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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쏜
작품등록일 :
2024.04.08 17:01
최근연재일 :
2025.05.1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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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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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숲속의 아이들

DUMMY

124화 숲속의 아이들






사각사각



어딘지 모를 한적하고 조용한 숲. 깊은 숲속은 추운 겨울을 알리는 듯 회색과 갈색으로 어우러져 서늘한 기운을 물씬 뿜어내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이곳, 말라가는 낙엽이 바람에 휩쓸려, 힘없이 날아가는 소리만이 고요를 깨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낙엽이 멈춰 선 자리에는 초록빛을 잃지 않은 나무들이 촘촘히 우거져 있었다. 한낮의 햇살은 마치 그 숲 한가운데만 비추려는 듯, 겨울바람을 뚫고 내려와 따스함을 전해주고, 나무들은 그 햇살에 답하듯 화사한 초록 잎과 작은 산꽃들을 가만히 흔들고 있다.


그 기이한 숲의 중심부, 사람의 발자취가 닿을 리 없는 곳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아래 들어서 있는 것은 작은 공방. 그 뿌리가 벽이 되고, 줄기가 기둥이 되어 마치 처음부터 그 형태로 자라난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자르거나 다듬은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나무 안쪽에는, 새하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바삐 움직이며 저마다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바깥은 추운 겨울임에도 아이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고, 이곳만은 따스한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공방 안을 환하게 비추는 풍경이 묘하지만, 따뜻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쪽, 이쪽!”


“여기도, 여기도!”



어른의 허리 근처에도 닿지 못할 것 같은 작은 키, 어른의 손바닥을 간신히 채울 것 같은 작디작은 손, 커다란 눈망울과 작지만, 오똑한 코, 그 아래 쉬지 않고 재잘대는 입술. 뾰족하지만 작은 귀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요정들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가위, 바늘, 자와 같은 갖가지 재봉 도구들. 아이들이 만지기엔 자칫 위험한 물건일지도 모르지만, 기이하게도 아이들이 쥐고 있는 재봉 도구들은 그래보이지 않았다. 나무로 만들어져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작은 도구들. 그런 도구들과 함께 아이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은은한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는 아름다운 천이었다.


아이들의 몸에 꼭 맞춘 듯한 작은 베틀에서 뽑혀 나오는 이 곱디고운 초록빛 천. 깊은 숲속 공방에서 탄생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눈에 봐도 부드럽고 포근해 보였다. 마치 바깥세상의 광활한 평야와 대지를 고스란히 머금은 듯 은은하게 자연의 숨결이 묻어나오고, 천을 만드는 아이들의 설렘이 들어간 듯 그 결마다 미묘한 생기가 배어들고 있었다.



“아냐···. 아니야···! 잠깐만···.”



천을 다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수예 공방의 장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그 누구보다도 실력이 좋은 장인들일 것이다. 아이들의 바느질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정교하고,



“아, 여기···. 이쪽?”


“응. 맞아! 거기···. 그렇지!”



조용하지만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며 서로의 일을 돕는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떤 곳보다도 평화로웠다.



“으아···! 오랜만이라서 힘드네!”


“히히. 그래도 재밌다!”


“흐흐! 맞아!”



마치 인형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작은 아이들. 오랜만에 일을 시작하게 된 것에 조금 걱정이 앞서던 아이들. 하지만 오랫동안 즐겁게 해왔던 일은 여전히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고, 순조롭게만 이어지는 작업에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고 있다. 아이들에겐 그저 즐겁고 행복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이 초록색의 천이 미스릴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전설로만 여겨지는 이 장소를 찾겠다며 여행을 나서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은 어딘가로 모습을 감춰버린 드워프라 불렸던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고, 또 그들이 엘프들에게만 제공한다는 초록색의 천. 갖가지 마법은 물론이요, 온갖 마물들의 이빨과 그 이빨을 닮은 더러운 칼날을 막아낸다는 초록색의 천.


만약 바깥세상의 누군가가 그들을 발견하고 그 천을 본다면, 필시 탐욕에 눈이 멀어, 이 어린아이들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도 그것을 내놓으라며 달려들 것이 분명하다.


탐욕에 삼켜진 자들은 분명, 이곳에 있었구나, 라며 소리를 치고 환호할 것이고, 이 작디작은 아이들을 향해 부모는 어디 있냐며, 이곳을 관리하는 것이 누구냐며 소리 쳐댈 것이 분명하다.



