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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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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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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미넌스

DUMMY

“내가 목적이 아니라고? 내 심상 영역을 노린 게...”


요한이 추격대의 목적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레온은 내 중얼거림에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나를 비난한다.


“네가? 하, 그럴 리가. 이미 빼앗긴 영역을 되찾은 건 놀랍지만, 네 힘으로 영역을 되찾았을 리 없잖아? 넌 모든 걸 포기했으니까.”

“......”

“프로미넌스란 이름도. 봉화꾼의 맹세도, 심지어 네 동생까지. 모든 걸 포기한 놈이 심상 영역을 혼자서 되찾을 수 있을 리 없지. 그런 녀석이 힘을 되찾았다면 누군가 널 도왔단 뜻이고. 그건 너와 함께 도망쳤다는 그 노예일 가능성이 크지.”


레온의 비난이 날카롭게 가슴에 꽂힌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정말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게 더욱 고통스럽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와 요한이 함께 움직이고 있단 걸 어째서 이렇게 자세히 아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입에서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온다.


“...몽마와 손을 잡은 거야. 너희?”


스틸하트는 몽마와 모종의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렇기에 몽마들만 알고 있을 나와 요한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고.

내 경악에 레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흡몽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건 아니잖아? 뭘 이제와서.”

“아무리 그래도 몽마는...!”

“미치광이 왕에게 고개를 숙인 것과 별로 다를 거 없어.”

“......”


몽마와 손을 잡은 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레온은 이야기하며, 내게 요한을 배신할 것을 제안했다.


“그 노예를 붙잡게 도와주면 넌 놔줄 수 있어. 왕은 너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어떻게 생각해?”

“아니. 넌 절대 그 아이를 붙잡을 수 없을 거야. 내가 막을 테니까.”

“왜 그렇게 그 노예에 집착해? 너답지 않게 말이야.”

“...희망이니까.”

“뭐?”

“그 녀석은 희망이야. 절대, 미치광이에게 넘겨줄 수 없어.”


그 아이가 품고 있는 세계.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태양을 되찾을 열쇠다.

그러니 절대로, 미치광이 왕에게 요한을 넘겨줄 수는 없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각오를 다시 다지며 레온을 노려보니, 레온은 그런 내 모습이 우습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웃기군. 그 이야기를 네 여동생에게 들려주면 정말 재밌는 얼굴을 하겠어.”

“...마리 이야기는 그만하지?”

“그래. 나도 웃기지도 않는 농담은 그만두지.”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듯, 레온이 벗어뒀던 헬멧을 다시 뒤집어쓴다.

처음에는 단순한 강철의 갑옷으로만 보였지만, 지금 보니 갑옷에 회색빛 기운이 감도는 것이 보인다.

스틸하트의 갑옷이 그들의 심상을 반영한단 걸 생각하면, 몽마들의 힘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


스틸하트의 심상은 이미 그 자체로 내가 사용하는 공격의 천적.

거기에 몽마들의 힘이 합쳐졌으니 아까도 봤듯 평범한 불꽃으로는 저 갑옷을 뚫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불타라, 불타라, 불타라, 불타라. 모든 게 잿더미가 될 때까지. 불타라, 불타라, 불타라, 불타라. 잿더미가 다시 타오를 때까지. 불타라, 다시 해가 떠오를 때까지 타올라라, 홍염이여!”

“...역시, 심상 구현이네.”


심상 구현.

지금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한 수.

내가 심상 구현을 사용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레온이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나의 심상이 세계를 잠식해 나간다.


화염과 잿더미로 얼룩진 세상.

그것이 나의 심상 영역.

심상 영역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던 때가 생각난다.

이제 막 제대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막 8살이 되었을 때의 일.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눈이 시큰시큰 아려오는 듯하다.


그날, 나는 아무 설명도 없이 불구덩이 안에 던져졌다.

잿더미가 흩날리는 구덩이 속에서, 불꽃이 살갗을 핥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새빨간 불꽃이 눈동자 깊은 곳에 각인될 때까지, 더 이상 흘러나올 눈물이 없을 때까지.

