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필레우스의 정식 수업이 시작되는 날.
학생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교시 시간부터 8교시를 넘어서 저녁 8시까지
강의실을 열어놓기로 결정했다.
'마법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생들이 바글바글 거렸다. 참석률이 높은 듯싶었다. 졸업 필수 과목으로 선정되도록 요구한 보람이 느껴졌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미리 수업에 와줘서 정말 좋네요."
학생들의 종알거림이 잠잠해졌다. 아직 선생이 낯설겠지. 이 거리감은 수업을 진행할수록 줄어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학생들은 두 부류로 나눠졌다.
'졸업 후에 메리트가 되겠지. 마탑의 마법사에게 직접 배우는 거니까.'
'마탑의 마법사에게 배울 기회를 얻다니! 너무 운이 좋다.'
필레우스를 환영하는 학생들.
'갑자기 졸업 필수 과목이라니! 귀찮게 이게 무슨 짓이야?'
'잠이 자는 시간으로 여겨야겠다.'
의무 수업 자체가 번거롭고 귀찮은 학생들.
알베르토도 앉아 있었다. 특수반이라고만 했지 어느 시간대에 강의실로 오라고 하지 않은 탓이었다.
"오늘은 수업 첫날이니까 수업 진도 설명을 할 거예요. 그 후에 수업 맛보기를 짧게 할게요."
저번에는 무례한 학생들과 이타적이지 못한 학생들에게 반말을 갈겼지만!
이번에는 교사의 품위를 지킬 생각이다.
단상 앞에 선 그가 학생들을 차례차례 훑었다. 그가 분필을 손에 쥐었다. 칠판에 세모를 그렸다. 세모 안에 직선을 몇 개 그었다. 피라미드가 그려졌고 그 안에 A, B, C, D, E, F를 썼다.
"저는 학생들의 마법 지식수준은 A급에서 F 급으로 매길 겁니다. 그리고 최소 C 등급의 지식을 갖추도록 해드릴 거예요."
알베르토가 삐딱하게 등을 의자에 기대고는 물었다.
"전교생의 수준에 맞춰서 반을 나눠야 했던 게 맞지 않습니까? 잘하는 애들만 관리하겠다는 심보처럼 보이는데요?"
그가 필레우스를 향해서 비웃음을 날렸다. 회심의 일격이다. 모든 학생의 수준이 다르다. 그런데 전교생에게 같은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학생이 원하는 수업 시간에 언제든지 오라고? 수준 차이가 나서 제대로 배울 사람이 없을 거다. 어떤 사람은 너무 쉬워서. 어떤 사람은 너무 어려워서.
"물론이죠. 수업 맛보기에서 여러분의 수준을 시험해 볼 거예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목표는 여러분의 상향 평준화!"
필레우스가 단상 앞에서 주먹을 쥐고 천장으로 올렸다.
"여러분이 포기한다고 해도! 저는 여러분의 수준이 C급이 이상이 되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겠어요!"
강의실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먹을 내리고는 양 손바닥을 마주쳤다.
학생들은 보지 못하는 정교하고 미세한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어?"
학생들은 점점 눈이 감겼다. 고개를 떨구었다.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필레우스는 허공에 뜨고는 몸을 웅크렸다. 고양이의 식빵 자세를 만들고 흥얼거렸다.
골~ 골~ 골~ 골~
마법 유지에 집중하기 위해 요식 행위다. 물론 하지 않아도 마법 발동에 문제는 없다. 필레우스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애착 자세일 뿐이다.
***
"헉!"
알베르토는 눈을 떴다.
온통 어둠만 가득한 공간.
그의 앞에는 칠판과 칠판을 밝히는 불빛이 있다.
자신은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맞은 편에는 눈밑이 거뭇한....
"악! 덤벼!"
사내가 분명한 몸뚱어리다. 그런데 허벅지 위로 올라간 짧은 치마와 에이프릴은 뭐란 말인가! 게다가 가슴에는 뽕을 넣었는지 아주 컸다. 뽕이라고 믿고 싶었다. 출렁거리는 게 진짜 가슴은 아니겠지....
진짜 가슴일까? 알베르토는 사내가 신종 몬스터임을 확신하였다. 당당하게 그를 향해 주먹을 질렀다. 바른 자세의 레프트 잽이었다. 기사 학부에 있는 학생인 티가 났다.
알베르토의 주먹은 닿지 않았다. 사내의 주먹이 훨씬 빠르게 그의 얼굴을 때렸기 때문이다. 사실 사내의 주먹은 알베르토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그 주먹이 만들어낸 풍압은 대단하였다. 그 충격으로 뒤로 나자빠졌다.
"네가 특수반이라고......"
그의 눈은 곧 죽음을 앞둔 사신처럼 음습하였다. 그는 넘어진 알베르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내의 손을 잡자 일으켜줬다. 의자가 이동하더니 알베르토 뒤에 자리를 잡았다. 사내는 그를 살짝 밀어서 의자에 앉혔다.
"너도 참 불쌍하구나. 하필 악마 놈에게 잡히다니...."
"예?"
그가 몸을 돌리고 처진 어깨를 칠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마치 복서가 경기 중에 쉬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앞으로 너를 가르칠 선생이다. 이름은 안젤로라고 하지."
"예?"
알베르토는 머리가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필레우스는 마탑의 출신이면서 비바 아카데미에 고용된 교사다. 그런데 왜 처음 본 사내가 자기를 가르친다고 할까?
"담배가 당기는데 여기는 정신세계라서 필 수도 없네."
"정신세계요?"
"그래. 실제 세계가 아니라 상상으로 구축한 세계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군요."
"실제 1시간이 이 정신세계에서는 10시간이다."
