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박봉교수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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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RabiRabbit
작품등록일 :
2024.03.11 00:14
최근연재일 :
2025.02.2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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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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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집어 삼키는 뱀 (2)

DUMMY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지금 보고 겪고 있는 것들이 그저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언젠가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을 자각할 만큼은 지났다는 건 확실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이게 예전 회차의 기억이란걸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이 기억들은 예전과 다르게 일관된 하나의 삶에서의 기억들이었다. 아쉽게도 부분부분 잘려 나간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 시간의 순서나 소니아의 관계가 계속 뒤죽박죽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방해되니까 좀 비켜주시겠어요?”

“미안합니다, 강완의 소니아 씨.”

“그렇게 비꼬듯이 말하지 말아줄래요? 짐짝의 바크 존스?”

“바크 존스가 아니라···. 하아, 그냥 마음대로 부르십쇼.”

“그쪽 이름이 이상한 게 문제 아닐까요? 짖는 존스라니. 개도 아니고.”

“진짜 화낼 겁니다.”

“남자가 쪼잔하긴.”


짐짝의 바크 존스라. 꽤 그럴싸한 이명이다. 짐짝이라니. 이 시기의 나와 소니아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 이전의 기억들에선 박이나 종수라고 제대로 불러주던 이름이 바크 존스로 변한 걸 보면 아마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거겠지.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입씨름하면서 상당히 불쾌해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동시에 눈앞에 있는 그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쁜 것들은 다 이런 건가.’ 라는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그건 여기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을 뿐인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지만.


이런 소니아가 사라짐과 동시에 다시 세상이 검은 것에 휩싸이며 무너져내린다.


다음은 어떤 기억일까.


무너져내렸던 것들이 다시 천천히 세워지며 이번엔 숲을 보여준다. 비가 내리고 있는 숲을.


비는 대체로 늘 나쁜 기억들에 따라오곤 한다. 소니아가 크게 다쳤던 일이나 나 아니, 박종수를 받아준 마을이 이상한 괴물들에게 공격당해 불탔던 일들 같은 것들과 함께 말이다.


이번엔 또 어떤 기억일까.


쏟아져 내리는 비에 젖어버린 로브 덕분에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내 앞에 소니아가 나타났다. 나에게 검을 내밀고서.


“너 제정신이야?”

“오랜만이야.”

“그 능청스러운 표정 집어치워. 너 정말로 미쳐버린 거야? 네가···. 네가 정말로···.”

“그래, 그놈들이 살던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버렸지.”

“너 진짜로 미쳤구나? 거기엔 아이들도 있었어! 죄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격렬한 외침과 함께 그녀가 들고 있는 검날의 끝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내 눈길은 이런 빗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그 물방울을 따라 내려갔고 그 물방울이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들에게 희생당한 이들 중에도 아이들과 죄 없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데도 넌 그 사람들을 옹호하는 거야?”

“하지만 집행관도 아닌 네가 멋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마을 하나가 웬 좆같은 귀족의 인신매매를 돕고 있었으니 집행관들이 무죄라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가능한 거야. 반대로 넌 정말로 그들이 죄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거기 있던 모두가 죄인은 아니었어.”

“그래 그랬겠지. 나도 내가 그 마을에 있던 놈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놈들이 살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도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을 뿐이야. 그저 난 놈들의 그 위선이 역겨웠던 것뿐이고.”

“너···.”

“그게 너와 나의 차이점이야.”


나는 허리춤에 있는 검을 꺼내 그녀의 검에 마주 댔다. 당장이라도 여기서 한판 벌이려는 듯이.


“너의 그 꿈같은 이야기들은 좋아해. 하지만 그런 이상주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아니, 바꿀 수 있어. 조금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하, 시간? 사람들이 전쟁에 끌려가는 거 못 봤어? 네 말대로 내부에서 조금씩이나마 바꾸고 싶어도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징병’ 을 해버리지. 그다음 전장으로 끌려가서 그대로 ‘전사’ 해버리는거야.”

“······.”

“난 제국이 하지 못하고 있는 내부의 부패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해준 것뿐이야. 그것도 무료로. 대단한 서비스 아니야?”

“제발 정신 차려! 잊었어? 곧 마왕이 토벌될 거고 그러면 그 전쟁도···!!”

“정말 그 마왕인지 뭔지 하는 게 실제로 있기는 한 거야? 승전 소식은 계속 들려오는데 왜 전쟁이 끝나질 않는 걸까?”

“종수, 네 마음도 이해해. 하지만 네가 한 일은 그저 제국에 혼란을 가속할 뿐이야.”

“소니아, 나는 혼란을 가속한 적 없어. 이미 제국은 혼란에 빠져있어.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야 하는 거야.”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 속에 결국 승리한 것은 소니아였다. 그녀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것은 그녀의 손에 들린 검도 이상론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것은 다름 아닌 조금 불타서 그을려버린 인형이었다.


“그럼 네 그 효율 좋은 무료 봉사 속에서 얼마나 더 많은 미래를 빼앗을 생각이야?”

“······.”

“넌 정말로 제국을 위해서도 그렇다고 이 혼란을 정리하려고 이런 짓을 벌인 게 아니야. 넌 그저 화풀이를 하고 싶었을 뿐이잖아.”


다시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다만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도 나에게 인형을 건네고 있는 소니아의 모습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마치 이 일을 절대 잊어버리지 말라는 듯이.



===



“···정말 살아는 있는 겁니까?”

