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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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탱
작품등록일 :
2024.03.28 15:35
최근연재일 :
2024.05.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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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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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삼겹살, 그리고 삶

DUMMY

"그게 인생이죠. 평범한 하루, 퇴근, 삼겹살과 소주. 크."


희민 선배는 소주 몇 잔이 들어가더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무현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84년 생입니다."

"제가 80년 생이니 편하게 형이라고 하시죠. 무속인이라고 뭐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러죠. 하하. 술을 아예 못드시는 겁니까?"

"그럴리가요. 저도 어르신 모시기 전엔 말 술이였죠. 이 길로 들어선 후에는 마시지 않았고요."


그러고 보니 무현 형님을 만났을 때는 처음부터 무속인이었기 때문에 딱히 다른 직업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 형님은 원래 어떤 일을 하셨어요?"

"저 태권도 사범이었습니다."

"예?"


나는 천천히 다시 무현 형님의 얼굴을 봤다. 운동이라고는 먼 도사같은 생김새인데. 태권도보다는 취권이 더 어울릴법 한...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는 거구나.


"신병이라고 하나? 형님도 그거 걸렸었어요?"

"말도 마. 안하려고 노력 많이 했었지. 근데 운명이라는데 뭐 어쩌겠나. 그래도 지금은 돈도 잘 벌게 되고 몸도 좋아졌어."


그때 희민 선배가 몸을 틀어 무현 형님 앞에 바짝 다가갔다.


"저는 뭐가 안보입니까?"

"음. 딱히 뭐. 이 일 오래 하시겠어요."

"아. 그거 말고는 없나봐요."

"공짜로 알려드리는 건 거기까지 가능합니다. 하하하."

"에이 나중에 꼭 정식으로 가서 볼께요."


여기 있는 사람 모두 희민 선배의 시무룩해진 표정을 보고 웃었다.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며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희는 이제 마지막 잔 하고 가렵니다."

"벌써요?"

"여기 오래 있는다고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가야죠. 형사님께 더 이상 폐 끼칠 수도 없고. 우리 딸아이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갈랍니다."

"제가 뭐 전해드릴 말이라도."

"아휴. 아닙니다. 그냥 제 눈에 담아가는게 더 좋습니다."

"저도유. 가서 우리 아내랑 애들 한 번 보고 가야겠어유. 신세 많았어유."


두 기사님들은 잔을 들었다.


"우리 몫까지 열심히 살다 오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모두 잔을 들었다. 건배라는 소리가 끝나자 한 잔을 입에 탁 털어놓은 후 기사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 사이 정이 든건지 마음 한 구석이 저렸다.

잘가라는 인사도, 좋은 곳으로 가라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잠시 말없이 그들이 가는 모습을 현관 앞에서 바라보던 우리는 이내 자리로 돌아왔다.


"근데 왜 저를 찾아오는 귀신들은 다 금방 가버리는 걸까요?"


무현 형님은 현관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일어났다.


"미련이 없으니까."


미련이 없으니까? 어떻게 삶에 대한 미련이 없을 수 있지?


"미련이 없으니까 훌훌 떠날 수 있는거지. 이승에 왜 미련이 없겠나. 이승에 대한 미련이 없다라기 보다는 뭔가 더 하겠다는 미련이 없는 거지. 아까 두 분 말씀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여기 있으면 자손들에게 혹시 해가 될까 싶기도 하고. 내가 부모라도 같은 마음일거야."

"지금까지 만났던 귀신들을 떠나보낼 때는 잘 몰랐는데. 오늘은 기분이 좀 그렇네요."


나는 씁씁한 마음을 담아 소주 한 잔을 더 입에 털어 넣었다. 그때 갑자기 왕 소리와 함께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앉아 있던 날 대신해 희민 선배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마자 백구가 아니 백두가 내게로 뛰어왔다.


"어 아저씨!"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다름 아닌 902호. 백두를 맡겼던 아저씨였다.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늦다니요. 아직 초저녁이나 다름 없는데. 들어오세요."

"손님들 계신 줄 모르고. 산책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7층에서 잠시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라고. 그때 백두 요놈이 얼마나 빨리 뛰어나가는지. 아마도 재혁이한테 인사하려고 그런가보네."

"들어오세요 아저씨. 식사는 하셨어요?"


아저씨는 백두와 식사를 마친 후 잠시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희민 선배와 무현 형님도 아저씨에게 앉으시라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


"아저씨 소주 한 잔 하고 가세요."

"아휴 참. 너무 민폐가 아닌가."

"저희도 일 끝나고 한 잔 하는 거예요."

"참 일은 잘 해결 됐고?"


나는 잘 해결됐고 범인도 잡았다고 말해주었다. 아저씨와 나, 그리고 두 형님과 함께 우리는 소소히 2차를 시작했다. 술이 들어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죽은 사람들이 떠나자 나를 찾아온 아저씨.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나.

이 경계에서 달라지는 거라고는 떠난다와 떠나지 않는다라는 것.

자꾸만 밀려오는 이상한 생각들에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것 같았다. 백두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내 품에 안겨 손등을 핥기 시작했다.


"백두 하루만에 자란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글쎄. 사료를 엄청 먹어. 아무래도 돈을 벌러 나가야겠어. 우리 백두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일 하시려고요?"


나와 아저씨의 대화가 궁금한지 무현 형님과 희민선배가 우리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나는 짧게 두 사람에게 나와 아저씨의 인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백두로 이어진 인연이구만."

