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련

“...부화장의 위치는 내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으앗?!”
모루 위에 놓여있던 기사의 머리가 갑자기 입을 열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당혹스러운 비명을 내뱉었다.
“다, 당신. 그러니까, 레온. 맞죠?”
“그래. 널 붙잡으러 왔던 그 기사다. 제대로 봤어.”
“기억이 남아있는 거예요?”
“다행히 아직까진 말이지. 아니,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그래, 이 기사는 꿈의 파편이 아닌 기사의 꿈 그 자체니까 기억이 남아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레온과의 대화에 당황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으니, 레온이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질문을 던진다.
“엘리는 어디 있지? 너와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먼저 밖으로 내보냈어요.”
“허. 결국엔 네가 희생한 거야?”
“아뇨.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그건 다행이군.”
내 대답에 레온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마녀와의 싸움이 레온에게 큰 영향을 끼친 걸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레온의 모습은 나와 마녀의 앞을 막아서던 그 무시무시한 기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레온을 바라보고 있으니, 레온은 맨 처음 내게 말했던 이야기를 다시금 꺼낸다.
“그래서 말이야. 부화장의 위치는 내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부탁을 좀 들어주지 않겠어?”
“부화장의 위치를 안다고요?”
“그래. 이 성은 말이지, 미치광이의 성과 똑같은 구조거든. 부화장으로 사용할 만한 시설의 위치 정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여기서 몽마들의 대화를 들으며 검증된 이야기니, 확실할 거야.”
“오...”
미치광이의 성이라면, 미치광이 왕의 성을 말하는 건가?
눈앞의 기사가 미치광이 왕의 아래에서 일했던 걸 생각하면, 기사가 성의 구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크게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좋아요. 그 부탁이란 게 뭐죠?”
“간단해. 그냥, 내 푸념을 좀 들어달란 거야. 그리고...”
“그리고?”
“날 죽여줘. 아니, 죽인다는 표현은 이상하군. 난 이미 죽었으니까. 성불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나?”
“그건...”
“설마, 이 꼴이 된 날 구할 수 있단 말을 하는 건 아니지?”
“......”
사지가 조각조각 때어지고 머리마저 분해되어 모루 위에서 두드려지던, 인간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인간이었던 것의 잔해.
그것이 현재 레온의 모습이었다.
지금 내가 레온과 대화하고 있는 건 사실상 죽은 자가 남긴 유언을 듣는 것과 다름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게요.”
“고마워. 아니,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레온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터트린 후, 조용히 푸념을 내뱉기 시작했다.
“뭐. 사실, 내가 이런 꼴이 될 거라곤 처음부터 예상했어.”
“예상하고 있었다고요?”
“그래. 미치광이 왕에게 굴복한 순간부터 말이야. 수호자가 봉화꾼의 사명을 가장 먼저 져버렸으니, 그 대가를 치루는 거지. 그래서 더 프로미넌스에 집착했던 거 같아. 나 혼자 나락에 있는 건 억울하니까. 아주 못된 심보지. 너도 함께 나락에 떨어지자고.”
함께 나락에 떨어지자.
그 말을 내뱉은 레온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근데. 아니더라. 같이 나락에 떨어지고 나니까, 깨닫게 되더라고. 난 프로미넌스가 나와 함께 떨어지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버텨내는 걸 보고 싶었던 거라고. 내가 하지 못한 걸 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던 거라고.”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레온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가득했지만, 서서히 레온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근데. 엘리는 버티는 걸 넘어섰더라. 단순히 버티는 게 아니라, 부러지고 다시 피어나더라고? 이야, 정말 멋졌어. 내가 태양을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정말 멋지더라.”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린 레온은 묵묵히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니까. 고맙다. 엘리를 다시 타오르게 해줘서.”
“...전 그냥, 발버둥쳤을 뿐이에요. 고생한 건 마녀씨죠.”
“발버둥? 요즘 시대에 발버둥이라도 치는 놈은 정말 희귀해. 다들 포기한 세상에서 혼자 발버둥치는 게 대단한 거지.”
그렇게 나를 칭찬한 레온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 가지 부탁을 더 해왔다.
“그러니까. 이왕 발버둥치는 김에 하나만 더 부탁하자.”
“뭔데요?”
“...미치광이 왕을 막아줘. 이젠 그만 쉴 수 있게끔.”
“미치광이 왕을 막아달라고요?”