“윌리엄은 모르겠지만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요. 그러니 확실히 아저씨는 살아 있을 거예요. 다만···.”

“다만?”

“그때도 루터 케레스 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았어요. 이렇게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죠.”

“그러고 보니 그랬었죠···.”


윌리엄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사실 그 싸움 자체는 윌리엄이 이안이 엮는 자로서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세팅해둔 무대였다.


운이 좋다면 지금의 세계를 이어 나가기 위한 실마리를 얻거나 운이 나쁘더라도 이미 준비해둔 이야기로 그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아쉽게도 운이 나쁜 케이스였지만 말이다.


다만 당시에는 정보의 부족으로 그저 이안이 크게 다치고 쓰러졌다고만 생각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윌리엄은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의 상태는 당장 일어나도 문제가 없어 보이고 마치 꿈을 꾸는 듯 가끔 감겨있는 눈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이건 기억을 되찾고 있는 모양이군.’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아직까진 알 수 없지만, 윌리엄은 마음속으로 웃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가 조금 더 기억을 되찾는다면 분명···.


“그래도 다행이네요. 한스 씨나 도나텔로는 기운을 찾은 것 같아요.”


자신만의 세계에 빠질 뻔한 윌리엄을 소피아의 목소리가 붙잡는다. 이에 정신을 차린 윌리엄은 늘 준비해두고 있는 미소와 함께 그녀에게 대답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너무 기운을 차린 건 조금 걱정이군요.”

“그러게요. 벌써 몸을 움직이려고 해서 곤란하다니까요.”

“다들 소피아의 도움이 되고 싶은 거겠죠.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이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 저 멀리 이곳을 감시하듯 숲속에서 야영지를 잠시 바라보던 알렉스는 그 둘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는 적당히 그늘진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미안하다.’


영혼에 죽음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죽음이 아닌 소멸일 것이다. 정말로 이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가 남긴 그 마지막 한 마디가 알렉스의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미안하다는 말로 끝내려고 하다니.”


알렉스는 지금도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정리하는데 필사적이었다. 마구 쏟아져 내리는 비를 주워 담는 것 같은 상황 속에 적어도 중요해 보이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최대한 기억들 간의 연관성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체르노보그, 우로보로스 계획···.”


현재 알렉스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키워드였다. 이안이 자신을 체르노보그라고 칭하며 말하길 그 단어의 뜻은 ‘검은 신’ 이라고 했다.


다만 그저 이름을 빌렸을 뿐인 이안과 다르게 티마이오스의 기억 속 체르노보그는 정말로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리고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세계의 재창조와 조정.


정확한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책’ 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짐작했을 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이건 그저 티마이오스의 기억일 뿐이니까. 적어도 대마도사인 반 헤일런은 책 그중에서도 종언의 서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실제로 종언의 서와 집사가 접촉하자 놈이 각성한 것을 보면 관계가 없지는 않겠지.’


다음은 우로보로스 계획. 이건 이미 어떤 것인지 대략적인 파악이 끝났다. 힌트는 체르노보그가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한 바가 있었다.


‘놈은 어차피 그림자 발자국을 한 번만 더 사용했으면 내가 됐을 거야. 나와 이 녀석은 결국 한 몸인 거지···.’


우로보로스는 자기 자신을 삼키는 뱀이다. 연금술에 능했던 한 제국 학술원의 연구자가 말하길 우로보로스는 재생, 창조, 불사 그리고 윤회의 의미를 지니며 그게 체르노보그의 노림수라고 생각했다.


티마이오스와 반 헤일런은 재생에 집중하여 그가 파멸의 전조들을 흡수해 그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계획의 목표가 윤회에 있었을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즉, 우로보로스 계획이란 체르노보그가 이안의 몸을 통해 이 세계에 부활하기 위한 계획이다. 이게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안은 이런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사실 이안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만약 체르노보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 세계 자체가 그에 의해 창조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즉, 여기 있는 모두가 그의 창조물이자 무언가의 복제일지도 모른다.


‘이걸 모두에게 말해도 괜찮은 건가···.’


현기증이 날 정도의 현실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낸 알렉스는 지금 자신의 상태에도 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점점 이 영체가 살아있는 인간의 육신처럼 작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바람의 감촉도 태양의 온기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지만 이건 확실히 말해 ‘살아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심장이 뛰지 않았고 그의 몸은 차갑기만 했으니까.


“지치는군···.”


그늘진 나무 밑으로 지나가는 바람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알렉스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들이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쉬고 싶어 눈을 감았건만 도저히 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머리는 알렉스로 하여금 다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대체 그 신들과 한 약속은 정확히 뭐였고 그걸 위해 뭘 했을까. 그리고 내가 빈 소원을 이용했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지···.’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 나가지만 어느 순간 머리는 멍해지고 영혼만이 떠다닐 때와 다르게 쏟아지는 피로와 수마에 결국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조용히 바람만이 부는 숲에서 용사는 잠들었다. 기다리고 있는 다음 싸움을 준비하려는 듯이.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앙 지각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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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자신을 집어 삼키는 뱀 (3) 25.02.14 15 0 14쪽
» 자신을 집어 삼키는 뱀 (2) 25.02.12 18 0 12쪽
183 자신을 집어 삼키는 뱀 (1) 25.02.09 1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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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제대로 된 마나를 쓰는 방법 (2) 25.01.19 1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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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뱀 (8) 24.12.18 21 0 11쪽
168 뱀 (7) 24.12.15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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