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23화
학생들은 지옥을 경험했다. 필레우스가 만든 정신 마법 덕분이다. 이 마법으로 생성된 정신세계에서는 1시간이 5시간으로 늘어나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 지옥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10시간 동안 공부를 해야 하는 '특수'반이 있다. 특수반에 걸린 알베르토는 난이도 최고의 지옥을 경험한 것과 같았다. 경험한 적 없는 신종 마법은 학생들에게 공포를 선사해줬다.
그는 교사의 목을 끌기 위해 손을 뻗었다.
"마탑의 마법사가 아니라 흑마법사가 분명해요! 어떻게 그딴 작자가 마탑 소속일 수 있어요?!"
그 교사는 안젤라가 아니었다. 안젤라와 대화를 나누던 교사였다. 두 손이 그 교사에게 가는 순간, 알베르토의 몸이 굳었다.
"학생의 도리는 선생님을 존경하며 배움에 충실하는 거죠."
안젤라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알베르토 목 바로 앞에 얼음으로 된 송곳이 있었다. 조금만 더 다가왔다면 목에 찔렸을지 모를 거리다. 그 모습에 교사는 팔의 털이 바짝 세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위험을 느낀 고양이처럼 말이다. 잘못하면 학생에게 큰일이 벌어질 뻔하였다. 그 위험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위협을 가하였다. 사람을 해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무서웠다. 아까는 안젤라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안젤라를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외모를 지녔다고 느꼈다. 아무리 아름다워서 상대가 싸이코패스인 것을 알게 된 반응과 비슷하다
"겨우 맛보기 수업으로 이리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어요."
학생들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의 얼굴 근육은 굳어졌다. 맛보기조차 지옥인데 실제 수업은 얼마나 지옥일까? 그나마 오늘은 나은 편이었다. 마법 지식수준을 알기 위한 테스트를 했기 때문이다.
안젤라가 학생들의 안색을 살피고 말했다.
"사회는 이것보다 훨씬 고달프답니다."
안젤라가 한쪽 눈으로 윙크하였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발언이었다. 그녀가 박수를 한 번 쳤다.
"곧 있으면 수업 시간이잖아요. 어서 다음 수업을 준비하세요!"
그들 머리 위에 송곳처럼 날카로운 얼음들이 있었다. 아래로 떨어지면 몰살당할 것만 같았다. 학생들은 쭈뼛대며 교무실을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수업 끝나고 정식으로 말하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알베르토가 손가락으로 그녀에게 삿대질하고는 마지막으로 교무실을 나갔다. 마치 주인공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악당의 허세처럼 느껴졌다.
"그래. 다음에 와. 아프면 언제든 보건실로 오렴."
안젤라는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건넸다.
***
점심시간이 되고 학생들은 네 부류로 나누어졌다.
아카데미 식당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건 지옥이야. 지옥이라고."
"시간이 가질 않는다니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시간을 더 늘려."
필레우스의 수업을 경험하여 살이 쭉 빠진 학생들.
"1시간 동안 5시간의 수업을 경험한다고? 그건 새로운 형식의 고문이야?"
"왜 하필 우리 아카데미에서 고문 수업을 하냐고!"
소문을 듣고 다리를 떨면서 공포를 느끼는 학생들.
어두운 공간에 오직 칠판, 책상, 선생님과 자신만 있다.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밖을 볼 수 없다. 상상만으로 무섭다.
'애들이 왜 이렇게 난리지?'
'자세히 물어보고 싶은데... 친구가 없다.'
소문을 듣지 못한 아웃사이더들.
"전부 과장이야. 그게 실제로 가능했으면 마탑뿐 아니라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알려졌을걸."
"맞아. 우리 삼촌도 마법사인데 그런 마법이 있다고 하신 적 없었어."
과장된 소문으로 치부하는 학생들.
다행히 아직까지 수업을 자체적으로 공강 처리하겠다는 학생들은 없었다.
***
점심시간이 되었다.
필레우스는 회의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고롱~ 고롱~ 고롱~
눈을 감고 고양이 자세로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은 항의하기 위해 왔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야, 저기 봐."
