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의 성

“...이게 무슨.”
성안에 진입해서 내부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부터 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성 바깥에 꿈의 파편이 흘러넘친 모습은 기괴했지만, 성 내부의 모습은 끔찍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바깥은 단순히 인간이 방치되어 있었다면, 성안에는 인간들이 마치 도축장의 고기마냥 잘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던 것이다.
목 뒷덜미에 고리가 걸려 천장에 마치 교수형당한 죄수마냥 수많은 인간들이 메달려 있는 모습은 정말, 불쾌함을 넘어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다리가 얼어붙었지만, 나는 이내 뺨을 두드리며 제정신을 차린다.
그래, 성 내부가 괜찮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인간을 식량으로만 여기는 몽마들의 성격상, 성 내부가 이런 모습일 건 뻔했잖아?
그러니 나아가야 해.
이 사람들을 구할 수도 없고, 구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저들은 이미 몽마에게 잡아먹힌 지 오래니까.
“여긴... 일종의 식량 창고 같은 곳인가?”
“아마 그러지 않을까? 으음. 아, 저쪽으로 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억지로 주위에 진열된 인간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주위를 살피니, 조그마한 문이 보인다.
일단 바깥의 상황을 파악하려 서둘러 노엘과 함께 문 가까이 다가가니, 내가 문에 손을 대는 것보다 먼저 문이 열렸다.
“아오, 귀찮아. 내가 이런 거까지 해야 해?”
“윽...!”
“상급...!”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상급 몽마였다.
눈앞의 존재가 상급 몽마라는 사실은 노엘이 말해주지 않아도 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몽마는 지금까지 봤었던 몽마와 달리 비교적 사람의 외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난쟁이처럼 땅딸막한 체형의 몽마는 이목구비가 존재하지 않던 다른 몽마들과 달리, 사람의 것이라고 할 법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세히 뜯어보면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이리저리 엿보였지만 말이다.
뾰족한 귀, 어딘가 위치가 다른 코와 입의 위치, 수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동물의 꼬리 같은 무언가.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눈 앞의 저것이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임을 똑똑히 각인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하게 내게 저것이 몽마라 알려주는 건 후각이었다.
성에 들어오기 전 평원에서 맡았던 냄새보단 덜하지만,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 물비린내가 느껴진다.
이 냄새가 몽마의 강함과 관련이 있다면, 눈앞의 몽마는 심상치 않은 힘을 지니고 있단 소리가 된다.
“......”
과연 내가 이 몽마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이긴다 해도, 이후에 몰려올 다른 몽마들을 돌파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계산하며 입술을 깨물고 있으니, 방 안에 들어온 몽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쪽을 바라봤다.
“뭐야, 너?”
젠장, 역시 싸우는 거 말고는 선택지가 없나?
노엘에게 몽상구현을 요청하려 하니, 몽마의 입에선 조금 내 예상과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왜 여기서 땡땡이를 치고 있냐? 그것도 간식거리 주워 먹으면서. 이거 신기하네? 어디 고장났냐, 너?”
“네, 네?”
몽마는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노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저 몽마, 노엘을 성에서 일하는 시종 비슷한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몽마에 노엘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일단 몽마에게 사과부터 한다.
“죄, 죄송합니다?”
“됐어. 여기서 이거나 좀 가져가라. 난 좀 쉬게.”
“가, 가져가라니. 어디로요?”
“아씨, 그런 것까지 내가 알려줘야 해?”
“죄, 죄송...”
“이거 쓰는 데가 대장간밖에 없지, 다른 데서 쓰겠냐? 설마 대장간이 어딨는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어딘데요?”
“어디냐고? 와, 이거 어딘가 고장나도 단단히 고장났네.”
한바탕 노엘을 갈군 몽마는 한숨을 내쉬고, 노엘에게 대장간이란 곳의 위치를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위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쭉 가다 보면 나올 테니까, 빨랑 가라.”
“네, 네!”
기회다.
이대로 노엘이 땡땡이를 친다고 착각해주면 나야 좋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러 노엘과 함께 방을 나서려 했지만, 몽마가 그런 우리를 멈춰세운다.
“야. 챙길 건 챙겨야지!”
“죄송, 합니다?”
휙, 몽마가 주위에 진열되어있는 인간들을 집어 들고 노엘에게 집어던지자, 노엘은 헐레벌떡 안개의 몸을 펼쳐 인간들을 받아낸다.
“이제 가라! 나 봤단 이야긴 하지 말고!”
“네, 네!”
그대로 나와 노엘은 창고에서 쫓겨난다.
진짜, 마지막 순간에는 걸린 줄 알고 깜짝 놀랐네.
복도로 나온 우리는 슬쩍 창고 안의 몽마가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위치까지 이동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저 몽마, 분명히 날 보지 않았어? 왜 무시한 거야?”
“음. 그게... 하나 생각나는 게 있는데. 이건 절대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줘. 알겠지?”
“뭔 말을 하려고. 일단 설명해봐.”
도대체 뭔 말을 하려고 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거지?
의아해하며 눈을 깜빡거리자, 노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마. 그냥 말 그대로, 너를 동물이나 식물. 뭐, 그런 거랑 동급으로 생각한 게 아닐까?”
“뭐?”
“네가 약하다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몽마는 다른 종족들을 음식으로만 생각하거든.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아니, 누가 봐도 침입자 같았지 않았어? 엄청 수상하게 움직였다고 생각하는데, 나.”