“어···?”



쩌저적. 굳게 닫혀 있던 나무 정령의 뿌리가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소리가 숲 안을 울렸다. 마을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그것이 열리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아이들은 웃으며 천을 자아내던 손길을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무, 무서운 사람들일까?”


“아니야! 나무 정령님이 들여보내 준 거잖아!”


“맞아, 맞아! 손님일지도 몰라!”



손님이라니! 아이들의 가슴이 한순간 설렘으로 물들었다. 저토록 웅장한 뿌리가 움직여 누군가를 들여보내다니, 그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혹시 모를 긴장감에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뿌리 너머를 살피면서도, 아이들은 기대에 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오래된 문이 열리듯 스르륵 드러나는 숲길 너머, 과연 어떤 모습의 사람이 나타날까. 미세한 바람이 불어와 저 멀리 낙엽이 흔들리자, 그 소리마저 아이들의 두근거리는 심장을 더욱 고동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곧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키니,



“엘레나 언니다!”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너나 할 거 없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이름을 듣자마자 우르르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 분명 그녀를 알고, 그녀를 환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



하지만 어째선지 엘프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신에게 길을 열어준 나무뿌리를 무서운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조용히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겨우 이 정도 거리를 지나기 위해 이 앞에서 몇 날 며칠을, 소중한 시간이 이 앞에서 낭비됐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러나 생글생글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들 앞에 표정을 풀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며 밝게 웃는 아이들 앞에서 이런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강녕하셨습니까.”



장난스럽게 달려온 천진난만한 아이들과는 달리, 엘레나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한쪽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이곤, 아이들의 눈높이에 눈을 맞춰주고 있었다.



“조용한 숲의 엘프, 엘레나가 그대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엘프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종족에게 무관심하여, 오만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어째선지 이 아이들에게만은 온 충정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헤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게 엘레나 누나였구나!”


“언니, 언니! 진짜 오랜만이다!”


“밥 먹었어?! 밥?!”


“뭐 하러 온 거야?! 놀러 온 거야?! 놀러 온 거지?!”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야! 누나 멀리서 왔으니까 당연히 힘들지!”



천천히 고개를 든 엘레나는 아이들의 귀여운 질문 세례에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설명조차 없이 방문을 허락하지 않던 ‘그녀’에게 잔뜩 화가 났던 엘프였지만,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자니 그런 감정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아닙니다. 그대들이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다행일 뿐입니다.”


“헤헤!”


“언니! 서 있지 말고, 이리로 와서 앉아!”



엘프는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공방을 향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그녀를 환영한다는 듯 재빨리 의자를 가져와 그녀를 앉히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면서, 그녀 앞에 빙 둘러앉아 귀를 쫑긋거렸다.


엘프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득 공방에 이리저리 놓여있는 재봉 도구들과 한켠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초록색 천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의 천을 만들고 계셨습니까?”



그녀가 조심스레 질문하자 아이들은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며 놓여있던 재봉 도구들을 들어 보였다.



“오! 맞아!”


“맞아! 맞아! 누나도 옷 만들어 줄까?”


“오랜만이라서 재밌어! 그치? 그치?”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재잘거렸다. 마치 자신들의 일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저것 봐! 한참을 쉬고 있었는데도 잘 만들어졌어!”


“여러분들이···. 만들기로 한 겁니까?”


“아니? 큰누나가 만들어달래!”


“예? 여왕님께서···. 이야기하신 겁니까?”


“그럼! 하하! 당연하지! 우리끼리는 만들 수 없는걸?”



순간 엘프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진난만하게 자랑하며 웃는 아이들과는 달리, 초록빛의 천을 바라보며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어···. 왜 그래?”



엘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아이들은 깜짝 놀라 엘프의 손을 잡았다. 혹여 자신들이 무언가 잘못한 건 아닐까, 아니면 엘프가 무언가 걱정거리가 있는 건 아닐까.



“괜찮아? 어디 아픈 거야?”


“우와···! 누나 손 차갑다!”



작은 손이지만, 그 손길에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따스한 위로에 엘프는 잠시 굳어 있던 마음을 풀고,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이 많아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엘프를 살폈다. 그런 시선에 당황한 엘프는 어떻게든 그들을 달래기 위해 애써보았다. 문득 엘프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자신이 메고 온 가방을 재빨리 내려놓았다.



