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환희

S#1. 유주성 누각 / 645년
깊은 밤, 유주성의 성채 안에서 연개소문과 까마귀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과 긴장이 가득했다. 그들의 대화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었다.
까마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감축 드립니다, 대막리지. 이세민이 100명의 장수와 60만의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했건만, 대막리지의 전술과 용맹으로 광개토태왕보다 거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역사의 패자가 되셨습니다.”
연개소문은 큰소리로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으하하하, 기쁘구나. 지금껏 대륙을 정복한 고구려인이 있었던가. 하하하.”
연개소문은 연거푸 술을 마시며 성취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이제 그 성과를 만끽하고 있었다.
까마귀는 술잔을 들고 조심스레 물었다.
“대막리지. 평양성으론 언제 환궁하십니까.”
연개소문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이세민이 배상금을 가져왔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성대한 개선잔치를 해야지. 까마귀, 너의 공을 잊지 않겠다.”
그러나 까마귀의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는 술을 따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막리지. 저는 이곳에 남아 유주와 하북, 요서를 지키는 건 어떻습니까. 고구려가 정복했지만, 하북, 요서지방은 거란, 선비족들이 날뛰고 있으니 그들도 견제해야 합니다.”
연개소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이냐. 이만한 공을 세우고 변방에 남겠다라. 네 말처럼 하북은 물론 요서지역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까마귀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제 쓰임대로 전쟁터에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연개소문은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까마귀의 눈에는 깊은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평양으로 돌아가면, 그는 다시 정치적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연개소문은 그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까마귀는 목숨을 걸고 연개소문에게 도박을 건 것이다.
연개소문은 술잔을 들어 까마귀에게 따라주며 말했다.
“쓰임이라.”
까마귀는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술을 마셨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속을 깊이 이해했다. 연개소문은 까마귀의 불안과 두려움을 알고 있었고, 까마귀는 연개소문의 결단과 냉철함을 존경하고 있었다.
까마귀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양으로 돌아가면, 그는 다시 정치적 음모에 휘말릴 것이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연개소문의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다.
연개소문은 까마귀의 이러한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냉철한 정치가이자 군사 전략가로서, 까마귀의 충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까마귀가 고구려의 안위를 위해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다. 너의 충성과 용맹을 믿겠다. 하북과 요서를 지켜라. 그곳은 네가 지켜야 할 새로운 전장이 될 것이다.”
까마귀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대막리지. 제 목숨을 걸고 고구려를 지키겠습니다.”
깊은 밤, 두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며 새로운 결심을 다졌다. 그들의 운명은 여전히 불확실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결단력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연개소문과 까마귀의 이야기는 이렇게 또 다른 장을 열었다. 그들의 운명은 여전히 전쟁과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S#2. 사비성 / 646년
백제의 궁전 회의실, 위엄을 지닌 의자왕이 대신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방안은 묵직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의자왕의 얼굴에는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고, 그는 대신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신라가 김유신을 보내 죽령 넘어 고구려의 성열성과 동대성을 기습하였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의자왕이 무겁게 물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성충이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간 저희에게 패하기만 하던 신라가 감히 선제공격을 한 것에는 필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성충의 말은 방안의 공기를 바꾸었다. 그는 차분하게 계속했다.
“김춘추는 대야성에서 딸이 죽은 것에 원한을 품고 고구려에 우리를 공격해 줄 것을 요청하다 실패하고, 연개소문에게 잡혀 꼼짝달싹 못하다 거짓으로 계략을 써 도망간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국까지 가 군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춘추란 자는 집념이 대단해 당나라까지 건너가 이세민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세민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백제를 치겠다는 약조를 했습니다.”
성충의 말에 의자왕은 크게 분노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간악한 놈을 보았나! 제 힘으로 되지 않으니, 외세에 힘을 빌리려 든단 말인가? 하다하다 이제 당나라 놈들까지 끼어들인다는 게냐! 저 더러운 신라 놈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당장 저들을 멸하여 이 치욕을 씻겠다!”
성충은 분노한 의자왕을 달래며 말을 이었다.
“신이 저들의 계략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당이 육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수군으로 서쪽을 치고, 신라는 저희를 공격하여 고구려를 돕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대군으로 고구려 후방을 교란하는 작전을 세웠을 겁니다. 하지만, 신라가 성열성을 차지하기 전에는 고구려 후방을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 또한 요동을 장악하기 전에 저희를 공략할 수군을 보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충의 말은 냉철하고 논리적이었다. 의자왕은 그의 혜안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성충은 계속해서 제안을 했다.
“저희는 신라에게 성열성을 내주고 군대를 보존하여 관망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당과 신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벌인다면 서로 국력을 쏟아부어야 할 테니, 저희는 당의 강남 지역을 정벌하고 신라가 고구려에 군을 보낸 사이 신라 역시 토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자왕은 성충의 혜안에 몹시 기뻐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대가 있어 백제가 있음이로다.”
의자왕은 성충의 지혜와 통찰력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성충이 백제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성충의 총명한 눈빛과 의자왕의 결단력 있는 모습은 방 안의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다음 해, 당나라가 대군을 몰아 고구려를 공격하니, 신라도 대군으로 고구려 후방을 공격하였다. 의자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라가 고구려 후방을 공격하니, 기회다!”