"예?"
"'일반'반은 정신세계에서 5시간을 버티지만 '특수'반 중에서 행동거지 똑바로 못한 놈들은 10시간이다."
알베르토는 그 선생이 자기를 놀리려는 거라고 확신했다. 정신세계 마법이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선생님! 환영 마법으로 저를 놀리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어요."
그가 고개를 위로 쳐들고 호탕하게 외쳤다. 그 어떤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젤로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그따위로 굴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다른 학생들도 배정된 선생들과 있겠지."
안젤로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알베르토는 몸에 오한이 들고 떨렸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숨을 쉬는 순간이 마지막일까 봐서였다.
"이 살기가 환영이라고 믿지는 않겠지."
알베르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로가 알베르토 옆에 시선을 뒀다. 갑자기 책상 하나가 나타났다. 그 위에 산처럼 쌓인 종이들이 있었다. 그가 턱짓으로 그것들을 가리켰다.
"풀어라."
"예?"
알베르토가 눈을 크게 뜨며 종이들과 안젤로를 번갈아가면서 봤다.
"풀라고"
그 종이들은 알베르토가 풀어야 할 시험지들이었다.
"오늘은 첫날이라서 5시간만 있다가 끝날 거니까."
"전부 모르면요?"
"어차피 전부 모른다고 찍어도 오늘의 수업은 5시간 고정이야. 다음 수업부터는 10시간이고."
수업 시간은 1시간이다. 그런데 왜 자꾸 10시간을 운운하는 것일까?
정신세계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 왜 진실처럼 느껴질까?
점점 다리가 조금씩 떨렸다.
그의 쇄골과 팔, 목 등으로 문신이 그려졌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가 알베르토를 덮쳤다. 알베르토는 숨을 조이는 통증을 느꼈다.
"헉!"
"아는 것도 모르는 척을 한다던가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정신세계인데도 고통스럽다. 알베르토는 납작 엎드려야 한다. 안젤로는 상상 이상의 강자였으니까. 그는 책상 위에 놓인 펜을 잡았다. 시험지 한 장이 그의 앞으로 차분하게 내려왔다.
정신세계에 머문지 50분이 되었다.
애옹~ 애옹~
공간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시험감독관처럼 알베르토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안젤로가 칠판 앞의 의자에 앉았다.
"10분 쉬는 시간이다. 저 울음 소리가 다시 들리면 다시 시작하는 거야."
몸을 숙이고 자기 머리를 헝클었다.
무릎 위만 짧은 치마.
치마 아래에는 신체에는 털들이 가득하였다.
"젠장! 왜 하필 내가 그 악마한테 걸려서!"
안젤로의 풍만한 가슴이 흔들렸다. 뽕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소년의 마음에 엄습했다.
"이 망할 가슴 좀 떼 달라고!"
짧은 메이드 치마를 입은 건장한 사내가 끝이 없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절규하였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욕들이 나왔다.
"이런 삐--- 삐--- 삐---"
알베르토는 그의 욕을 들을 수 없었다. 욕이 '삐'라는 소리로만 들렸다. 필레우스가 학생들이 나쁜 언어를 배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걸어 놓은 마법이었다.
애옹~ 애옹~
쉬는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울음이다.
비극적인 한 사내의 삶을 본 알베르토는 목을 숙였다.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도 저렇게 될까 무서웠다. 현실 도피가 하고 싶을 지경이다. 약간만 떨리던 다리가 아주 미친듯이 진동하였다.
알베르토는 정신세계에서 5시간을 보냈다. '안젤로'라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제3의 성별을 지닌 듯한 괴물과 함께였다. 살아오면서 가장 최악의 시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
알베르토는 눈을 떴다. 그들이 있던 교실이다. 다른 학생들도 눈을 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현실의 시간은 정확하게 1교시가 끝난 시간이었다.
필레우스가 박수 치며 외쳤다.
"오늘은 맛보기 및 수준 평가만 했으니까. 다음에 진짜 수업을 하도록 하자!"
알베르토는 인사도 하지 않고 달려가려고 했다.
"인사는 예의의 기본이죠. 특수반에 편입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알베르토가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강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특수반의 효과가 나오는 듯해서 뿌듯하네요. 일주일에 3회 1시간 수업이니까 기억해둬요!"
필레우스는 두 팔을 들고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른 학생들도 직각으로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각자가 인사말을 말하며 강의실을 나갔다. 복도에서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어느 지점부터는 아예 뛰었다. 그들의 맨 앞에는 알베르토가 있었다.
***
비바 아카데미의 교무실에 들어가면 교사들의 개인 사무실이 있다. 교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평소에는 각자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마탑의 마법사인 필레우스는 교사들에게도 아주 따끈한 주제였다.
공강 시간인 교사 몇 명이 소파에 앉았다. 각자의 손에는 차가 담긴 잔을 쥐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번에 새로 온 보건 선생님이었다.
"안젤라 선생님. 이곳에 오신지 며칠이 지났는데 조금 적응이 되셨나요?"
우아하게 다리를 꼰 은발의 여인이 웃었다. 늘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모두가 잘 해주신 덕분에 이제 좀 적응이 되는 거 같아요."
그녀에게 질문한 교사는 얼굴을 붉혔다.
같은 여인이 봐도 너무 아름다웠다.
미모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여인.
그런 미녀가 망해가는 아카데미에 취업한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뭐.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친해지면서 천천히 물어봐야겠다.
"안젤라 선생님은 여기가 아니라 어디에 있더라도 잘 지냈을 거예요."
그녀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호호호. 그렇게 칭찬해주시니까 기분이 너무 좋네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벌컥 문이 열렸다. 학생들이 몰려들어왔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뱉어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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