“아, 여기···.”


“오오!”



그녀가 풀어헤친 가방 안에는 알록달록한 사탕이며 과자, 말린 과일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행복에 겨워 소리치고, 당장에라도 달려들듯 손을 조물딱거렸지만, 심성이 착한 것인지, 그렇게 교육을 받은 것인지, 아이들은 군침을 흘리며 엘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 엘프는 아이들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드셔도 괜찮습니다.”


“와! 만세!”



엘프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에 든 간식을 움켜쥐었다. 이윽고 달콤한 향이 공방 안을 가득 채우고, 순식간에 어두워지려던 분위기는 이곳을 내리쬐는 햇살처럼 환하게 바뀌었다.



“누나. 큰누나 보러왔어?”



한 아이가 말린 과일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만···.”


“역시 그랬구나! 음···.”



엘프의 대답에 아이들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무어라 나서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이야기해도 될까, 라며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역시 여왕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대답을 망설인다. 그러나 엘프는 무언가 좋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라는 듯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한 아이가 나서 입을 열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여···.”


“...”


“맞아···! 사실, 얼마 전에 엘리사 언니가 찾아왔었어.”



아이의 대답에 엘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예···?! 엘리사가요?”


“응... 엘리사 언니도 오랜만에 왔으니까, 우리하고는 재밌게 놀았었는데···. 엘리사 언니를 만난 뒤로 큰 언니의 표정이 밝지 않아서 말이야...”



엘레나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걱정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랬군요. 그럼···. 혹시 제가 여왕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꽤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엘리사가 찾아왔었다니. 자신의 길을 틀어막고 있던 나무 정령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어···. 괜찮을까?”


“음···.”


“모르겠어.”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잠시 망설이는 듯 보였다. 만약 이 엘프를 만나고 난 뒤, 큰누나, 큰언니의 기분이 더욱 나빠지면 어쩌나, 그런 걱정이 스치는 듯했다. 그러나 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먹던 과자를 꿀꺽 삼키더니, 콧김을 내뿜으며 벌떡 일어섰다.



“가보자!”


“...정말?”


“그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오히려, 엘레나 누나한테 부탁해 보자!”


“으음? 부탁이라니?”


“큰누나가 왜 화를 내는 건지도 물어보고, 음···. 또 큰누나 기분을 다시 풀어달라고 말하는 거지!”


“오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순식간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한없이 어려 보이기만 하는 그들이었지만, 그 눈빛에는 ‘큰누나’를 향한 깊은 신뢰와 엘프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엘프는 막상 그녀를 만나게 해준다는 말에 무언가를 걱정하는 듯 조심스러운 말투로 재차 확인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엘프의 손을 이끌며 공방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겨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초록빛 대지와 따스한 햇살 아래,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는 엘프의 걱정을 덜어 주고 있었다.



“가장 깊은 곳에 있어!”


“조심해야 해!”


“하지만 우리랑 함께 가면 문제 없어!”



아이들은 서로 재잘대며 폴짝폴짝 뛰고, 때로는 달콤한 간식을 입에 문 채 엘프의 걸음을 재촉했다. 엘프는 그 작고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마음 한편으로는 안도감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혹여 그들의 여왕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이들의 환한 웃음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 보았던 공방처럼 또 다른 커다란 나무 아래, 뿌리의 틈을 막고 있는 나무 문이 보였다. 자그만 틈 사이로 옅은 빛이 새어 나오고, 그 빛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엘프의 마음을 묘하게 흔드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큰언니가 있는 곳이야!”



고요한 숲에 퍼지는 목소리가 어쩐지 신비롭게 울려 퍼졌다. 엘프는 아이들과 함께 발걸음을 멈추고, 한껏 다가온 숲의 비밀스러운 기운을 느끼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우리는 이제 가볼게!”


“예···. 고맙습니다.”


“큰누나랑 싸우면 안 돼! 알았지?!”



아이들은 신신당부하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다. 엘프가 걱정되어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도, 자신들이 나설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는 것처럼 보였다. 엘프는 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왕이 있을 문을 바라보며 숨을 작게 심호흡했다.



“...그 안에 계십니까?”