의자왕은 결연하게 외쳤다.
“계백은 성일성을, 부여윤충은 부사달성을 공격하라!”
의자왕의 명령에 따라 백제의 군사들은 전쟁을 준비하며 결의를 다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성충에 대한 깊은 신뢰와 백제의 미래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이들은 곧 다가올 전투에서 총명함과 용맹함을 발휘하여 백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나아갔다.
S#3. 사비성 / 646년
사비성의 궁전 회의실은 여전히 묵직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신들은 의자왕의 명령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었고, 의자왕은 성충의 지략에 깊은 신뢰를 두고 있었다. 그때, 척후병이 급히 뛰어들어왔다.
“전하, 계백 장군이 성일성 등 7개 성을 점령하였고, 부여 윤충 장군은 부사달 등 10여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척후병은 숨을 고르며 급히 보고했다.
의자왕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하하하, 역시 계백과 윤충이로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성충을 바라보았다.
“성충, 고구려 상황은 어떠한가?”
성충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고구려가 신성, 건안, 주필산, 안시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합니다. 당의 퇴각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윤충에게 속히 수군을 조직하여 당의 강남을 공격하도록 하겠나이다.”
의자왕은 크게 기뻐하며 명령을 내렸다.
“어서 시행토록 하라.”
성충은 머리를 숙이며
“네, 전하.” 라고 답하고 방을 나섰다.
척후병의 보고와 성충의 전략은 백제의 승리로 이어졌다. 계백 장군과 부여 윤충 장군은 각기 7개 성과 10여 개 성을 점령하여 백제의 영토를 넓혔다. 이들은 의자왕의 명령에 따라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갔고, 백제의 위상을 드높였다.
성충의 지략은 단순히 적을 물리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과 신라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그들의 계획을 무력화시키는 데 있었다. 고구려가 당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퇴각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은 백제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백제의 왕실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했다. 의자왕은 성충의 지략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그의 충성심과 지혜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의자왕은 성충을 비롯한 대신들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며 백제의 미래를 더욱 밝게 그려나갔다.
성충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백제의 강성함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총명한 눈빛과 냉철한 판단력은 의자왕을 비롯한 모든 대신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의자왕은 성충의 전략이 백제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음을 인정하며, 앞으로도 그의 조언을 중시할 것을 다짐했다.
S#1. 유주성 / 646년
유주성의 오후, 햇살은 따사롭게 병사들의 훈련장을 비추고 있었다. 까마귀와 걸사비우는 느긋하게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그들은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걸사비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신라 놈들 비열한기는 도둑놈들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김춘추 그 낯짝만 보고 한 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곱상하게 생겨서 간세이 짓만 골라할 놈입니다. 대막리지께서 신라 놈들을 가만두지 않으시겠죠?”
까마귀는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내가 어찌 알겠느냐. 신라 놈들, 더럽긴 더러운 놈들이다. 제 힘으로 못할 것 같으니 이 나라, 저 나라 빌붙어서 복수해 달라 징징대는 꼴이라니. 듣자하니 당에 자진해서 신하국이 되겠다 맹세했다지. 관복도 연호도 당의 것으로 바꾸고. 수치라고는 모르는 놈들. 나라를 당에 갖다 바친 게 아니냐.”
걸사비우는 까마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신라는 정말 싫어하시네요.”
까마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집도 아니고, 최소한의 명예도 없는 놈들이다.”
걸사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하하, 맞습니다. 그나저나 얼마만의 여유인지 모르겠습니다. 풍족한 식량, 따뜻한 기후, 평화로운 나날들. 꿈만 같습니다.”
이곳 유주성은 마치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안식처 같았다. 병사들은 훈련에 열중했고, 마을 사람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즐겼다. 까마귀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연수영 대인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보였다.
그때 걸걸중상이 까마귀에게 다가왔다. 까마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걸걸중상의 입만 바라보았다. 걸걸중상은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척후병에 따르면 다시 수복한 비사성을 샅샅이 뒤졌지만, 수영 대인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합니다.”
까마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걸걸중상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형님,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수영 대인과는.... 지난 고초를 잊으셨습니까. 저희가 이곳에 남은 것도. 실은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닙니까.”
까마귀는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걸사비우가 분위기를 바꾸려 말을 돌렸다.
“생해 형님 뵌 게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당과의 전쟁 때도 신라 전선에만 계시니 말입니다.”
까마귀는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그렇구나. 생해 녀석은 잘 있는지....”
걸걸중상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런 말씀 송구하지만 대막리지도 너무하십니다. 형님과 생해 형님을 경계해서 악의적으로 떨어트리려 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 당 사신이 찾아왔다. 걸사비우는 얼굴에 경멸을 띠며 까마귀에게 말했다.
“형님. 대막리지가 화친의 의미로 보낸 미녀 2명을 이세민이 돌려보냈습니다.”
까마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당 사신이 공손히 대답했다.
“미녀는 사람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그들이 가족을 떠나와 애태우는 것이 딱해 받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대신 황제께서 대막리지의 용맹과 친교를 위해 활과 황금 의복을 하사하셨습니다.”
걸사비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체면은 있나 보네.”
까마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알겠다. 미녀는 가족에게 돌려보내고, 활과 의복은 대막리지께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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