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이단심문관은 교주가 밉다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아까 헤어진 조리악과 라스칼이었다.
“어라? 리암 네가 여긴 왜 있는 거야? 우리는 분명 헤어져서 왔는데..”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다만.. 그보다 크게 위험한 것들은 없었나?”
리암의 말에 라스칼은 머리를 긁적이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크게 위험할 것도 없고 그냥 통로만 이어져 있더군. 우리가 여기로 나온 것으로 보아하니 아마 너희들과 만나는 구조였던 것 같은데?”
“확실히 그렇긴 하지. 어차피 우리가 통로를 찾으면 너희들을 부를려 했다. 이러면 시간도 번 셈이로군.”
리암은 긍정적인 회로를 돌리며 짧은 담소를 나눈 뒤 문의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일단 최소한의 반응은 할 준비를 해야 한다네.”
“당연하지. 우리가 무슨 제국 나부랭이들도 아니고 그런 걸 못할 줄 알고 있냐고.”
“그럼 열어볼까.”
끼이익-
리암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문이 열리며 시야가 밝아졌다.
“크으 역시 밝긴 하군...음?”
제일 먼저 밖으로 나온 리암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동력실의 앞에 눌러 앉은 새햐안 성복을 입은 사내들과 눈이 마주쳤다.
“오, 드디어 나온 게로군. 기다리느라 지루했다네.”
그들 중 사람 얼굴보다 더 큰 도끼를 짊어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리암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처억-
‘..이 녀석. 나랑 키가 비슷하군. 이곳에서 나와 비슷한 체격을 지닌 자들을 잘 보지 못했는데 말이지.’
리암은 내심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사내의 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왜 웃는 거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닐 테고.”
“그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체격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아서 그런다네. 이해를 해주기 바래.”
리암은 미소를 감추지 않은 채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보아하니 이곳을 지키는 건 아닌 듯한데, 이럴 게 아니라 인사나 하는 게 어떻겠나.”
“...흐음.”
황금빛 머리칼의 사내가 리암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지 뭐. 어차피 사이라도 좋아야 나중에 앙금이 덜 남을 것 같으니 말일세.”
터업-
리암과 사내의 손은 서로를 붙잡으며 거칠게 흔들어댔다.
“꽤나 착하군. 말도 안 들을 것 같이 생겼는데 말이야.”
“우리 부모님께서 죽일 의도로 다가오지만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최선의 친절을 대하라고 말하셨거든.”
“좋은 부모님의 밑에서 자라셨군. 옷은 어떤 건가? 꽤나 좋아 보이네만.”
“고맙네만 이건 자네들이 입어선 안 된다네. 우리 교와 척을 친 이단아들이지 않나.”
꽈악-
그 말에 리암이 흔들어대던 손에 힘을 주며 그를 노려봤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알겠다만 태신교의 인원들이었던 건가?”
“물론, 내 이름은 태신교 소속 이단 심문관인 카밀라라고 하네. 이름은 여성스럽네만.. 이래뵈도 건장한 남자고.”
사내 또한 리암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의 악력을 버텨냈다.
“호오? 이 정도의 힘을 버티다니. 꽤나 힘이 센 편인가 보군?”
“살다 보면 너 정도의 덩치를 만날 때도 많이 있어서 말이지. 때때로는 내가 힘에서 밀릴 때도 있다만 지금은 아닌 듯 하군.”
꽈아아악-
서로의 미소와 함께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꽤나 단련을 한 몸이로군. 그런 화려한 복장안에 숨겨둔 이유라도 있는 겐가?”
“다른 이유는 없다만.. 내 몸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영 싫어하는 편이라서 말이지. 자네를 욕하려는 의도는 없다네.”
카밀라는 미소를 띄우며 리암의 반쯤 드러난 옷을 쳐다봤다.
“흐음..”
리암은 현재 고민 중이었다.
‘이 녀석을 내가 혼자 상대해서 이긴다면 저 뒤에 있는 사내를 조리악과 라스칼이 상대할 수 있으려나. 지금 이놈보단 저 뒤에 있는 녀석이 더 위험해 보이는 기분이 드는군.’
