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에서 요서까지

둘은 서로를 향해 말을 달렸다. 말발굽 소리는 천지를 울리며 전장을 뒤흔들었다. 둘의 검이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 강철의 울림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네 놈의 목을 가져가겠다, 설인귀!”
까마귀가 외쳤다.
설인귀는 비웃으며 대답했다.
“내 목을 가져가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은 검을 휘두르며 맹렬히 싸웠다. 까마귀의 환두대도와 설인귀의 장검이 서로를 겨누었다. 순간, 설인귀가 말에서 뛰어내려 까마귀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설인귀가 포효하며 까마귀에게 달려들었다. 까마귀도 말에서 내려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둘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까마귀는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너 따위가 감히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설인귀는 비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너를 이길 것이다, 까마귀!”
둘은 끝없이 맞붙었다. 설인귀가 강하게 내려찍은 검을 까마귀가 막아내며 반격을 시도했다. 그의 검은 번개처럼 빠르게 설인귀를 겨누었다.
순간, 까마귀는 설인귀를 향해 몸을 돌리며 비도 두 자루를 날렸다. 설인귀는 하나의 비도는 검으로 쳐냈지만, 나머지 하나가 그의 가슴에 박혔다.
“으악!”
설인귀가 신음 소리와 함께 말에서 떨어졌다. 그는 가슴에 박힌 비도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연수영이 소리쳤다.
“설인귀! 설인귀가 죽었다! 까마귀가 설인귀를 죽였다!”
신병들이 흥분하여 외쳤다.
“까마귀 만세! 삼족오 만세! 까마귀 만세!”
까마귀는 환두대도를 높이 들고 외쳤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 놈들에게 지옥을 보여줘라! 까마귀 지옥문을 열어라!”
신병들은 광신도처럼 '까마귀 지옥문을 열어라!'를 외치며 당 정예보병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세적은 본진에서 전방의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손이령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이세적 총사님. 설, 설인귀가 죽었습니다. 선봉이 무너집니다!”
이세적은 당황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손이령! 우리가 수적으로 우세하다! 장수 하나 죽었을 뿐이다. 동요하지 마라, 주저마라! 그대가 본진을 이끌고 선봉을 받쳐줘라! 당의 명예를 되찾아라!”
손이령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세적 총사님. 적이, 까마귀 군이 광신자 같습니다.”
그 순간, 전령이 달려와 급하게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총사님! 까마귀 기병이 아군 기병을 몰아냈습니다!”
이세적은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당 본진 옆과 후방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거란! 이 병신 같은 놈들은 뭘 했단 말이냐!”
이세적이 분노에 차서 외쳤다.
손이령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총사, 총사! 포, 포위되었습니다.”
이세적은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퇴각하라! 진을 물려라!”
전장의 한가운데서 까마귀는 적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으하하하, 죽어라, 죽어! 지옥을 보여줘라!”
“오너라, 이 놈들! 까마귀 지옥을 환영한다! 오너라, 오너라! 울어라, 빌어라! 하하하하!”
까마귀가 외쳤다.
연수영이 다가와 소리쳤다.
“까마귀, 놈들 본진이 퇴각한다. 추격할까?”
까마귀는 연수영의 말에 흥분했던 눈이 냉정히 돌아왔다. 그는 가만히 전황을 살펴본 후 명령을 내렸다.
“대가리는 필요 없다. 적병은 모두 죽여라! 놈들이 두 번 다시 고구려를 넘보지 못하게 하라! 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까마귀의 명령에 따라 고구려군은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신병들은 까마귀의 말에 광적으로 외쳤다.
“까마귀 지옥문을 열어라! 까마귀 지옥문을 열어라!”
신병들은 당군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고구려 기병은 거란 기병을 완전히 몰아내고 당군의 측면을 공격했다.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이끄는 기병대는 날렵한 기동력으로 적을 쓸어버렸다.
“삼족오 만세! 까마귀 만세!”
병사들은 외치며 적을 무너뜨렸다.
당군은 혼란에 빠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신병들은 마치 광신도처럼 적을 추격하며 하나하나 처단했다.
이세적은 본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절망에 빠졌다.
“퇴각하라! 진을 물려라!”
그의 명령은 공허하게 울렸다.
고구려군은 승리의 기세를 몰아 당군을 몰아내었다. 피로 물든 전장에서 까마귀는 환두대도를 높이 들고 외쳤다.
“삼족오를 높이 들어라! 삼족오 만세!”
병사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삼족오 만세! 까마귀 만세!”
전장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까마귀 군은 10만의 시체 위에 피를 뒤집어쓰고 서 있었다. 피로 물든 대지 위에서 까마귀는 자신의 결단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그는 앞으로도 고구려를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하며, 병사들과 함께 승리를 축하했다.
요서 / 647년
하북전투에서 승리한 까마귀군은 피로도는 상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요서로 달려가고 있었다. 까마귀는 굴가에게 신출귀몰한 까마귀군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이기지 않고 이겨야 했다. 피말리는 기동전과 굴가와의 심리전이 시작되었다.
연수영은 피로에 지친 병사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승전했지만, 격렬한 전투로 병사들이 지쳐있어.”
까마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당군이 우리에게 전멸한 걸 거란이 알아채기 전에 가야 합니다.”