그러나 문 너머엔 대답이 없다. 잠시 침을 삼키며 고민하는 엘프. 결국 문을 두드려 보기로 마음먹고 살며시 손을 들어 보았다.



“...!”



그러나 엘프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천천히 문이 열려 마치 그녀에게 들어오라는 듯이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순순히 들여보내 준다는 것에 당황한 엘프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지만, 재차 마음을 굳건히 먹고 천천히 문고리를 붙잡았다.



“...?”



문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커다란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기묘한 약초 냄새와 짙은 나무뿌리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어둑한 실내 한편에서 흐릿하게 새어 나오는 빛 속으로, 희미하게 가느다란 실루엣이 보였다.



“엘레나.”



그녀의 거처를 제대로 살펴볼 새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엘프는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계,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크게 당황한 엘프가 정중히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이 숲의 주인이자 저 아이들의 보호자, 미스릴을 자아내는 숲의 여왕, 그리고 유일무이한 ‘바람의 사도’였다.


바람의 여신을 섬기는 엘프로서, 여신과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유일한 그녀로서, 믿어 의심치 않는 여신의 목소리를 듣는 그녀를 맞이하는 데에는 그리해야만 했다.


엘프의 눈이 익숙해질 무렵, 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새하얀 원피스를 입었지만, 한 그루의 나무뿌리와 잎을 담은 것 같은 아름다운 갈색, 초록색 눈망울과 함께 옅은 초록빛이 아른거리는 머릿결이 신비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들보다는 분명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세상의 잣대로 보면 아직 성인이라 하기엔 어딘지 여리고 가냘픈 소녀에 가까웠다. 그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뿜어내는 기운은 묵직하고 강렬하다.



“여왕···. 아니, 사도시여 부디 부탁드릴 것이···.”


“싫어. 나가.”



딱딱하게 뱉어지는 한마디에, 엘레나는 미쳐 이어갈 말을 삼켜야 했다. 엘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차갑다기보단 무심에 가까웠지만, 거부감이 분명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망설이는 엘프의 귓가엔 가마솥에서 끓어오르는 기묘한 소리만이 낮게 울릴 뿐이었다.


그녀의 도움과 조언을 얻기 위해 찾아왔건만, 따스한 바깥과는 달리 이곳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엘레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숲속 아이들을 따스하게 보살피는 이 존재가, 정작 왜 이리도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내고, 부탁을 들어줄 여지가 있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잠시 주저하던 엘레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스스로를 재촉하듯 입술을 깨물고, 바닥을 응시한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반드시···. 반드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합니다.”


“나가라고.”


“...누군가 시간을 돌리고 있습니다.”



아직 대답은 없다. 그러나 옅은 초록빛의 머릿결과 함께, 사도라 불린 이의 가녀린 어깨가 살짝 움직이는 것이 엘레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작은 변화가, 이 얼어붙은 대화에 실낱같은 틈새를 만들어 줄지 모른다는 희망이, 엘레나의 가슴 한켠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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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6화 기억 - 2 25.05.08 4 0 19쪽
136 135화 기억 25.05.01 13 0 14쪽
135 134화 회색 그늘 25.04.26 14 0 19쪽
134 133화 바람이 부는 곳 25.04.22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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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130화 차가운 바람 25.04.09 7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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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28화 왕녀의 방문 25.04.03 7 0 16쪽
128 127화 손님을 대하는 자세 25.03.31 10 0 18쪽
127 126화 한낮의 소란 25.03.26 14 0 22쪽
126 125화 사도 25.03.22 8 0 16쪽
» 124화 숲속의 아이들 25.03.18 10 0 18쪽
124 123화 낮잠 25.03.13 8 0 19쪽
123 그들의 결단 25.03.10 10 0 27쪽
122 121화 조용한 방에서 25.03.04 9 0 15쪽
121 120화 조용한 그곳에서 25.02.26 8 0 18쪽
120 119화 화원 25.01.18 15 0 21쪽
119 118화 태초 25.01.15 13 0 15쪽
118 117화 간신히 찾은 단서 25.01.11 14 0 22쪽
117 116화 입구 25.01.08 16 0 15쪽
116 115화 다과회 24.12.31 17 0 21쪽
115 114화 운명 결의회 - 2 24.12.26 19 0 14쪽
114 113화 운명 결의회 24.12.26 15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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