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첫 의뢰
[그 세계 컨설턴트]-2화 : 첫 의뢰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기계장치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작중 인물들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별안간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모든 갈등을 전지전능한 힘으로 해결할 때 쓰였습니다. 당시, 신 역할을 하는 배우는 아주 잘생기고 몸매가 좋은 사람을 골라, 하늘에서부터 도르래 같은 장비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냈기 때문에 기계장치의 신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되었죠. 이 기법을 잘 쓰면 효과적이고, 그 자체를 탐구해도 좋지만, 자주 쓰면 작가편의주의나 재미없는 전개로...거기, 나오군?”
익숙한 강의실. 익숙한 교수님과 학생들. 그리고 들었던 기억이 있는 수업. 아무 생각 없이 듣는 모습이 교수님께 들켜버린 걸까?
“많이 피곤한 것 같지만, 지금 여기서 잠들면 안 되는데?”
스구루는 깜짝 놀란 상태로 교수님에게 대답했다.
“네? 자다니요, 이렇게 잘 깨어있는데요?”
“뭔 잠꼬대를 그리 하나?”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학생들이 소리죽여 키득키득 거린다.
“무슨 얘긴지 도통...”
그러자 교수님의 모습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은 점점 희미해지고, 주변 학생들의 키득거림은 이윽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로 치환되기 시작한다.
“눈 좀 떠봐! 여기서 잘못 자면 입 돌아가!”
강의실에서 탈출하고 눈 앞에 정말 면도 좀 하라고 잔소리하고 싶은 얼굴이 큼지막하게 보였다.
“어, 뭐야, 왜 아직도 여기야?”
스구루는 아직 잠에서 덜 깼거나, 꿈속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서늘한 바람이 가져다 주는 촉감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수차례 증명해주고 있었다.
“글쎄, 꿈이 아니라니까? 여기는 물리법칙이 적용되는...뭐, 다른 것도 적용 되지만, 여튼 진짜 세상이고, 넌 이 세상으로 이동해 온 거야.”
분명 다시 잠들기 전에 자칭 ‘신’이라고 본인 스스로를 소개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스구루는 눈을 비비고, 좀 더 정신을 차렸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당연하지! 신인 이 몸께서 직접 너를 소환했으니까.”
“하아...그러면 다시 보내주면 안 될까...요?”
갑자기 자칭 신은 빙긋 미소지었다.
“크으, 역시 그런 말을 할 줄 알고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준비했지!”
“저기...집에 TV도 꺼야 되고, 내일 출근도 해야 되고, 공과금도 내러가야 한단 말이야...네가 대신 내 줄거야...요?”
왠지 동갑내기처럼 보이지만 반말을 하고 싶어도 억지로 존댓말을 붙이게 되었다. 반말로 응수하면 버릇없다고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 같기에. 그런데 뭔가 신뢰가 안 가서 존댓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나오 스구루였다.
“괜찮아, 반말로 해도. 그 편이 외관상 더 편할거고. 만약, 네가 이 신의 제안을 들어준다면, 앞으로 할 일이 많으니까.”
“할...일?”
“일단 너를 좀 설득해 볼까?”
신의 손 앞에 하얗고 네모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홀로그램 뒷면에는 한 입 베어먹은 토마토가 마크처럼 그려져 있었다.
“어디보자, 나오 스구루. K.S.C컨설턴트 소속, 도쿄도 어딘가 거주. 좋아하는 것은 각종 게임...그리고...”
눈 앞에서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이곳은 네가 좋아하는 게임의 설정들을 따와서 현실의 물리법칙을 좀 많이 적용시켜 창조된 세계지!!”
스구루의 미간이 꿈틀댔다. 게임...세상에 들어온 거라고? 그토록 꿈꿔왔던 세상에?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믿으라는거야?”
신은 빙긋 웃더니, 손가락에서 작은 불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슬쩍 스구루에서 날렸고, 그 불은 스구루의 손등에 제대로 적중했다.
“아아아앗!!! 뜨거, 뜨거!”
얼른 땅에 손등을 비벼 불을 껐지만, 명확히 손등에 화상자국이 남았다.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신을 쏘아보았다.
“너, 이 자식!”
그 때, 신의 손에서 이번엔 영롱한 빛이 나오더니, 손등의 화상자국을 말끔히 없애 버리고, 몇 초 전의 깨끗한 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뭐야...이렇게 고통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는데 깨지 않는다고...?”
“그럼. 너는 죽은 것도 아니고,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니까. 단지, 내가 너를 불러온 것 뿐이야. 그리고 얘기할려다가 계속 못 해줬는데, 네가 이 세상에 와 있는 동안에는 너의 세상의 시간은 단 0.00001초도 흐르지 않아. 여기서 한 달을 지내든 10년을 지내든 100년을 지내고 돌아가도! 너의 세계에서는 눈 한 번 깜빡거리지도 않았는데 돌아가게 되는 거지. 즉, 내일 출근할 걱정도, 집세와 공과금이 밀릴 걱정은 일절 하지 않아도 돼.”
눈 앞에서 불 마법과 치유 마법을 경험하고도 계속 이곳에 있다는 점에서 이제 슬슬 스구루도 인정을 하고 빨리 새로운 생각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 그 점은 알겠어. 그럼 나에게 돌아오는 메리트는 뭐지?”
“무엇보다도 우리 스구루’쿤(君)’이 어렸을 적부터 동경해 온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마법과 모험, 처음보는 크리쳐들과 동료들과의 유대!!! 그리고...이 신께서 직접 하사하는 특전까지...!”
“특...전?”
