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에서 로봇개와 함께하는 여행은 기적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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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두유
작품등록일 :
2024.04.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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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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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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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광의 야수] 25

DUMMY

* * *


기차에서의 전투는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물량으로 덤벼드는 도마뱀형뮤턴트들은 장창 앞에서 돌격이 막혔지만, 온몸에 단단한 껍질을 두른 거미형뮤턴트들은 날붙이 따위에 저지되지 않았다.

거미형들은 영리하게도 소총수들이 탄을 소비한 때만 노려서 대열을 헤집어놓은 다음, 빠른 기동력으로 자리를 이탈했다. 거미형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단번에 대여섯 명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아이카는 설인의 능력을 사용하여 거미형의 착지 지점을 예상해서 소총수들을 보조하였다. 아이카가 거미형의 착지 지점에 석궁 볼트를 쏘면, 소총수들이 그곳을 조준하고 있다가 뛰어드는 거미형을 쏘는 방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선으로 뛰어든 거미형들은 총알에 벌집이 되어 버둥거렸고, 마무리로 창병들이 눈알을 찔렀다.


강력한 뮤턴트들이 하나씩 쓰러져갈 때면 사람들은 환호하며 전의를 올렸다. 하지만, 같은 기차에 타고 있던 설인들은 숲속에 숨어있는 수천의 뮤턴트들이 느껴졌기에 전혀 기뻐하지 못했다.


아이카도 착잡한 심정으로 레버를 당겨서 석궁을 장전하고 있었는데, 기차에서 내린 블랑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카님, 반대쪽 방어선은 이제 얼마 못 버팁니다. 어서 어린아이들과 부상자들을 기차 위로 옮겨야 해야 해요.”

“부모들의 반응은 어떻지?”

“모두 같은 의견입니다.”


기차 위 지붕은 방어선이 뚫렸을 때 가장 나중에 공격받는 곳이기에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다만, 하늘에서 오는 공격에는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지금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붕을 방어할 소총수들을 먼저 올려보내겠다. 너는 가서 어린이들부터 옮겨.”


블랑은 아이카의 말에 대답 없이 급하게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


* * *


도마뱀형과 사람의 사체만 가득한 어느 객실.


손에 큰 부상을 입은 사베트가 추위에 떨며 걷고 있었다.


“갑자기 온도가 확 떨어졌어. 이것도 뮤턴트의 짓인가?”


기차 벽면에 응결된 물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는 것은 온도가 영도 이하로 내려갔다는 뜻. 겨울도 아닌데 이렇게 추워지는 상황은 절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베트는 걸으면서 고장난 권총에서 납탄을 꺼내고 있었다. 두 손을 전부 사용해야 수월한 작업이지만, 뮤턴트에게 오른손을 심하게 물린지라 왼손으로 권총을 들고 오른손 손목으로 도구(볼 풀러)를 밀어 넣어야만 했다.


힘겹게 납탄을 꺼낸 다음, 그것을 바로 입안에 넣고 씹었다. 사베트는 납탄을 씹을 때마다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걸어서 탄수차(炭水車)에 도착한 사베트는 수동으로 석탄을 꺼낼 수 있도록 만들어둔 구멍에서 석탄 몇 개를 집었다.


“여기다 불을 붙이면 조금 괜찮아 질려나?”


그는 소총의 점화장치를 이용해서 석탄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된 시도에도 점화장치의 부싯돌만 계속 소모될 뿐, 불은 붙지 않았다.


사베트는 석탄이 문제인가 싶어서 구멍에서 다른 석탄을 집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베트는 두 손에 쥔 석탄에서 열기가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이거 엄청 따뜻하네? 왜지?”


기차가 달릴 때 탄수차가 흔들리면서 석탄이 서로 마찰하여 열기가 생긴 것이지만, 사실 이유 따위는 중요하진 않았다.


사베트는 구멍에서 석탄을 마구 꺼내서 바닥에 쌓았다. 그리고는 석탄 더미 속으로 자신의 몸을 얼굴만 빼고 전부 파묻었다.


