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그러나

신라군 대장막사 / 661년
신라의 장수가 김유신에게 다급히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대장군, 당의 구원병이 오지 못하는 듯합니다. 놈들... 저 몰골을 보니 까마귀가 다 갈아엎은 것 같습니다. 어찌합니까?”
김유신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리하지 않는다. 전쟁은 기울었다. 퇴각 준비를 서둘러라.”
장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대장군.”
그 순간, 외부에서 까마귀군의 함성이 들려왔다.
“쿠구구구구구! 와와와와와와! 까마귀 지옥문을 열어라!”
신라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외쳤다.
“놈들이 온다! 까마귀다, 지옥이다!”
김유신은 막사 밖으로 뛰어나오며 외쳤다.
“퇴, 퇴각하라!”
까마귀와 생해의 연합군은 신라군에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까마귀군의 맹렬한 공격 앞에서 신라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신라군은 맥없이 무너졌고, 보급품을 모두 버린 채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달아나면서도 뒤를 돌아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까마귀는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흥, 신라 놈들. 방효태는 자식들까지 끝까지 싸웠건만, 저 놈들은 싸워볼 생각조차 못하는구나.”
생해가 그 옆에서 물었다.
“어떻게 할까, 쫓을까?”
까마귀는 지친 아군을 돌아보며 답했다.
“적당히 몰아만 내고, 당군을 잡으러 가자.”
연이은 전투로 지쳐 있었다. 영주에서 압록강까지 무자비한 행군, 전투, 전투, 전투를 이어왔다. 지옥의 악귀도 지치는 법이다.
생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까마귀와 생해는 서로 손을 맞잡았다. 그들의 눈에는 앞으로의 전투에 대한 결의가 빛나고 있었다.
이리하여 까마귀군은 신라군을 물리치고 당군과의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그들의 용맹함과 기백은 전장을 뒤덮었고, 고구려의 이름은 더욱 빛났다. 신라군은 까마귀군의 공포에 질려 도망쳤고, 까마귀군은 다시 한 번 고구려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들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평양성 / 661년
평양성 앞에서 당군 15만 명은 공격을 멈춘 채 대치 중이었다. 군량이 떨어지고, 보급부대와 신라 보급품을 받으러 간 방효태 군마저 전멸한 상황이었다.
“소정방 총사님, 군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압록강의 보급부대도 신라 보급품을 받으러 간 방효태 군도 전멸했습니다. 전선을 이대로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계필하력이 말했다.
소정방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까마귀. 이 놈이 끝까지 괴롭히는구나. 퇴각 준비를 서둘러라.”
“네, 총사.”
한편, 까마귀와 생해의 군대는 평양성에 도착했다. 적의 퇴각 준비를 확인한 생해가 말했다.
“놈들, 퇴각 준비를 하는구나. 저리 보낼 수 없지.”
까마귀는 군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전사들이여! 지쳤는가!”
“아닙니다!” 까마귀군이 일제히 외쳤다.
“놈들의 목을 끊어낼 힘이 남아 있더냐!”
“우와와와와와!” 까마귀군의 함성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가자!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자. 까마귀 지옥문은 닫히지 않는다.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자! 돌아가게 둘 수 없다!” 까마귀가 외쳤다.
“지옥문을 열어라! 지옥문을 열어라!” 까마귀군이 함성을 질렀다.
까마귀기병 2만과 생해 2만 기병은 당군을 휘몰아쳤다. 추위와 배고픔에 전투 의지를 상실한 당군은 살려달라 애원할 뿐이었다. 평양성에서 뇌음신 장군이 2만 개마무사를 이끌고 나와 협공했다.
“으하하하, 다 죽여라! 죽어! 어디 가느냐!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 내가 죽기 전까지 아무도 가지 못한다!” 까마귀가 외쳤다.
뇌음신이 까마귀에게 다가왔다. “역시 연도금류 까마귀 대장군님이십니다. 이런 대승은 연개소문 대막리지를 다시 보는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소장이 어찌 연개소문 대막리지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까마귀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전투는 끝난 것 같습니다. 적의 추격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장군과 병사들은 평양성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세요,” 뇌음신이 제안했다.
까마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조영을 찾았다.
“아버님. 설마 평양성으로 들어가시려 하십니까?” 대조영이 물었다.
“아군이 너무 지치지 않았느냐. 전투는 끝났다. 뇌음신 장군의 개마무사로도 충분할 것이다,” 까마귀가 대답했다.
대조영은 망설이다 조심스레 말했다. “감히 이런 말 송구하지만, 양만춘 장군님을 기억하십시오.”
까마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영아. 생해를 불러 오거라.”
“네, 아버님.”
생해가 까마귀에게 다가왔다. “생해야. 우린 영주로 돌아가려 한다. 넌 어찌 할 거냐?”
생해는 짐짓 놀란 듯 보이다 고개를 숙였다. “역사에 남을 대승을 거두었는데, 우리 거취를 걱정해야 한단 말이냐.”
“생해가 머뭇거리자 손을 잡았다. 가자, 양만춘 장군을 잊었냐?”
“나야 가고 싶지. 그런데 가족은. 우리 군은. 그들의 가족은 어찌한단 말이야. 자칫 역적으로 몰리면 우리 가족들 먼저 처형될 텐데.”
“젠장, 그렇구나. 연남생, 그 놈이 그렇게 나오겠지. 가만, 연남생은 연개소문이 아니잖아. 생해야, 날 믿고 조영이와 함께 당군을 추격한다는 명분으로 영주로 군을 이끌고 가라. 내가 평양성에서 네 가족과, 병사들의 가족들도 모두 데려 가마.”
