기사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잘 구워진 냄새와 매캐한 연기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제 최대급 마법입니다. 이걸로도 쓰러지지 않으면 곤란했는데 다행이군요.”
“죽어가면서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다니 무시무시하네요 .”
“그렇···.”
“우리엘!!!”
“마스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의 주먹이 휘둘러지며 우리엘을 멀리 쳐냈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만큼 멀리 날아간 우리엘을 향해 소피아가 급히 달려갔고 어느 세 정신을 차린 도나텔로가 우리에게 합류했다.
“그 어떤 악도 이 나를 쓰러트릴 수 없다!!”
“누가 악이야!!! 제발 죽으라고!!!”
다시 놈과 맞서기 위해 달려든다. 허벅지를 감싸고 있는 플레이트를 박살 내기 위해 주먹을 내지르고 도나텔로는 정면에서 놈의 공격을 받아내며 한스와 집사는 놈의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다들 인간이다. 언제까지고 공격을 피할 수도 없고 스쳐도 치명상인 상황에서 일행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쉽게 지쳐간다.
거기다 나는 내 마력을 쓰면 쓸수록 점점 심해지는 두통과도 싸워야 했고 결국 공격을 위해 깊숙이 들어가 주먹을 내지르려는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으로 인해 잠시 몸이 굳어버렸고 그대로 내 옆구리에 놈의 주먹이 깊숙하게 박혀왔다.
“끄허어억!”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격통에 눈앞이 새하얘진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잠시 후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흙길 위를 구른다. 흙과 풀이 입에 들어오지만 그런 불쾌감 따위는 지금의 격통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끄흐으윽···.”
“아저씨!! 아저씨!!!”
소피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엘은 괜찮은 건가.
나는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붙잡았다. 고통이 크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했던가. 머리에 피가 쏠린다.
버텨야 한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쿨럭···.”
피···.
소피아가 날 붙잡고 뭐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들리질 않는다.
두통이 찾아온다.
망할 두통···.
애초에 사령마법을 익힌 이유가 이거였었지.
나는 마력량은 많았지만 어째선지 그걸 쓰면 쓸수록 두통이 점점 심해졌기에 수인을 맺는 방식으로 외부의 마력을 빌려야 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사령 마법을 만났고 어쩌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그 영혼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마법을 익혔다.
그러다 사령마법 만은 마력을 끌어다 써도 두통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자신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기에 할아버지는 내게 사령마법을 익히는 걸 허락하셨다.
그래, 애초에 같은 마력이다. 왜 이걸 분리해서 생각했던 거지?
할아버지도 말씀하셨다. 마력은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서 분류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다.
어떤 마력이든 세계를 창조한 신이 내린 마나라는 점에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
“하···베스터···.”
“이!@?”
“이제는···이름도···. 잊혀진···.”
“안!@$! !@춰요! 이안 멈@$요!!”
“어디에도···. 속하지···.”
“제!@ 멈#!@요!!!”
미안한 일이지만 소피아의 말이 도저히 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에도 속하지 못한 자.
아마 죽지 말라는 이야기겠지.
-내가 여기서 맹세하니 나는 그대의 복수의 집행자가 되리라.
하지만 죽음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가 어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강···신.”
지배의 마력이 아니다. 냉기의 마력도 아니다.
이건 그저 마력이다.
나의 마력, 나의 힘, 나의 뿌리, 나의 역사.
눈이 내린다. 작은 눈송이가 내 손등에 떨어지지만 녹지 않고 그 작고 예쁜 꽃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숲에서 퍼져가는 싱그러운 초목의 냄새도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주는 따뜻함도 풀잎들 위에 피어난 서리꽃들이 만들어 내는 서늘함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손에 쥔 하베스터를 바라보자 마치 이것이 본래의 모습이라는 듯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의 낫으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입고 있던 옷은 서리가 맺혀 온통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걸음을 내딛자 발이 닿기도 전에 풀들이 얼어붙으며 이내 바스러진다.
“이안 아저씨?”
“춥지는 않나요?”
“···춥지는 않아요···.”
“그럼 됐습니다.”
“아니, 멈추세요! 지금 이건 뭔가요? 이건···이런 건···.”
설명을 요구하는 모습이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가 없다. 강신 자체는 성공시켰지만 아쉽게도 내 마력과 섞어서 겨우 성공시킨 수준이기에 여전히 사령마법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냉기를 마음껏 쓸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냉기를 지배하고 있다.
두통은 없고 그저 상쾌하기만 하다.
땅을 박참과 동시에 내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얼어붙으며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한다.
소니아가 봤다면 좋아했을까.
“본 모습을 드러냈구나!!! 악적!!!”
“죽어!!!”
낫과 대검이 부딪힌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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