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3화
마리우스는 억지로 주먹을 쥐고 다리를 때렸다. 진동하던 몸이 잠잠해졌다. 작은 키와 순박한 얼굴은 예전 기억 그대로였다.
"마리우스, 마법 검시관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여기서 만나네요."
필레우스가 그의 손을 잡으며 악수하였다. 곧 눈을 찌푸렸다. 술 냄새가 진동하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마리우스는 겉옷 안에 있는 펜으로 상대의 목을 찌르는 상상 했다. 악수한 손을 떼자, 마리우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네가 내가 검시한 시신의 재검을 요구했다고 들었네. 그게 어떤 의미인 줄 아나?"
그 마음도 모른 체 필레우스는 몇 발짝 뒷걸음쳤다. 헛구역질할 뻔할 만큼 술 냄새가 났다. 솔직히 취한 상태로 검시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물론 마탑의 천재인 마리우스가 실수할 리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재검한다고?"
"천재라고 해도 피곤하면 놓칠 수 있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찾아보려고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니까요."
필레우스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술 냄새가 덜 느껴졌다. 울렁거림이 조금 나았다. 조심스럽게 자기 배를 쓰다듬었다.
마리우스가 이를 갈았다. 언제나 이딴 식이었다. 상대를 치켜세워 주는 척하면서 깎아내린다. 문제는 필레우스가 제시한 말들이 전부 옳았다는 것뿐이다.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재검은 승인할 수 없어."
먼저 시신을 검시한 마법 검시관의 동의 없이는 재검할 수 없다. 마법 검시관 사이에서 만들어진 관행이었다. 상대의 실력을 불신한다는 의미로 받아졌기 때문이다.
"왜요?"
필레우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의혹이 있다면 재검하는 것은 마법 검시관의 권한이었다.
"왜냐니?"
"마법 검시관은 의혹이 있을 시에 언제라도 재검할 수 있다. 마법 검시관의 권리인데 잊으셨어요?"
마리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필레우스 앞에 섰다. 필레우스의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술에 덜 깨서 잊어버렸나 보네요. "
그는 고개를 돌렸다. 마리우스에게 뿜어지는 술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시신을 보러 가죠."
술이 덜 깬 탓이었을까 아니면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마리우스는 곧바로 필레우스의 멱살을 잡았다.
"언제나 그따위지. 이번에 새로 된 마법 검시관? 그렇게 마법사들을 조롱하면 좋아?"
"이거 놓으십시오."
술 냄새가 강렬하게 코끝에 들어왔다. 겨우 참았던 속이 다시 메슥거렸다.
"정말 큰일 납니다!"
"큰일? 큰일?! 어디 한 번 큰일을 내봐!"
그가 필레우스의 몸을 앞뒤로 흔들어 댔다. 그 흔들림에 하얀 얼굴색이 파랗게 질렸다. 메슥거림이 점점 더 강해졌다. 더는 참기 어려웠다. 입을 열었다. 마리우스의 얼굴 위로 토사물이 떨어졌다.
"괜찮으십니까?!"
라이카가 억센 힘으로 마리우스를 밀어버렸다. 그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필레우스가 비틀거리더니 몸을 기울였다. 라이카가 빠르게 그를 잡아 세웠다.
"미, 미안합니다. 속이 나아지면 치울게요. 마리우스, 미안해요."
계속 토하려고 하자 라이카와 몇 명의 병사가 그를 이끌고 자리를 비웠다. 이 공간에 토사물이 필레우스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가 사라지고 마리우스가 소리를 질렀다. 아랫사람인 병사들이 이 추한 몰골을 봤다. 소문이 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이 미친놈이!"
옷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쌍욕을 내뱉었다. 일어나서 주먹으로 때리려고 들었다.
"마리우스 님, 참으십시오!"
"같은 마탑 출신끼리 왜 이러십니까."
병사들이 마리우스를 막아 세웠고 필레우스는 라이카에게 업혀서 어딘가로 가버렸다.
***
마리우스는 여러 번 깨끗한 물로 세수하였다. 씩씩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문은 세차게 닫혔다. 누군가가 먼저 들어와 있었다.
"선배. 아까 필레우스라는 마법사가 선배 얼굴에 토했다는 이야기 잘 들었어요. 그 마법사가 필레우스 엘라티오죠?"
분홍빛 머리카락이 빛나는 여인이 녹색 눈동자로 마리우스를 쳐다봤다.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술병들은 널브러진 그대로였다.
"네가 어떻게 필레우스를 알지? 너는 마탑 출신이 아니잖아."
필레우스는 마탑 안에서만 유명했다. 마탑 밖에서는 무명의 마법사에 불과하다.
그녀가 다리를 꼬았다.
"선배가 술에 취할 때마다 그 마법사에 대한 욕이란 욕은 다했잖아요. 게다가 '엘라티오'라니 마법사라면 누구라도 궁금하죠."
마탑에서 부여한 '성'은 엘라티오였다. 엘라티오는 고대어이며 뜻은 '위대함'이다.
마탑은 마법의 정점에 있는 마법사들만 모인 집단이다. 마탑의 마법사는 그 오만함이 하늘 끝에 닿을 정도다.
"마탑의 거만한 마법사들이 '엘라티오'를 그에게 주는 데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가장 궁금한 것은 무려 '엘라티오'인데 마탑밖의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탑이 입막음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마리우스가 미간을 좁혔다. 마침 옆에 있던 술병을 들어서 입에 댔다.
"그놈에게 과분한 이름이야. 바니."
바니가 귀여운 얼굴로 웃었다. 눈웃음은 누구라도 호감을 느끼게 했다.
"마탑에서 위대하다고 할 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고요?"