“근거 없는 직감이긴 한데, 너라면 가능할 거 같단 말이지. 너라면 미치광이 왕에게 안식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야. 미치광이 왕이 왜 미쳤는 줄 알아?”
“왜죠?”
“처음에 왕이 미친 건, 몽마들에게서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어. 근데 이젠 몽마와 협력하는 걸 보면, 이젠 자기가 왜 미쳤는지도 잊어버린 모양이야. 그건, 너무 고통스럽잖아?”
“......”
진심이 담긴 레온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면, 한 번 해볼게요. 일단 먼저 마녀씨랑 한 약속부터 지키고요.”
“그래. 선약은 중요하지. 하고 싶은 말은 이걸로 대충 끝났어. 시체의 한탄, 들어줘서 고맙다. 부화장은 성 정문의 좌측 방향에 있는 탑에 있을 거야. 탑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계속 왼쪽으로 나아가면 탑으로 가는 통로가 보일 거거든.”
“감사...합니다.”
내게 부화장의 위치를 알려준 레온은 이걸로 끝났다는 듯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봤고, 이후의 전개가 예측된 난 한숨을 내쉬며 노엘을 바라봤다.
“미안, 부탁해. 노엘.”
“응...”
노엘은 내 부탁대로 레온에게 안식을 선사하기 위해 레온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노엘이 완전히 레온을 집어삼키기 직전 레온이 입을 연다.
“거기. 꼬마. 이름이 뭐지?”
“...요한, 요한이에요.”
“요한, 마지막으로 부탁하마. 죽지 마. 넌 희망이야.”
“...네.”
레온의 마지막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함께, 노엘이 레온을 완전히 집어삼킨다.
잠시 후, 레온의 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단 것처럼 사라졌다.
고개를 숙여 묵념하며 레온을 추모하고 있던 그때.
“아, 미안. 좀만 바람 좀 쐬고 왔어~ 응?”
성에 침입한 직후, 창고에서 만났던 몽마가 땡땡이를 끝마쳤는지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평소와 다른 대장간의 모습에 몽마는 의아해하며 대장간 내부를 둘러보고 나와 노엘을 발견한다.
“뭐야, 설마 너희가...”
“노엘! 몽상구현, 부탁해!”
“아, 응!”
몽마에게 들킨 순간 나는 곧장 노엘에게 몽상구현을 부탁하며 싸우기 위해 뛰쳐나갔고, 노엘 또한 내 의도를 파악하고 빠르게 내게 달라붙어 몽상을 가져왔다.
이전, 다른 대장장이들을 기습했던 것처럼 빠르게 속전속결로 끝내려는 생각이었지만.
“하, 이것 봐라?”
눈앞의 몽마는 내가 내지른 찌르기를 너무나 간단히 회피해버렸다.
싸움에 익숙하지 않던 몽마들과는 다른, 명확히 싸움에 익숙하다는 게 보이는 몸짓이었다.
“윽...!”
너무나 쉽게 내 공격을 회피한 몽마는 곧바로 내게 반격을 해왔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내 가슴팍에 접근해, 짧은 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속도의 주먹이 내 가슴을 향해 내질러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난 그대로 몽마의 공격을 얻어맞고 뒤로 붕 날아간다.
“크흑...!”
이전, 트롤의 공격을 얻어맞았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이다.
상당한 충격에 등골을 찌르르 울리는 고통이 느껴져 비틀거리면서 빠르게 자세를 복구하고 있으니, 눈앞의 몽마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한 번에 잡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단단하네?”
“흐, 몽마들은 다 똑같은 소리를 하네? 죄다 생각대로 안됐데. 그게 실력인 건데.”
“하하. 말을 참 이쁘게 하는구나, 너?”
슬쩍 시선을 왼손의 스테미나 게이지를 바라보니, 방금 얻어맞은 공격으로 완전히 고갈된 상태다.
스테미나 게이지가 공격을 흡수한 게 아니었다면 정말 한 번에 가슴이 뚫렸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대로 스테미나가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윽?!”
하지만 내가 시간을 끌려는 걸 간파한 것일까?
몽마는 순식간에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다시금 내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죽음의 예감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 그때.
“허?”
“윽?!”
노엘이 만들어낸 강철의 갑옷이 몽마의 공격을 막아낸다.
물론, 그걸로도 충격을 전부 막아낼 수 없어 갑옷이 움푹 패이지만, 몽마의 공격은 내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한다.
