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지

“뭐, 뭐, 뭐야!”
왜 내 몸이 여성의 모습인 거지?
난 분명히 요한의 모습을 모방했을 텐데?
당황하며 내 몸을 살피자, 아예 요한과 동떨어진 모습은 아니란 게 느껴진다.
머리 색이나 입고 있는 복장, 특히 얼굴의 분위기는 요한을 똑 닮아있어서 소년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달려야 할 게 달리지 않았고 나와 있지 않아야 할 게 나와 있는 덕분에 이 몸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건 명확하다.
성별의 변화 외에도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건, 검은빛이던 요한과 다른 보랏빛의 눈동자다.
내 예상과 다른 변화에 당황하고 있으니, 여왕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게 네가 선택한 모습이구나? 꽤 귀엽구나. 후후.”
“읏...!”
어째서 요한을 완벽히 모방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아갈 시간은 없다.
지금은 한창 싸우는 중간이고, 어째서인지 알아보는 건 안개 밖으로 나간 뒤에도 해도 늦지 않다.
“흡...!”
요한을 본뜨듯 검을 꺼내어 내게 육박하는 촉수들에 휘두른다.
원래라면 촉수와 격돌하자마자 검이 부서졌어야 하지만, 요한의 꿈을 이어서일까?
내가 휘두른 검은 촉수와 반발하며 여왕의 공격을 튕겨내는 데 성공했다.
“어머나.”
공격이 막히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걸가?
여왕은 깜짝 놀랐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더욱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탐난단 말이지...”
“...요한은 아무에게도 안 넘겨줘요.”
요한의 꿈의 능력을 파악하려고 하는 걸까?
여왕은 마치 간을 보듯 주위에 들어찬 촉수들을 조금씩 내게 보낼 뿐, 그 이상의 무언간 보이지 않았다.
맨 처음 요한을 제압했을 때처럼 몽상을 사용하지도 않는 것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더욱 불안하다.
“......”
계속 이렇게 검만 휘둘러서는 안개에서 나갈 수 없다.
요한의 꿈을 빌리긴 했지만, 영원히 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요한의 꿈은 내가 빌리기엔 너무나 커다란 꿈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개에서 나갈 수 있을까?
답은 하나다.
요한을 깨워야 한다.
요한이 꿈에서 깨어날 때, 여왕의 꿈 또한 끝날 테니.
하지만 지금 요한은 여왕의 몽상에 짓눌린 상태다.
요한을 깨우기 위해선 먼저 여왕의 몽상을 몰아내야 하는데, 가능할까?
방법은 알고 있다.
인간들이 심상구현으로 몽마들의 몽상구현에 대항하듯, 몽상구현으로 여왕의 몽상을 밀어내면 되는 것이다.
될지 안 될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다음 방법을 생각하는 거야.
요한, 너에게 배운 방법대로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가장 가고픈, 가장 꿈꾸고픈 장소를 떠올리며 시동어를 읊는다.
“몽상구현...!”
꿈의 풍경이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어두컴컴한 독방.
사방에 어지러이 쌓여있는 게임들.
그 중앙에 외로이 놓여있는 작은 티-비.
아니, 테레비였던가?
“일어나...!”
요한의 방이 모습을 드러내며 나와 요한을 감싼다.
내 예측대로 여왕의 몽상을 밀어내는 데 성공한 것인지, 허공에 완전하게 정지되어 있던 요한이 물리 법칙의 영향을 받으며 털썩 바닥으로 쓰러진다.
“요한, 요한?!”
서둘러 요한의 이름을 부르며 요한을 깨워 보려 하지만, 아무래도 요한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시간만 멈춰둔 게 아니라, 동시에 잠까지 재워둔 건가?
깨어나지 않는 요한에 당황하고 있으니, 요한의 방이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윽...!”
여왕이 몽상을 움직여 직접 내 몽상을 깎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영역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는 건 확정된 일이다.
사방에서 영역이 짓눌리는 강도를 보니, 영역이 붕괴하는 순간 요한의 방에 있는 모두가 산 채로 압착 되리라.
그 사실을 여왕 또한 알고 있는지, 방 밖에서 내게 저항을 그만두길 권유한다.