리암은 앞의 카밀라보다 뒤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자신을 응시하는 사내와 두 눈이 마주쳤다.
“..저 뒤에 있는 녀석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가?”
“당연하지. 우리는 여기서 대략..레인, 우리가 여기서 몇 분 정도를 기다렸지?”
“아마 10분 정도일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는군.”
카밀라는 레인이라 불린 사내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으쓱였다.
“둘의 이름이 상당히 신기하군. 뭔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이야.”
“우리가 그 정도로 유명하진 않습니다만, 진정한 신을 배척하는 이단아들과는 말을 섞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리암의 말에 레인의 낯빛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신?”
“예. 태양신이신 바이사께서 진정한 신이 아니라면 대체 그 누가 신이라는 것입니까. 세상의 멸망을 예견하시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식된 자들을 손수 받아주시어 자신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영광을 허락하신 신이지요.”
레인은 리암의 말에 속사포로 내뱉으며 책을 덮었다.
“카밀라 심문관님. 더 볼 필요도 없습니다. 유흥은 이만 끝내고 정리하시지요.”
“알겠네.”
스르릉-
리암은 카밀라의 손에 들린 도끼보다 레인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무기에 더욱 신경을 쏟았다.
“그건 혹시..”
“아, 이건 성스러운 기운을 담아 만든 무구입니다. 누르면 성력을 담은 못을 발사하는 레일건이죠.”
레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로 대답하며 레일건을 장전했다.
“..이거 뭔가 위험해 보이는데.”
리암은 오랜만에 느끼는 오싹한 기운을 받아들인 채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위험하다니, 절대 위험하지 않네만?”
카밀라의 짖궂은 농담 아닌 농담에도 불구하고 리암의 시선은 온통 레인의 레일건에 고정되어 있었다.
‘만약 저 녀석이 나에게 먼저 공격을 시도하고 내가 대처하는 순간 카밀라 저 자가 들어오게 된다면 상당히 까다로워지겠군. 그보단 내가 먼저..’
터업-
“리암, 뭘 그리 생각해?”
고민하던 리암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살기어린 미소를 피우던 라스칼이었다.
“지금은 너 혼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리도 있으니까 그걸 생각하고 전투에 임하라고. 그럼 훨씬 편해질 테니.”
“..하긴, 내가 형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나 위주로만 한 것 같군. 이건 좀 미안하네.”
“미안할 것까지야.”
고개를 으쓱거린 라스칼은 곧바로 무기를 꺼내들며 리암의 곁에 섰다.
“적은 둘, 우리는 셋. 다른 특이사항은 있나?”
“둘 중 하나의 무기가 심상치 않다. 느껴지는 불길한 예감은 아마도 독이 있을 확률.”
“그럼 상관없겠네. 우리가 저것에 맞아줄 확률은 낮으니까.”
자신감이 충만해진 라스칼의 두 손에 쥐어진 무기에 힘이 가득 실렸다.
“..꼭 그렇게 말하면 맞게 되던데.”
그들을 지켜보던 카밀라의 머리에 실핏줄이 돋아나며 도끼가 거칠게 휘둘러졌다.
“그럼 이제 싸움 시작인가?”
“그걸 말하고 시작하는 멍청이도 있나?”
“그래야 우리의 신께 바칠 제물이 뭐인지를 알게 되는 거라네.”
리암과 카밀라의 치열한 설전 중간에도 심리적인 공방은 계속해서 그들의 주변을 압박해나갔다.
“흐음..”
파앗-
리암은 눈치를 보다 순간적인 속도를 이용해 카밀라의 앞으로 달려나갔다.
“허..!”
카밀라 또한 초인적인 감각으로 대응하며 도끼를 휘둘러 리암의 진행방향을 방해한 뒤 그대로 몸을 틀어 발차기를 날렸으나 리암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발차기를 가볍게 쳐냈다.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자네도 말을 하다 갑자기 달려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보네!”
카앙!-
청명한 금속음이 넓게 울려펴지며 도끼와 도끼가 서로의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꾸구구국-
“너무 힘을 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나.”