몽마가 노엘이 만들어낸 갑옷을 보며 당황하는 사이, 나는 서둘러 노엘에게 질풍의 반지를 다시 꺼내줄 것을 부탁한다.
“이건, 스틸하트? 안개가 몽상을 다룬다고?”
“...노엘, 반지 좀 꺼내줄 수 있어? 민첩이 부족해.”
하지만 한 번에 몽상을 3개씩 유지하는 건 노엘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온 걸까?
노엘은 내게 불가능하단 답을 돌려줬다.
“그건 힘들어. 검하고 갑옷 유지하는 것만 해도 한계야.”
“그래? 그러면, 검은 집어넣고 반지만!”
“검을 집어넣으라고?”
“오러만으로 충분해. 지금 필요한 건 속도야.”
“정말 괜찮아?”
“뭐, 조금 밀리는 건 어떻게든 해봐야지!”
몽상을 꺼낸다 하더라도 공격을 맞출 수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
최소한의 민첩을 갖추지 않으면 저 몽마의 공격을 피하지도, 빈틈을 노릴 수도 없을 것이다.
“...알겠어, 그럼. 교체할게!”
“오케이!”
노엘이 내 지시에 따라 검 대신 반지의 몽상을 불러내지, 순식간에 몸이 가벼워진다.
“재밌는 짓을 하네.”
“앞으로 더 재밌어질 거야!”
감탄을 내뱉으며 다시금 내게 주먹을 날리는 몽마의 주먹을 검으로 쳐내고 빈틈을 노리지만, 몽마는 그런 내 움직임에 맞춰서 움직여 내 공격을 방어해낸다.
그러한 공방이 연이어 이어지며 나는 숨을 참은 채로 공방을 이어나간다.
검과 주먹, 평범하게 생각해선 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이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는 오히려 내 쪽이 점차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불리한 걸 인지한 난 도박수를 하나 던져보기로 결심한다.
“흐읍!”
내게 날아드는 몽마의 주먹을 검으로 쳐내는 게 아닌, 눈으로 보고 한끝 차이로 피하며 몽마의 품에 검을 휘두른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몽마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내게 품을 내어주고, 내 검이 몽마의 가슴팍을 벤다.
하지만 검은 몽마의 몸을 제대로 베지 못하고 중간에 튕겨 나오고, 나는 그 힘을 역이용해 다시금 몽마와의 거리를 벌린다.
[목숨을 건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상태창의 메시지에 기뻐할 틈도 없이 스테미나 게이지를 바라보니 다시금 전부 고갈되기 직전인 붉은색까지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스테미나를 전부 써가며 공격해도 난 몽마의 가슴팍을 아주 얕게 베었을 뿐이다.
진짜, 검의 몽상 없이는 싸울 수 없나?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갑옷을 포기하고 검의 몽상을 꺼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순간, 그렇게 생각한 것을 혼내듯 몽마가 내게 순식간에 접근한다.
“아, 조금 짜증 나기 시작했어. 빨리 잡히기나 해.”
“윽?!”
어떻게든 반응해 몽마의 주먹을 튕겨낸 순간, 몽마가 몸을 빙글 돌리며 발차기를 이어나가 내 옆구리에 꽂아 넣는다.
그대로 옆으로 튕겨 날아가 대장간의 벽에 부딪히자, 몽마는 나를 뒤쫓아와서 결정타를 먹이려 한다.
공기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눈으로 포착하는 것이 고작인 날카로운 주먹이 내게 향해 휘둘러진다.
이건 보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나는 몽마의 시선이 향한 곳에 주먹이 날아들 것이라 예측하며 서둘러 스테미너를 소비해 재빠르게 자세를 복구하며 검을 휘둘러 몽마의 공격을 막아낸다.
[회피할 수 없는 공격을 예측했습니다! 집중력이 1 상승합니다.]
“뭐야...?”
예상 밖의 상황에 자신만만했던 몽마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나는 서둘러 검을 휘둘러 몽마의 팔목을 베어 물러나게 만들고 서둘러 거리를 벌린다.
갑옷을 포기해?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민첩 30으로는 도저히 저 몽마의 순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보니까 몽상도 쓰지 않은 순수한 신체 능력인 것 같은데, 이게 맞아?
오러만으로 몽마를 상대한다는 건 현재로써는 거의 불가능한 짓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몽상을 사용하려고 하면 바로 틈을 찔릴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노엘. 내가 신호 보내면, 갑옷을 칼로 바꿔줘.”