"젠장. 나중에 오자."
지금처럼 잠자는 필레우스를 확인하고는 바로 집무실 문을 닫았다. 학생들의 머리에는 한 가지 생각이 엄습하였다.
'수업을 없애달라고 해서 기분 나쁘게 만들면 안 돼. 5시간 수업이 10시간으로 늘면 어떡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교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수업을 들었을 뿐이다. 왜 학생들이 살려달라고 하는 걸까? 오늘 하루에만 대부분의 아카데미 학생들이 교무실에 방문한 것 같았다. 의문이 들었으나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들도 마탑 출신의 마법사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마탑 출신의 마법사는 남다른 위치에 있었다. 마탑 출신에게는 귀족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기 2분 전에 필레우스가 눈을 떴다. 강의실은 집무실과 좀 멀었다. 적어도 2분 안에 가려면 뛰어야 한다. 집무실 회의 테이블에서 폴짝하고 내렸다. 뛸 때는 짐승처럼 네 발로 뛰더니 착지할 때는 두발로 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교사들은 어떤 원리로 그 몸짓이 가능했는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손을 털고 목을 돌렸다. 발목도 돌렸다. 몸풀기를 1분 정도 하였다.
'강화'
필레우스는 신체에 고루고루 강화 마법을 걸었다. 달렸다. 강의실에 다가갈수록 웅성거림이 크게 들렸다.
"오지 않으려고 하나 봐."
"선생님이 늦어서 간 거니까 우리 탓은 아니겠지."
딱! 정각이 되기 2초 전에 강의실의 문이 열렸다. 학생들의 들썩이던 엉덩이가 차분히 아래로 내려갔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생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필레우스는 눈웃음을 지었고 한 손을 흔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하마터면 2초 늦을뻔했네요. 미안해요."
학생들은 그가 얄밉게 정확한 시간에 들어온 게 너무 싫었다. 필레우스가 뱉어낸 사과의 말조차 짜증이 났다.
"앞으로는 최대한 강의실에서 여러분을 기다리도록 할게요."
최악의 말까지 서슴없이 꺼냈다. 굳이 쉬는 시간에도 강의실에 있겠다는 이유가 뭘까? 그들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감시하기 위함일까? 손가락끼리 마주쳐서 소리를 냈다.
탁!
학생들은 눈이 감겼고 필레우스의 정신 마법에 갇혔다. 필레우스의 몸이 단상 위로 떴다. 그는 고양이의 식빵 자세를 취하였다. 필레우스의 집중력을 높이는 자세였다.
골~ 골~ 골~ 골~
짐승이 '골~골~'하는 소리가 강의실에 퍼졌다.
필레우스의 정신 마법을 경험한 학생들의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실제 시간 1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안젤라를 무서운 면모를 보고 공포를 느낀 교사. 그녀의 이름은 '제이미'다. 갈색 머리카락에 평범한 외모의 그녀는 궁금했다.
제이미는 도대체 마탑의 마법사가 어떤 수업을 하길래 아이들이 두려워하나 싶었다.
필레우스가 있는 강의실 문을 살짝 열었다. 학생들은 예외 없이 전부 잠이 들었다.
골~ 골~ 골~ 골~
정체 모를 짐승이 울어댔다. 그러다가 울음이 끊어졌다.
짐승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목을 꺾었다.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치다가 멈췄다. 짐승이 아니라 마탑의 마법사인 필레우스였다. 날카롭게 세워진 눈동자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필레우스의 두발이 바닥에 닿았다. 그가 강의실 문을 열고 그녀 앞에 다가왔다. 마치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사람처럼 온몸을 떨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그가 손을 내밀었다. 아까의 필레우스와 달랐다. 맹수의 눈빛이 아닌 '순진한' 눈망울이었다. 제이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괜, 괜찮습니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필레우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느 과목을 가르치시나요?"
"정령 소환을 가르쳐요."
정령 소환.
