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화
그 손가락으로 필레우스를 가리켰다.
"마탑의 마법사를 사칭한 놈이다. 패고 난 다음에 쫓아내."
"응?"
그는 놀먼처럼 두들겨 맞았다. 그러고는 양팔을 잡혀서는 알선소 밖으로 던져졌다. 금발 실눈이 문을 열고 나와서 술을 뿌렸다.
"어디서 개털도 없는 놈이 의뢰하겠다고 찾아와. 퉤!"
땅바닥에 침까지 뱉었다. 옆에는 놀먼도 있었다. 그가 일어났다. 진짜 늑대의 외관으로 옷을 입고 두 발로 섰다.
놀먼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도대체 얼마를 가져왔길래 나처럼 맞은 것이오? 정말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때리라고 시키지 않는데?"
필레우스가 그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그가 바지와 상의를 털었다. 방어 마법을 걸어서 아프지 않았다. 단지 생소한 경험을 했다는 신기함을 느꼈다.
"저는 형님에게 들은 만큼 가져왔을 뿐인데 욕을 먹었네요. 이게 욕먹을 금액인가요?"
주머니를 열어서 안을 보여줬다. 놀먼이 입을 벌리다가 크게 웃었다. 주머니에는 반짝거리는 은화 몇 개와 검은 돌 몇 개가 있었다.
"이건 그대 탓이요. 이 주머니를 본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를 모욕한다고 여겨서 때릴 거요."
"그래요? 전에 형님이 이거면은 귀족처럼 대접받는다고 했는데....."
"그 형씨가 놀린 모양이오."
그는 주머니 안을 확인하고는 다시 허리춤에 달았다. 반대쪽을 쳐다봤다. 다른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내가 이렇습니다. 스승님이 세상 물정 모른다고 걱정할 만해요."
잘 매달려 있는 주머니를 꺼내 열자, 고순도의 마석과 백 금화들이 있었다.
놀먼은 입이 벌어졌다. 살면서 주머니 안에 든 마석만큼 고순도는 본 적이 없었다. 빛이 번쩍번쩍하고 났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는 침을 삼켰다. 필레우스에게 다가오더니 한쪽 팔을 잡았다.
놀먼은 그가 자신에게 의뢰할 수 있도록 설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주머니에 있는 돈만 있어도 자신을 따르는 용병들이 한겨울은 편히 지낼 수 있다. 설득되면 알선소에 그의 용병단에 의뢰를 요청해달라고 하면 되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술이라도 한잔"
"저는 술을 못해서요."
팔을 잡은 손을 떼어내고 지나가려고 들었다. 그가 그 앞을 막아섰다. 다른 용병 알선소로 가서 의뢰해야 했다.
"그러면 차라도 한잔합시다."
자꾸 가는 길을 막는 놀먼을 고개를 들어 올려봤다. 둘 간의 키 차이가 컸다.
160cm 언저리의 필레우스와 2m 정도의 놀먼이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렸다. 놀먼이 그를 해코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신의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동요와 불안이 느껴졌다.
"내가 간식도 사주겠소."
"그러죠."
모두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는 중이다. 한 명이라도 호의적인 시선이 있다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필레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평소에 가시는 곳이라도 있나요?"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있소. 따라오시오."
"제 이름은 필레우스입니다."
"어? 아! 나는 '라이카 이브리다'라오. 내 이름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소. 미안하오."
'라이카 이브리다'의 이름을 듣고 미간을 좁혔다. 이름이 고대어로 라이카는 '개'이고 이브리다는 '잡종'을 뜻했다.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건가요?"
"어머니께서 마법사에게 돈을 드리고 받아오셨다고 하오."
마법사가 자식을 위한 모정을 조롱한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실을 알려주면 상처가 될 듯싶었다. 입을 달싹거려졌다.
"이름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까?"
"이름의 뜻이 '개 잡종'이라 그렇소?"
"알고 있었군요."
필레우스가 머리를 긁었다. 애써 눈동자를 하늘로 치켜올렸다.
"다른 용병단의 마법사가 나를 조롱하며 알려주었소."
"모든 마법사가 그따위로 쓰레기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한 손바닥을 내밀며 쓰레기 같은 인성의 마법사들과 선을 그었다. 라이카가 빤히 그를 쳐다봤다. 부담스러웠다.
"왜 이리도 빤히 봅니까?"
"마법사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경우는 처음이라서....."
라이카가 고개를 돌려서 앞만 봤다.
"인성 나쁜 놈들만 만났나 보네요."
필레우스는 혀를 찼다. 세상에 쓰레기가 참으로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상대를 싫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싫다고 모욕하는 것은 무례다.
***
라이카가 손가락으로 한 가게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작은 골목에 있었다.
"나와 같은 놀먼이 하는 가게요. 혼혈인들이 마음 편히 쉬려고 오는 곳이오."
가게 앞에 병사들이 서 있었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억울하다니까. 나는 그날 아픈 아이를 병간호했어."
여성형 놀먼이 소리치며 다리에 힘을 줬다. 180cm 정도의 키와 근육이었다. 라이카가 달려갔다.
"이게 무슨 일이오?"
"쯧. 살인사건의 범인이다."
"이래서 몬스터들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니까. 에씨, 왜 이렇게 힘이 세!"
일반 병사들이 도저히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라이카가 그들의 앞에 섰다.
"제 친구가 사람을 죽일만한 성정이 되지 못합니다."
"닥쳐라."
그녀는 라이카와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병사가 짜증이 났는지 투구를 벗었다. 욕을 내뱉고 말했다.
