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한시장에 가다 2.

계성기의 개소리 라이프 35화.
<한시장에 가다. 2>
신발 의류매장이 모두 모여 있는 한시장 2층.
와 근데 여긴 진짜, 다른 통로들도 참 좁았는데 여긴 정말 답 없게 좁더라.
어느 정도냐면 늘씬이들과는 그 종의 기원부터 다른 기둥형 원통 몸매인 내가 마음먹고 멈춰 서면 아무도 못 지나갈 만큼.
그게 꼭 내가 미쉘린급 뚱돼지라서 만이 아니라, 마주 오는 사람과 그 통로를 지나려 손치면 아무리 상대가 통아저씨급 늘씬이라도 게걸음으로 꽃을 든 남자의 누구처럼 상대의 향취를 어쩔 수 없이 훑어야 할 만큼 이곳 통로는 좁았다.
‘좁다는 두 단어를 200자로 늘려 쓰는 개소리 클라스! 근데, 그 표현이 2G폰마냥 올드하다는 게 함정!’
그런데 여기에 신발을 사고자 하는 인파가 더해지니 90년대 명절 교차로 교통체증은 명함도 못 내밀 만큼으로 미어터졌다.
“죄송합니다. 지나 갈 게요.”
“신발 그만 신어 보고 좀 비켜 드려!”
그나마 여기서 다행인 점은 이 곳 손님이 죄다 한국 사람인 까닭에 소통에 문제가 없어 별다른 마찰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거다.
근데 문제는 내가 어느 지점에 멈춰도 순간 그 곳은 공사 중 도로가 되는 까닭에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물살에 몸을 맡기고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걷던가 아니면 추월 공간이 확보된 위치에서 짱박히 듯 가만히 고정되어 있어야 했다는 거다.
쇼핑의 열기에 건물 내부 온도는 끝없이 상승하고 있지.
안 그래도 습한데 서로 부대끼니 한증막이 따로 없지.
“엄마 저기 사람이 흘러내려! 더운 나라에도 눈사람이 있어?”
“그런거 아니야. 좀 모자란 현지인 같은데, 못 알아먹는다고 그런 말 하면 못써!”
다분히 눈길 가는 덩치라 뭘 해도 관심종자가 되기 마련이건만, 눈치 없게 땀은 매운 거 먹고 뙤약볕에 뜀박질이라도 한 양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정말이지 여기 더 있다 가는 폐쇄공포증에 더해 수시로 드나드는 인파에 PTSD가 올 것만 같았다.
“아직 멀었어?”
“지금까지 애들꺼 삼. 이제 내꺼 고르는 중.”
“아까부터 네 꺼 고르는 것 같더니만, 대체 언제 끝나는데?”
“곧!”
“곧 언제?”
“아가리 싸매라. 그 입을 살찌우는 것 말고 문화적인 소통의 창구로 계속 사용하고 싶으면.”
만약 반대로 협박했으면 난 어쩌면 정말 아가리를 싸 맸을지도 모르겠다.
한 끼에 나라도 팔아먹을 나라서, 요새 손으로 씨부리는 재미에 흠뻑 빠져 그딴 협박은 협박 같지도 않게 들렸다.
축축하게 젖은 몸체는 더는 육수를 뽑아 낼 수 없다며 아우성 치지.
영혼의 단짝인 폰은 벌써 하루치 데이터를 다 소진해 블랙아웃 됐지.
그래서 헤까닥 돈 나는 본능적으로 굴복하던 마신님의 전언에 기어코 토를 달았고.
“아, 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아직 멀었어?”
나이가 차며 점진적으로 유순해지고 있던 마신님의 발작 버튼이 오랜만에 힘차게 눌러졌다.
“어디 그렇게 계속 독촉해봐! 빡 돌면 그냥 확, 한시장 미아로 만들어 버릴테니까.”
“으엉?”
“그러니까, 1분마다 씨부려 대는 그 주댕이 좀 닥치라고!”
“으응 알겠어. 미안. 그럼 천천히 일 봐.”
그러나 난 살기 충천한 그 한마디에 본전도 못 찾고 찌그러졌다.
여기 온 지 이제 30분도 안됐건만, 그만큼 나는 어서 빨리 나가 찬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다.
