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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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d.vara
작품등록일 :
2024.04.22 20:45
최근연재일 :
2024.07.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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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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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영의 죽음

DUMMY

적봉진 근방 (고구려진영) / 658년

퇴각한 고구려군은 진영을 꾸리고 있었다. 긴장과 피로가 얼굴에 묻어나는 군사들 사이로, 대조영이 안색이 검게 변해 말을 달리며 소리쳤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

그의 목소리는 절망과 두려움에 떨려 있었다.

대중상이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대조영은 얼굴이 파리하게 변해 대답했다.

“연수영 대인님이. 어머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까마귀가 당군을 따돌리고 몸에 피를 철갑을 한 채 돌아오고 있었다. 대중상은 까마귀를 보며 울먹였다.

“형님, 형님.”

까마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왜 그러느냐.”

대중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수영 대인이 없습니다. 아군을 아무리 뒤져도 없습니다.”

까마귀는 순간 말을 잃었다.

“뭐... 뭐?”

까마귀는 망설임 없이 말을 돌려 적진으로 달려갔다. 대중상은 형님의 모습을 보며 절박하게 외쳤다.

“형님, 형님! 비우야, 군을 이끌고 형님을 따라가!”

걸사비우가 5천 기병을 이끌고 뒤따라갔다.

까마귀와 걸사비우의 5천군은 전투지로 달려왔다. 당군도 물러나고 시체더미가 가득한 전장이었다.

까마귀는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인! 대인! 수영아! 수영아!”

걸사비우도 외쳤다.

“연대인! 연대인!”

까마귀군은 시체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까마귀는 말에서 내려 뛰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수영아, 수영아. 왜 이러고 있어. 왜 여기 있어.”

연수영은 입에 피를 물고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며 말했다.

“커억. 하이씨. 나도 늙었네. 미친 놈. 넌 이렇게 팔팔한데. 난 왜....”

까마귀는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안 돼, 안 돼! 안 돼!”

연수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친 놈. 미안해.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널 원하지 않은 적 없었어. 사랑해. 미안해. 오래 있어 주지 못해서.”

까마귀는 그녀를 꼭 안으며 애절하게 말했다.

“내가 미안해. 지키지 못했어. 두려웠어. 당당하지 못했어. 비겁했어. 이렇게 가면 안 돼. 제발 가지 마, 수영아. 나를 혼자 두지 마.”

연수영은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했다.

“미친 상냥한 놈. 넌 언제나 용감했어. 수진이. 우리 수진이도 나처럼 사랑해 줘. 지켜줘.....”

까마귀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영아, 나도 너를 사랑해. 항상 사랑했어. 내 인생의 전부였어. 내 곁에 있어줘. 떠나지 마. 나에게는 너뿐이야.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연수영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마지막 숨결이 까마귀의 볼을 스치며 사라졌다. 까마귀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절규했다.

“안 돼, 안 돼! 제발 가지 마! 수영아!”

까마귀는 연수영을 꼭 껴안고 소리쳤다.

“수영아! 널 사랑해! 너 없이는 안 돼! 돌아와 줘, 제발!”

그의 목소리는 전장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까마귀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의 영혼은 찢어지고,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그는 연수영의 무거운 몸을 품에 안고, 그녀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며 눈물을 흘렸다. 전장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까마귀의 마음속에는 끝없는 슬픔과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



영주성 / 660년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까마귀는 이제 45세가 되었고, 영주성 연병장에서 멍하니 군사훈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수진이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아빠.”

“응.”

“설인귀가 황산에서 또 승전했대.”

“여전하네.”

“남의 일이야?”

“나도 늙었어. 조영이가 있잖아.”

“그니까. 아빠가 좀 뒤에서 응원해 주면 안 돼?”

“너 할 일 없어? 왜 자꾸 나만 따라 다니니. 네 남편한테 가, 좀.”

그때 대중상이 황급히 뛰어왔다.

“형님, 형님!”

“왜. 왜들 이리 시끄럽냐.”

“백제가 멸망했습니다.”

까마귀는 벌떡 일어섰다.

“뭐? 백제가 왜? 누구한테.”

“당군 13만이 덕물도에 상륙해서 신라와 연합 공격을 했습니다.”