“내가 보기엔 리암 당신이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얌전히 우리에게 잡혀주는 것은-”
기우뚱-
“음?!”
리암의 기습적인 발걸이에 넘어간 카밀라의 몸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으며 힘이 빠졌다.
“지금.”
파앙!-
“크읍-”
그리고 그 찰나를 틈타 카밀라를 떨쳐낸 리암은 도끼를 역수로 고쳐쥐며 뒤에 서 있던 레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네가 제일 위험해 보이니 자네부터 처리를 해주도록 하겠네!-”
후웅!-
리암의 도끼가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레인을 향해 날아들던 그 순간.
‘..웃고 있어?’
리암은 자신의 도끼와 가까워지는 순간에도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침착하게 레일건을 겨누는 레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 나의 도끼를 앞에 두고도-’
리암이 그렇게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티잉!-
“흐음?!”
리암의 도끼가 총탄을 맞으며 튕겨나가며 반동으로 인해 팔이 젖혀졌다.
‘내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공격이 은밀했다고?! 어디냐...!’
리암은 당황과 동시에 침착하게 시야를 넓게 펼치며 주변의 모든 공간에서 적의 위치를 탐지하려 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사냥하는 입장에서 맹수에게 들키는 것만큼 아찔한 상황이 없거든요.”
퓨슉!-
“크흡!-”
급히 숙인 리암의 머리카락을 뚫으며 날아간 레일건은 그 뒤로도 리암의 탐지를 간간이 방해하는 바람에 그와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후..”
“어떤가. 우리 애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나 보군?”
카밀라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리암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렇게 힘들진 않다만..그냥 조잡하기만 한 기분이라 그렇게 강하진 않아보인다네.”
“강하지 않다라? 그럼 왜 레인과 거리를 벌린 겐가. 그렇게 조잡한 것이라며.”
“이제부턴 진심으로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다네. 조리악, 라스칼. 준비해라.”
“알겠다.”
“알겠다고!-”
리암의 말에 그제야 몸을 다 푼 두 거한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현재 저격으로 보이는 다른 한 사람은 여기에 없는 상황이다. 둘이서 서로를 견제할 동안 내가 그놈을 찾아내서 없에도록 하지.”
“확인했으니까 얼른 가기나 해. 이러다 다 놓쳐버린다고.”
“시간은 여유 있으니까 얼른 가기나 해라. 우리가 맡아줄 테니.”
“고맙다.”
타탓-
리암은 그들을 세워놓은 뒤 곧바로 동력실 내부를 탐사하러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휘리릭!-
레인이 그것을 보며 레일건을 겨누던 순간 그의 옆으로 도끼가 날아갔다.
카앙!-
“크흡?!-”
겨우 튕겨낸 레인의 시야엔 웃음을 지으며 다가가는 라스칼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 족장 놈한테 다가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우리를 믿고 달려간 건데 그런 식으로 해버리면 위험하잖냐.”
“..이 이단아가!”
“허허..”
“뭐 하고 있나, 도끼 든 황금머리?”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는 카밀라의 눈앞엔 조리악이 싱글벙글 웃으며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우리도 붙어봐야 하지 않겠나. 저 둘만 재미보게 할 건가?”
“하긴, 그러라는 법은 없지.”
카아앙!-
다시 한번 청명한 쇳소리가 울리며 동력실 내부의 전투가 재개되었다.
“어디냐.”
리암은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와중에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저격을 하던 인원이 어디 있을지 파악 중이었다.
“분명 방향이라면 여기가 맞을 텐데-”
리암이 환풍구 근처로 가던 그 순간.
피슉!-
“흡-”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총탄을 피해낸 리암은 미소를 지으며 환풍구로 다가갔다.
“이런 곳에 숨어있었군. 역시 평범한 곳이라면 우리가 눈치를 챌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푸슈슉-
리암의 손에 들려 있던 연막탄과 함께 근처에 연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미친 것은 아니지. 엄밀히 말하자면 난 정상이라네.”
-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시간을 여기로 고정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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