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불사자]
[레벨업]
[인벤토리]
내 앞에 제시된 세 개의 선택지.
그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난 저 선택지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건 내가 게임을 클리어하며 얻게 될 보상이다.
마녀의 말을 빌려서 설명하면 내 심상 영역이 완성되며 얻을 능력이라고 해야겠지.
“......”
각 능력이 어떤 능력인진 헷갈리지 않아서 좋네.
불사자, 레벨업, 인벤토리.
다 이름을 보기만 해도 대충 어떤 능력인지 감이 오잖아.
불사자는 죽지 않는 목숨이겠고, 레벨업은 게임의 그 레벨업 시스템, 인벤토리는 말 그대로 인벤토리겠지.
그렇다면 어떤 능력을 고르는 게 가장 좋을까?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고르고 싶지만, 이 모든 걸 전부 얻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일단 인벤토리는 아쉽지만 탈락이다.
편의성이 좋긴 하지만, 지금 당장 몽마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테니 말이다.
남은 두 개의 능력 중에서 직관적으로 좋아 보이는 건 역시 불사자긴 하다.
무려 불사다.
죽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능력이니 말이다.
당장 당면한 몽마와의 싸움도 다치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큰 도움이 되겠지.
솔직히, 이 세계를 여행한다는 내 목적만 생각한다면 불사의 힘을 얻는 게 맞다.
죽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이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불사의 힘을 손에 넣는 게 최선일까?
불사자가 된다면 죽진 않을 것이다.
그래, 죽지만 않을 것이다.
단순히 죽지 않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이 이 세상엔 수두룩하다.
당장 이 던전 안에서만 해도 마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목숨이 여러 개여도 이기기 힘든 괴물들이 넘쳐났는데, 진짜 괴물들을 만나게 되면 어떻겠어?
애초에 다키스트 썬에서도 레벨업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지역을 밀기도 어려웠는데, 현실은 어떻겠어?
그러니 나의 선택은, [불사자]가 아니라 [레벨 업]이다.
단순히 죽지만 않을 거였으면 계속 도살장에서 살아도 되는 거니까.
그렇게 결심을 내리고 눈앞의 선택지를 선택하니.
“......”
난 완전히 꿈에서 깨어났다.
꿈속의 세계에서, 다시 현실로.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으로.
그 지하 감옥을 부술 수 있는 장소로.
“빌어먹을, 오러도 마법도 쓸 수 없는 꼬맹이한테 내가 밀렸다고? 말도 안 돼!”
태양이 떠오르며 꿈에서 쫓겨난 몽마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지 잔뜩 욕설을 내뱉으며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고 있었다.
마녀는 눈을 뜨고 있긴 하지만 어째선지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 같고.
꿈에서 쫓겨났다는 게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인 걸까?
조금 전까지 몽마의 몸을 감싸고 있던 회색 안개는 어디론가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꿈속에 있어서 검이 통하지 않던 몽마는 지금.
“...흡!”
그 판단이 서자마자 나는 곧장 아직 마녀의 마법이 걸려 있는 검을 붙잡고 몽마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들었다.
다시금 몽마의 목을 향해 내 검이 날아들었고, 몽마의 목을 내 검이 베기 직전.
“이,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나를 꿈속에서 나왔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멍청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딴 어설픈 공격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윽!!”
잔뜩 격분한 몽마의 반격에 의해, 나는 배를 얻어맞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던 걸까?
단번에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져, 제대로 숨을 쉬기도 힘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뿐.
그러한 내 모습을 보며 몽마는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착각하지 마라, 꿈덩어리. 우리가 꿈속에 있는 건, 너희와 싸우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야. 너희와 싸울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지. 음식을 준비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겁쟁이라 하진 않잖아. 안 그래?”
내게 소리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상처 입은 자신의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변명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저 몽마가 계속 말하는 걸 들을 수도 있겠지만, 저 녀석이 나를 깔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녀석을 긁을 말을 찾아내 던져본다.
“...싸우는 게 두렵지 않다면서 왜 이렇게 말이 길까? 우릴 진짜 음식으로 봤다면 이렇게 말도 안 걸었을 텐데. 왜, 식당으로 비유하자면 밥 먹다가 뜨거운 국물에 손가락을 다쳤다고 음식에 소리치는 손님은 그냥 미친놈이잖아?”
“이 빌어먹을 꿈덩어리가!”
식당으로 뭔가 비유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음식 이야기는 저쪽이 먼저 꺼냈으니까.
내 비유가 몽마를 더욱 격분하게 하는 데 성공했는지, 몽마는 자기 손으로 직접 내 숨통을 끊고자 성큼성큼 나와의 거리를 좁혔고.
난 그 순간.
[김요한]
-체력:10(+6)
-근력:5(+3)
-마력:0
-민첩:2
-집중력:7
[정말 이대로 결정하시겠습니까?]
“...레벨업.”
미뤄두고 있던 레벨업을 단번에 끝마치며 그대로 몽마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었다.
체력을 10까지 올리며 순식간에 완전하게 회복한 몸은 5까지 올린 근력 스탯의 힘을 온전히 끌어내 단번에 몽마의 몸을 검으로 꿰뚫었다.
완전히 다 죽어가던 사람이 순식간에 회복해 자신에게 반격한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지 몽마는 믿을 수 없단 목소리를 내었다.
“이게, 무슨. 어떻게...”