“창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창고에 갔는데, 개와 못 보던 인간이 같이 있다고 생각해봐. 너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개랑 인간이 함께 뭔갈 꾸미고 있다곤 생각 안 하잖아? 기껏해야 수상한 사람이 개를 데려왔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그건.... 그렇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노엘의 비유에 몽마의 행동이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감성적으론 받아들이기 힘들다.
몽마들에게 인간이 단순한 음식으로 여겨진다는 게, 뭔가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해야 하나?
그 꿉꿉한 기분을 해소하고자, 나는 노엘에게 조금 짓궂은 질문을 던져본다.
“너도 처음에 날 그렇게 봤냐?”
“뭐... 아니라곤 말 못하지. 근데 이젠 아냐. 같이 게임까지 한 사인데, 응.”
“그래. 그럼 됐다.”
그래, 맨 처음에 나랑 같이 게임을 했던 게 날 속이려고 했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젠 아니라는 것 또한 말이다.
“그래서, 이제 어쩌지? 성에 들어오긴 했는데. 출구는 어떻게 찾지?”
“...하나 주워들은 게 있어.”
“오. 웬일로?”
“시끄러. 들어봐, 내가 들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출구로 가려면 부화실을 지나야 한다더라. 그러니까, 부화실을 찾으면 출구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화실? 그게 뭐야?”
“몽마들이 태어나는 장소...라고 들었어.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왜 몰라? 뭔가, 깨어났을 때 기억 같은 게...”
“몰라. 정신 차렸을 땐 안개 속이었어.”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무슨 꿈에서 태어났는지 모른다고 했었지?
괜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게, 나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럼. 일단은 부화실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는 걸로?”
“응. 그게 좋겠어.”
“그럼 일단은 대장간부터 가보자. 거기서 일하는 시종인 척하면서 정보를 캐내 보자고.”
대장간은 분명히 계단을 올라가서 왼쪽이라고 했었지?
서둘러 통로를 따라 움직이니, 넓직한 복도가 내 앞에 펼쳐진다.
어딘가의 왕궁같이 화려한 것이, 본래의 모델이 되는 성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몽마들이 만들어낸 성인 걸까?
문득 내 시선이 복도에 장식된 갑옷에 향했을 때, 노엘이 근처에서 다른 몽마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누가 온다.”
“일단 숨을게!”
저 창고에선 노엘이 군것질한단 변명이라도 있었지, 복도에서 대놓고 날 데리고 다니는 건 너무 수상하잖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 숨기엔, 난 꿈이 아니어서 노엘이 건드릴 수도 없고.
벌써 몽마들에게 들켰다간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결국 내가 내린 선택은, 근처의 갑주를 재빠르게 입고 위장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 몸보다 갑옷이 훨씬 큰 덕분에 숨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응? 뭐야, 너? 그거, 어디 가져가는 거냐?“
”그. 대장간에 가져다 달라고 해서...“
”대장간에 가져가는 거라고?“
”그게. 부탁 받아서...“
”부탁받았다고? 아, 설마. 그 새끼가 또?“
얌전히 갑옷 안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 몽마와 노엘의 대화가 들려온다.
일단, 날 눈치채지 못한 것 같으니 한숨을 내쉬며 두명의 대화를 듣던 그때.
”여...기구나..“
”....?“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당연하지만 그 어디에도 누군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긴장해서 환청을 들은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선명했는데?
”야. 그 새끼, 어디 있었냐?“
”그. 그게요. 그게.“
”아니다. 너 오는 곳 보니까 대충 짐작 가네. 그래, 넌 아무 말도 못하지?“
내가 귓가에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는 동안, 노엘은 몽마를 어떻게든 무사히 넘긴 듯하다.
몽마가 여기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노엘이 내게 속삭인다.
”...갔어. 이제 나와도 돼.“
”아, 응.“
무언가 석연찮은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갑옷을 벗던 그때, 갑옷의 안쪽에서 무언가 보인다.
”....?“
사람의 얼굴을 닮은 문양이 갑옷의 안쪽에 세겨져 있던 것이다.
이게 뭔가, 하고 두 눈을 감았다 뜨며 문양을 자세히 살피려 하니.
”...어?“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사람 얼굴 형상의 문양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진짜 뭐지, 이거?
아무리 봐도 내가 환각을 보는 것 같진 않은데, 뭐지?
”노엘. 혹시 근처에 다른 몽마가 있어?“
”어? 몰라. 지금은 안 느껴지는데?“
”...그래?“
도대체 방금 내가 경험한 건 뭐지?
의아함이 자꾸만 커져 가지만, 지금 당장 의문을 풀 방법은 없었기에 나와 노엘은 다시 대장간을 향해 달려갔다.
”계단을 올라가서... 왼쪽...“
안내받은 대로 이동하자, 정말 대장간이 가까이 있는지 강철을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인간들을 대장간에서 어떻게 사용하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상상만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강철 소리가 들려오는 저 방 안에 들어가기 싫을 지경이다.
그래도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한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각오를 마치고 움직인다.
그렇게 대장간 안으로 들어선 나를 제일 먼저 반긴 건.
”더 세게! 스틸하트는 가공이 쉽지 않으니까, 있는 힘껏!“
온몸이 분해된 채로 모루 위에서 망치에 얻어맞고 있는, 낯익은 기사의 얼굴이었다.
- 작가의말
1시에 한 편 더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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