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미넌스

“아, 저기 보이는 저거 맞죠? 저 오두막?”
“그래. 다 도착했네.”
“어우. 이거, 손에서 놓칠 거 같은데...”
손에 쥐고 있던 짝돌이 손에서 놓칠 정도로 요동칠 즈음, 나와 마녀는 마침내 동쪽으로 향하는 통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통로라 마녀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정도로 안개의 숲의 모습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음울하게 일렁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이곳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걸 알아볼 수 있는 건 숲을 바라보며 덩그러니 놓인 다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 하나였다.
“...뭔가 이상한데.”
그런데, 그렇게 오두막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은 마녀에게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 것 같다.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마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녀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래요? 뭐가 이상한데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곧 통로가 열리는데 아무도 없다고?”
“어, 그러고 보니까...?”
마녀의 말대로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 주위엔 그 누구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동쪽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면,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보이는 게 정상일 텐데 말이다.
통로가 유명하지 않다기엔 당장 마녀가 이곳을 알게 된 것도, 노예로 팔려올 때 이용하면서 위치를 알게 된 거니 말이다.
“왜 아무도 없는 거죠?”
“...지금부터 살펴봐야지.”
조심스럽게 오두막과 그 주위를 살펴보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나와 마녀가 찾을 수 있던 건, 여러 사람이 밟아서 짓눌린 흔적뿐이었다.
“여기 사람들이 있었던 건 분명한데 말이죠. 최근에 떠난 걸까요?”
“음...”
“어라? 이건?”
그렇게 주위를 수색하던 나와 마녀의 눈에, 바닥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조각을 들어 올려 보니, 단단한 금속의 감촉이 느껴진다.
“철 조각? 어디서 떨어진 건가?”
“......”
“어라? 주위에...”
철 조각을 발견하고 좀 더 주위를 살펴보니, 무언가 금속 덩어리가 부서진 듯한 조각들이 잔뜩 보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누군가 여기서 싸웠던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철 조각의 출처를 살피고 있으니, 마녀는 이 철 조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챈 걸까?
마녀는 한숨을 내쉬며 상황이 좋지 않다는 듯 혀를 찼다.
“...쯧.”
“왜요. 뭔가 알아냈어요?”
“대충. 여기서 꽤 큰 싸움이 있던 거 같아. 아마 몬스터들이 습격해온 것 같은데.”
“몬스터요?”
“그래.”
몬스터가 습격해온 흔적이라고?
그렇다고 하기엔 주변에 핏자국 같은 것도 없고 너무 깨끗한데 말이지.
무언가 마녀가 내게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걸 물어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 직후, 숲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안개가...”
“타이밍 좋네.”
“어, 그냥 가도 괜찮아요? 뭔가 좀 위험해 보이는데. 지금...”
아무리 봐도 지금 저 통로로 들어가는 건 위험해 보인다.
왜 사람들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겠고, 저 철조각들을 남긴 범인이 근처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지금 저 통로로 들어가야 하나?
적어도,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알고 나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마녀에게 걱정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응. 괜찮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널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마녀씨?”
“지금이 아니면 통로가 닫힐 수도 있어. 약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해.”
역시, 무언가 이상하다.
나에게 숨기려는 게 반드시 있다.
하지만, 마녀가 지금 갑자기 왜?
그런 걸 지금 고찰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기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마녀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빨리 가죠.”
“가기 전에, 잠깐 챙겨야 할 게 있어서.”
“뭘요?”
“짝돌의 반쪽. 짝돌은 서로 합쳐지면 다른 짝돌을 향해 사라지거든. 그걸 응용하면 일종의 탈출 장치로 사용할 수 있어.”
“오, 진짜요?”
“이런 데에 짝돌이 놓여 있는 것도 다 그래서야. 안전지대를 향해 탈출할 때 쓰란 뜻이지.”
“오.”
“자, 한 짝 받아. 위험해지면 두 돌을 하나로 합치면 돼.”
“음. 이동 거리는 어느 정도 돼요?”
“이 숲의 절반쯤. 꽤 길지?”
으음, 이렇게 되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그냥 들어가는 건 아니니 괜찮으려나?