“레벨업. 병신아. 원래 레벨업하면 풀피가 되는 게 국룰이야.”
“그게, 무슨...”
“튜토리얼 몹이 그게 뭔 소린지 알 필요 없고. 그냥 죽어.”
죽어가는 몽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려줄 의리는 없으니, 그대로 검을 휘둘러 몽마의 목을 베어낸다.
그러자 몽마의 몸이 회색의 안개로 변해 스르륵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이걸로 끝인 걸까?
일단, 더 이상 몽마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서둘러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마녀에게 다가가 마녀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심상 영역을 장악당한 후유증이야.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야.”
“또 그런다. 몽마는 잡았으니까, 이제 던전만 부수면 될 거예요.”
“몽마를? 네가 어떻게...”
“한 대 맞아서 방심시키고, 레벨업해서 회복한 뒤에 죽였어요. 지금까지 도살장에서 몬스터들 도축한 경험치가 그대로 쌓여있어서, 다 털어 넣었죠.”
던전에서 몬스터를 죽인 것뿐만이 아니라, 도살장에서 몬스터들을 도축한 경험치까지 반영된 덕분에 체력을 10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근력에 투자해서 근력을 먼저 10까지 찍는 방법도 생각해봤는데, 일단 체력부터 10을 찍어두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녀에게 내 성과를 뽐내듯 설명하니, 마녀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칭찬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멋지네. 정말 잘해줬구나.”
“흐흐흐. 그렇죠?”
“이번에는 이상하게 웃지도 않았고.”
“뭐래요. 진짜.”
농담할 여유가 있는 걸 보면 몸 상태가 다 회복된 거 같긴 하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마녀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녀의 몸을 살피며 슬쩍 던전의 심장을 바라본다.
“그럼. 이제 저걸 부수는 것만 남은 건가요?”
“그렇지. 저걸 부수면 이제 던전에서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전에 잠시만 기다려볼래?”
“뭘 하려고요?”
“...던전은 미믹이 변화하여 생겨난 괴물이야. 즉, 미믹처럼 중심부에 쓸 만한 아이템을 보관해두는 경우가 있지.”
“저 안에요?”
아무리 봐도 던전의 심장은 붉은빛 수정처럼 생겼을 뿐인데, 저 안에 보물이 있다고?
마녀의 설명에 내가 놀라워하자, 마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 보물을 중심으로 코어를 만든 거여서 코어를 파괴하면 보물도 같이 파괴되지만, 마법적 처리를 거치면 보물을 먼저 꺼낼 수 있어.”
“오...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네요.”
“그렇지.”
그래, 던전을 깨면 클리어 보상도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녀가 코어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 진행하는 동안, 나는 딱히 할 것도 없겠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상태창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다.
[김요한]
-체력:10
-근력:5
-마력:0
-민첩:2
-집중력:7
내가 알고 있는 다키스트 썬의 상태창 그 자체다.
그렇다면 상태창에 적용되는 능력도 내가 알고 있는 그것과 같겠지.
다키스트 썬에 존재하던 상태창 조작법을 떠올리며 이리저리 상태창을 만지다 보니, 상태창에 표기되는 표시가 바뀐다.
[김요한]
-체력:기초적인 전사의 체력이다
-근력:평범한 일반인의 근력이다
-마력:비루하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다.
-민첩:일반인 기준으로도 부족하다.
-집중력:평범한 일반인의 집중력이다.
맞아, 스텟을 이렇게 판타지스럽게 표현하는 기능이 있었지?
아마 스텟 10 단위로 표현이 바뀌었던 것 같은데, 유일하게 일반인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오로지 체력 뿐이다.
마력은 뭐, 처음부터 갖고 있는 걸 기대도 안 했고.
“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이 상태창이 내 그 심상 영역인가 하는 것의 효과인 걸까?
그렇다면 내 심상 영역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이제 나도 오러를 뽑을 수 있을까?
“으음...”
검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은 채로 오러를 뽑아내려 애써 보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끙끙거리며 검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마녀가 작업을 잠시 멈추고 내게 말을 걸어온다.
“...뭐 하는 거니?”
“심상 영역을 완성했잖아요, 저. 그래서 오러 좀 뽑아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오러를 뽑아보려고 한다고?”
그러한 내 대답에 마녀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상 영역을 완성했으면, 자연스럽게 오러를 뽑는 방법도 깨달을 텐데?”
“네? 진짜로요?”
“그래. 애초에 오러를 뽑을 수 없으면 심상 영역을 완성하지 못한 거야.”
“어... 근데, 전 왜 못 뽑는 거죠?”
“그건...”
마녀조차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불평했다.
“에휴. 뭐, 마력이 없어서 그런가 보죠. 제가 이세계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아냐. 오러와 마력은 상관없어.”
“그럼, 제가 왜 오러를 못 뽑는 건데요?”
“그건... 설마 하지만. 하지만, 이건... 그렇지만. 이것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기도 하고...”
“...?”
그런데 어째 마녀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떠올린 것처럼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무언갈 고찰하는 모습이, 기존 학설에 완전하게 반대되는 이론을 떠올린 학자같다.
그러한 마녀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고 가만히 마녀를 바라보니, 마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에게도 당혹스러운 말이었다.
“아무래도 요한. 네 심상 영역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닌 것 같아.”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 심상 영역이 완성되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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