"요놈이 저를 살고 싶게 만듭니다. 이상하죠. 말도 못하고 그저 내 옆에서 재롱만 부리는데요."

"사는게 뭐 별거 있습니까. 뭐라도 마음 붙이고 살면 되는거죠."


무현 형님은 꼭 모든 걸 해탈했다는 듯 얘기 했다.


"무현 형님은 할배 같아."

"뭐 임마?"

"그냥 그렇다고요."

"요놈이. 너는 뭐. 노총각 주제에."

"전 아직 일이 바빠 안간겁니다."


무현 형님을 놀리듯 나는 입을 오므리고 얘기했다. 형님은 갑자기 일어나 내 팔을 잡고 뒤 흔들었다. 백두는 혹시나 내게 해를 가하는 건 아닌가 싶어 짖어대기 시작했다.

희민 선배와 아저씨는 우리 둘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 사이에 나는 문득 이런 소소한 웃음이 살아 있는 사람의 특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우리는 새벽녘까지 웃고 떠들다 헤어졌다. 누구보다 찐득한 사이가 되어서.


##


- 안한다니까요.

- 안하긴 왜 안해. 언제까지 범죄자들 뒤만 따라다닐꺼야. 니 가정 꾸리면 마음에 안정감도 들고 좋잖아.

- 아휴. 내가 알아서 해요.

- 몰라. 모레 저녁 7시. 경찰서 앞 프리카페. 전화번호는 톡으로 보내 놓을테니까 가서 전화해. 그리고 그 분 엄마 지인의 딸이야. 망신 시키지마.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귀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데 선은 무슨 선이야 엄마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휴.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 똑똑이라는 말이 들렸다. 아마 오늘 순번의 귀신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들어오세요."


정장을 입은 남자는 천천히 현관을 지나쳐 들어왔다. 이제는 뭐 익숙한 일이었다.


"이리 앉으세요."


나는 남자를 소파로 안내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앞에 사건이 하나 지연되다 보니."

"아니요. 1년을 떠돌았는데요 그정도야."

"무슨 일로 절 찾으셨어요."

"여자친구 일로 찾아왔어요."


남자의 이름은 김경수. 나이는 서른. 유명한 회사에 소속된 펀드 매니저였다고 한다. 남자가 죽은 이유는 추락사.

그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경수는 여자친구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이제는 자신을 잊고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만나면 일부러 모진 말을 하거나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바람에 선이고 소개팅이고 파토가 나기 일쑤라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에 자신이 해줄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찾아왔다고 했다.


"그랬군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거나 아니면 저는 이제 괜찮으니 잊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일단 그 여자분을 만난 후에 어떻게 할지 다시 이야기 할까요?"

"그래도 괜찮고요."

"제가 내일 저녁엔 일이 있어서 모레 그 여자분을 만나볼게요."


나는 핸드폰 메모장을 열었다.

경수는 여자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직장과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음. 갑자기 찾아가면 좀 그렇겠는데. 제가 한 번 생각해 볼게요."

"네. 그럼 저는 모레 이곳으로 오면 될까요?"

"네 그러세요."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때, 왠지 경수 얼굴에서 차가운 표정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나는 경수를 배웅하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생각보다 오늘 상담은 길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지만 마지막에 본 경수의 표정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여자친구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사람치고는 표정이..에이 아닐거야."


기사님들이 가신 후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그렇게 느낀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아침부터 서는 분주했다. 출근하자 서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뭐야. 무슨일이야."

"선배님! 나오셨어요?"


서류를 들고 바삐 지나가던 아리가 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


"아리씨. 연락도 한 번 못했네. 잘 지냈어요? 아버님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심근경색이었는데 같이 일하시던 분들이 아버지가 자꾸 명치가 아프다고 하시니까 급히 병원으로 모셔갔었나봐요. 몇몇 분이 그런 경우가 있었어서. 다행히 지금은 퇴원하셨어요."

"고생하셨겠네. 아리씨도. 그런데 오늘 왜이래요 서가?"

"고생은요. 새벽에 클럽 앞에서 패싸움이 났나봐요. 병원으로 간 사람들 제외하고는 다 여기로 왔어요. 출근하자마자 서프라이즈 파티 치고는 스펙터클 하네요."

"흠. 그렇군. 아무튼 고생해요. 오늘 점심은 내가 사줄게요. 맛있는걸로."


나는 아리씨에게 웃으며 이야기 했다.


"나도."

"나도."


불쑥 끼어든 희민 선배와 김성훈. 희민 선배야 그렇다치고 김성훈은 왜 갑자기 끼어들어. 마음이 풀린건가?

그리고는 내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 조서를 꾸미기 바빴다. 아리도 서류를 들고는 "네"하고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야 강재혁. 여기 이 두 사람 네가 맡아."


희민 선배는 뒤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서로 상대방을 보고 눈을 흘기고 있었다.


"이리 오세요 두분."


두 남자의 시선은 서로에게 고정된 채 내게 다가왔다. 내 앞에 두 사람은 앉자마자 서로 삿대질을 해댔다.


"니가 먼저 날 때렸잖아."

"니가 먼저 병 던졌잖아!"

"두 분다 조용히 하시고 묻는 말에 대답 하세요."


두 사람은 내 말에 조용해졌지만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여기저기 들리는 고성에 욕설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점심 때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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