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의 첫 전투

신성 인근 (굴가 진영) / 654년
거란군 진영은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전투의 여파로 피로에 지친 병사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다시 정비하며 불안을 감추려 애썼다. 굴가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찌된 일이냐. 15만 군이 고작 5천 기병을 잡지 못하다니! 당장 놈들을 잡아와라!”
가도자는 굴가의 말에 반박하며 말했다.
“굴가 장군, 5천 군사에 너무 휘둘리는 거 아닙니까. 굳이 추격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굴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놈들의 본진도 오지 않았습니다. 선봉을 꺾어야 합니다. 악명 높은 까마귀 날개를 이제야 잡았습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가도자 장군, 저 놈만 잡는다면 요서는 물론 요동까지 우리의 것이 될 겁니다.”
가도자는 굴가의 결단에 동의하며 말했다.
“좋소. 앞장서시오.”
굴가는 감사의 뜻을 표하며 말했다.
“고맙소, 가도자 장군.”
굴가와 가도자는 직접 말을 몰아 까마귀군 추격을 시작했다. 굴가는 이번이야말로 까마귀를 잡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거란의 한 장수가 다급히 물었다.
“다른 방향으로 빠져나간 4천 기병은 어찌할까요?”
굴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두어라. 까마귀만 잡으면 된다. 가자, 거란의 전사들이여!”
그의 목소리는 거란 병사들에게 분노와 결단을 불어넣었다.
굴가는 말을 몰며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까마귀를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명성은 전장에 울려 퍼졌고, 그를 잡는다면 거란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었다. 굴가는 단호한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까마귀는 1천 기병만을 이끌고 퇴각하고 있었다. 굴가는 이를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이제야말로 까마귀를 잡을 수 있다. 놈의 날개를 꺾어버리겠다.”
굴가는 스스로 다짐하며 말을 몰았다.
거란군은 굴가의 명령에 따라 힘차게 말을 몰아 까마귀군을 추격했다.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굴가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저 까마귀를 잡는다면 우리 거란의 영광이 될 것이다! 모두 힘을 다하라!”
가도자는 굴가의 옆에서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이 만용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굴가의 결의는 확고하다. 그를 따르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일 것이다.”
거란군은 까마귀군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굴가는 승리를 눈앞에 둔 듯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까마귀를 잡겠다는 결의만이 가득 차 있었다.
굴가는 까마귀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까마귀의 전투 전략과 그의 무용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신성 인근 (까마귀 군) / 654년
까마귀군은 요서 쪽으로 말을 달리며 퇴각하고 있었다. 까마귀는 말을 달리는 내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매서운 기세로 적의 움직임을 살폈다.
“대장군님, 적입니다! 거란이 쫓아옵니다!”
까마귀군의 한 병사가 다급히 외쳤다.
까마귀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보이는구나. 얼마나 되는 것 같으냐?”
“4~5만은 족히 넘어 보입니다.”
병사가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하. 속도를 좀 더 늦추어라.”
까마귀는 여유롭게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대장군님.”
병사가 응답하며 속도를 조절했다. 까마귀는 거란군이 자신들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음을 직감하며 미소를 지었다.
굴가와 가도자는 군을 재촉하며 말을 달렸다. 굴가의 얼굴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다.
“적은 지쳤다. 조금만 더 속도를 올려라! 으하하하하! 오늘에야 까마귀를 잡는구나! 달려라, 달려!”
굴가는 거란군을 독려했다.
“두! 두! 두! 두! 두! 두! 두! 두! 두! 두! 두! 두!”
대지가 울린다.
가도자는 전방에서 들려오는 울림과 굉음에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굴가 장군, 이게 무슨 소리요. 군마 소리 아닙니까."
굴가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냐니요. 우리 4만 정예 거란 기병 군마 소리지요. 하하하하, 속도를 더 높여라.... 아.. 아니. 저건....”
거란기병이 소리쳤다.
“적군이다! 개.. 개마무사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걸사비우가 이끄는 1만 개마무사가 거란기병과 정면 충돌했다. 육중한 개마무사에 거란기병 선두가 그대로 무너졌다.
“죽여라! 밟아라! 개마무사의 혼을 보여주어라! 삼족오를 높이 들어라!”
걸사비우가 외쳤다. 거란 추격병 중앙에서 선봉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굴가와 가도자는 혼란스러워했다.
“개마무사가 어디서. 어찌합니까! 까마귀를 쫓느라 군의 진영이 엉망입니다.”
가도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후, 후방에 고구려 기병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다른 거란 병사가 다급히 보고했다. 굴가는 고개를 뒤로 돌리며 소리쳤다.
“뭐, 뭐라? 적은 얼마나 되느냐?”
“2만은 넘어 보입니다! 삼족오가 가득합니다!”
병사가 대답했다. 굴가와 가도자는 당황하며 말머리를 돌려 진영을 벗어나 도주하기 시작했다. 거란 추격병 전방에서는 걸사비우의 개마무사 1만기가 적을 압살했다.
“죽여라! 죽여! 모두 죽여라! 거란의 씨를 말려라!”
걸사비우가 외쳤다.
거란진영 후방에는 대중상의 2만 기병이 공격을 개시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다 죽여야 한다. 모조리 죽여라!”
