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교주님

“알겠습니다.”
삑-
사내가 천천히 걸어간 뒤 문을 열어주자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엄청나게 밝은 공간과 향기로운 냄새가 그들의 코를 자극했다.
“킁킁. 이건 무슨 냄새지? 뭔가 해로운 느낌은 전혀 들질 않는데.”
“이건 아로마입니다. 제물들의 상태에 하나라도 흠집이 나면 안 되니 심신에 안정을 주는 아로마들로 구성해놓은 거죠.”
사내는 앞을 향해 쭉 걸어가며 리암과 조리악을 쳐다봤다.
“가시죠. 아직 제물들이 있는 곳까지 갈려면 조금 멀었습니다.”
“다 좋은데 그 제물이라는 말을 안 쓸 순 없겠나. 듣기에 조금 거북하군.”
“..노력해보죠.”
리암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듯한 오묘한 기분을 가지며 사내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곳을 유지하려면 경비 같은 게 많이 들 것 같은데. 꽤나 관리가 잘 되어 있잖아?”
“당연히 여기만큼 시설이 좋은 곳은 없을 수준이긴 합니다. 이곳을 제외하면 다 비슷비슷한 수준이죠 뭐.”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눈에는 조금의 슬픔이나 분노 같은 것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기 있는 제물..아니, 아이들은 제물이 필요할 때에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는 거죠. 이 아이들도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답니다.”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인데 그럼 그 제물들은 어떻게 찾는 거지? 따로 선별되는 기준 같은 게 있나? 내가 볼 땐 이렇게 가다간 자네들의 자식들 또한 그런 식으로 소비가 될 텐데.”
리암의 날카로운 지적에 놀랐다는 듯 사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당연히 그런 기준이 있죠. 리암 당신이 이렇게까지 궁금해할 줄은 몰랐는데 뭔가 신기하네요.”
“잡소리는 하지 말고 얼른 말이나 해주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려고 정보를 얻는 거니까.”
“매정하시긴, 말을 해드리자면 단순히 선별 기준은 잘 길러진 고아입니다.”
“고아?”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자식이 될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바이사께서 정하시는 특별한 때에만 선별이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보통은 고아들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최선의 컨디션까지 키운 다음 제물로 보내는 것이죠.”
“그렇다면 주변의 어린아이들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에도 네놈들이 다 했다는 거냐?”
“오, 그게 그렇게 된다면 저희밖에 없긴 하겠군요.”
사내는 광기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미 리암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태신교의 일원들은 여기 지부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리암님의 부하들 사이에도 저희 일원이 존재했죠.”
“틀린 말은 아니긴 했지. 우리 안에도 스며들었을 줄은 나도 예상을 하지 못한 부분이니까.”
리암은 순순히 동의를 하며 사내를 노려봤다.
“막말로 리암님이 이 지부를 터트린다 한들 나라 곳곳에 이미 퍼져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사내는 두 손을 펼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저희와 전면전이 가능하시겠습니까?”
“내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리암은 담담하게 내뱉으며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항상 그래왔듯 우리를 가로막는 존재들을 패망시킬 것이며, 그게 누구이든 뭐가 됐든. 그리고 이런 역겨운 교리를 가진 존재들이라면 더더욱.”
“다 쓸어버릴 뿐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는 거지.”
담담한 말투 속에서 나온 리암의 목소리는 잘 벼려진 칼을 겨누고 있는 듯 날카로웠다.
“흐음..”
사내는 고민하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둘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아이들을 데려가세요.”
“흠? 안 그래도 데려가려 했다만. 굳이 그렇게 일부러 넘겨주는 듯한 말투로 대답하는 것은 뭐지? 뭔가 짜증나는군.”
조리악의 말에 리암이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저 녀석도 우리에게 뭔가 할 수도 없을뿐더러 할 이유도 없으니 그냥 가면 된다.”
리암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우선 안내나 해주게. 그것부터 해주면 좋을 것 같군.”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그의 얼굴에는 왜인지 모를 찝찝함이 숨어 있었다.