그렇게 순수한 불꽃의 일렁임이 나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미치광이 왕에게 순수한 불꽃을 빼앗기고 난 뒤, 다시 심상을 되찾았을 때 심상 속 세계에 잿가루가 섞인 건 분명 그날 구덩이 속에서 보았던 잿더미 때문이었겠지.

내 심상이 세상을 장악하는 것을 지켜보며, 레온 또한 내 심상에 대응하기 위해 심상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강철. 불꽃 속에서 벼려지고 새로이 태어난다. 우리는 그대의 검이요, 그대의 갑주일지니. 철의 심장을 지닌 거인, 그것이 우리일지다.”


온 세상을 뒤덮었던 나의 심상과는 달리, 레온의 심상은 몽마들의 것과 비슷한 안개와 함께 회색빛 갑주가 새로이 레온의 몸 주위를 감쌀 뿐이다.

저것이 자신의 주변에 심상을 제한해서 구현하여 그 강도를 높이는 스틸하트만의 방식.

겉으로 보기엔 별것 없어 보여도,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된다.

스틸하트의 강철은 시련을 이겨낼 때마다 더욱 단단하게 제련되니까.


저 심상을 돌파하기 위해선, 저 강철이 버티지 못할 위력의 공격을 단번에 날려야 한다.

요한의 도움을 받은 후론 전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랐으니, 심상의 힘을 전부 끌어다 쓴다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으리라.


“...이 불꽃을 기억해라.”


심상을 만들어내어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온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말.

나에게 남아있는 가장 강렬한 순간의 기억, 그것을 되살리기 위한 시동어로 적확한 문구다.

나에게서 펼쳐진 세상의 모든 불꽃이 나의 통제에 따라 내게 모여들기 시작한다.

화염을 내 몸에 깃들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마법.

내가 불꽃이 되며, 불꽃이 내가 된다.


비록 다 타고 남아버린 잔불일지라도.

잔불의 기억만은 아직 선명하다.

몸을 불태워가며 빛나던 그 시절의 기억이.


“이것이야말로, 홍염일지니...!”


내 손 위로, 세상의 모든 불꽃이 모여든다.

불꽃이 떠나버린 세계엔 다 타고 남은 잿가루만이 휘날리고, 그러한 회색의 세계에서 하나로 응축된 홍염이 내 손 위에서 타오른다.


손이 불타버릴 것처럼 뜨겁다.

몸이 더는 버티지 못한다며,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다고 비명 지른다.

괜찮아, 불타는 걸 두려워하지 마.

중요한 건 스러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불태울 화염일지어다!”


손안에 응축된 화염이 레온을 향해 쏟아진다.

레온의 갑주를 감싼 안개는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지고, 그대로 레온을 불태운다.

아무리 스틸하트의 강철이라고 할지라도 심상의 힘을 전부 응축한 불꽃을 버텨내긴 쉽지 않으리라.


세계가 불타오른다.

한데 응축했던 화염의 열기가 해방되며 동시에 잿빛의 세계가 순식간에 불타오른다.

말 그대로 세계를 불태우는 일격이다.

안개가 사라진 스틸하트의 심상은 점차 붉게 달아오르고, 레온 또한 더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

“으읏...!”


물론, 나 또한 세계와 함께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고통스러운 신음이 저절로 입에서 터져 나온다.

세계를 불태우는 불꽃이 내 몸안에서 불타오르며 끔찍한 고통을 내게 강요한다.

그래도 나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견딘다.

희망을, 요한을 위하여.

요한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하여.

끝까지 싸운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레온의 갑주가 흐물흐물해져 바닥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세상을 불태우던 불꽃이 사그라든다.

불꽃이 꺼져가며, 잿가루가 하늘에서 흩날리며 일체의 미동 없이 쇳물이 되어 흘러내린 레온의 갑주를 덮어간다.

마치 장례식이 다 끝나고 난 뒤 내려앉는 재처럼.


“윽...”


불꽃이 사그라들고 나서 간신히 고통스러운 숨을 들이마신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가 재와 섞여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 않게 만든다.

그래도 숨을 쉬어야만 한다.

계속, 서 있기 위하여.