“당군 13만에 백제가 멸망했다고! 대막리지는 뭘 했단 말이냐!”

“당군이 상륙하고 출전 준비를 하긴 했다는데....”

“그런데, 뭐.”

“준비만 한 달 동안 하다가... 그 사이에 사비성이 함락되었답니다.”

“뭐라고?”

까마귀는 술병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그리고 생해 형님이 신라 칠중성을 함락시켰습니다.”

“휴.... 생해가.. 장수들을 부르거라.”

“네, 형님.”

까마귀는 연수영의 죽음 이후로 어떤 의욕도 가지지 못했다. 한때 강철 같았던 그의 정신은 이제 흔들리는 불꽃처럼 위태로웠다. 매일이 끝없는 공허처럼 느껴졌고, 그의 마음은 슬픔과 후회로 무거웠다. 딸 연수진은 아버지를 절망에서 구하려 애썼지만, 그의 슬픔은 너무도 깊었다.

까마귀의 마음은 기억과 감정의 폭풍이었다. 한때 자랑스러웠던 전장 승리는 이제 멀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전우들의 얼굴이 그를 괴롭혔고, 그들의 희생은 삶의 덧없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백제의 멸망 소식은 그의 가슴을 망치로 때리듯 충격적이었다. 역사가 깊은 나라가 당의 힘과 신라의 배신으로 폐허가 되다니,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까마귀는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다. 그는 술로 슬픔을 달래려 했지만, 계속해서 더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이 상태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백제의 멸망은 단순한 정치적 변화 이상이었다. 그것은 반도 내 힘의 균형이 바뀌는 신호였다. 까마귀의 절망은 잠시 미뤄둬야 했다. 장수들은 그의 지휘가 필요했고, 백성들은 희망이 필요했다. 적들은 그가 슬퍼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깊은 숨을 쉬고 장수들을 맞이하기 위해 걸어 나갔다. 미래를 위한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백제의 멸망은 경각심을 일깨웠다. 세상은 움직이고 있었고, 까마귀도 함께 움직여야 했다. 연수영의 정신은 그가 침체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까마귀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장수들을 맞이하러 걸어 나갔다. 미래를 위한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영주성 회의실 / 660년

영주성의 회의실. 장수들이 모여 앉아 있다. 까마귀는 중압감을 느끼며 회의를 시작한다.

“아군 병력은?" 까마귀가 묻는다.

“개마무사 1만기, 까마기병 4만입니다.” 대중상이 대답한다.

“군량은?”

“석 달 치 정도 있습니다.” 대중상이 조심스럽게 답한다.

“석 달. 왜 그것밖에 없느냐?” 까마귀는 한숨을 내쉰다.

“하북성에서 지배권을 잃어버렸고, 요동에서 지원이 없으니 빠듯합니다.” 걸사비우가 설명한다.

“백제는. 백제는 정녕 그대로 멸망한 것이냐.” 까마귀의 목소리에 절망이 묻어난다.

“사비성이 함락되긴 했지만, 부여복신과 흑치상지가 임존성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대조영이 말한다.

“그래, 잘 되었구나. 백제가 이대로 멸망하게 둘 순 없다. 백제 다음은 어디겠느냐.”

“대막리지도 뇌음신, 생해장군으로 술천성 북한산성 공격을 지시하였답니다.” 연수진이 말을 잇는다.

걸사비우는 한탄하며 말한다. “진작 증원군을 보냈어야지. 늦어도 너무 늦습니다.”

까마귀는 차분하게 장수들을 달랜다. “자, 흥분하지 말거라. 앞으로 본국의 지원은 없다고 생각해라. 당이 전열을 가다듬으면 바로 치고 들어온다면 우리 영주성은 고립될 것이다. 지금부터는 생존의 싸움이다.”

“네, 대장군님.” 장수들은 일제히 대답한다.


-


장수들이 나가고 회의실에는 연수진과 까마귀만 남았다. 연수진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걱정 하지 마. 어떻게든 되겠지.” 까마귀가 애써 담담하게 말한다.

“걱정을 어떻게 안 해.” 연수진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가득하다.

까마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더라. 삶은 언제나 치열했어. 선택만이 남더라. 싸우던가, 순응하던가.”