또다시 한참을 걸어간 그들의 눈앞에 드디어 하나 둘씩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길 시작했다.
“오잉..오늘은 새로운 분이 오셨댜..?”
“아죠씨들은 누구에요? 누구신데 이렇게..”
“우린 너희들을 여기에서 구출해줄 리암이라고 한다. 다들 몸은 괜찮은..거로군.”
리암은 볼 필요도 없이 깨끗한 그들의 옷차림과 건강해보이는 모습에 말을 하다 멈추고 사내를 쳐다봤다.
“정말 거짓말을 치거나 하진 않았군. 지극정성으로 키운 모양이야.”
“제가 당신들에게 뭐하러 거짓말을 치겠습니까.. 무엇보다 저희는 항상 진심으로 제물..아니 어린아이들을 기른답니다.”
사내가 제물이라는 말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표정은 익숙한 말을 들은 듯 평온했다.
“그리고 데려가셔봤자 크게 소용은 없을 테지만.. 뭐 본인들의 의사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자세히 말해라.”
리암이 도끼를 꺼내 사내에게 겨누자 아이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지며 자리를 피했다.
“..일단 도끼는 내려놓으시죠. 데려가신다는 분이 그렇게 험악하게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군. 내가 성급했네.”
리암은 도끼를 집어넣으며 사내를 쳐다봤다.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인지 다시 설명해주겠나. 어차피 데려가도 소용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이지?”
“단순히 말해서 저희가 최선의 컨디션을 위해 관리를 해준다는 것은 말했지 않습니까?”
“그랬지.”
리암은 대답을 하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사내와 조리악 또한 자리에 앉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물론 제물들을 위한 것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일종의 교육을 하는 것도 있죠.”
“교육?”
리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그러니까.. 이런 것 말입니다.”
사내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도구를 꺼내며 말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주기적으로 교육을 위해 누르는 버튼입니다. 이걸 누르게 된다면..”
삑-
소리가 울려 퍼지자 도망쳤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그들의 주변을 메꿨다.
“허..”
리암과 조리악은 어이가 없는 광경에 사내를 쳐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무슨 교육시간이길래 저희를 부르셨여요?? 져희 이번엔 태양신님 건국신화 들을 차롄뎨!”
아이들의 희망찬 얼굴에는 아무런 세뇌의 흔적이 없는 듯 티 없이 맑았다.
“이게..가능한 건가?”
“오늘은 교육 없어. 다들 자리로 가서 쉬고 있으면 돼.”
리암의 어이없는 표정 뒤로 사내의 부드러운 말이 이어지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피하며 종적을 감췄다.
“다 갔네요.”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사내가 다시 리암과 조리악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리암님. 진정한 교육을 통해 이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교육?”
“네. 어릴 때부터 저희 교리에 맞게 만들어진 경전공부와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겁니다.”
사내는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대며 생동감 넘치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저희의 주신이자 태양신이신 바이사님께서 이루신 태초의 건국신화 말입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건 그냥 세뇌가 아닌가?”
“세뇌라뇨. 말 조심하시죠. 신앙심으로 인한 교육을 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말이죠.”
일순간 사내의 표정에 살기가 드리우며 리암의 말에 반박했다.
“그럼 자네의 말대로라면 이 아이들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기에 우리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 되겠군?”
“똑똑하시네요. 역시 괜히 세력을 다 통합하신 게 아닌가 봅니다.”
사내는 박수까지 쳐대며 리암을 칭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영혼 없는 칭찬은 관두는 게 나을 걸세. 나는 입 발린 말에 넘어가지 않으니까.”
리암은 자신의 옆에 놓인 도끼를 쳐다보며 손으로 도끼의 날에 묻은 먼지를 닦아냈다.
“칭찬을 해드려도 날이 선 모습이시네요. 살짝 서운한 느낌이 드는데..”
“자네와 나는 애초에 동료가 아닌 적이지 않나? 그런 사이에서 칭찬을 하며 친분을 쌓으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지.”