짝돌을 챙기고선 나를 기다리지 않고 숲으로 발을 내딛는 마녀의 뒤를 따라 서둘러 안개가 걷힌 숲속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의외로 평범하네요? 뭔가 뒤틀려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재앙이면 몰라도, 안개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 안개에 휩싸인 지역은 비교적 원래 모습을 유지하는 편이야.”
“다른 재앙들은 달라요?”
“다르지. 미치광이 왕을 빼면, 재앙이 점령한 땅은 대부분 원래 모습의 형체조차 남지 않고 뒤바뀌는 경우가 많아. 엘프들의 숲은 이젠 영원히 얼어붙은 땅이 되었을 정도니까.”
“엘프들도 있어요? 여기에?”
“이젠 얼마 안 남긴 했어. 근데, 어떻게 엘프란 이름은 아네?”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이름이어서요. 여기에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엘프가 있으면 드워프도?”
“물론이지.”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도 엘프와 드워프가 있다니 신기하네.
그럼 둘이 서로 앙숙 관계인 것도 같으려나?
그런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며 숲속을 나아가고 있으니, 저 앞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어두운 숲속에서도 희미한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전신 갑주를 입은 남자가 보인다.
전신 갑주를 입고 바닥에 대검을 꽂아 넣고 무언갈 기다리는 기사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멋들어진 기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본능적으로 내게 불안감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을 길에서 누군갈 기다리고 있는 기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면 그 기사는 높은 확률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마녀씨. 저 기사는.”
“추격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네.”
“어쩌죠? 싸워요? 아니면 도망쳐요?”
한눈에 봐도 강해 보이는데, 무사히 돌파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길이 여기밖에 없는데 도망친다고 해도 그 뒤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역시, 어떻게든 저 기사를 돌파해야 하는데.
도망칠지, 아니면 기사와 싸울지 고민하는 사이 기사도 나와 마녀를 눈치챈 듯 검을 뽑아 천천히 이쪽으로 발을 옮기며 입을 연다.
“왔군. 프로미넌스.”
“...스틸하트. 아니, 레온.”
우릴 쫓아온 기사와 이미 안면이 있던 걸까?
마녀의 이름을 부른 기사의 목소리에 마녀는 놀랍다는 듯 기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한 마녀의 중얼거림에도 기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신이 든 검에 강렬한 검기를 덧씌울 뿐이었다.
마치 뜨겁게 단련되는 붉은 강철을 덧씌운 듯한 기사의 검기.
과연, 나와 마녀가 저 기사를 무사히 이길 수 있을까?
“...저 사람, 이길 수 있을까요?”
나도 모르게 그러한 의문이 입 밖으로 나오지만, 그에 대한 마녀의 대답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괜찮아. 넌 내가 지켜줄 테니까.”
내가 마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마녀가 내 손에 무언가를 억지로 쥐여 준다.
“최대한 멀리, 멀리 도망치렴. 시간은 내가 끌게.”
“잠깐, 마녀씨...!”
“그러니까 부디, 내 동생에게 태양을 보여줘.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마녀의 말에 무언가 대답하기도 전에 손에 쥐어진 돌멩이에서 뜨거운 불꽃이 느껴진다.
번쩍, 환한 빛이 내 눈 앞을 가렸다 다시 시야가 돌아온다.
“마녀씨?!”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땐, 주위에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숲속이었다.
서둘러 주위를 살피는 사이, 손안에서 하나로 달라붙은 짝돌의 존재감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려준다.
마녀가 나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짝돌을 사용한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곧장 등 뒤에서 마녀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불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마녀씨...”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지만, 저 불꽃을 보면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마녀가 있는 곳은 상당히 멀어 보인다.
어쩌면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는 것보다 숲을 빠져나가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내게 남아 있는 짝돌까지 사용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숲을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등 뒤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 내 발을 자꾸만 붙잡는다.
“......”
나를 붙잡기 위한 불꽃이 아닌 걸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나를 보내기 위한 불꽃임을 아는데도 말이다.
지금 내가 마녀에게 돌아가면, 마녀는 무사할까?
아니, 이미 기사와의 싸움이 전부 끝난 뒤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마녀가 내게 벌어준 시간이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선 안 된다.
마녀가 내게 남겨준 이 의지를, 온기를 품에 지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내게 너무나 어려웠다.
