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5화
필레우스가 머리를 긁으며 눈을 찌푸렸다. 화합의 오르골에 다가갔다.
“이상하네요. 둘만 춤추도록 해놨는데?”
오르골을 들고 손을 움직이며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겉으로는 고장 난 부분이 없었다. 마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듯싶었다.
“제가 고쳐볼게요. 잠시만요.”
그 말에 마리우스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냥 꺼라. 손댈 생각하지 말아라!”
“끄면 듀라한이 다시 공격하잖아요. 빨리 고칠게요.”
지옥의 이틀을 경험할 때도 필레우스는 빨리 고치겠다고 말했다. 그가 한 손을 휘적이며 오르골에 마나를 집어넣었다. 마리우스의 반응에 바니와 병사들이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선배. 저 작은 오르골에 중첩마법이 걸려 있으면 얼마나 걸려있겠어요. 이중 중첩마법이겠죠.”
중첩마법은 하나의 마법 안에 여러 마법이 겹쳐있는 것이다. 제곱으로 마법의 수를 알 수 있다. 이중 중첩마법 안에 든 마법의 수는 4이고 삼중 중첩마법 안에 든 마법의 수는 아홉이다. 위력이 강한 만큼 어렵기에 할 줄 아는 마법사는 고위 마법사뿐이다. 바니는 기껏해야 삼중 중첩마법이 걸려 있겠거니 싶었다.
오르골 위에서 여러 마법진이 허공 위로 떠올랐다. 바니와 병사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리우스가 눈을 질끔 감았다.
“12중첩마법이다. 저 작은 오르골에 담긴 마법만 144개야.”
얼굴이 없는 듀라한과 마주하는 라이카는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하다가 지금에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라이카도 입을 벌렸다. 마법진들은 검시실을 가득 채웠다. 필레우스의 양손에 마나와 형상화된 펜이 나왔다. 그가 눈을 크게 뜨고 펜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곧 끝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필레우스가 하나의 마법진을 살피더니 양 펜을 가져다댔다. 양 펜에서 마나가 뿜어졌다. 갑자기 안겨 있던 사람들과 듀라한이 떨어졌다. 춤도 멈췄다. 마법진을 나타내던 빛이 잠시 꺼졌다. 듀라한이 검은 기운으로 만든 검을 쥐었다. 필레우스의 등 뒤에 검을 내리려고 들었다. 라이카가 막으려고 달렸다.
“피하십시오!”
갑자기 마법진의 푸른빛이 허공에 나타났다. 필레우스가 이마를 닦았다.
“어휴. 완전히 망가진 줄 알았네.”
마법을 고치는 데 집중하느라 라이카의 외침을 듣지 못하였다.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흔들고 허리도 흔들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 양팔도 리듬을 탔다. 그가 일어나서 자기목을 두들기고는 다시 양손에 마나로 된 펜을 움켜쥐었다.
그때마다 간혹 마법진의 빛이 사라졌다.
“피하십시오!”
그 찰나에 듀라한은 필레우스를 공격하려고 들었고 라이카는 조심하라고 외쳤다. 모두 무의미하였다. 듀라한이 한쪽 발을 세우고 발가락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발을 뒤로 들었다. 한 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라이카는 그런 듀라한의 허리를 잡고 돌았다.
마법진의 빛이 꺼질 때마다 바니와 마리우스는 통신 마법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
왕궁의 마법사들은 다급한 구조 요청을 받았다. 한 마법사가 왕궁의 정원을 달렸다. 한 노인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과 바닥에 닿을 듯한 긴 하얀 수염이 독보였다.
“그레고리 님. 마법사의 구조 요청이 왔습니다. 그런데 흑마법사가 소환한 듀라한이 나왔다는 내용은 알겠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그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구조 요청 내용이 담긴 봤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옥의 오르골? 어 흑!”