“뭐?”
“빈틈을 노리는 수밖에 없어. 더 시간을 끌었단 우리가 불리해.”
“으, 젠장. 알겠어!”
틈을 만들어내서 방어를 포기한 공격으로 몽마를 단번에 벤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몽마와의 공방을 주고받기 위해 거리를 좁히지만.
“...아. 짜증나. 쓰고 나면 배고파지니까 안 쓰려고 했는데. 써야겠네.”
내가 한 끗 차이로 잡히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걸까?
몽마는 혀를 차며 제자리에 멈춰서더니, 그대로 몽상을 불러낸다.
“몽상구현.”
순식간의 몽마의 몸에서 퍼져나온 몽상이 주위를 장악한다.
지금까지 봤던 다른 몽마들의 몽상은 무기를 꺼내는 수준이었다면, 이건 심상구현처럼 주위의 공간을 자신의 몽상으로 채워나간다.
몽마의 발끝에서부터 샛노란 모래가 솟아오르며 주위를 메우기 시작한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내가 뒤로 물러나며 모래를 피해 보려 하지만, 대장간 안을 금세 메워버린 모래는 내가 도망칠 곳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이게, 뭐야?”
이건, 도대체 무슨 몽상이지?
사막의 꿈을 불러낸 건가?
그러한 의문이 해결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윽?!”
갑자기 모래에 접한 곳에서부터 몸의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이거?
뭔가 굉장히 지치는 느낌인데?
검을 들고 서 있기도 힘들어진 상황에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왼손을 바라보니, 스테미너 게이지가 빨갛게 고갈된 게 눈에 들어온다.
설마, 내 체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가?
“...에너지 흡수?”
“진짜 귀찮게 하고 있어.”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은 내 모습을 본 몽마는 내가 완전히 무력화됐다고 생각한 건지, 몽상을 거둬들이며 투덜거리면서 내게 다가온다.
“아, 배고파. 이래서 몽상을 쓰기 싫었는데. 자꾸 귀찮게 하네. 아오. 이렇게나 고생했는데 맛없는 꿈이기만 해봐.”
“자, 잠깐.”
“잠깐은 무슨. 얌전히 따라와. 어차피 반항도 못 하겠지만.”
내 곁에 도착한 몽마는 무방비하게 내 멱살을 잡고 끌어올린 그 순간.
“...노엘!!”
“응!”
나는 큰 소리로 노엘의 이름을 부르며 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순식간에 손안의 검에 몽상이 덧씌워지고.
나는 곧장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섬광이 번쩍이고, 내 검은 멱살을 잡은 몽마의 팔을 단칼에 끊어낸다.
“뭐...!”
정말 갑작스러운 상황에 몽마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경악만을 흘릴 뿐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난 곧바로 몽마의 가슴에 검을 찔러넣는다.
가슴을 찔린 몽마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뭐라 말하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몽마의 신체가 안개로 변해 흩어진다.
“후우, 후우...”
“요한, 괜찮아?”
“괜찮아. 후... 흐흐흐.”
“...웃는 거 보니 괜찮은 거 맞나보네.”
[한계까지 체력을 쥐어짜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마법적 생물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당신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아니, 이렇게 보상을 퍼주면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잖아.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으니, 노엘이 내게 다가와 질문한다.
“이긴 건 좋은데. 마지막에 어떻게 된 거야? 그 몽마가 네 체력을 싹 빨아갔을 텐데.”
“스테미너가 고갈되어도 회복은 15초면 충분하거든.”
“그건, 게임 이야기잖아?”
“나한텐 아니야.”
만약 그 몽마가 방심하지 않고 계속 몽상을 유지했다면, 이렇게 반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기긴 했지만 사실상 몽마가 몽상을 불러낸 순간 끝났던 싸움이었다.
심상구현처럼 몽상구현이 세상을 덧씌울 때 뭔가 대항할 방법이 필요한데, 지금으로썬 도저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어떻게든 방법을 찾긴 해야 할 문제다.
“뭐. 일단 이겼으니까, 슬슬 가자고. 너무 오래 있었다. 다른 몽마들이 오기 전에 빨리 부화장으로 가자.”
“그래. 그러는 게 좋겠네.”
몽마와의 싸움을 끝마친 난 서둘러 노엘과 함께 부화장을 향해 달려갔다.
이 빌어먹을 안개 속에서 나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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