“아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단다. 헛된 저항은 그만두고, 내게 꿈을 넘기지 않겠니? 널 해치고 싶지 않단다.”
“......”
“인간이 정말 꿈속에서 몽마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포기하라고.
늦지 않았다고, 너는 괜찮을 것이라며 여왕이 끊임없이 속삭여온다.
여전히 잠자고 있는 요한은 다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몽상영역은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깎여나간다.
기적조차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암울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난 끝까지 몽상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요한을 믿고 있으니까.
요한이라면 그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나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윽...!”
콰득.
더는 여왕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영역에 구멍이 뚫린다.
뻥 뚫린 영역 안으로 여왕의 안개가 마치 파도처럼 물 밀 듯이 밀고 들어온다.
이대로 여왕의 몽상이 요한을 덮치지 못하게끔, 몸으로 몽상을 막아선다.
영역을 무너트리는 한이 있더라도 주위의 몽상을 끌어모아 방파제를 만들어 버텨 본다.
“그만 포기하렴. 네가 고통받는 걸 보고 싶지 않단다.”
“...그냥 자기가 짜증나는 걸 날 위해서라고 포장하지 마!”
여왕의 헛소리를 받아치며 몽상을 최대한 끌어모으지만, 여왕의 힘을 정면에서 받아낼 수 있을 리 없고.
결국 마침내 방어가 뚫리며 내게 쏟아지는 몽상에 질끈 두 눈을 감은 순간.
“최대한 빨리 클리어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처음으로 느껴보는 온기가 나를 감쌌다.
어째선가 그게 너무나 안심되어서.
여왕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보다도 더 기뻐져서.
나는 조용히 따스한 온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
정신을 차렸을 땐, 다시 꿈속이었다.
그때처럼 몽마가 나를 억지로 잠재운 걸까?
시간 정지를 건 후에 바로 수면을 거는 보스라니, 패턴이 진짜 징그럽네.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
꿈속에 들어온 이상 빠르게 엔딩을 볼 수 있다면 이대로 여왕의 꿈을 찢고 안개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스피드런은 취향이 아닌데...”
원래 스피드런은 개발자들이 보여주려고 한 걸 전부 무시하는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한 번, 제대로 달려보는 수밖에.
원래 스피드런 방송은 잘 챙겨 안 봤지만, 스피드런으로 기부금을 모으는 행사는 놓치지 않고 꼭 챙겨봤거든.
스피드런을 한다면, 역시 그 게임밖에 없지.
히얼 위 고 투게더 월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스피드런 기록이 존재하는 그 게임.
더 기록을 단축할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도 언제나 기록이 단축되는 바로 그 게임이다.
수많은 게임들 사이에서 CD를 찾아 게임기에 집어넣자, 곧장 주위의 풍경이 뒤바뀐다.
“역시, 내가 직접 달려야 하네.”
쯧, 패드로 조작하는 거라면 10분 안에 클리어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지.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
직접 내가 달려야 한다면 패드로 조작할 때는 사용하지 못하는 꼼수들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몽상 구현.”
질풍의 반지, 이걸 끼고 있으면 일단 시작부터 파워업 아이템을 먹은 상태로 시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지.
순식간에 가벼워진 몸으로 곧장 코스를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투게더 월드는 월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종의 오픈 월드 시스템을 채용했는데,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든 열쇠를 15개만 모으면 최종 보스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진짜 온갖 스피드런이 탄생했고, 나 또한 그와 비슷한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시작 지점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분명히...”
시작 지점에서 곧장 지하로 하강.
원래라면 이상한 버그를 사용해야 가능하지만, 내가 직접 이 세계를 달리는 이상 그럴 필요는 없다.
이 시작 지점은 낡은 나무 합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충분히 부술 수 있다.
플렛포머 게임에서 파괴 불가능한 발판을 부술 순 없지만, 난 플렛포머 게임의 캐릭터가 아니니까.
사실상 액션 RPG의 캐릭터에 더 가깝지.
“몽상구현.”
다키스트 썬에서 가져온 거대한 해머를 들어 올리고 바닥을 향해 내리친다.
이 해머, 이름이 분명히 땅 부수는 망치였었지?