“네가 하나하나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내가 바라던 컨설팅을 완수해 준다면 어떤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특전을 줄 거야. 다만, 어떤 특전일지는 알려줄 수가 없는 점은 미안~”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물론, 특전의 종류가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게임(또는 놀이)의 4요소 중 하나인 알레아(Alea)요소는 그가 반기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 내가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음...일단은 이것 하나만큼은 너를 설득하기 위해 정보를 풀어야겠네. 당연하지만, 네가 당장 돌아가고 싶다면 바로 돌려보내 줄 수 있어. 아무리 신이라도 ‘생명의 자유의지’는 건드리면 안 되거든. 단, 지금 돌아가면 너는 마법처럼 나랑 만나고 이야기 나눴던 모든 기억이 삭제될 거야. 단순히 이틀전에 나온 신작 게임을 플레이하고, 다시는 나와 이 세계 및 앞으로 볼 수도 있는 그 어떤 세계도 탐험할 기회를 잃게 되지. 그리고 컨설팅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언제든 그만두고 너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역시나 조건은 똑같이 그간의 모든 기억은 데자뷰로도 나타나지 않을거야.”
이 부분에서 스구루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계속 이어지는 설명을 들었다.
“그렇지만 네가 도중에 관두지 않고, 끝까지 모든 과업을 완수한다면, 이 모든 경험과 기억을 유지한 채로, 매우 건강한 신체로, 내 권능으로 우울증 같은 것 하나 없이! 네가 원할 때 돌아갈 수 있게 돼.”
“그러면 그 때는 내가 원할 때 다시 이 세계로도 올 수 있나?”
신은 뭘 생각하듯 턱을 괴고 답을 해주었다.
“어...너의 세계에서 몇 년? 한 십년? 지난 다음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서 어떤 여고생이 우물을 포탈처럼 이용하는 작품이 나오긴 할텐데...글쎄, 이 정보에 대해서는 이후의 특전 중 하나로 해 두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너 스스로 관측해 봐!”
생긴 건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저런 것도 알다니, 진짜 신 맞나? 단순한 장난기 넘치는 마법사가 아니라...”
“흠...그럼 이것 하나만 물어보지. 어떤 식으로 컨설팅을 해 달라는 거지?”
“그거는 이 세계에서 너를 필요로 하는 의뢰인들이 있어.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게 내가 안내를 해 줄 수 있지만, 그 이후는 전부 너와 의뢰인의 진행상황에 달려있고, 나는 그 어떤 간섭도 안 할 거야. 가끔 너 한테 나타나서 수다는 좀 떨겠지만~!”
아주 해맑게 미소 짓는 모습에 꿀밤이 마렵긴 하지만...
“좋아, 까짓 거, 해 보지. 어짜피 이대로 돌아가면 스트레스만 잔뜩 쌓일테니, 이 참에 기분 전환이나 해 보자.”
“딜!”
그렇게 신과 나오 스구루는 악수를 했다.
***
“아, 저긴가? 굉장히 오래 걸었네...”
참고로 나오 스구루는 이름부터 알듯이 일본인이고, 일본 및 동양 문화권에 속한 여러 나라들의 기본 적인 집안 예법 중 하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이 세계로 불려왔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양복과 양복 상의, 다행이 속옷도 그대로 딸려 왔고, 양말도 신은 채로 맥주를 까고 게임을 플레이 하고 있던지라...신발이 없었다! 그 꼴을 본 신이,
“이야~ 이건 정말 내가 미안하네...그래! 첫 특전으로 이걸 선물해 줄 게!”
하면서 검은색에 흰색 줄이 세로로 세 가닥 그려진 쓰레빠...를 선물로 받았다. 스구루가 화를 내자, 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빳빳한 지도 한 장 만이 팔락 거리며 내려앉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굉장히 상세하게 그려진 지도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거의 도착했지만...
‘의외로 이 슬리퍼...되게 편안하네. 흙 길을 걸어도 양말이 더러워지지도 않고, 내가 벗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벗어지지 않는 마법의 슬리퍼...라고 해야하나?’
사양도 현실세계의 싸구려 슬리퍼였으면 신을 저주하고도 남을 스구루였다. 여튼, 지도에 표시된 곳이 곧 근처인데...엄청나게 큰 중근세식 유럽에서 볼법한 성이 보였다. 그 때, 신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은 채,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좋았어, 스구루쿤! 첫 번째 퀘스트, 의뢰인의 장소까지 도착해라, 완료! 하이~ 짝짝짝~(주 : 입으로 내는 소리였다) 그런 고로 새 특전을 주지! 바로바로, 의뢰인의 종족과 ‘언어가 통하는’ 특전입니다!’
오, 이건 생각치도 못한 고마운 특전이다. 생각해보면, 판타지 RPG 게임에서 용사건, 용사의 이웃 나라 사람이건, 마족이건, 대마왕이건 모두 같은 언어로 말이 통하고, 그것을 본인은 영어 또는 일본어로 본다. 스구루도 게임의 편의성 및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구열이 미쳐 돌아가는 언어학자나 웬만한 게임 오타쿠가 아닌 이상 매출부진에 폭삭 망할 것이 분명함을 알기에 그런 부분은 인정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진짜 그 세계에 숨을 쉬며 살게 되었을 때’는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조금 빨리 걸으며 성 앞 마을까지 도착했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져서 분간이 안 가는 상태였는데...
“흡!”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스구루에게 복면을 씌우고, 이상한 향을 쐬게 했다. 급속도로 눈이 감겼다. 하지만 이번에 꿈을 꾸지는 않았다. 수면마취 마냥 정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복면이 벗겨졌다. 눈 앞에는...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행색이 평범한 존재가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 작가의말
1화 떄 많은 분들이 봐 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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