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태신교 또 너냐(완)

사내는 진심이 담긴 말투로 대답하며 그들을 쳐다봤다.
“제 말이 거짓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죽어서 바이사께로 가겠..”
“바이사고 뭐고 관심은 없다만 자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알겠군.”
리암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에 빠졌다.
‘저 자의 말대로 이곳의 공간은 내가 봐왔던 이 제국의 상태로 만들 만한 수준의 것들이 아니다. 딱 보기에도 외부의 지원이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해.’
결론을 내린 리암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자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건너온 자들인지 말해준 적이 있나? 흘려가는 말이라도 괜찮다네.”
“..근데 제가 이걸 왜 다 말해주고 있는 겁니까?”
“고통스럽게 죽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해서 살아남는 것이 낫지 않겠나? 자네가 원하는 그 바이사인지 뭔지는 누군가에게 고문을 당해서 죽는 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지 않은가.”
그 말에 사내가 머리로 망치를 얻어맞은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근데 리암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알죠? 그건 태신교 신자들만 교리를 배울때에 알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인데.”
“그 태신교 신자중 하나를 내가 붙잡아서 심문을 했던 기억만 몇 번이라서 말이야. 그 녀석들이 고통을 받을 때마다 바이사를 부르짖으며 회개하는 것을 봤다면 이해가 가지 않나?”
“아.”
사내는 짧은 외침과 함께 아까보다 훨씬 간절해진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이것은 그렇게까지 들어본 적은 없던 것이지만.. 제가 알기로는 사제님들이 건너오신 곳은 중국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
“예. 보통 이런 것을 위한 파견은 미국보단 중국에서 자주 나온다고 들었어서.. 근데 생긴 것은 저희와 완전 딴판으로 흑인과 백인들이 많았죠.”
“이건 내가 들었던 것과 비슷하군. 흑인과 백인들이 제물들을 감시하듯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말이야.”
“그건 또 어떻게..?”
“내가 데려온 소년에게서 들은 거라네. 뭐라도 문제가 있나?”
리암의 당당한 말투에 그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그럼 그 1년 전에 저희 제물을 훔쳐간 것이 당신들입니까?”
“그래. 겁도 없이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자들이 우리에게 덤벼들길래 그렇게 해줬더니 다들 날뛰더군. 이유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리암은 씨익 웃으며 사내를 쳐다봤다.
“그건 그거고 자네는 하던 얘기나 계속하게. 다른 것들이나 그런 특징같은 것은 없었나?”
“리암.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조리악이 엄지를 세우며 말하자 리암 또한 싱긋 웃으며 그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난 하던 대로 했을 뿐이라네 형제.”
“...”
사내는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나저나 이곳엔 아무도 없는 건가? 그렇다 하기에는 공간의 규모가 너무나도 큰데.”
리암의 말에 사내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긴 한데 지금은 다들 정찰을 나가신 듯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그렇게 지위가 높은 편은 아닌지라..헤헤.”
“흐음..?”
주변을 둘러보던 리암과 조리악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모였다.
“저건 뭐지? 딱 봐도 평범해 보이는 것은 아닌 듯한데.”
리암이 가리킨 것은 넓은 공간 속 중앙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손에는 작은 태양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머리에는 불의 형상을 띈 왕관을 쓴 채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나로써는 도저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군.”
리암은 머리카락이 거슬리는 듯 연신 뒤로 쓸어 넘기며 사내를 쳐다봤다.
“저게 뭔지 설명을 해주겠나...?응?”
“바이사시여..”
리암이 고개를 돌려 본 곳에는 사내가 머리를 박고 경배하며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만 저건..?”
리암은 조각상을 둘러보다 뭔가에 꽂힌 듯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아무래도 저게 바이사라는 놈 같군. 생겨먹은 게 꼭 우리가 살던 곳의 그 이상한 놈 이름이 뭐였지..그 제국의 그 녀석 있잖나.”
“리암..?”
말을 이어가던 조리악이 아무런 대답도 없는 리암을 쳐다보았을 때엔 리암의 표정이 너무나도 미묘함과 복잡함을 띄우고 있었다.
“왜 그러나? 혹시 뭔가 아는 거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뭔가 이상한 낯선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리암은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조리악에게 말했다.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다. 형제의 표정이 너무나도 달라 보였어서 말이야. 내가 잘못 본 것 같군.”
“무슨 농담을 하고 그러나. 나는 그래본 적이 없다.”
리암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피식 웃었으나 조리악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여튼 이제 일어나주지 않겠나. 자네가 갑자기 그렇게 절을 해버리면 우리가 뭐를 하는 것인지를 잘 모르겠잖나.”
리암은 그를 붙잡고 일으키며 말을 이어갔다.
“대충 저 녀석이 자네들이 믿는 그 신이라는 것은 잘 알겠다만 왜 갑자기 절을 한 겐가?”
“그것은 저희 교리에 따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저기 있는 바이사님의 조각상을 보게 되는 순간 5분 정도를 기도해야 일어날 수 있죠. 그렇지 않다면 신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사내는 정장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대답했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여기서 볼 것은 다 끝나셨으니 이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아직 정찰중이랬던가.”
“맞습니다. 저와 두 분 말고는 다른 사람들이 현재 여기엔 없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가는 곳에 아이들이 갇혀있는 것인가?”
“맞습니다. 근데 정말 전면전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저희가 이래뵈도 가지고 있는 전력이..”
사내의 말에 리암이 살벌한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우리가 자네들이 기습을 했을 때에 어떻게 대처를 했었는지를 기억하게 된다면 그 말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을 텐데. 잊은 겐가?”
그 말을 들은 순간 사내의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든 명심하게. 우리는 이 종교에 대한 반감이 꽤나 심한 편이니까.”