늘 꿈을 꾸며 과거를 추억하는 나에게, 과거를 버리라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도 난.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에서 오고가고.
“...망할.”
결국,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달릴 수밖에 없었다.
#
그 아이는 뭔가 다르다.
처음으로 요한, 그 아이와 만났을 때부터 가진 생각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하면 역시 그 눈 때문이겠지.
다른 사람들처럼 탁한 모든 걸 포기한 눈동자가 아닌,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눈동자.
그 눈동자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텐데.
그 눈동자를 잃고 싶지 않아서, 네 눈을 시기하는 이들을 막아섰다.
그래.
요한, 네가 날 바꿔놨단다.
완전히 모든 걸 포기했던 나를 바꿀 수 있다면, 네가 바꾸지 못할 건 없을 거란다.
그러니 너라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너의 꿈이라면.
반드시.
그러니까 너만큼은 내가 반드시 지켜주마.
내 목숨을 바치더라도 말이야.
“...어딜 그렇게 가려고? 네 상대는 나야. 레온.”
“엘리아나.”
“그 이름으로 불리는 거, 정말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불꽃이여, 적들의 발을 붙잡아라.”
오랜만의 만난 친구와 인사하듯, 가볍게 말을 걸지만 그와 반대급부로 강렬한 불꽃을 피워내 레온이 요한을 쫓아가지 못하게끔 길을 막는다.
순식간에 화염의 장벽이 레온의 뒤로 이어진 길을 막아서고, 레온은 자신의 심상을 휘감은 검을 휘둘러 화염의 벽을 베어내려 한다.
“쉽게 뚫리진 않을걸?”
“...강해졌군. 아니, 원래의 힘을 회복한 건가?”
“뭐. 어쩌다 보니.”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화염의 벽은 레온의 검기에도 쉽게 베어지지 않고 끈덕지게 불타오르며 레온의 발목을 붙잡는다.
요한 덕분에 레벨업인가 하는 의식을 치른 뒤로, 내 힘은 전성기에 가까운 수준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레온 또한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계심이 더욱 실리고,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며 곧장 내가 바로 쏘아낼 수 있는 최대의 일격을 레온에게 날렸다.
“불타라, 불타라, 불타라. 나의 불꽃은 홍염, 세계를 불태울 불꽃일지니!”
거대한 화염의 폭풍이 레온을 감싸며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일순간 어두운 숲에서 어둠이 사라질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고 더 마법을 유지하는 데 집중을 쏟아붓는다.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건 프로미넌스의 최대의 천적인 스틸하트의 기사니까.
스틸하트의 심상은 강철.
강철은 불꽃을 먹고 자라나는, 화염의 천적이다.
“...귀찮게 구는군.”
그러한 내 예상대로, 레온은 붉게 달아오른 쇳물처럼 변한 갑옷을 입은 채로 멀쩡히 내 마법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와의 모의전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주제에, 이번엔 이길 거라고 생각하나? 귀찮게 발목을 붙잡지 말고, 순순히 투항해. 그럼 고통을 겪진 않을 테니까.”
제대로 된 영창 없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마법을 귀찮은 무언가로 취급하는 레온이다.
그래, 레온의 말대로 이번엔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중요한 건 이기는 게 아니다.
단순히 시간을 끌기만 해도 요한, 그 아이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
어차피 추격자들은 내가 목적일 테니, 추격이 늦춰지면 요한까진 노리지 않을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레온을 도발했다.
“어차피 넌 내가 목적 아냐? 그러니 괜히 여길 빠져나가려 힘 빼지 말고 나랑 진하게 놀자고.”
손가락을 까닥이며 레온에 그렇게 외쳤지만, 그에 대한 레온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내 목적은 네가 아니다.”
“뭐?”
추격대의 목표가 내가 아니라고?
그럴 리가.
다시 힘을 되찾은 내 심상 영역을 노리는 게 아니었어?
나보다 더 탐스러운 먹잇감이 있을 리가.
잠깐만, 혹시?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레온의 입에서 내 추측이 옳았음을 알려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가 그렇게 지키고자 하는 그 노예. 그 녀석이지.”
요한.
이 녀석들은 처음부터 내가 아닌 요한을 노리고 쫓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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