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마지막 결전(완)

“..어떻게?”
“내가 의심이 좀 많았어서 말이네. 지난번에 한번 환각제에 당하고 나서 단련을 하기로 결심했지.”
리암은 아직은 어색한 듯 손을 쥐었다 폈다하며 자신의 몸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도움이 될 때가 생길 줄이야. 이제 괜찮아진 것 같군.”
리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기껏 준비한 수가 물거품으로 돌아가서 미안하네.”
“이..시발!”
단우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가는 것을 본 리암의 얼굴에서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행복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격하게 반겨주면 너무나도 기쁜데 말이야.”
타다닷-
리암이 스탭을 밟으며 단우를 향해 돌진했다.
“이런 씨발!!”
단우는 입술을 이빨로 뜯으며 리암과의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리암의 속도는 그보다 빨랐다.
아니, 빠른 정도를 넘어서 이미 그에게 손이 닿아 있었다.
텁-
“이번에도 도망치려는 겐가? 그러면 조금 서운하다네.”
리암의 입가에 웃음이 걸리며 주먹이 날아갔다.
꽈앙!-
“크흡!-”
단우는 두 손으로 막음에도 저릿하게 들어오는 통증에 침음을 삼키며 반격을 준비했다.
“크아아!-”
단우의 이빨이 리암의 어깨를 노렸으나 가볍게 쳐낸 리암은 그대로 그의 목을 붙잡은 뒤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말 했던 거 기억이 나나?”
“크으..!”
단우는 버둥거리며 리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이미 깊게 틀어막힌 리암의 손은 더욱 그의 목을 옥죄어왔다.
촤악-
“흠-”
리암은 무쇠같이 단단한 자신의 팔에 어떻게든 단도를 휘두르며 생체기를 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단 말인가.”
리암은 멀리 있는 문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느끼며 덧붙였다.
“자네의 부하들은 꽤나 충성심이 강한가 보군. 이 일들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몰려드는 겐지.”
“크..헉!”
풀썩-
리암은 켁켁거리는 단우의 목을 놓으며 말했다.
“우선 자네도 조금 자고 있는 편이 좋겠네만, 어떻게 생각하나?”
“좆 까-”
퍼억-
“커..헉..”
털썩-.
리암은 쓰러져 거품을 물고 있는 단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어차피 자네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다네. 어떻게 하든지 자네는 여기선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 말이야.”
“보스!!”
콰앙-
문을 부수듯이 박차며 달려온 한 무리의 사내들이 리암과 그 옆에 쓰러져 거품을 물고 있는 단우를 바라보며 열이 뻗친 듯 소리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혈기왕성하군. 꽤나 재밌는 자들이야.”
리암은 피식 웃으며 그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나도 지금은 체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이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음에 미리 사과를 표한다네.”
찰칵-
리암이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수류탄이었다.
“다들 잘 받아보게나.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그 길로 자네들은 다 죽게 되는 것이니까.”
리암이 씨익 웃으며 수류탄을 던지자, 달려오던 사내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정지하며 주변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으아아아악!!!”
우당탕-
서로서로가 얽히고 섥히면서 아수라장을 만들어버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폭발음과 함께 구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음. 역시 냄새는 맡을 때마다 적응이 잘 안 되는군.”
리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팔을 지혈했다.
“안 그런가? 단우여.”
리암은 고개를 뒤로 돌려 어느 새 멀리까지 걸어가 서 있는 단우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지?”
“당연한 것을, 진정한 전사라면 그런 것 쯤은 눈치채고도 남는다네.”
리암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히 대답했다.
“나름 잘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니구나?”
“그래. 자네가 얼마나 속인들 나의 눈을 간파하기는 거의 글렀다고 봐야 한다네.”
리암은 목을 우드득 꺾으며 단우를 쳐다봤다.
“그래서, 이젠 어떤 방법으로 승부를 낼 텐가. 이제 자네의 부하들도 없고 남은 것은 서로 뿐인데.”
“그러게, 어떻게 해야 리암 네가 죽을 수 있을까.”
단우 또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자세를 개의 그것처럼 낮췄다.
“또 그 공격인겐가?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평생 결판이 나지 않을 거네만.”