이런 날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마신님은 악어 신발 그게 뭐라고 평생 다시 오지 않는 기회라도 되는 양 구매에 열을 올리는데.
“이왕 사는 거 울 언니, 형부 조카꺼도 살까?”
“으어어엉? 뭐 어?”
“왜? 아까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닥쳐! 평생 여기서 인력거나 끌며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한시장 한 켠, 가마솥 육수장인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망부석이 되어 하염없이 그런 그녀를 기다려야 했다.
대체 블로거들은 어떤 인내력의 소유자들 이길래 이런 곳에서 각 상점의 가격까지 비교해가며 후기를 남겼던 걸까?
여긴 뭘 비교하고 흥정할 곳이 되질 못 하는데 말이다.
난 정말이지 5분도 못 견디게 숨이 턱턱 막혀 돈 주고 시켜도 죽어도 그 짓은 못하겠다.
울 마신님은 그러고도 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쯤 생각한 모든 이의 신발을 구매했고 산타마냥 그 짐을 내게 건넸을 때, 비로소 난 이 쇼핑이 끝난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겨우 후까시에 불과했다.
안타깝게도 짝퉁을 왜 사냐는 뱉은 말과 다르게 울 마신님의 쇼핑욕구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오빠 이 녹색 바람막이 어때? 무려 라데꾸 짝퉁이야.”
“네에에에. 좋네요. 좋습니다요. 근데 라데꾸의 승리의 날개가 약간 짧아 보이는 건 그저 제 착각일 뿐인 걸까요?”
“이게 큰맘 먹고 사 주려는 데 김 새게. 그럼 여기서 뭘 바래?”
“아무튼 좋습니다. 뭐든 좋습니다요. 그냥 그거 사시지요!”
마신님은 하나라도 더 제대로 된 물건을 고르려 눈을 반짝이지.
상인은 산타 짐꾼까지 대동한 깎임 없는 큰손인 울 마신님의 소문을 들었는지 버선발로 마중 나와 눈을 반짝이고 있지.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일까?
이 고난이 오늘 중으로 끝나기는 하는 걸까?
그녀가 무아지경에 빠져든 만큼 나도 정신력의 한계를 넘어 다른 차원의 나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거 얼마예요?”
“이거 22만동. 재질이 좋아!”
그나마 여기서 다행인 점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점점 이 환경이 익숙해져 간다는 것과 울 마신님도 여기까지 오며 제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게 있던 지라 더는 달라는 금액을 곧이 곧 대로 주지 않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는 거다.
“21만동!”
“깍지마 깍지마! 그래봤자, 오백원!”
“으응? 그럼 20만동.”
“알았어. 오케. 그만 깎아. 20만동에 줄게.”
딥따 흡족해하는 우리 마신님.
가진 자본의 대부분을 눈탱이로 탕진한 지금, 드디어 울 마신님께서 흥정에 성공하셨다.
이는 마치 우리 어릴 적.
“올매여?”
“구백원!”
콩나물 시루를 사이에 두고 상인과 흥정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 올리게 했다.
산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콩나물을 봉지에 담고 있는 상인, 비싸다며 600원을 부르곤 뒤도 안 돌아보고 발길을 옮기는 할머니.
“가져가! 가져가!”
“진작 그럴 것이지.”
“700원에 가져가!”
할머니의 대범한 흥정에 가격은 700원에 극적 타결을 이뤘고 남는 게 없다며 투덜거리는 상인을 뒤로 하고 할머니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셨다.
그 모습이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난 지금 울 마신님과 겹쳐 보였다.
상인의 말이 곧 정가가 되는 그녀의 소비 패턴이 다 바뀌다니!
나도 달라진 그녀의 악착 같은 검소함이 다 대견했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니.
“오빠 이 바지도 괜찮다. 무려 북쪽 얼굴 짝퉁이야.”
“짝퉁에 ‘무려’는 빼주라. 짝퉁에도 급이 있는 거로 들리니까.”
“그래서, 사?”
“그래···..이건 아까 꺼 보다는 그래도 티가 덜 나내.”
호구들 등쳐먹을 생각에 이미 입이 귀에 걸린 상인의 선 제시.
“45만동!”
“이거 생각보다 비싼데?”