리암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우리는 이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네. 혹여나 이곳에도 저 아이들과 달리 진실을 알고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어나라 조리악. 갈 시간이다.”
“벌써 가십니까? 조금 더 있다 가셔도 괜찮은데.”
사내는 묘한 웃음을 띄우며 리암에게 대답했다.
“그건 사양하도록 하지. 아까부터 주변에서 살의가 느껴지는 기운들이 가득하니까 말이야. 아이들을 살인 기계로 키우기라도 했나?”
움찔-
그 말에 리암을 향해 다가오던 몇몇의 아이들의 몸이 우뚝 굳었다.
“아직 살의를 감추는 법은 미숙하지만 꽤나 잘들 키워댔군. 자신이 제물로 쓰이게 되는 것도 모르는 채 헌신을 한다..이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야.”
리암은 명백하게 비꼬는 듯한 말투로 대꾸하며 조리악과 함께 길을 나섰다.
“출구는 어딘지 안 물어보시는 겁니까?”
“느낌으로 출구같은 곳이 있으면 거기로 가면 되니까 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네. 자네의 목이나 조심하는 게 더 좋아 보이네만.”
리암은 짧은 경고 아닌 경고를 날리며 사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의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며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교쥬님..저희 잘 했어요오? 이상한 아저씨들 들어오면 위협하라구..”
“그래 잘 하긴 했지만 다음부턴 그렇게 성급하게 나서지 마. 너희들의 안전이 제일 우선이니까. 알겠지?”
“녜에..”
“다들 가서 쉬어. 이렇게 해주느라 고생했어.”
사내의 말에 아이들은 다시 헤치며 그가 있던 공간에서 사라지듯 자취를 감췄다.
“흐음.. 이곳의 진실을 알고 다투는 아이라.”
사내는 리암이 하던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 턱을 괴며 땅에다 손가락을 비벼댔다.
“아, 그 아이들이 있었나.”
사내의 진한 미소가 말끔한 바닥의 면에 비쳤다.
“그 아이들은 데려가면 안 되는데.. 이번만은 어쩔 수 없나. 양보해야지 뭐.”
쿠웅-
그 순간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내들이 도착했다.
“교주니이임!!-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오, 늦게도 왔네. 난 여기 멀쩡하게 잘 있어.”
사내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들을 반겼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오자마자 그 극악무도한 놈들을 만나서 괜히 고생을 하셨다고..”
“괜찮아. 어차피 크게 문제도 없었고, 그보다..”
“내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정보를 알아낼 수 있던 것 같은 시간이라서 나쁘진 않았어.”
“그게 뭡니까?”
사내들의 질문에 교주라고 불린 정장의 사내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지금 리암 저 자의 몸 상태는 절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내가 그동안 사람들을 시켜서 봐온 그의 몸 상태중 제일 최악으로 보이더라고.”
“다른 건 딱히 없었지만 이 정도로도 큰 수확이지 않을까 싶은데.”
교주의 말에 사내들은 대답조차 않은 채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새로 온 애들 소개시켜주고 정비하고 쉬어. 나도 오늘은 조금 쉬어야겠다. 피곤하네. 놈들 추격은 할 생각하지마. 어차피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 인원들이니까.”
“알겠습니다 교주님!! 저희는 항상 교주님의 편입니다!-”
그들이 멀어지는 교주를 뒤로 한 채 인사를 박던 순간 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참, 그리고 그 아이들은 뺏겼어. 워냑 강하게 나와야 말이지. 그것 빼면 따로 손해는 없다는 거 말곤 없어. 다들 태양신의 곁으로 다 가서 괜찮을 거야. 그럼 간다.”
“바이사께서 함께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모두의 외침을 뒤로 한 채 사내는 웃음기를 쫙 빼며 자신만이 아는 비밀 통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름 재밌던 만남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라니까.”
쿠웅-
그가 통로 속에서 멀어지는 모습과 함께 비밀통로의 문은 굳게 닫혔다.
-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평일과 주말 시간엔 업로드를 조금 다르게 할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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