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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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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6:05
최근연재일 :
2024.05.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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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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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금융실명제

DUMMY

40화



1993년 8월 12일 목요일 저녁 7시 정각.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 76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합니다.”


깜짝쇼를 좋아하는 YS가 돌연 금융실명제를 발표.

대한민국을 일시에 충격에 빠뜨렸다.


성 대리도 대통령 특별담화를 봤다.

술집에서.

그도 증권쟁인데 이런 걸 놓치면 안 되지.


“시발, 좆됐다!”


당연히, 저절로, 반사적으로 나온 말.


고객계좌는 물론이고 모찌에도 주식을 꽉꽉 실어놨는데.

내일부터 이어질 폭격에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금융실명제 같은 초대형 악재 앞에서는 어떤 우량주도 소용없다.


거기에 더해서 투자대회까지.

3팀장으로서 폼 좀 잡으려는 마음에.

기존 차 차장의 포지션을 싹 날린 것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주문 안 하고 하루 더 기다렸어야 했다.


그랬으면 진짜 대박인데.

생각할수록 속상하다.

아까 회사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이거 내가 증권 bbs 여러 곳을 다 뒤져서 뽑아낸 진짜 기똥찬 종목들이거든. 이걸로 가면 우리 지점이 10위 안에 드는 건 문제없을 거야.”


장 끝나자마자 성 대리가 5개의 종목이 적힌 A4 용지를 내밀었다.


“와~ 이거 혹시 작전 걸린 것들 아니에요? 그럼 죽이는데.”


배 주임이 바로 혹하며 용지를 받아들었다.


“당연히 이 중에 작전주도 있겠지. bbs 애들이 세력들하고 연계되어 있을 건 뻔하잖아. 어차피 이 바닥이 다 짜고 치는 고스톱 판 아니냐.”


성 대리가 어마어마한 고수처럼 말했다.

내가 흘깃 보니 전부 그렇고 그런 종목들이었다.

즉 아주 소형주는 아니지만.

바람만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벼운 종목들이란 얘기.

재료 하나만 나와도 들썩일 게 뻔한 것들.

하긴 이런 걸 추천해야 개인투자자들이 와~ 하면서 달려드니까.


작전주든 우량주든 오늘 실명제 발표 뜨면 다 작살 나거든요.

최선은 당연히 무포로 가는 건데.

저렇게 엄청난 종목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이를 어쩌냐.


“배 주임, 이거 가지고 있다가 퇴근하기 전에 팩스 넣어.”


“넵, 알겠습니다. 근데 지금 퇴근하시려고요?”


“퇴근은 무슨, 손님 만나러 나가는 거지.”


“아,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성 대리는 고객 만남을 빙자한 조기 퇴근을 한 후.

친구랑 술 마시다가 대통령 담화를 시청한 거다.


팩스가 고장이라도 나서 주문이 안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바람도 가져보지만 쓸데없다는 거 안다.


“나만 망하냐! 다 같이 망하는 건데 머.”


이게 유일한 위안거리라고 할까.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술도 몇 잔 안 마셨는데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성 대리가 조기 퇴근했다.


나는 그가 어디로 샜는지 대충 짐작하지.


고객은 개뿔이고.

술 마시러 가는 거 아니면.

또 포커 치러 가는 게 뻔하다.

내가 어디 성 대리 하루 이틀 보나.


그나저나 저걸 어떡해 해야 하지.

모른 척 하긴 마음에 걸리고.

나서기도 좀 그렇고.

일단 내가 가지고 있다가 어쩔지 고민하도록 하자.


“배 주임, 그거 내가 좀 보고 이따가 투분실 팩스도 내가 보낼게.”


“강 주임님이요? 그럼 그러세요.”


A4 용지를 일단 회수했다.

투자분석실에 6시까지 보내야만 당일 종가로 매매 처리가 된다.

생각 좀 해보자.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한국 증권역사에 혈풍이 휘몰아칠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워낙 특별한 날이므로.

전장 없이 후장만 오후 2시 10분부터 4시 10까지 열기로 하였다.


“이건 백약이 무효겠지? 뭘 들고 있어도 안 되는 거 맞지? 다들 무슨 말 좀 해봐!”


지점장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아침 회의.

계속 침통하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침통할 거 같다.


“제가 한 말씀···.”


할 수 없이 선임인 박 차장이 입을 열었다.


“음성자금의 양성화를 위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지만 너무 서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자금은 일시에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지하로 숨어들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주식시장은 대폭락할 거고 우리나라 경제는 치명타를 입는 거죠. 국민의 인기를 얻으려는 YS가 대실수를 저지른 겁니다.”


주식을 잔뜩 들고 있으니 열불이 나는 거다.


“무조건 다 털고 나와야 한다는 거지?”


지점장의 물음에 차 차장도 게거품을 물었다.


“당연하죠. 이건 원자폭탄 정도가 아니라 완전 수소폭탄이라니까요. 경제가 망하는데 주식시장이라고 살 수 있겠습니까? 팔 수만 있으면 무조건 다 팔고 나와야 합니다.”