“두개 사면 하나에 40만동! 싸다 싸! 우린 질이 달라. 우리 가게는 진짜 짝퉁 다른 데는 다 가짜 짝퉁!”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정찰제 오지라퍼의 개입.
갓 대학생이 된 풋풋한 여학생들이 막 시작된 흥정에 끼어들었다.
이들의 등장은 우리에게 동전의 양면이자 빛과 어둠과 같았으니, 그들 덕에 이곳 가격의 생리를 바로 알게 됐으나 좀 전의 마신님의 영웅적인 면모는 힘숨찐인 점소이에게 탈탈 털린 불한당1과 같은 모양새로 전락하게 됐다.
등 쳐 먹히는 동포의 한심한 세태를 가만 두고 볼 수 없던 대학생 처자들의 도움을 그때의 난 그렇게 느꼈었다.
“20만동! 여기선 우선 가격의 반을 후려치고 시작해야 해요.”
“20만동 안돼 안돼!”
“그럼 두개 해서 40만동! 아니면 내가 전에 산 상점으로 데려가요?”
“나빠 나빠.”
“어떻게 콜?”
“오케 오케 40만동.”
와, 가격이 이렇게까지 된다고?
다시 한번 고정관념처럼 콕 박혀 있던 흥정의 메커니즘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 곳 상인들은 호구상에게는 정도를 모른다는 걸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다.
근데 이 처자들은 이런 그들 보다 더 정도란 걸 몰랐으니.
이게 현명한 소비인 줄은 아는데, 더 후려 쳐 줘서 고맙기는 한데, 반대로 상인 입장에서는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잠깐! 아니다, 이것도 비싸다. 35만동!”
“안돼 안돼 그럼 안돼! 그럼 안 팔아!”
처음엔 상인도 완강했다.
내가 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억지성 흥정에 중간에 낀 우린 그때만 해도 대략 난감이었다.
“저 그렇게 까지는···.”
“가만히 계셔 보세요. 다 넘어왔으니깐.”
“아, 눼.”
아무리 재고가 무섭다지만 상인이 손해 보면서까지 팔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모든 시세를 꿰뚫은 그녀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으니.
정말 저 여리고 생기발랄한 것들이 또 낯짝은 얼마나 두꺼웠던지 바로 앞 매장 상인에게 비슷한 상품의 가격을 묻기 시작했고.
“그럼 여기서 사지 뭐! 똑 같은 거 여기도 있네. 이거 얼마예요?”
“두개에 35만동! 더는 못 깎아 안돼 안돼!”
상도덕은 개나 줘버린 앞집 인심에 결국 상인은 쥐쥐 선언!
행여나 앞집에서 채 갈까 서둘러 붕지에 담아 주더라.
지금까지 산 게 꽤 됐는데, 우린 그제야 얼마나 눈탱이를 당했는지 퍽 실감했다.
“내 바람막이! 이건 그럼 대체 얼마야?”
궁금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상도덕 없는 상인에게 걸린 점퍼를 가리키며 묻게 되었고.
“저건 얼만데요?”
“15만동 깍지마 깍지마 진짜 싸게 부른 거야! 줘?”
아니나 다를까?
오지라퍼 처자들의 개입에.
“10만동!”
“너희들 진짜 나빠!”
“그럼, 다른집이랑 흥정해야겠다.”
“줄게 줄게 가져가.”
나는 고작 2만동 깎고 거들먹거렸던 마신님의 그 바람막이의 진짜 가격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울 마신님과 그녀의 친구들은 상인을 영혼까지 깎으려 들었고 그덕에 난 그녀들의 짐꾼으로 지지난 쇼핑을 두시간을 더 이어가야 했다.
정말 하늘이다 노래졌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는 곳이다.
근데 주목할 점은 그렇게 사고도 부족했는지 우린 그 시장을 두 번 더 방문하게 됐다는 것과 나는 그렇게 호되게 당해 놓고 마트 가자는 말에 속아 알차게 부림을 당했다는 거다.
그 곳 한시장의 마지막 방문은 그간 사 제낀 짐을 넣을 대가 없어 캐리어를 추가로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귀국할 때쯤, 난 우리가 밀수업자로 오인받아 세관 조사는 받지 않을까 두려워 밤을 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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