온 힘을 다해 그 종이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발로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마탑의 전(前) 원로 마법사인 그레고리는 ‘지옥의 오르골’ 사건의 충격으로 마탑에서 나왔다. 당시에 그도 수치스럽게 기저귀를 차야 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필레우스의 ‘화합의 오르골’를 ‘지옥의 오르골’이라고 칭하였다.
그레고리가 몸을 휘청거리며 쓰려지려고 하자 왕궁의 마법사가 그의 등을 손으로 받쳤다. 그는 당황스러워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대마법사님?”
“흠흠”
그는 헛기침하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기사와 마법사는?”
“이미 갔습니다.”
“어떤 마법사가 갔지?”
“크리스 님이 갔습니다.”
크리스는 그레고리의 첫 번째 제자였다. 그가 가슴 위에 손을 대고 숨을 내뱉었다.
“너는 어서 ‘지옥의 오르골’이라는 말을 전해라.”
“예?”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굳은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달렸다. 보안의 문제로 왕궁 안에서는 통신 마법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사라지고 그레고리가 옷소매를 올려 접었다. 이마와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걸어 나갔다.
***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각.
오러를 쓰는 기사는 마법 검시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갈색의 주근깨 마법사를 힐끔 내려다봤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크리스 마법사님”
“음악이 끝날 때까지요.”
크리스는 한쪽 다리를 떨었다. 아무리 내부 상황이 궁금해도 음악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그 순간 음악이 멈췄다.
“이제 들어가겠네.”
기사가 한 걸음을 내딛고 크리스가 팔을 들어서 그 앞을 막았다. 다시 음악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그놈은 가장 방심하고 있을 순간을 노리니까요.”
“같은 마탑의 마법사를 이리도 경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크리스가 말한 그놈은 ‘필레우스’였다. 기사는 마탑의 마법사들은 서로가 똘똘 뭉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마탑의 마법사는 한 명의 마탑 마법사가 당하면 개떼처럼 몰려오는 족속이었다. 질문에 그가 입을 다물고 시선을 앞에만 집중하였다. 다시 음악이 멈췄다.
“육십, 오십구, 오십팔”
그가 숫자를 셌다. 숫자는 계속 줄어만 갔다.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삼, 이, 일! 문을 여십시오.”
문을 열자, 라이카, 마리우스와 바니가 달려 나왔다. 그 뒤를 이어서 병사들이 빠져나왔다. 병사들이 도망가는 그들을 잡으려고 앞을 막았다.
“어서 길을 터!”
크리스가 마법을 걸자 병사들 사이에 벽이 생기더니 그들을 밀었다. 기사는 사방이 막힌 방벽에 갇혔다. 필레우스와 있던 사람들은 크리스의 방벽이 만들어 준 길로 달렸다. 기사는 검을 꺼내서 세로로 방벽을 벴다. 곧장 그의 앞에 서며 날카롭게 내려봤다. 위압감이 어마어마했으나 크리스는 담담했다.
“흑마법사와 관련될지도 모르는 용의자들이네. 어찌 탈주를 도운 것인지 설명해야 할거요.”
그가 머리를 헝클이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너희들은 그들이 화장실에서 나오면 조사실로 데려가.”
몇 시간 동안 지옥의 오르골에 잡혀 있었다면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저귀가 없다면 두 가지 길 뿐. 지리거나 참거나였다. 크리스는 그들을 달리게 해줌으로 존엄성을 지켜줬다.
“네.”
“나머지는 기사님, 나와 함께 검시실로 들어간다.”
크리스가 슬쩍 기사의 등을 밀었다. 기사가 근육질의 다리에 힘을 주고 뛰었다. 흑마법사와 관련된 사항은 마법사의 판단을 우선시하라는 명령만 아니었다면 바로 들어갔다.
“그만 좀 하게. 같은 마탑의 마법사가 듀라한과 고군분투했을 것인데 구하려고 하지 않다니 실망이네.”
크리스는 양팔을 돌리고 몇 번을 제자리에서 뛰었다.
“이제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듀라한이 있으니 당연한 말이네.”
“보시면 알겠죠.”