이건 두 차장의 의견일 뿐만 아니라 신림지점, 나아가 대한민국 증권사 지점 전체 분위기를 대변한 말이었다.

그만큼 무리수라 생각했던 거다.


“내가 계좌들 상황을 다 살펴보니까 강 주임만 빼고 주식 잔뜩 들고 있던데···. 이거 큰일이네 큰일이야. 그런데 강 주임은 어떻게 어제 다 팔 생각을 했나? 그것도 메사낀가? 거참 신통하네.”


지점장의 말에 다들 날 쳐다보네.

어허, 뭘 그렇게들 보나, 부담스럽게스리.


“그게··· 운이 진짜 좋았습니다. 약정도 돌릴 겸해서 팔았는데 이런 게 터질 줄이야···.”


무지 겸손하게.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

당신들이 좆된 것에 대해 나도 깊이 애도한다.

뭐 이런 뉘앙스로.


“우리 지점 약정을 책임지는 강 주임이라도 살아 남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지.”


거봐, 바로 이렇게 되잖아.


“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무조건 던지는 거로 하자고.”


회의 결론은 일단 소나기를 피하자는 쪽으로 났다.

여기서 내가 나서서.

이틀 빠지고 나면 다시 오른다는데요.

할 수는 없잖아.

내가 무슨 돗자리 깐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데일리에 보니까 우리 지점이 보유주식이 하나도 없는 거로 나오던데 이거 맞는 거야? 성 대리 어떻게 된 거지? 어제 매수주문 안 냈나 봐?”


“아 예, 그게···.”


당황하는 성 대리.

고객들과 금융실명제 여파에 대해 통화하느라 출근해서 투자대회는 확인도 못했다.


“저희 팀은 오늘 하루 더 상황을 살핀 후 매수하기로 계획을 세웠었거든요. 그래서 포지션이 없습니다.”


내가 대신 설명했다.

설명이 아니라 구라를 깐 거지만.


성 대리와 배 주임이 흠칫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도 병신이 아닌 이상 입을 열 리가 없지.


“그나마 다행이군. 다른 지점들은 다 들고 있는데 우리만 무포니까 순위가 꽤 올라가겠는데. 어쨌든 다행이야. 운이 따랐네. 성 대리, 잘했어.”


“예··· 감사합니다.”


더 할 얘기가 없었으므로 다들 한숨만 쉬다가 회의가 끝났다.


“이봐, 배 주임. 어떻게 된 거야? 왜 주문 안 넣었어?”


“아니, 그게··· 강 주임님이···.”


“제가 좀 보고 팩스 넣으려고 했는데 그만 깜빡했습니다. 으레 배 주임이 넣는다 생각해서 그런 거 같네요. 결과적으로는 잘 됐잖아요? 그쵸?”


“그···그건 그런데. 아이 씨, 모르겠다. 지금 그게 문제야.”


성 대리는 지점장한테 칭찬까지 받았으니 더 뭐라고 할 이유가 없다.

잘 되면 자기가 잘 한 거로 될 텐데 머.

이걸로 지점 순위는 좀 올라갈 거 같다.


오후 2시 10분.

드디어 공포의 장이 시작되었다.


“끝내준다. 끝내줘!”

“허허허, 너무 기가 막혀 웃음밖에 안 나오네.”

“시발, 오늘 같은 날 꼭 장을 열어야겠어! 며칠 휴장하면 안 되냐고!”


객장 손님들의 저 허탈한 심정들.


종합주가지수 –32.37포인트(-4.46%)로 역대 최대 하락폭.

920개 종목 중 918개 종목이 마이너스.

그 918개 종목 중 하한가가 917개였다.


다음 날도 전체 종목의 2/3 이상이 하한가 기록.

그렇게 레드칩이 알려준 대로 이틀 동안 8.1%가 빠졌다.


자~ 이제 정보를 이용할 타이밍이 되었다.


“사모님, 저 강 주임입니다.”


단타 좋아하시는 우리 박영숙 고객님.


“어머~ 강 주임님, 오늘도 엄청 빠졌죠? 그날 귀신 같이 안 팔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아유~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런데 역시 강 주임님이에요. 딱 발표하기 하루 전에 팔았으니 말이에요. 오호호홍”


“그래서 말씀인데요. 어제오늘 겁나게 빠졌잖아요. 만약 내일 아침에 빠져서 시작한다면? 어때요? 사모님.”


내 말이라면 팥으로 청국장을 끓인다 해도 믿을 박 여사님.

여기까지만 말해도 알아들으시지 않을까.


“사흘째 폭락이니까 반등이 나온다는 거잖아요? 어머 어쩜, 이 아사리 판에서 그런 생각을 다 하셨을까? 저는 완전 찬성이에요. 강 주임님 생각이 곧 제 생각인데요 머.”


역시 딱딱 알아들으시잖아.


“이번엔 미수 한번 찍을까요?”


“헉, 2.5로요? 아유~ 진짜 강 주임님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 돼! 100퍼 찬성이에요. 알아서 해주세요.”


“네, 그럼 매수하고 연락드릴게요.”


종목도 말 안 했는데 그냥 오케이다.