따뜻한 곳에 누워있으니 시야가 출렁이고, 긴장이 줄어들었다. 딱딱한 석탄이 피로한 근육을 꾹꾹 눌러주는 느낌이 좋았다.


“아, 딱 기분 좋은 온도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사베트는 기절해 버렸다.


* * *


기차 지붕에 올라가는 방법으로 사다리가 있었지만, 부상자들은 사다리를 타는 게 쉽지 않았기에 모두를 대피시키려면 다른 방법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기차에 기생 덩굴처럼 붙은 패룡을 계단 삼아 밟고 올라가는 것.


사람들을 안내하는 블랑이 외쳤다.


“뒤에 사람이 많으니까 빨리 올라가 주세요!”


형식상 외친 말이었지만, 어차피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패룡 위를 걷는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껴서 천천히 올라갈 사람은 없었다.


대피하는 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블랑은 모두가 대피했는지 확인하고자 객실에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객실 안에는 아직 대피하지 못한 남자아이 한 명이 남아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구석에 숨어있었다.


“아잇, 진짜! 이럴 때면 꼭 안 좋은 일만 생기던데······.”


블랑은 불평하면서도 곧바로 남자아이에게 달려가 그를 들어 안았다. 그리고는 다시 승강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패룡 위를 걸었다.


패룡의 비늘을 밟고 올라가면서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다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장난치는 거지? 저게 전부 뮤터트라고?”


하늘에는 새까맣게 몰린 뮤턴트 무리가 대열을 이루며 하강을 준비하고 있었다. 블랑은 다시 방향을 돌려 내려갔지만, 뮤턴트들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가장 중앙에 있는 비둘기를 닮은 뮤턴트가 하강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리 전체가 중력에 몸을 맡기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붕에 먼저 올라가 있던 사수들이 엽총을 쏴댔지만, 그 많은 뮤턴트들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땅바닥에 내려온 블랑이 몸을 굴려서 패룡 밑으로 숨은 그 직후, 커다란 그림자가 임박했다.


소나기처럼 떨어진 뮤턴트들이 기차 위에,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순식간에 공격 목표였던 칸과 그 주변이 전부 새를 닮은 뮤턴트들의 날갯짓으로 가득 찼다. 위험을 감지하고 지붕에서 내려오던 사람들도 예외 없이 그 습격에 휘말렸다.


시야를 가리던 뮤턴트들이 전부 날아가자 깃털에 덮인 참상이 드러났다. 갈색과 하얀색 깃털에 파묻힌 자들은 서로 누구인지 분간되지 않았고, 정신을 차림 사람들은 입술에 묻은 깃털을 뱉어내며 간신히 호흡했다.


새를 닮은 뮤턴트라고 해도 본질은 새였기에 골격의 무게는 가벼웠다. 덕분에 방금 공격으로 인한 사상자는 많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엄청난 타격이 되었다.


“하디, 하디! 대답 좀 해!”

“에마, 내 손을 잡아······!”


흘러넘치는 조류의 내장과 분뇨 속에서 공황에 빠져 절규하는 남자, 자신의 아이를 찾는 부모,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로 서로를 의지하며 현장에서 기어 나오는 사람들.

그들이 당한 참상을 목격한 그들의 이웃과 가족의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방어선에서 이탈하려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통솔하던 전직 군인들이 이탈하려는 사람들을 만류했지만,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만류하는 목소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가장 앞장서서 사람들을 지휘하던 아이카는 이 상황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을 격려하는 말은 형식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수천의 적들이 끝없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기심을 우선하는 자들을 막아설 용기가 없었다. 이 승산 없는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행동해야 결과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석궁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불안해하고, 떨리는 눈동자에서는 방황이 엿보였다.

아이카에게는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역화를 더는 참을 수 없다.


딸칵!


아이카가 이탈자들에게 권총을 겨누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지금 당장 위치로 돌아가라.”


그녀가 청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명령했지만, 그들은 눈빛으로 항명하며 아이카와 대치했다.