대중상이 명령했다.
까마귀군은 거란군을 에워싸고 차근차근 적을 죽여 나갔다. 그들의 칼날은 무자비하게 적의 목숨을 앗아갔다.
까마귀, 대중상, 걸사비우는 말머리를 함께 하며 거란군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잘했다. 필요한 시기에, 장소에 정확히 와 주었구나.”
까마귀가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걸사비우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하하하, 형님. 우리가 이제 척하면 척 아닙니까.”
“그래. 그렇구나, 하하하.”
까마귀는 웃으며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모래바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영이가 돌아오는구나.”
까마귀가 말했다.
대중상은 그제야 얼굴에 안도하는 미소를 지었다.
“허허. 네 아들놈을 그리 믿지 못하겠더냐.”
까마귀가 물었다.
대중상은 머슥해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형님. 그럴리가요. 그저... 조금 늦어지나 싶은 거죠. 형님께 폐가 될까.....”
그때 대조영의 4천 기병이 합류했다.
“신, 조영. 다녀왔습니다.”
대조영이 말하며 나아왔다. 대중상은 따뜻한 시선으로 대조영을 바라보았다.
“자, 군을 수습해라. 거란 본대를 마무리해야지.”
까마귀가 명령했다. 걸사비우가 나서며 말했다.
“형님! 이번엔 절대 선봉을 양보 못합니다.”
까마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가자꾸나.”
“까마귀 만세! 삼족오 만세!!”
까마귀군은 환호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전장은 다시 한번 그들의 용맹함으로 가득 찼다. 고구려의 전사들은 까마귀의 지휘 아래 적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의 용맹과 결의는 전장을 뒤흔들었고, 거란군을 철저히 무찔렀다.
신성 인근 (거란군 본진) / 654년
전장은 피로 물들었다. 까마귀군이 거란군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고 있었다. 신성에서 나온 고구려군이 합세하여 거란군을 몰아내고 있었다. 이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거란군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도망치기 바빴다. 고구려군은 그들을 추격하며 하나하나 쓰러뜨리고 있었다.
까마귀는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대조영을 찾았다.
“11만 대군을 가진 거란이 우리 군에 무너진 이유를 뭐라 생각하느냐?”
까마귀가 묻는다. 대조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굴가와 해도자가 도망쳐 싸울 의지를 잃고, 군 지휘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대조영의 목소리는 지쳤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까마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장수는 적군 한명을 베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군 1명이 남을 때까지 지휘하는 자가 장수된 자의 책무니라.”
대조영은 그 말을 깊이 새기며 답했다.
“가르침,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까마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가, 갑자기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이제 죽이자, 다 죽여라! 두 번 다시 고구려를 넘보지 못하게 하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여라! 까마귀 지옥문을 열어라!”
까마귀의 명령에 고구려군은 더욱 맹렬하게 거란군을 학살했다.
몇 주 후, 까마귀군은 요서의 거란부족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걸사비우가 거란부족의 족장을 끌고 왔다.
“굴가와 해도자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
걸사비우가 외쳤다.
거란부족장은 두려움에 떨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흰 모릅니다.”
걸사비우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쳤다.
“이번에도 너희 부족이 굴가에게 병력을 지원한 걸 알고 있다. 당장 굴가를 내 놓아라.”
거란부족장은 간절하게 말한다.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굴가 놈이 병력을 주지 않으면 부족민을 학살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까마귀군을 절대적으로 따릅니다. 용서하십시오.”
걸사비우는 까마귀를 향해 물었다.
“어찌할까요, 형님.”
까마귀는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두 번의 배신은 용서할 수 없다. 남자들은 모두 죽여라. 여자들은 포로로 끌고 간다.”
걸사비우는 즉시 명령을 수행했다.
“네, 형님.”
고구려군은 거란 부족의 남자들을 잡아와 목을 참수했다. 그 와중에 대중상이 까마귀에게 다가왔다. 힘없는 자에게 평화는 없는 법이다.
“형님. 생해 형님 소식입니다. 승전입니다.”
대중상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까마귀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오호라. 어서 말해 보거라.”
대중상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대막리지께서 의자왕과 연합하여 한성 공략을 하셨습니다. 아군은 뇌음신, 생해 형님이 총사령관으로 5만 병력을 출진시켰고, 백제는 계백, 흥수가 출진하여 33개성을 함락시켰다 합니다.”
까마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역시 생해로구나. 한성은 빼앗았더냐?”
대중상은 아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쉽게 한성은 수복하지 못했다 합니다. 그래도 33개 성입니다. 대승입니다.”
까마귀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누구 형제인데. 생해에게 술과 고기를 보내거라.”
대중상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형님.”
까마귀는 전장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조영, 이번 승리에 대해 네 생각은 어떠하냐?”
까마귀가 묻자 대조영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버님의 전략이 빛을 발했습니다. 적의 지휘체계를 무너뜨리고, 공포를 심어 싸울 의지를 잃게 만든 것이 주효했습니다.”
까마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 전쟁은 단순히 병력의 다툼이 아니다.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승리는 그 증거다.”
대조영은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앞으로의 전투에서도 까마귀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구려군의 잔인한 무력시위는 거란 부족에게 강한 경고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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