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먹지 마세요. 정서발달에 양보하세요.

계성기의 개소리 라이프 39화.
<먹지 마세요. 정서발달에 양보하세요.>
우리 세대의 어린시절 등하굣길은 위험으로 득실거리는 정글과도 같았다.
“양육강식, 오직 강한 놈만이 살아 남는다.”
차편이 마땅치 않아 버스 서너 정거장 거리를 걸어야 한다거나, 덤프트럭이 숑숑 지나는 인도도 없는 2차선 도로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 걸어야 한다거나, 비 오면 범람하는 개천을 바지를 종아리까지 걷어붙이고 건너야 한다거나.
산 넘고 강 건너는 위험천만 등교 삼만리를 매일 아무렇지 않게 반복해야 했다.
이는 바쁜 부모를 둔 시골학교 학생의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아파트를 끼고 흔하게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땐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디 북에서 오셨어요? 구라를 쳐도 적당히 치셔야죠!”
“진짜야. 친구 중엔 고무신에 책보를 멘 녀석도 있었는 걸!”
“구라치지 마라 손모가지 날아가니께!”
“라떼는 진짜 그랬다고! 더군다나 난 초등학생도 아니야. 난 국민학교 세대란 말이다!”
지금이야 험난해 보일지 몰라도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 고학년을 시골에서 보내게 된 내 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다.
“버스 타라고 차비 줬는데, 시큼달큼한거 사 먹는다고 뒷구녕으로 삥까고 몸으로 떼운건 안 비밀. 사실 버스가 돌기도 했고 지름길이 빨라 버스나 걸으나 별 차이 안 났거든.”
이런 위험천만한 등교길을 ‘모여라 꼬맹이들이여!’를 외치며 즐거운 사교의 장으로 바꿔준 존재가 있었으니.
복실복실한 하얀 털에 짧은 다리, 남다른 사교성에 그리고 귀여운 외모까지.
녀석을 부르는 이름은 만나는 사람마다 천차만별 각기 달랐으나 우린 녀석을 흰둥이라 불렀다.
“이 똥개새끼 또 졸졸 따라오네.”
“네가 동족 같아 친밀감이 있나 보다.”
흰둥이는 주인 없는 떠돌이 개로 갖은 장기와 아양으로 무장한 아주 매력적인 친구였다.
“요놈 보소. 꼬리를 16비트로 쪼개 흔드네.”
“심지어 손이라는 말도 알아들어!”
“개는 손 없어 다 발이여!”
녀석은 누구나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현란한 꼬리 흔들기로 매력을 어필, 그 끝에 떨어지는 콩고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그런 소속감 없는 삶을 살았다.
“다들 눈 감아! 최면술이다. 흔들리는 꼬리를 봐선 안돼!”
“으아아악, 너무 늦었어! 벌써 다 털려버렸다구!”
또 자유로운 영혼 치고는 참 몽실몽실 살이 올라 다른 개들에 비해 유달리 귀여웠던 걸로 기억한다.
“이 정도로 포동포동한데 주인이 없다고?”
“그러게. 근데 녀석의 사교성이라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지도.”
사실은 이 개가 떠돌이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목줄이 없으니 으레 그렇겠거니.
어느날엔 빨간 지붕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어, 당연히 그 댁 강아지인가 싶다가도.
다음날은 뒷 집에서 야무지게 쳐묵 쳐묵하고 있고.
“뭐 여, 아니었어?”
또 그 뒷날은 옆집에서.
“이정도 마당발이면, 대선 출마도 불가능하진 않을 듯. 대선 가즈아! 적어도 이장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서 고개가 갸웃.
또 어느날은 뜬금없이 옆 동네 친구집에서 마주치고 언젠가는 우리집에도 와 있고.
“어서 와! 너도 너희집은 처음이지?”
윗 동내 아랫 동내 가릴 것 없이 온 동내를 아우르는 녀석의 나와바리는 광개토대왕이 군림하던 그 시절의 고구려처럼 참 광활했다.
“저거 흰둥이 아니야? 얘가 왜 여기서 나와?”
“그러게. 여기 오려면 적어도 산을 세 개는 더 넘어야 할 텐데도 말이야.”
그런 녀석이 꼬리로 태엽을 감고 머리를 켈벨로스처럼 3개로 보이게 발광하다 배를 뒤집어 까면 우린 우리 먹을 것도 없던 그 시절, 망설일 법도 하건만 아주 흔쾌히 녀석의 몫을 떼어 주곤 했다.