마리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선반에 있는 빈 잔과 새 술을 꺼냈다. 바니에게 잔을 건네고는 술을 따라줬다.
"너는 왜 마탑이 '엘라티오'라는 성을 줬는지 몰라."
"왜 줬는데요?"
그녀가 두 손으로 술잔을 잡고는 한 모금을 마셨다.
"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기에 올 리는 없고 왜 왔지?"
"선배가 싫어하는 그 마법사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요."
"재검 시에 참관하고 싶다는 거군."
"네."
그가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너는 내가 아끼는 후배다. 그 녀석을 보고 절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선배. 마탑의 마법사들은 오냐오냐, 대우만 받아서 정신이 약한 거라고요."
그녀가 두 어깨를 들썩이더니 다시 술잔을 입에 댔다.
"그리고 어차피 검시는 두 명 이상의 마법 검시관이 한 시체를 확인해야 하잖아요."
마리우스가 바니를 뚫어지게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도 한 번 보면 이해하겠지."
"고마워요."
그녀가 입을 내밀고 쪽 소리를 냈다. 곧장 마리우스 사무실의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
필레우스는 휴게실에서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누웠다. 간이침대, 책상, 의자 등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트럼프 카드들이 널브러졌다. 그 곁에는 라이카가 앉아서 간호했다.
초면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토했다. 민망하고 부끄럽다. 마리우스의 얼굴에 토사물을 뱉었다. 미안하고 얼굴을 볼 낯이 없다.
수건으로 눈을 가린 것은 일종의 현실 도피다.
"죄송합니다. 빨리 확인해 줘야 하는데"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한 것을요. 바로 감옥이 아니라 유치장에 가게 되었는걸요."
릴리 부인은 감옥이 아니라 유치장에 있었다. 감옥에 있다면 진짜 범인이 잡히지 않는 한, 무죄의 증거를 가지고, 소송해야 한다.
필레우스의 재검 이전까지는 '용의자'였다. 용의자라는 의심이 풀리면 바로 자유가 된다.
"솔직히 릴리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이대로 감옥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놀먼은 소수고 인간은 다수였다. 다수는 소수를 억압하고 탄압한다. 인간은 놀먼을 경멸하고 차별했다.
"저희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그 아래로 눈물이 떨어졌다. 처음으로 받은 인간의 믿음에 가슴이 벅찼다.
필레우스가 눈을 가린 수건을 들었다. 몸을 옆으로 돌리고 일어났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작전이라며 소용이 없었다.
그는 마탑의 마법사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필레우스가 손가락으로 삿대질하였다.
"저는 검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실 그대로 보고할 것이에요."
"물론입니다. 검시 보고를 조작해달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라이카가 당혹스러워하며 두 손을 흔들었다. 위협적인 손톱이 함께 보였다. 그의 어깨가 잠시 움츠러들었다.
***
재검을 위해서 시신을 다시 꺼냈다. 마리우스, 바니, 릴리 부인과 몇 명의 병사들이 함께였다. 릴리 부인은 손목에 수갑을 찼다.
필레우스가 받침대 위에 섰다. 시신을 전체적으로 잘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바니가 마리우스의 옆구리를 쳤다.
"선배. 마법 검시는 혼자 못하잖아요. 제가 보조로 갈까요?"
마리우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네? 그게 무슨?"
"보면 알아."
필레우스가 한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존 마법이 되어있어서 망정이었다. 아니었다면 부패한 냄새 때문에 토하고 쓰러졌다.
"그러면 재검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은 없었다. 이마에 땀이 흘렀다. 마탑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 앞이었다. 긴장되었다.
"스캔"
푸른 빛이 시선을 감싸다가 사라졌다. 시신 위로 푸른 빛으로 나타났다. 시신의 형체를 재현한 삼차원 그림이었다. 실제와 달리 눈코입이 없는 얼굴이 그려졌다.
"일단 잘린 목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목을 여기저기 살피고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푸른빛으로 형상화되더니 검이 그려졌다.
"릴리 부인. 잠시 제 쪽으로 와보시겠어요."
릴리가 쭈뼛거리고는 천천히 그의 옆에 섰다. 그가 마나로 형상화된 검을 쥐여줬다. 그녀는 칼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칼에 비해 손이 컸기 때문이다. 털도 수북하게 자랐다.
릴리의 손에 있던 검이 가루처럼 사라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큰 칼을 줬다. 이번에도 릴리는 겨우 잡았다. 몇 번을 이 행위를 반복하고 나서야 릴리가 편해할 칼의 크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릴리 부인, 짐승을 도축한 적이 있습니까?"
"스테이크 요리에 쓸 고기는 제가 직접 도축해요. 아무래도 놀먼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목은 어떻게 합니까?"
"돼지의 경우에는 큰 도축용 칼로 단번에 잘라요."
필레우스가 고개를 작게 몇 번 끄덕이다가 턱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되었습니다. 다시 원래 서 있던 곳으로 돌아가 주세요."
릴리가 아까 섰던 곳으로 걸어갔다. 필레우스가 푸른빛으로 만든 가상의 단검을 쥐었다.
바니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스캔 마법은 시신의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삼차원 마법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웠다. 마나도 많이 필요하다.
마리우스나 바니 정도의 마법 검시관도 최소 두 명이 필요하고 신입은 무려 네 명이 합동으로 한 시신을 봐야 하는 고난도 마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힘도 하급 마법을 하듯이 하고 있었다.
"일단 사람이든, 짐승이나 몬스터든 그 살을 자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 안의 근육과 힘줄, 뼈도 잘라야 하니까요."
마나로 이뤄진 삼차원 그림에서 목 부분이 사라지고 잘린 부분이 드러났다. 그가 손으로 그림을 돌렸다. 사람들은 목이 잘린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몇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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