이름에 걸맞는 활용법을 보여주고 있으니, 게임 개발자들도 보면 좋아할 게 틀림없다.
순식간에 오래된 판자가 박살나 부서지고, 내 몸이 시작지점 아래의 텅 빈 공허로 낙하한다.
그래픽이 깨지는 것 같은 기괴한 풍경이 내 주위에 이리저리 펼쳐지더니, 어느 순간 난 하늘섬의 하늘에서 낙하하고 있었다.
개발자들이 리소스를 아끼겠다고 하늘섬 맵을 시작 지점 지하에 박아둔 덕분에 가능한 루트다.
“집중, 집중...!”
여기서 집중에 실패해서 하늘섬의 오아시스 말고 맨땅에 처박히면 그대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피드런 잘 해놓고 여기서 실패해서 스피드런을 망친 사람들을 여럿 봤기에 나는 끝까지 집중을 유지하며 오아시스에 착지했고, 곧장 오아시스의 나무를 걷어차 나뭇잎 사이에 숨겨진 열쇠를 찾아냈다.
“하나 획득. 다음은...!”
서둘러 하늘섬의 입구 역할을 하는 비석으로 달려가 손을 올린다.
그러자 순식간에 내 몸이 지상으로 이동해 꽁꽁 얼어붙은 산꼭대기에 도착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게 중요하다.
1초라도 발을 멈췄다간 얼어붙어서 그대로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흡!”
점프, 점프, 더 높은 점프.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최대한 빠르게 산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산 중턱의 얼어붙은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눈사람, 찾았다.”
호수 중앙에 수상하게 덩그러니 놓여있는 눈사람을 붙잡고 호수 아래로 집어 던지고 눈사람의 뒤를 따라 산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대굴대굴 눈 덮인 산을 굴러가던 눈사람은 점차 눈이 달라붙어 커지더니, 이내 거대한 눈사태가 되어 산 아래의 수상한 탑을 덮친다.
부숴진 탑의 잔해에서 곧장 열쇠 하나를 더 획득하고, 다시금 머릿속에 그려둔 루트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순서에 맞춰서 노래하는 돌들을 밟아서 노래를 연주하여 열쇠를 획득하고, 한 번 밟으면 사라지는 발판을 지나가 열쇠를 얻는다.
그리고 또, 또, 또 열쇠를 얻으며 쉬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엔딩에 도달하기 위하여.
“여기서 스테미나를 전부 써서...!”
휴식을 취하지도 않고 달리며 스테미너를 마지막까지 쥐어짜 절벽을 뛰어넘는다.
반대편 절벽에 도착한 순간 나를 향해 걸어 다니는 버섯들이 뛰어오르지만, 몸을 움직일 스테미나는 더 남아있지 않다.
중간 세이브를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면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게 될 상황.
그 상황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미리 저장해둔 아이템을 꺼내서 사용한다.
순식간에 불타는 화염구가 내 손 위에 피어오르고, 나는 곧장 화염구를 눈앞의 버섯들에게 던졌다.
“와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투게더 월드에서 새롭게 추가된 파워업 아이템, 파이어 코인.
효과는 단 한 번 던질 수 있는 화염구를 얻는 것.
순식간에 화염구의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 버섯들을 보며 난 휘파람을 부르고, 그와 동시에 회복된 스테미너로 다시 앞으로 달려나간다.
히얼 위 고 시리즈의 공통적인 시스템, 파워 업 아이템을 먹을 시 스테미나가 전부 회복되는 시스템 덕분이다.
“...마지막 하나!”
마지막으로 절벽에 매달려있는 열쇠를 손에 넣는 것과 동시에, 품 안의 열쇠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열쇠로 변화한다.
열쇠가 변화하는 걸 보자마자 나는 컷신이 재생되는 것보다 빠르게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다음 순간,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구름에 붙잡혀 시작 지점으로 돌아와 있었고 컷신 재생 없이 곧장 개방된 최종 보스의 영역을 향해 달려간다.
“4분 34초...!”
4분 34초라, 이 정도면 진짜 세계 기록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내가 기억하는 1등 기록보단 못해도 이 정도면 내 개인 신기록은 충분히 갱신하고도 남았다.