리암은 그런 그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스탭을 천천히 밟기 시작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전보다 속도나 힘 관련한 모든 게 약해져서 이게 제일 낫다고 생각한 것 뿐이지.”
단우는 씨익 미소를 띄우며 리암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려 했다.
타탓-
“흡-”
선공을 뻗은 것은 리암이었다.
순조롭게 나간 리암의 주먹은 공기를 가르며 단우의 앞까지 다가왔다.
타앗-
그러나 빠르게 몸을 튼 단우의 손이 리암의 가슴을 향해 나아갔고, 리암 또한 몸을 뒤로 빼며 발차기를 날렸다.
“큽-”
빠각-
단우는 손으로 급하게 방어하며 두 바퀴를 구른 다음 리암에게 비수를 날렸다.
“흠?!”
텁-
리암은 순간 놀랬으나 가볍게 잡아내며 미소를 띄웠다.
“이런 것들로는 나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다는 것 쯤은 자네가 제일 잘 알텐데.”
“그래서 준비했어. 다른 버전이야.”
단우는 웃으며 품속에서 또 다른 것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도 받으면 진짜 인정해줄게!-”
타다닷-
그리고 동시에 걸음에 힘을 실으며 리암을 향해 달려들었다.
“호오..폭탄인가.”
리암은 지친 몸의 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무기들이 날아올 경로를 계산한 뒤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라면 아직 해볼 만-”
그때였다.
피잉-
“크흡?!”
리암의 무릎이 힘을 잃은 듯 풀리며 주저앉게 되었다.
“하하! 내가 다른 버전이라고 말 했잖아!”
단우는 광기에 가득찬 미소로 리암을 조롱하듯 말하며 단도를 휘둘렀다.
촤악-
“크흡-”
과연 리암은 쉽게 당해주지 않는다는 듯 뒷목을 향해 날아온 칼을 손을 들어 방어해내는 것도 모자라 비수를 역으로 날리며 다시 거리를 벌려냈다.
그러나 날아온 침 두 개는 미처 막아내질 못한 채 그대로 양 다리에 맞게 되었다.
“큽-”
타앗-
“아니, 이 정도로 약을 맥여도 쓰러지지 않는 건 너무하잖냐.”
단우는 비수가 꽂힌 팔을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뽑아낸 뒤 덧붙였다.
“이건 냄새를 맡게 하는 용도로 만든 거라서 꽂아도 소용이 없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격을 하는 건 진짜 의외네.”
리암은 아까와 달리 몸이 훨씬 무거워진 것을 느끼며 간신히 일어났다.
“진짜 인간이 아니라 괴물인건가..?”
“내가 말 했잖나. 난 인간..이라고.”
리암은 거친 숨을 내쉬며 몸에 존재하는 약의 기운을 몰아내려 했으나, 잘 되질 않았다.
‘슬슬 나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건가. 아무리 저 자와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았다지만..’
리암은 단우의 경이로울 정도의 방어력과 체력, 힘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적이 아니었다면 우리 쪽으로 데리고 와야 할 정도로 몸의 힘이 좋군.”
“칭찬은 고맙지만 이미 협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는걸.”
단우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답하며 목에 난 자국을 쓸어만졌다.
“이제 끝을 내 볼까? 이래뵈도 슬슬 시간이 애매해진 것 같아서 말이지.”
단우의 움직임이 다시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아.”
리암은 허벅지에 박힌 침들을 빼내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군. 자네는 아무래도 평범하게 상대해서는 힘들겠어.”
리암은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자그마한 단을 꺼내들었다.
“음? 그건 설마..”
“그래. 네놈이 잘 알고 있는 붉은 단이지. 이것을 복용하는 것은 나도 처음이다만..”
리암은 단을 손가락으로 쪼개 아주 자그마한 조각을 입에 털어넣은 뒤 덧붙였다.
“예전 주술사 할멈이 했던 말 중에는 이것의 일부를 섭취한다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야.”
과연 붉은 단의 강력한 효능이 바로 일어나며 리암의 전신에 활력이 돋기 시작했으나, 고통 또한 일어나게 되었다.
“크으..!”
리암은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단우를 응시했다.
“..진짜 괴물이었네 저거.”