"그대의 아이에게도 영향이 갔으면 해? 그런 거야? 아이도 한 번 조사에 들어갈까?"
그녀가 몸을 떨어댔다. 인간들은 놀먼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녀가 낳은 아이도 몬스터 취급을 받으며 고문받게 될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거짓 자백을 하게 될 것이다.
억울함을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아이만이라도 지켜야 한다.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저기요....."
그녀가 살인범일 수 있다. 그런데 왜 관련도 없는 아이를 언급하며 위협하는 것일까. 떳떳하게 증거가 있다면 그냥 데려가면 될 일이었다.
필레우스가 병사의 등을 톡톡 하고 쳤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뭐냐? 아니, 무슨 일입니까?"
그가 어떤 패를 꺼내서 보였다. 병사는 인상을 펴고 웃었다. 허리도 굽신거렸다.
"마탑의 마법사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오시다니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네, 물어봐 주십시오."
마법사의 위상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병사들에게 마법사는 기사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네. 그 근거가 무엇인가? 살해 동기라던가? 목격자라던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어쩌면 억울함을 풀고 아이와 오손도손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병사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손가락으로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저기 안쪽에 피해자가 쓰러져서 죽었습니다. 머리는 잘린 상태였습니다. 최근에 저것과 싸웠다고 하는 증언이 있습니다."
"저것? 이름도 모릅니까?"
그때 라이카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오."
"릴리 부인과 피해자가 최근에 싸웠다..... 그러면 잘린 머리는 어디서 발견이 되었습니까?"
"잘린 머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잘린 머리를 찾지 못했는데 피해자가 누군지 안다? DNA 검사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지문 검사가 되거나 하는 시대도 아니다.
어찌 하루 만에 머리가 없는 피해자를 찾을 수 있었을까.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죠?"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찾아가니 어제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필레우스가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러니까 그냥 근처에 어제부터 집에 오지 않는 사람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최근에 싸웠다고 하는 말만 듣고 부인을 범인으로 확정했다는 겁니까?“
그는 병사들의 생각이 읽혔다. 병사들은 귀찮았을 것이다. 머리가 잘린 신원 미상의 피해자다. 목격자도 없다. 대충 주변에서 나타나지 않은 사람 하나를 피해자로 찍고 조사했을 것이 뻔하다. 마침 그 가상의 피해자가 '놀먼'과 얼마 전에 싸웠다고 하니 편하게 범인으로 단정 짓기 편하다.
이러다가 진짜 살인범을 놓칠 수 있다. 그가 한숨을 쉬고 병사들과 릴리 사이에 섰다.
"시신을 한 번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추정한 피해자의 정보도 주십시오."
누런 이를 드러낸 병사가 떨떠름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무리 마탑의 마법사라고 해도 사건 조사에 개입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 마탑의 입장이 난처해질 텐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논문 하나 잘못 써서 마탑을 위기에 처하게 했다. 이번에도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된다.
"확실히 오해를 살 수 있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니까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라이카가 다급하게 그를 향해 달렸다. 병사들에게 저지당한 와중에 소리쳤다.
"릴리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릴리는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 그를 제외하고 그들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아이에 대한 걱정만 남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활짝 웃었다. 이번에는 마탑이 오해받을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품 안에서 다른 패를 꺼냈다.
"한 달 전쯤에 제가 마법 검시관 자격을 얻었습니다. 월권이 아닙니다.“
누런 이의 병사가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마법 검시관은 자격을 따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만......"
"신규 마법 검시관의 이름과 소속은 공지로 들어갔을 테니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마법은 마탑뿐 아니라 왕국 안에 있는 아카데미 안에서도 배울 수 있다. 마법에도 세부적으로 분야가 나눠진다. 호기심이 많은 탓에 이것저것 도전했는데 잘 되었다.
"딱 마법 검시관까지 있는 상황이네요."
"다른 마법 검시관이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그 자료를 보면서 다시 해보죠. 마법 검시관은 재검시 권한도 있잖아요."
물론 마법 검시관들은 재검을 요청하지 않는다. 하루에 확인해야 하는 시신이 산처럼 쌓였다. 굳이 다시 검시하는 번거로움을 자청하지 않았다.
***
마탑 출신의 마법 검시관인 마리우스는 다리를 꼬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천재 중 천재만 모이는 마탑 출신이라는 것은 자부심이었다. 한 병사가 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었다.
"마리우스 님! 큰일입니다."
"야. 내가 노크하고 열라고 했지."
그가 몸을 일으키며 소파 곁에 있던 잔을 던졌다. 문 옆의 벽에 잔이 맞으며 깨졌다. 소파 주변에는 맥주병들이 널브러졌다.
"마탑 출신의 검시관이 재검을 요청했습니다."
"뭐? 어떤 놈이 감히 내가 검시한 것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하는 거야?"
"이번에 새로 마법 검시관이 된 마법사라고 합니다."
"미친놈이 선후배가 없네? 야. 앞장서."
"네. 따라오십시오."
그가 술 냄새를 풍기며 일어나서 사무실을 나섰다. 다리를 넓게 벌리며 걸어가는데 병사들, 놀먼들 그리고 마법사가 후드를 쓰고 다가왔다. 상대는 그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마리우스!"
마리우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손과 다리가 떨렸다.
목소리를 잊을 리가 없었다.
그 발걸음을 잊을 리가 없었다.
"필레우스...."
그가 이를 갈았다. 필레우스는 마탑의 수많은 천재를 절망으로 빠뜨린 괴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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