하북 전투에서 승리한 까마귀군은 피로도는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서로 필사적으로 달렸다. 까마귀는 이 기동전을 통해 굴가에게 고구려의 힘을 과시하고 싶었다. 이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심리전이었다. 까마귀는 승리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병사들이 지쳤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다”
까마귀는 말하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당군이 우리에게 전멸한 것을 거란이 알아채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걸사비우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지금 생각해도 소름입니다. 신병이 광신도가 되었습니다. 까마귀 지옥! 와아! 대단했습니다.”
연수영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노닥거리지 말고 군이나 챙겨라!”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는 연수영의 말에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까마귀는 연수영을 보며 웃었다.
그들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까마귀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움직였다. 모든 병사들이 까마귀의 결단과 용기를 믿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장군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굴가와의 대면을 준비했다. 까마귀는 굴가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력만이 아닌, 그들의 불굴의 의지와 전략이었다. 이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까마귀는 모든 것을 걸었다.
까마귀군은 요동성 출진한 3만 군과 합류했다. 요동성주는 까마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 연도금류 장군님. 천리마도 아니고 하북에서 요서까지 날아오신 겁니까. 거란 굴가 놈이 7만 병력을 가지고도 놀라긴 놀란 모양입니다. 회담을 요청했습니다.”
까마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만나 볼까요.”
고구려 군과 거란 군 사이에서 까마귀와 굴가가 말을 몰아 만났다. 굴가는 까마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거란 키탄 족장 굴가다. 그대가 까마귀인가.”
걸걸중상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감히 장군께, 무엄하다!”
그러나 까마귀는 중상을 제지하며 말했다.
“되었다. 내가 연도금류 까마귀다. 그대는 어찌하여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하는가. 당군 10만이 내 손에 까마귀밥이 된 건 알고 있는가.”
굴가는 움찔하며 대답했다.
“고구려가 요서, 하북, 강서를 점령한 후 우리 부족과 교역을 금하니 식량이 부족하여 당과 화친했다.”
까마귀는 매서운 눈으로 굴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나와 싸우겠는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는가?”
굴가는 두려움에 떨며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까마귀의 눈빛은 냉정하고 차가웠다. 그는 굴가의 두려움을 완전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까마귀는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주성에서 교역을 열어주겠다. 그대는 고구려 태왕과 대막리지에게 충성을 바치겠는가.”
굴가는 까마귀 뒤의 병력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굴가를 향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굴가는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신, 굴가. 지금부터 고구려를 섬기겠습니다.”
까마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군대를 해산하고 당과의 관계를 끊어라.”
굴가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장군.”
까마귀는 굴가를 잠시 바라보며 그를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순종이 서려 있었다. 까마귀는 선심을 쓰듯 말을 이었다.
“그대의 충성이 진심이라면, 그대의 부족은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신한다면, 그대와 그대의 부족은 고구려의 힘을 다시 한 번 맛보게 될 것이다.”
굴가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장군.”
까마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돌아가라. 그리고 약속을 지켜라.”
까마귀는 요동성주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요동성주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대막리지께 안부 전해주십시오. 거란 문제도 잘 부탁드립니다.”
요동성주는 까마귀를 칭찬하며 말했다.
“굴가 놈이 저리 쉽게 항복할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천하의 맹장 까마귀입니다.”
연수영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당 정예 10만을 물리치고 온 아군의 군세를 보면 당연한 선택이지. 영리한 놈이야.”
요동성주는 동의하며 말했다.
“네, 연수영 대인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요동성주는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바로 돌아가십니까.”
까마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야죠.”
요동성주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장군.”
까마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까마귀군은 영주성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연수영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싸우지 않았어. 우리 군이 지쳤다 해도 요동군 3만과 합류해 7만 가까운 병력이었어. 거란 7만은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인데.”
까마귀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번 전투가 끝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연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까마귀는 설명했다.
“병력 수는 비슷했지만 아군이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보병은 요동까지 행군해 온 것만으로도 쓰임이 다 했습니다. 거란과 전투를 승리해도 아군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요서엔 굴가의 거란만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수많은 거란 부족의 씨를 말릴 수 없습니다. 주적 당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 적을 더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구로 둘 수 있다면 불편해도 감수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연수영은 까마귀의 무덤덤한 대답에 놀라며 물었다.
“굴가가 항복하지 않았다면. 그땐 어쩌려고 그랬는데.”
까마귀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항복할 거라 확신했습니다. 당군을 철저히 멸살시킨 것도 거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유목민족에게 충은 힘이니까요. 그들은 강한 자에게 고개를 숙이잖습니까. 굴가 놈이 7만 병력을 끌어 모았대도 당의 지원 없이 우리와 전쟁을 이어나갈 힘은 없을 테니까요.”
연수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가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 이 미친 백정 놈아, 하하하.”
걸사비우는 감탄하며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형님. 도대체 몇 수까지 내다보신 겁니까.”
걸걸중상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 굴가란 놈,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란을 규합한 것도 그렇고 전투력, 용병술, 협상력 그 무엇도 넘치지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까마귀는 흐뭇한 표정으로 중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보았다. 굴가, 위험한 놈이다. 우리에게 조금의 틈이라도 보인다면 언제든 치고 들어오겠지. 군세를 키워야 한다. 까마귀 군단을 만들어 보자.”
걸사비우는 신나서 외쳤다.
“멋집니다. 까마귀 군단. 지옥 군단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연수영은 비웃으며 말했다.
“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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