최종 보스의 영역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거대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 같아선 여기도 스킵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스킵할 방법이 없으니 정공법으로 돌파해야 한다.
서둘러 저택의 정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뭐, 뭐야?!”
갑자기 게임 세상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누군가 바깥에서 침입하려는 듯 말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저택의 한쪽 벽을 짚은 순간.
“어?”
불안정해진 꿈 때문일까?
내 몸이 벽을 뚫고 들어가더니, 다음 순간 난 저택의 최상층으로 이동해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뭐지?
버그인가?
아니, 투게더 월드에 이딴 버그가 있단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방금 일어난 버그 덕분에 저택을 스킵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보스전뿐이다.
“좋아. 가자!”
난생 처음 보는 버그 덕분에 시간을 단축한 김에 곧장 보스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입에서 불을 뿜는 펭귄이 모습을 드러낸다.
3D 히얼 위 고 시리즈에서 늘 보스를 담당하는 펭-킹-콩 되시겠다.
원래라면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보스가 소환하는 잡몹을 이용해서 몇 가지 기믹을 수행해서 딜을 넣어야 하는 보스지만.
“반으로 갈라져 죽어!”
ARPG 하다 온 사람한텐 먹히지 않는 공략이다.
공략?
그런 게 왜 필요해.
그냥 검으로 베어버리면 되는데.
순식간에 보스를 처치하자, 익숙한 선택지들이 내 앞에 떠오르며 주위가 어두워진다.
[파이어 코인]
[타이머]
[슬픈 눈사람의 저주]
늘 그렇듯, 클리어 보상으로 세 가지의 선택지가 눈 앞에 떠오르지만 이번엔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다.
나는 서둘러서 가장 쓸만해 보이는 첫 번째의 선택지를 택하며 빠르게 엔딩을 보았고.
말 그대로, 안개를 찢어버리며 꿈에서 깨어났다.
모든 것이 멈춰있던 세상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고, 꿈에서 깨어난 내 앞에 제일 먼저 보인 건 나를 닮은 누군가였다.
잠깐만, 저거 노엘인가?
노엘, 맞지?
지금 상황에서 여왕과 싸울 사람이라면 노엘밖에 없잖아.
도대체 내가 자고 있던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하지만, 일단 지금은 탈출할 때다.
“최대한 빨리 클리어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요한!”
“탈출할 거니까, 꽉 잡아!”
서둘러 노엘을 껴안고 찢어진 안개의 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고 있으니, 여왕의 끈덕진 시선이 나를 끝까지 따라온다.
가면 너머의 시선이 안개를 빠져나가는 나를 끝까지 쫓아오지만, 더 이상 여왕이 내게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탈출했나?”
다음 순간, 난 노엘을 안은 채로 안개가 자욱한 숲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겪었던 일은 전부 꿈이라는 것처럼 안개의 숲은 달빛을 받으며 고요히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꿈이 맞긴 한데, 이거 진짜 기분이 묘하네.
괜히 더 안개의 근처에 있기도 싫어, 나는 서둘러 노엘을 안은 채로 숲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이곳에 돌아오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라며.
#
“...놓쳤네.”
아쉽구나.
안개를 뻗어 다시 끌어당기려 해도, 그 아이가 완전히 내 영향을 벗어나 버렸다.
그 아이가 자신의 꿈을 스스로 선택하던 순간 보였던 보랏빛 안개, 그건 그 아이가 더는 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리고 그건, 단 하나만을 뜻한다.
“몽마가 직접 꿈을 만들어내다니, 후후. 역시 작은 아이들은 상상치 못한 일을 벌인다니까.”
몽마가 직접 꿈을 만들어냈다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없던 일.
그 아이가 가져온 꿈 또한 먹음직스러웠지만, 그 아이가 직접 만든 꿈 또한 어떤 맛일지 기대된다.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언젠간 내 곁에 돌아오게 될 테니, 그때 차분히 수확하면 될 뿐이다.
이미 저승조차 나의 것이니.
“...그래도 기다리긴 조금 힘드네.”
그래도 조금, 그 시기를 앞당길 방법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
여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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