서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패룡에 의해 붕 떠오른 기차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블랑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블랑도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지만, 아이카의 몸에서 핏줄이 돋아나는 모습에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설인은 인간과 같은 종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보통 인간과 달랐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혈압. 설인은 초인적인 힘을 낼 때 엄청난 양의 산소와 에너지를 운반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핏줄을 팽창시켜야만 했다.

그 말인즉, 지금 아이카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카는 소녀이긴 하지만 설인은 설인. 그녀가 꿀렁이는 핏줄을 드러내고, 머리카락을 부풀리자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가 더 이상 소녀로 보이지 않았다.


블랑이 조바심을 내며 중얼거렸다.


“저쪽도 물러날 마음이 없어 보이는데······.”


블랑은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이카를 막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카님!”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으르렁 거리는 괴물의 숨소리.

블랑이 기척에 반응하기도 전에 그것은 단번에 블랑의 머리채를 물었다.


블랑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깜짝 놀란 아이카가 뒤를 돌아보았다.


“블랑!”


아이카가 블랑의 이름을 외쳤지만, 이미 저만치 끌려가서 패룡의 거대한 몸 뒤로 사라지는 그녀의 발만 볼 수 있었다. 아이카는 권총을 던져버리고, 붕 떠오른 기차 아래로 달려 블랑을 쫓았다.


“끄악! 으윽!”


블랑은 조류의 피로 진흙이 된 바닥에서 질질 끌려다니며 비명을 질렀다. 자신을 끌고 가는 존재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저항해 봤지만, 몸을 버둥대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머리채를 끌고 가던 뮤턴트가 멈춰서 블랑의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눈에 진흙이 튀어서 흐릿해진 그녀의 시야에 자신을 에워싸는 괴물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콰직!


거대한 갑각류의 다리가 어깨를 찌르려는 것을 상체를 비틀어서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방금 공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블랑을 둘러싼 뮤턴트 여럿이 순차적으로 그녀를 밟기 시작했다. 밟힐 때 마다 온몸에 상처가 늘어갔고, 손으로 막으려고 하면 손바닥이 찢어질 뿐이었다. 발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점차 숨쉬는 것 조차 어려워졌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숨을 내뱉는 그녀의 눈에 절망이 깃드는데.


“허억, 허억······.”


악몽같은 시간이 몇초나 지났을까. 블랑은 자신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오른쪽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눈에 들어간 진흙이 빠지자 주위를 둘러싼 수만은 뮤턴트들의 사체가 보였다. 자신을 공격하던 뮤턴트들은 물론, 주변에 있던 다른 뮤턴트 들도 전부 사체로 변해 있었다.


블랑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두리번 거리다가 홀로 서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왜 이렇게 자주 구부러지는지 참······.”


키가 큰 여자는 투덜거리면서 구부러진 장도를 발로 밟아 원래대로 펴고 있었다. 그녀의 장도는 찬란한 달빛에도 전혀 광이 나지 않는 신비함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가 곁눈질로 블랑과 잠시 눈을 마주치자 블랑은 그제서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청회색 눈에서 느껴지는 싸늘함. 분명 죽은 자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 아닌가.


“블랑!”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달려오고 있는 아이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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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Brain dead] 33 24.11.04 16 0 12쪽
32 [Brain dead] 32 24.10.23 18 0 10쪽
31 [Brain dead] 31 24.10.11 22 0 11쪽
30 [Brain dead] 30 24.09.15 29 0 11쪽
29 [Brain dead] 29 24.09.05 3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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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무광의 야수] 20 24.06.25 40 0 13쪽
19 [무광의 야수] 19 24.06.24 43 0 13쪽
18 [무광의 야수] 18 24.06.23 37 0 10쪽
17 [예열] 17 24.06.21 34 0 11쪽
16 [예열] 16 24.06.20 38 0 10쪽
15 [예열] 15 24.06.19 33 0 14쪽
14 [예열] 14 24.06.18 37 0 12쪽
13 [예열] 13 24.06.14 48 0 12쪽
12 [예열] 12 24.06.11 37 0 14쪽
11 [오래된 전설] 11 24.06.10 37 0 11쪽
10 [오래된 전설] 10 24.06.07 40 0 12쪽
9 [오래된 전설] 9 24.06.02 4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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