몇 번 정도 붉은 단을 보아왔던 단우조차도 어이가 없다는 듯 리암을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후우. 혹시나 관절이 뒤틀리며 제어를 잃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라 다행이군.”
리암은 자신의 손과 발이 멀쩡히 움직여지자 다시 미소를 띄웠다.
“이제 다시 붙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네만. 어떻게 생각하나?”
“하아..그렇게까지 하면 내가 붙어줘야지, 별 수 있나?”
단우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미소가 리암의 시야에 확실히 들어왔다.
‘확실히 능력은 좋긴 하군. 이게 끝나고 난다면 어떤 휴유증이 오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상황에선 이게 최선이니 어쩔 수 없지.’
리암의 손에 들린 마체테에 힘이 들어갔다.
“들어와라.”
리암은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 까닥거리며 단우를 도발했고, 역시나 단우는 개처럼 달려들며 리암에게 외쳤다.
“리아아암!!”
“으하하!”
카아앙!-
리암의 마체테와 단우의 너클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카드득-
“..흠!”
투웅-
리암은 힘을 더 줘서 너클을 밀어낸 뒤 그대로 돌려차기를 했으나, 단우의 신묘한 움직임이 발차기를 흘려내며 쓸모가 없게 되었다.
“또 그거냐!”
“원래 싸움에는 방법이 없는 법이다 이 근육괴물아!”
단우는 탄성에 가까운 외침으로 대답하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흐아아!!”
콰직-
그대로 내려간 칼날은 리암의 어깨를 스치며 뒤에 있던 벽을 긁어댔다.
“하하!!”
퍼억-
리암의 발차기가 그를 밀어냄과 동시에 반격이 시작됐다.
“흡!-”
후웅-
마체테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주변을 찢을 듯 휘둘러졌고, 그것을 피한 단우는 곧바로 너클을 날려 리암의 복부를 명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큽-”
주춤거림도 잠시 리암의 손이 그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고 그대로 무릎을 이용해 올려쳤다.
뿌드득-
“크아아!!”
단우의 팔에서 나지 말아야 할 불길한 소리가 나며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흡!”
빠득!-
리암은 그에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한바퀴를 틀어 팔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악!!”
단우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입을 크게 벌려 그대로 리암의 손을 깨물었다.
“윽!”
리암은 손가락에 느껴진 고통에 황급히 손을 빼내며 말했다.
“..이걸 먹으면 단점이 생기는군. 상황의 판단이 느려지지만 신체능력은 올라간다는 것이 좋은 점이긴 하지만 정말 지금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난 하지도 않았을 거라네.”
리암은 핏방울이 맺힌 손가락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이제 자네의 그 자랑 중 하나인 개처럼 돌진하는 것은 못 하겠군.”
“크으으..”
단우는 신음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듯 덜렁이는 팔을 붙잡고 있었다.
“대체 왜 내가 저딴 괴물이랑 싸우고 싶다 해서..!”
“내가 항상 말하지만, 난 괴물이 아니라네. 자네 또한 자네의 이름을 걸면서까지 인정하지 않았나.”
리암은 언제 베인건지도 모를 머리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무덤덤하게 닦아내며 대꾸했다.
“으아아!!”
단우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전과 달리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게 되며 리암을 향한 공격들은 하나도 닿질 못했다.
“흡-”
콰앙-
리암의 주먹이 단우의 복부를 가격했다.
“커헉-”
단우가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자 리암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삭에게 배운 격투기술로 그를 계속해서 연타했다.
뻐억- 뻐억-
“크하학!”
단우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리암의 공격들을 최대한 피해내는 것이었다.
“끝이다.”
뻐억!-
리암은 강력한 발차기를 끝으로 날리며 단우에게 나름대로의 작별인사를 고했다.
쿠당탕-
털썩-.
이윽고 멀리 굴러간 단우의 모습이 움찔거리는 것을 확인한 리암은 그제야 힘이 풀린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뒤 중얼거렸다.
“..후우. 이렇게까지 해본 적은 오랜만인데. 심지어 단까지 먹어가며 해본 건 처음인데 다시는 안 하고 싶어지는군.”
리암은 자신의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제발 이런 일이 더 안 일어나길 빌어야겠지.”
-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교정하느라 늦었네요,...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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