‘어렵게 머리 굴릴 필요가 없지.’


대서양화학의 목표가를 알고 있으니까.

그거 찍으면 무조건 먹는다.


이지혜 씨와 박병구는 일임 계좌니까 굳이 말할 거 없고.

한소희 고객님이 문제다.

매매 스타일이 FM이라 2.5배 초단타가 어렵다.

일일이 가격 상의해서 주문하면 타이밍을 놓칠 수가 있으니까.

다른 계좌 매매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냥 이번 초단타 매매에서는 빼는 게 좋겠다.’


금융실명제 핵폭탄을 피한 것만 해도 어디냐.

지금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있을 거다.

조금 더 진정하시게 놔두고.


모찌를 비롯한 나머지 병력은 내일 시초가를 노린다!


열심히 주문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강 주임, 오늘 약속 없지?”


고개를 들어보니 멀쑥한 키의 박 차장님이 내려다보고 있다.

근데 왜 ‘약속 있어?’가 아니라 ‘약속 없지?’일까.

내가 평소에 너무 회사에만 충성했나 보다.

앞으로는 다른 약속도 팍팍 좀 만들어야겠다.


“당연히 없죠. 있는 건 시간밖에 없습니다. 한잔?”


손으로 소주잔 꺾는 시늉을 하자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

다른 짬뽕 멤버들은 다 선약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단 둘이 돼지갈빗집으로 고고씽.


‘저번엔 나이키냐 리복이냐로 고민했었는데.’


그 후 나이키 대리점을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의 어드바이스를 받아들인 셈.

잘 될 거임.


‘혹시 오늘도 이 몸과 상의할 일이 또 있나?’


한참 후배한테 무슨 상의씩이나.

금융실명제에 따른 폭락 때문이겠지.


캬~


첫 잔은 원샷.

짬뽕 멤버들의 룰이라네.

안 그래도 왕년에 그렇게 마셨거든.


한참을 YS 욕을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한 다음.


“사모님이 하시는 나이키 점은 잘 되고 있어요?”


“응, 다행히도.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을 거 같아.”


차장님이 주식으로 뻘짓만 안 하면 그걸로도 충분히 먹고살 겁니다.


“근데 가게가 생각보다 잘 되니까 문제가 생겼어. 그래서 또 머리가 아파.”


인상을 쓰면서 한 잔 쭉~.


응? 잘 돼서 문제가 생겨?

호기심을 자극하는 멘튼데.


“우리 마누라 욕심이 대평이를 연예인으로 만드는 거였거든. 그런데 연기 학원이 얼마나 비싸?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나이키로 돈 좀 버니까 다시 그 병이 도진 거야. 아니 인물 좀 잘 생겼다고 다 탤런트하고 영화배우 하나? 참, 주제를 몰라. 주제를.”


다시 한 잔 쭉~.


“대평이가 아드님 이름인가 보죠?”


“응, 우리 아들 박대평. 날 닮아 키 크고 제법 인물이 번듯해. 크크, 내가 내 자랑하고 있네. 쪽팔리게.”


아하~ 저번에 아들 어쩌고 하다가 그만둔 게 유학 얘기가 아니라 연기 학원 얘기였구나.

연예인, 좋지.

미래에는 가장 되고 싶은 직업 1순위가 연예인이니까.

근데 이름이 박대평이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니지 회귀 전이니까 좋아했던 연예인하고 이름이 똑같구나.


“지금 몇 살인데요?”


“11살이야.”


음, 11세라. 올해가 93년이니까 2024년이 되면··· 42세. 어, 나이도 같네.

에이, 그래도 설마.


그러고 보니 박 차장님과 엄청 닮았는데.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특히 한잔 꺾고 허공을 바라볼 때 보이는.

저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


“혹시 사진 가지고 다니세요? 가족사진 같은 거.”


“사진?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사진은 있지. 볼래?”


끄덕끄덕.


“자, 봐봐. 날 많이 닮았지?”


오오오~~ 이럴 수가!


사진 속의 소년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식」으로 유명해지고.

해병대도 나오고.

미녀 탤런트와 결혼도 한.


내 우상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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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화 각축전 +17 24.05.18 9,465 326 12쪽
42 42화 헬 매니저 +20 24.05.17 9,374 319 12쪽
41 41화 청산가치 +24 24.05.16 9,997 327 13쪽
» 40화 금융실명제 +23 24.05.15 9,814 341 13쪽
39 39화 레드칩 +28 24.05.14 9,832 323 12쪽
38 38화 2팀 +10 24.05.13 9,986 283 12쪽
37 37화 가게 확장 +14 24.05.12 10,346 307 12쪽
36 36화 2단 콤보 +13 24.05.11 10,439 307 12쪽
35 35화 명동지점 조 차장 +13 24.05.10 10,564 299 13쪽
34 34화 작전주 +11 24.05.09 10,766 278 11쪽
33 33화 투자대회 +11 24.05.08 10,832 279 12쪽
32 32화 나이키 +13 24.05.07 10,918 285 12쪽
31 31화 태진피혁 +10 24.05.06 11,122 29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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