“아버님 혼자서요? 안 됩니다. 그러다 변이라도 당하시면 어찌하시려고요?” 대조영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래, 조영이의 말이 맞어. 너무 위험해,” 생해가 동의했다.
“걱정 말아. 연남생이라면 내가 설득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일이 생기더라도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할까. 날 믿고 어서 가. 생해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족들을 데리고 갈게.”
까마귀와 생해는 서로 손을 맞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영주에서 다시 만나자,” 생해가 말했다.
까마귀는 뇌음신 장군에게 다가갔다.
“뇌음신 장군, 우리 군과 생해군은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모두 기병이니 이 기회에 완전히 놈들의 뿌리를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대단들 하십니다. 그리 하시지요,” 뇌음신이 동의했다.
“소장은 대막리지를 뵈러 평양성으로 가려 하는데, 함께 가시지요. 전황을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까마귀가 말했다.
뇌음신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소장이 한 게 무에 있다고 그러십니까. 생해 장군과 함께 가시지요.”
까마귀는 그윽한 눈으로 뇌음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장군, 도와주시지요.”
뇌음신은 까마귀의 간절한 눈을 보고 한탄했다. “이 고구려가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까마귀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정치적 음모와 배신의 그림자가 고구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도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고구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그의 가족과 군사들을 지키기 위해.
평양성으로 들어가며 까마귀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있었다. 그가 고구려를 위해 싸웠지만, 그 끝은 여전히 불확실했다. 고구려의 미래는 먹구름만이 가득했다. 그는 연남생과의 대면을 피할 수 없었고,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었다.
S#1. 태왕궁 / 661년
역사적인 승리를 앞에 두고도 조정은 냉랭했다. 대신들은 연남생과 그의 형제 연남건, 연남산을 중심으로 두 패로 나뉘어 시끄럽게 논쟁하고 있었다.
연남건이 말했다. “연남생 대막리지가 압록강 전투에서 패하지만 않았어도 당나라 놈들이 평양성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압록강에서 적들을 모조리 섬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연남생은 반박했다.
“전략적 후퇴였다. 이번 전쟁의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보아라, 대승을 거두지 않았느냐!”
보장태왕이 그들의 논쟁을 듣고 있다가 까마귀를 발견했다. 그는 권좌에서 벌떡 일어나 까마귀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반색했다.
“아니, 이게 누군가. 연도금류 까마귀 장군 아닌가. 하하하. 장하네, 장해! 고구려의 자랑이야!” 보장태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대신들도 까마귀를 향해 승전 축하와 노고를 치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까마귀는 무릎을 꿇고 조용히 전황을 보고했다.
“현재 당군은 퇴각 중이며 생해, 뇌음신 장군이 추격하고 있사옵니다. 신라 김유신도 쌀을 모두 버리고 패퇴하고 있습니다.” 까마귀가 말했다.
보장태왕은 통쾌하게 웃었다. 까마귀를 보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으하하하. 역시 까마귀 장군이야, 하하하.”
까마귀는 보장태왕을 아련히 바라보고, 실질적인 권력자인 연남생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막리지. 소장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연남생이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인가, 장군.”
“현재 영주성은 하북성과 요서 양쪽에서 견제를 당하고 있어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소장이 능력이 없어 하북성과 요서의 지배력을 잃어버려 이번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으니, 신이 죽어 마땅하옵니다. 다행히 이번 전쟁은 대막리지의 지휘 아래 승리를 거두었으나, 영주성을 지금의 전력으로 지켜낼 자신이 없으니, 대막리지께서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
까마귀가 말했다.
연남생은 곤란한 얼굴로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연남건과 연남산이 연남생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전쟁 영웅이라 칭송받고 군부 내에서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까마귀에게 병력을 줄 수 없지 않겠습니까, 형님.”
연남건이 속삭였다.
연남생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장군에게 큰 힘이 되어 주지 못했구나. 대신들과 논의한 뒤 지원에 대해 검토해 보겠소.”
까마귀가 다시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막리지. 생해 장군의 2만 병력을 영주성에 지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연남생은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안도하며 말했다.
“생해 대장군이 이끄는 말갈 기병을 말하는가?”
“네, 그렇습니다. 대막리지.” 까마귀가 대답했다.
연남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대의 노고를 생각하면 부족한 병력이지만, 영주는 우리 고구려에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니 부디 사수에 전념을 다해 주시오. 앞으로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오. 내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겠소.”
어리석은 연남생은 중갑 무장 기병인 개마무사만을 전력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경비경과 말갈 기병을 보조 병력 정도로만 생각했다. 까마귀가 지금껏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해 왔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대막리지. 한 가지만 더 청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까마귀가 말했다.
연남생이 물었다.
“무언인가, 말씀하시게. 내가 우리 연도금류 장군을 위해 못해줄 게 무엇이 있겠는가.”
“생해 장군과 병사들의 식솔들을 영주로 함께 갈 수 있게 선처해 주십시오. 영주와 평양은 너무 먼 거리라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있으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옵니다.” 까마귀가 말했다.
연남생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오. 마음이 편해야 전투를 잘 치를 수 있는 법이지. 다른 부탁은 없소. 내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겠소. 우리 역전의 용사 아니오, 하하하.”
까마귀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막리지의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소장은 준비가 되는대로 영주로 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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