“이 영악한 놈···..입 속에 들어간 음식마저 뱉게 만들다니!”
그지 근성으로 육체를 진화시킨 녀석은 뭘 줘도 아주 잘 받아먹었다.
“돌인데, 힝 속았지?
“으르르르르. 흥! 아그작. 아그작.”
“이 녀석 뭐든 잘 먹는다는 걸 이빨과 바꿔가며 증명하고 있어!”
그런 녀석이 있어 등굣길이 다소 멀고 지루했음에도 동내 꼬맹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혼자 하교하는 날도 무섭지 않았다.
당시 흰둥이는 우리에게 등굣길 친구이자 보디가드이자 정서적 성장 촉진제였다.
그렇게 정서적 교류를 하며 녀석과 종을 넘어선 우정을 쌓아가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그날은 유독 하늘이 높고 푸르렀으며 바람도 선선해 뭘 해도 좋았을 그런 날이었다.
추수를 끝내 할 일이 없어진 아저씨들은 삼삼오오 다리 아래 모여 낯 술에 모닥불을 쬐고 다리 위에선 먼저 하교한 저학년 동생들이 하하 호호 떠들며 신나게 놀고.
다를 것 없지만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날.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다리 아래 총총히 놓인 징검다리로 개천을 건너고 있었다.
“이거 초딩 갬성, 뭐 그런 거냐? 다리가 버젓이 있는데 웬 징검다리?”
“뭐랄까? 육교가 있지만 그 아래를 무단횡단 하는 꼴이랄까? 다리를 이용하면 약간이나마 돌아가야 했거든.”
비가 와 개천이 범람하지 않는 이상 이 길이 정식루트라 각인된 본능에따라 그 길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이때까진 내 겐 평상시와 다를 거 없는 평이한 날이었다.
혼자 가는 하굣길임에도 전혀 허전함을 느끼지 못한 무심한 날이기도 했다.
구슬프게 울던 어떤 하얀 물체가 다리 아래로 매몰차게 내 던져지기 전까지는.
‘어? 저게 뭐 지?’
그 하얀 물체가 뭐였는지, 깨닫기까진 말이다.
‘비둘기였나?’
처음엔 새가 나는 걸 잘못봤나 싶었다.
생명체인 건 분명한데 날 수 있는 건 새 뿐이니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렇다기엔 너무 큰데? 갈매기가 길을 잘 못 들기라도 한 건가?’
근데 날개는 없고 뭉퉁한게 보면 볼수록 새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대체 뭐 지?’
나는 호기심에 그것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까지 그것을 가늠하고자 했다. 그러다 그 생명체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고 그제야 그게 무엇이었는지 가장 근접한 답을 유추할 수 있었다.
“어···..? 어···..?”
포물선 꼭지점에 도달한 녀석의 정체가 명확해진다. 그러자 시공간이 어그러지며 세상 모든게 느려지기 시작한다.
“설마?”
기다란 쇠사슬에 메어진 하얀 무언가가 내 머리 위를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다.
하얀 그 무언가는 너무 순식간이라 가늠되지 않아야 정상임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 눈에 그 상이 너무도 또렷이 맺혔다.
“흰둥이?”
그 시절의 난 지금의 가을이만한 나이였음에도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하···. 저 토실토실한것 보소. 올 가을에는 된장 발라야 쓰것고만.]
동네 아저씨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라 애초에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으나 그 연유만큼은 바로 이해하게 됐다.
“왜 하필···. 네가!”
녀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 세상이 빙그르르 돈다.
잔망스럽던 네발은 유영하듯 허공에 휘저어지고 몽글몽글 복실했던 털은 저항에 한 방향으로 곱게 뉘였다.
어린시절 순수했던 난, 태어나 처음으로 현세에 강림한 악마들을 마주했다.
군침 흘리는 농밀한 붉은 시선들이 포물선을 따라 한점에서 멈춰 귀결됐다.
그러다.
콰직!
목 뼈가 어긋난 듯한 탈골 소리가 들리고 난 그 후, 생각이란 걸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소리가.
그 처참한 몰골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할 만큼 너무도 또렷해서.
그 아래, 녀석을 맞아 미리 타오르고 있던 모닥불 그리고 그럼에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애처롭게 경련하는 녀석, 평화로운 이곳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풍경이라 내 사고는 거기서 멈춰버렸다.