'정령계'는 정령들이 사는 세계이다. 정령 소환은 정령계에서 정령을 소환하는 거다.
정령과 정식으로 계약을 하는 일은 십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정령들은 인간과 계약에서 묶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반면에 인간들에게 소환되는 건 좋아했다.
정령 계약은 정령들에게 직업이 생겨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직장 상사은 계약한 인간이다. 반면에 정령 소환술은 단기간에 잠시 하면 되는 일이었다. 정령들에게 일종의 해외여행과 같은 거였다.
"아마 온몸이 떨리고 힘이 빠졌을 거예요."
"맞아요."
"이상하게 정령들은 저를 싫어하더라고요. 정령 소환사들은 정령과 교감하는 재능이 출중한 편이죠. 아마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것으로 이마와 얼굴의 식은땀을 닦았다.
"정령들이 싫어한다고요?"
정령들이 사람을 싫어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해외여행을 무려 공짜로 시켜준다. 누구라도 나에게 공짜 여행을 시켜주면 은인이다. 정령들에게 인간의 선악은 중요치 않다.
마왕이 강림해서 소환해도 '룰루랄라~'라는 애들이 정령이다.
그녀는 호기심을 느꼈다.
"한 번 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녀가 정령 소환을 돕는 마석이 있는 반지에 마나를 집어넣었다. 바닥에 기하학적인 무늬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 위에서 귀여운 토끼가 올라오려고 들었다. 눈의 정령이었다. 몸이 반쯤 올라오다가 멈췄다.
"어?"
눈의 정령이 필레우스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제이미를 쳐다봤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필레우스를 봤다. 그 행위를 몇 번 반복하였다. 눈매가 뾰족해지고는 입을 우물거렸다.
"앗!"
그녀가 놀래하며 뺨을 손으로 닦았다.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튓!
눈의 정령이 제이미의 뺨에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쌍욕으로 추정되는 소리를 토해냈다. 서서히 눈의 정령이 몸을 아래로 내려갔다. 완전히 몸이 사라지기 전이었다.
끼잉!
눈의 정령은 기다린 귀를 잡히고 말았다. 그녀가 필레우스의 팔을 잡았다.
"이게 무슨 짓?"
역소환하려는 정령을 강제적으로 소환한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너도 나도 정령을 노예로 삼았겠지.
끼잉! 끼이잉!
눈의 정령이 울부짖었다. 푸른색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제이미가 필레우스의 팔을 잡았다.
"정령을 놓으세요!"
그는 정령을 놓았다. 정령이 바닥에 착지하였다. 소환되었던 그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토끼 모습의 정령이 그곳의 바닥을 긁어댔다. 토끼는 제이미의 품으로 폴짝 뛰었다. 그녀가 자신을 안자 품에 더 파고 들었다. 공포를 느끼는 게 확실하다.
그녀는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필레우스는 듀라한을 노예처럼 부릴 줄 아는 마법사였다. 듀라한이 정령으로 바뀐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듀라한은 흑마법사가 소환하는 일종의 정령이었으니까. 벤시도 집에 못가고 잡혀 있지 않은가. 하물며 망해가는 아카데미의 교사가 소환한 정령이다. 그 정도는 아주 쉬웠다.
"정령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아쉽네요."
다시 바닥에 빛을 냈다. 정령을 소환했던 그림이었다. 정령은 제이미의 품에서 뛰어내려서 그 위에 섰다. 점점 모습이 사라졌다.
"돌아가서 내가 너희와 좋은 사이가 되고 싶다고 전해줘."
고개를 끄덕이고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전혀 정령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였다. 제이미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정령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필레우스의 행동는 폭력적이었다.
"그게 상대와 친해지려는 사람의 태도인가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망가 버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가 두 어깨를 으쓱하며 올렸다가 내렸다.
"예전에 약간의 다툼으로 정령들이 저를 싫어하더라고요."
필레우스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약간의 다툼' 전에도 정령들이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필레우스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다. 여기서 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성을 차리고 보면 그는 마탑의 마법사다. 그녀가 화를 낼 대상이 아니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