조리악 또한 살벌한 목소리로 덧붙이며 사내에게 위압감을 심어줬다.
“우선 이동하지. 지금도 아이들이 죽어갈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이동하던 사내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제물을 바치는 것에 있어 진심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물들의 컨디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니까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의 눈에서는 자그마한 광기가 넘실거렸다.
“자 그럼, 갈까요?”
유유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리암과 조리악의 표정은 복사를 해 놓은 듯 똑같은 모습이었다.
“저 녀석..”
“그래. 누가 봐도 미쳐 보이는군. 자신이 믿는 종교에 단단히 심취해있군. 빠져나가긴 힘들겠어.”
“안 오십니까아?~”
“그래. 가도록 하지.”
그들은 찝찝함을 뒤로 한 채 사내의 뒤를 따랐다.
“으흐흐.. 제가 갑니다 바이사시여.”
물론 음흉한 웃음을 지은 채 중얼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표정을 보진 못했다.
한참을 걸은 후 사내의 발걸음이 경계가 철저하게 세워진 문 앞에 멈췄다.
“호오, 딱 봐도 전에 있던 공간들과는 시작부터가 다른 느낌이긴 한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구조를 만들어낸 거지? 신기하군.”
리암이 감탄을 흘리며 턱을 매만지는 동안 사내가 바닥을 보며 조심스레 내뱉었다.
“여기입니다. 이제부터는 완벽히 제 뒤만 따라서 와야 하니까 조심하시고..”
“음? 그럴 필요가 있는 겐가? 크게 위험할 것은 없어 보이는데.”
리암의 말에 사내가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이곳에는 수많은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어서요. 매주 마다 함정들의 위치도 달라지는 구조여서 저희 같은 사도들이 아니라면 잘-”
그러나 돌아온 리암의 대답은 달랐다.
“흐음. 그 정도인가? 내 눈에는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조리악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내가 봐도 그래 보이긴 한다만. 이 정도면 충분히 평소에 하던 대로 건너가면 되겠는데?”
“그렇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것 같군.”
“아니..여러분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타앗-
사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리암의 몸이 앞으로 빠져나갔다.
“..어어?!”
“읏차.”
리암은 가볍게 앞에 있는 발판 구조의 돌을 사뿐히 즈려 밟으며 외쳤다.
“이 구조가 어디선가 익숙하다 했더니 제국 놈들이 자주 쓰던 수법이로군. 분명 이걸 밟으면..”
리암은 옆에 있던 발판을 슬며시 발로 눌러보았다.
투웅!-
곧바로 옆에 달린 구멍에서 창이 튀어나오며 리암의 목으로 날아왔다.
터업-
“이렇게 발사가 되는 구조였지. 이제 파악이 된 것 같으니 슬슬 가볼까. 예전 추억도 돋고 뭔가 재밌군.”
“..이게 무슨?”
리암은 미소를 띄우며 수없이 나 있는 발판들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의 사내에게 대답했다.
“먼저 가 있을 테니 천천히 따라 오게나!”
탓-
신기하게도 리암의 발걸음이 이어질 때마다 밟는 곳에서는 어떠한 함정이 발동되거나 하질 않았다.
심지어 처음 튀어나왔던 함정도 리암이 일부러 밟아서 확인을 한 것 빼고는 전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냥 보다 보면 이해를 하게 될 거야. 어차피 나에게도 이 구조가 보이는 정도면 그리 대단한 수준의 함정들은 아닌 듯 하군.”
조리악 또한 가볍게 뛰어 오른 뒤 리암이 뛰어간 그대로 발판들을 뛰어넘으며 외쳤다.
“안 오고 뭐하나? 자네가 오질 않으면 우리가 이동을 할 수가 없다네.”
“아..네 가야죠. 네.”
발판들을 마찬가지로 넘어가는 사내의 표정에는 경악과 당황 그리고 어리둥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왜이리들 늦게 오는 겐가? 혼자서 도착한 뒤에 심심해서 기다리느라 한참을 보냈잖나.”
그들이 다 도착한 곳에는 이미 리암이 편안하게 앉아서 말린 육포를 씹어대고 있었다.
“미안. 이 녀석이 생각보다 느리게 와버려서 말이지. 뒤를 봐주면서 오느라 조금 늦었다고.”
조리악은 자신의 손에 들린 독화살들과 창 따위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곳의 사도라는 작자가 이렇게 길을 몰라서야 되나 모르겠어.”
“..제가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내는 무표정한 말투로 그들에게 말했다.
“질문 말인가? 그런 거야 상관 없다만.. 갑자기 왜 물어보나?”
“대체 어떻게 저길 한번에 통과하신 겁니까? 저희들조차 기억해놓지 못하면 함정들에 몸이 꿰여 죽기 십상인데..”
“아, 그것 때문인가? 난 또 뭐가 이상하다고.”
리암은 시큰둥한 말투로 대답했다.
“자네, 저기 발판들이 보이나?”
“예. 당연히 보입니다만.. 그게 왜죠?”
“저기 발판들과 바닥의 틈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자그마한 공간이 보이는 곳이 있었다네. 그렇지 않은 것은 저기 사이의 틈이 아예 보이질 않더군. 그래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네.”
“..네?”
다소 황당한 말에 사내의 표정은 당황이 가득했다.
“음.. 근데 진짜 이것 말고는 딱히 설명을 해줄 방법이 없는데..이게 다야.”
리암은 사내를 쳐다보며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리암은 우리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면 편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거다.”
조리악의 말에 사내는 이해하기를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이제 안내해주겠나. 저기는 우리가 뭘 한들 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라.”
리암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역시나 카드를 대야지 이동할 수 있을 법한 느낌의 거대한 문이 있었다.
-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교정하느라 늦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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