그 순박하던 동네 아저씨들이 몽둥이를 들고 몸을 일으켰을 때야 비로소 나는 차마 그 모습은 볼 수 없어 후다다닥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을 뿐이다.
그 후, 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하게도 절대 저런 비 인도적인 죽음은 먹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게 개는 친구이지 먹는 식량이 아니게 됐다.
“소, 닭, 돼지의 도축을 봤더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교감하고 온기를 나눴던 녀석의 처참한 죽음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내 겐 거대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또한 그날의 외면이 날 방관이란 다른 이름의 가해자로 기억되게 했다.
그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난 무서운 영화는 봐도 잔인한 영화는 잘 못 보는 편이다.
그 지독히도 흉악한 장면들이 잔상처럼 겹쳐서.
그만큼 내게 그 기억은 흉터처럼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님들아, 이거 지금이라도 소송가능?”
“으응, 불가능! 그들이 누군지는 다 기억하고?”
그래도 다행이었던거는 녀석이 그 작은 체구에 정력왕이었던지 참 많은 자손을 남겼다는 거다.
“몇달 뒤, 흰둥이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 아마.”
길가다 녀석과 똑같이 생긴 강아지를 보고 얼마나 놀랬던지.
그런 녀석들은 흰둥이를 보내고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랬던 내가.
평생을 보신탕이란 메뉴는 식탁에 올리지 않겠노라 맹세했던 내가.
그렇게 다짐했으면서 몇 해전 나도 모르게 개고기를 먹게 됐다.
“진짜 맛있어요. 한번 드셔 보실래요?”
캠핑장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회사 상사의 권유에서였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고기가 살살 녹아요! 이 고기는 대체 뭔 가요?”
거무튀튀한 그 고기는 보여지는 것과 달리 잡내 없이 참 맛깔났었다.
근데 그게 뭔 지 알았더라도 나는 맛있다 느껴졌을까?
“흑염소예요. 더 드실래요?”
“염치없지만 그럼 조금만 더···.”
함께 온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맛있다니, 다행이네요.’라며 희게 웃는 그를 보며 난 그 고기가 흑염소가 아닐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솥과 손.
한 끝차이로 갈려 버린 운명의 장난에 바들바들 떨고 있던 녀석을 보고도 난 그게 개고기 일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거 사실 흑염소 아니예요.”
“네? 그럼 뭐 예요?”
“그거 개고기예요. 이사님이 친구분께 장난 친 거예요.”
그의 일행 중 누군가가 고기의 진실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보면 바로 알 줄 알았는데, 냄새만 맡아도 역겨울 줄 알았는데, 개고기라면 몸서리치게 질겁하던 난 갖은 혐오감에 비해 너무도 무심히 그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미친!’
그 결과, 난 다리 아래로 내동댕이쳐진 흰둥이를 본 그날처럼 굳어 버렸다.
내 이 굳은 맹세는.
지켜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던 흰둥이를 향한 회개는.
더럽혀 졌다.
이름도 모를 누군가의 장난에 그저 그런 얕은 마음가짐으로 퇴색돼 버렸다.
‘이게···..’
니미럴, 그럼에도 야들야들 맛있었다, 회상하는 지랄맞은 이 미각은 그런 날 동조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게···.뭐 야···.뭐하는 짓이냐고!’
한참을 젓가락을 들고 그대로 멍하니 굳어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 같다.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조용히 자리를 떠야 할까?
과연, 이 상황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화는 나는데 친구를 생각하면 또 그럴 수는 없고.
진실을 알려준 이도 예상 못한 내 반응에 겸연쩍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더라.
이들이 내 인연이었다면 소심한 나라지만 당연히 전자를 택했을 텐데, 그가 친구의 인사권을 쥔 이라는 것과 종일 우릴 살갑게 대해줬던 까닭에 고민은 깊어져 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는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는 걸로 무언의 시위를 대신했다.
과한 장난이었던 것은 맞다마는 그건 나 혼자만의 결심이었으니까.
이사 나름의 친근함의 표현을 평가절하하고 싶지도 내 기분 더럽다고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별 생각 없는 사람들 꽤 많던데, 이거 은근 민감한 문제다. 안동 권씨한테 잉어 즙을 권하는 거랑 같은 결이란 말이다.”
제발.
채식주의자는 빵에 동물성 기름이 묻어도 고소한다더라. 그러니, 그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자는 절대 이런 짓 하지 말라.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