병사들이 듀라한이라는 말에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검시실로 들어갔다. 기사의 검에 붉은빛의 오러가 빛났다. 검시실 안에는 쪼그라든 갑옷과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이 펄렁이는 옷을 입은 듀라한이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서 손을 떨었다.
끼에 엑.
한 마법사가 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안돼. 우리 아직 친해지지 못했잖아. 이제 겨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끼에 엑.
듀라한이 역소환되어서 서서히 몸이 가루가 되어갔다. 역소환의 붉은 마법진이 지워지고 푸른 빛이 덧씌워졌다. 가루가 되었던 몸이 다시 돌아왔다.
“가지마. 우리는 우정을 쌓을 수 있어.”
끼에에엑!
목도 없는 듀라한이 하는 절규에 몇 명의 병사들이 귀를 막았다. 기사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크리스가 헛기침을 몇 번하고는 외쳤다.
“필레우스, 자네는 여기에 어쩐 일인가.”
광대 역할을 하는 배우가 인위적으로 내는 듯한 말투였다. 그 말에 고개를 든 필레우스가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크리스, 오랜만이에요!”
그가 크리스 앞에 서려고 다가갔다. 크리스는 당당하게 기사의 옆에 섰다.
“듀라한이 소환되었다는 소식에 왔지.”
“응? 아! 왕궁 마법사도 참으로 힘든 일이네요.”
“그렇지.”
크리스가 슬쩍 기사의 허리를 팔꿈치로 쳤다.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가 있으니 듀라한 문제는 안심이군. 이 기사님은 무려 오러를 쓸 수 있네.”
“오러? 진짜입니까?!”
필레우스가 세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크리스는 다섯 걸음 뒤로 걸었다. 다행히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오러를 쓸 줄 아는 기사 주변을 원형으로 돌았다. 머리부터 발까지 훑었다. 기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였다. 그는 엄연히 왕궁에서 폐하를 모시는 몸이다. 이렇게 광대 취급 받는 것은 모욕이었다.
“오러를 직접 보고 싶다며?”
“네.”
필레우스가 당차게 대답하며 두 주먹을 쥐었다. 눈빛에는 기대감이 대놓고 느껴졌다.
말을 하는 와중에도 돌아가려는 듀라한의 붉은 마법진이 계속 푸른색으로 변했다. 듀라한은 점점 몸이 줄어들었다. 크리스가 동정어린 눈빛으로 듀라한을 쳐다봤다. 듀라한이 거의 소멸하기 직전이었다.
“이게 무슨?!”
기사가 삿대질하며 외치려고 하는데 크리스가 귓속말하였다.
“여기서 비협조적으로 굴면 마탑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될 겁니다.”
크리스는 평소에 온화하고 예의가 바르기로 소문이 났다. 그런 평판과 다르게 지금은 살기가 담긴 마나가 뿜어졌다. 기사는 마탑과 왕궁이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가 검을 뽑고 녹색의 빛이 검을 감쌌다.
“이게 오러인가요?”
“맞습니다. 마법사님.”
“필레우스라고 불러주세요.”
필레우스의 시선이 오러에 꽂혔다. 크리스는 기척을 숨기고 허리와 다리를 굽히며 듀라한 앞에 섰다. 바닥에 종이와 펜을 뒀다.
“너도 알 것이다. 이대로라면 너는 저 마법사의 노리개가 될 것임을”
끼에엑.
크리스의 아주 작은 속삭임에 듀라한이 조심스럽게 소리를 냈다.
“너를 소환하는 마법진을 그린 흑마법사에 대해 아는 정보를 모조리 적어라.”
듀라한은 손목을 까닥거렸다. 그는 흑마법사에게 소환된 존재다. 흑마법사의 염원을 위해 오게 된 그가 흑마법사를 배신할 수 없었다.
“네가 나에게 협조한다면 역소환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마.”
듀라한은 가느다란 손뼈를 떨면서 펜을 잡았다. 그가 쓰러진 바닥에 있는 마법진은 필레우스의 푸른 마법진만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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