“아빠는 싸울 거야?” 연수진이 묻는다.

“널 위해서. 내 삶의 의미는 이제 너뿐이야.” 까마귀의 목소리에는 결의가 담겨 있다.

“치, 그런데 맨날 술만 마셨어?” 연수진이 다소 짓궂게 묻는다.

까마귀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빠도. 아빠도 지치니까. 좀 쉬었어. 힘들었거든.”

연수진은 까마귀의 품에 가만히 안긴다. 그들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까마귀는 딸의 품에서 벗어나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결의와 강인함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슬픔과 절망에 빠져있던 까마귀는 이제 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다시 일어섰다.

영주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까마귀는 자신의 모든 힘과 지혜를 동원해 이 싸움에 임할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전장의 지휘관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그의 사명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까마귀는 회의실을 나서며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다시 싸울 것이다. 이 땅을, 내 가족을, 우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영주성 / 661년

까마귀는 영주성 성주실에 앉아 있었다. 반백이 된 머리와 검게 그을린 얼굴은 그가 겪어온 고난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때 강력하고 결단력 있는 장군이었던 그는 지금 피로와 슬픔으로 수척해져 있었다. 그때, 대조영이 성주실로 들어왔다.

“아버님, 당군이 발해만을 지나 압록강에 상륙했답니다.” 대조영이 보고했다.

“압록강까지? 우리 수군은 뭘 했단 말이냐? 압록강이면 평양성이 지척인데. 병력은 얼마나 되더냐?” 까마귀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좌무위대장군 소정방, 정면진이 30만을 이끌고 있다 합니다.” 대조영이 답했다.

“신라는? 놈들도 움직이는가?” 까마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김유신의 보급품을 북으로 수송하고 있습니다.” 대조영이 대답했다.

백제를 멸망시킨 당군은 고구려를 집어삼키기 위해 멈추지 않았다. 좌무위대장군 소정방이 이끄는 3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평양성을 위협하고 있었다. 신라의 김유신 역시 북쪽으로 보급품을 수송하며 당과 손을 잡고 있었다. 고구려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었다.

까마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다. 고구려를 지킬 사람이 없었다. 싸워야 했다. 까마귀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싸워야 했다. 그의 마음은 무겁고 피로에 지쳐 있었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싸움은 단순히 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가족, 그의 나라,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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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악귀 까마귀는 떨어지지 않는다 +1 24.07.17 76 4 10쪽
65 내 운명은 내가 선택하겠다 +2 24.07.16 90 4 11쪽
64 노병은 죽지 않는다. +2 24.07.15 90 5 10쪽
63 발해의 꿈 +1 24.07.14 91 4 11쪽
62 이진충의 난 +2 24.07.12 102 3 10쪽
61 한 시대가 저물다 24.07.11 86 4 11쪽
60 승리, 그러나 +2 24.07.10 89 2 12쪽
59 아, 고구려 +2 24.07.09 88 3 10쪽
» 연수영의 죽음 24.07.05 109 2 11쪽
57 천하영웅 연개소문의 죽음 +1 24.07.04 93 3 12쪽
56 흔들리는 백제 24.07.03 89 3 12쪽
55 대조영의 첫 전투 +1 24.07.02 88 5 12쪽
54 끝없는 전쟁, 내가 누구냐! +2 24.07.01 90 4 13쪽
53 새로운 시대 24.06.30 101 4 10쪽
52 연개소문과 까마귀 +2 24.06.29 105 4 11쪽
51 건재한 연개소문 +2 24.06.28 105 4 13쪽
50 요서 전투 +2 24.06.27 108 4 13쪽
49 멈추지 않는 이세민 +4 24.06.26 106 4 11쪽
48 하북에서 요서까지 +2 24.06.25 106 3 13쪽
47 끝나지 않은 전쟁 +2 24.06.24 111 3 10쪽
46 삼족오의 맹세 24.06.23 114 2 10쪽
45 영주성으로 24.06.22 107 2 13쪽
44 미친놈 +2 24.06.21 117 3 11쪽
43 아, 연수영 +2 24.06.20 132 4 11쪽
42 승자의 환희 24.06.19 129 4 13쪽
41 전후처리 24.06.18 109 4 12쪽
40 반격 24.06.17 11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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