그렇게 숨을 돌리는 사이에도 여전히 레온은 아무 미동 없이 재에 파묻혀가고 있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데미지를 입은 걸까?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저 갑옷을 뚫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불꽃을 다시금 일으킨다.

다시금 불덩이가 레온을 향해 날아든 그 순간.


“...약해빠졌군.”


실망했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잿더미 속에서 강철의 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어마어마한 고열로 인해 쇳물이 되어 녹아내렸던 갑주는 어느새 잿빛으로 잘 단조 되어서 녹아내리기 전보다도 훨씬 더 단단하게 벼려졌다.

순식간에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날아들던 불덩이를 베어버린 레온의 몸에선 계속해서 쇳물이 뚝뚝 떨어지며 주위의 잿가루들과 뒤섞이며 그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다.


“뭔가 바뀌었을 줄 알았는데. 전과 다를 게 없네. 아니, 오히려 더 약해졌어. 이게 네 전력이라면 실망스러운데.”


빌어먹을.

아무래도 심상 전체의 불꽃을 끌어모아 날린 일격이었는데도, 스틸하트의 강철을 뚫기엔 모자랐던 모양이다.

이론상으론 분명히 저 강철을 완전히 녹여버릴 수 있었을 텐데, 뭐가 잘못된 거지?

그런 걸 생각하기 전에 스틸하트의 갑주가 주위의 심상을 흡수해 더욱 성장하며 내게 단번에 끝을 내지 못한 대가를 징수한다.

그렇게 거대해지는 레온의 존재감을 느끼며,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해야 저 갑주를 뚫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내려놨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전력을 다했는데도 뚫지 못했다.

그럼 정말로 뚫을 방법이 없는 걸까?


아니.

전력을 다해야 이길 수 있는 상대를 전력을 다했는데도 이기지 못했다면, 답은 하나다.

내가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자리에 서 있다.

내가 서 있는 한, 난 아직 전력을 낼 수 있다.

난 더 싸울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전력은 무엇일까?

나의 힘은 불꽃이다.

그것도 순수한 불꽃.


불꽃을 기억해라.

그날의 화염을.

지금처럼 재투성이가 아닌, 순수한 불꽃을.

다시 심상을 끌어모으기 위해 집중하는 사이, 레온이 강철의 검을 들고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이제 끝이야. 엘리.”

“......”

“끝은 편하게 해줄게.”


둔중한, 하지만 피하지 못할 속도로 강철의 검이 내 목을 향해 휘둘러진다.

단 몇 초 후면 목숨을 잃게 될 상황임에도 나는 여전히 심상을 떠올리는 데 온 신경을 쏟는다.


떠올려라.

원초의 심상을.

불꽃을 기억해라.


불꽃을, 기억해야 하는데.

불꽃이 떠오르지 않는다.

뇌리에 떠오르는 건 불꽃이 아니다.

그날 요한이 내게 보여준 거대한 불덩어리.

그것뿐이다.


불꽃을 기억해라.

불꽃을...


“아.”


깨달았다.

나의 근원이 무엇인지.

프로미넌스란 이름이 뜻하는 게 무엇인지.


불꽃을 기억해라.

이건 내가 보았던 불꽃을 기억하란 게 아니었다.


원초의 불꽃을.

홍염을 기억하란 뜻이었다.

모두가 잊어버린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그것이 봉화꾼의 의무라고.


그래.

이것이 나의 심상이다.

불꽃을 기억한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불꽃을.


“뭣?”


내게 휘둘러지던 레온의 검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녹아내린다.

불꽃이라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빛의 덩어리가 내 등 뒤에서 서서히 떠오른다.

등 뒤에서, 내 몸 안에서 함께 타오른다.

몸 안에서 불타오르던 그것이 이내 내 손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게... 무슨...? 저게. 도대체 뭐야?”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레온은 공격을 멈추고 자신이 보는 광경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한 레온의 중얼거림에 나는 조용히 레온이 보는 풍경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태양.”


나의 세상에서.

내 손 안에서.

태양이 떠오른다.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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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작별 +9 24.11.15 4,362 14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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