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1인 2역. 1.

계성기의 개소리 라이프 43화.
<1인 2역. 1.>
어느날은 오른 발바닥에 좁쌀만 한 종기가 난 적이 있었다.
다친 상처에 불현듯 굳은살처럼 생겨난 그것은 불편함에 손톱깎기로 헤드샷을 날려 댔더니 잡초같은 질긴 생명력으로 꾸준하게 생겨나는 건 물론이고 자가 증식해 어느새 엄지손톱만하게 커져 있었다.
그런 까닭에 처음 거슬리기만 하던 그것은 이내 불편해지더니 이제는 걸을 때 마다 산고의 고통을 안겨주는 지경까지 다다라 있었다.
“너 걷는 폼이 영 저질스럽다? 혹시 고래라도 잡았냐?”
“아니거든. 발에 종기가 생겨서 그런 거거든!”
“그럼, 거기 한 대 쳐 봐도 되냐? 진짠지 아닌지 확인해 보게?”
“거긴 뒤집어 까든 안 까든 맞으면 똑같이 아파, 이 미친놈아!”
하지만 뇌하수체에 주사 극혐 호르몬이 디폴트로 흐르는 나인지라 병원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성감대가 그곳 다음으로 발에 몰빵 된 탓에 마신님 이외의 어떤 외간여자에게도 이를 허하고 싶지 않았다.
“봐 봐. 이거 종기 맞지?”
“그건 모르겠고 근데 이거 왜 이리 크고 징그럽냐?”
“몰라. 아무튼 이것 때문에 죽을 맛이야. 병원 가지 않고 없앨 다른 방도가 없을까? 건들면 건드릴수록 더 커지는 기분이야.”
“우선 그 냄새나는 족부터 치우자. 정육점에 걸린, 익히 아는 그것과 동질감이 느껴져 거부감은 없다마는 검붉게 쪄지지 않아 식욕이 떨어지니까.”
결국 난 주변 지인들에게 종기로 짐작되는 그것을 수소문하게 되었고 그 끝에 눈엣가시인 녀석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다.
“뭔 줄 알겠어?
“그거 종기가 아니라 티눈이라고 이 아이스갓아!”
“종기가 아니라 티눈?”
염증만 걷히면 사라지는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병임을 인식한 동시에.
“티눈밴드라는게 있는데 그거 쓰고 하루면 뿌리 채 뽑혀!”
“안 아파?”
“이게 물에 불리는 느낌이라 딱히 아프지도 않아!”
“오호라! 네 놈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참고 견딘 인고의 세월들이 무색하게 화타도 이마를 탁 치고 갈 치료법도 알게 됐다.
서둘러 티눈 밴드를 구매하고 녀석을 멸할 생각에 신나 혹여나 걷다 떨어질까 하루를 꼬박 영혼의 단짝인 핸드폰과 누워 지냈다.
“그게 네 평상시의 모습은 아니고?”
발바닥에 붙이고 고작 한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티눈 주의가 하얗게 탈색되며 지독한 놈의 임종을 암시했다.
이런 쉬운 방법이 있는 것도 모르고 1년여를 허송세월 낭비한 내 자신이 사과폰 처음 나왔을 때, 듣보잡이라며 초콜릿폰 산 그날만큼 지능 미만잡스럽게 느껴졌다.
아마 잡스도 무덤에서 이런 날 비웃었으리라.
드디어 설명서에 말한 약속된 시간이 흘렀고 당연히 떼면 지금까지의 모든 고난과 역경이 함께 뜯길 줄만 알았다.
핀셋으로 박힌 가시를 빼듯 아프지만 속 시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밴드 붙인 환부 주의가 스머프 장화 마냥 하얘진 거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뜯기기는커녕 불편함에, 고통에 더해 괜한 불결함까지 더 얻었을 뿐이다.
혹시 몰라 손톱 깎이로 주변을 씹창 내봤으나 결과는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사용법을 잘 못 안게 아닐까?
설명서를 다시 읽고 뿌리를 찾아 더 조져봤으나 그 뿌리는 여전히 묘연하기만 했다.
그렇게 아픔을 참아가면 더 파고든 끝에 도달한 내 결론은.
“만만치 않는 놈이다. 강제 백반증도 놈의 삶에 대한 욕구를 꺾지 못했다. 24시간 워터 불림에도 놈은 건재했다고!”
이러다 발을 짤라야 할지도?
“오히려 상처만 더 덧나고 있어!”
소독되지 않은 수술 도구에 발바닥엔 염증까지 생겨 버렸지.
생각 이상으로 넓게 잠식한 백반증 후폭풍에 그 주변엔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지.
자잘한 병에는 연연하지 않으면서 또 큰 병에는 진시황 불로장생은 저리 가라는 기세로 끔찍이도 제 한 몸 돌보는 본인이라 주사 바늘이고 뭐 고 간에 우선은 살고 봐야했다.
집 근처 피부과는 패시브 스킬처럼 자연 발휘되는 귀소본능에 의거 빠삭하게 알고 있던 지라, 결단만큼이나 행동도 빨랐다.
가장 가까운 곳 그리고 더 가까운 곳.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지!”
3보 1한숨을 쉬어야 하는 폐급 체중과 이 마저도 떠 받쳐 줄 수 없는 몸상태에 고려 조건은 오직 그거 하나였다.
다른 조건이 껴들 틈이 없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이건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할만한 사항이 아니었다.
“어째, 병원이 영 낡았다. 당장 건물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는데?”
몇 년을 오가던 길이라 지겹게 봐 왔으면서도 잘 몰랐었는데, 진료를 볼 생각이 든 지금에서야 병원 상태가 일목요연하게 들어왔다.
미소인 새얼굴 피부과의원.
개 꼬른 구식 간판 중 유일하게 불이 들어오는 글자는 ‘소.인.새.부.과.’
‘소인에겐 세금을 부과한다는 건가?
근데 여기서 소자의 한 획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마치 ‘노.인.새.부.과’로 보였다.
여기에 더해 1990년 이전에 걸린 것으로 짐작되는 입구 목재 간판은 술 먹고 방황하는 고삐리들에 의해 검은색 네임펜으로 일부 덧 칠해져 ‘노.인.새.끼’라는 창의적이며 반인륜적인 문구로 뒤 바뀌어 있었다.
‘근데 ‘피’를 ‘끼’로 바꾼 놈은 진짜 인정해 줘야 한다. 그 누구도 그런식으로 단어를 조합해 낼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거 우리 어릴적 교과서에 다 많이 했던 짓거리인데.’
‘나는 모범생이어서 그런거 잘 몰라.’
‘지방대생이 퍽이나 그랬겠다.’
여튼 입구가 더럽고 지린내가 심하게 나는 등, 관리가 안되어 있는 건 둘째 치고 제 병원임에도 관심도 없는 것 같아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병원도 이따구로 관리하는데, 이런 사람이 어디 환자를 똑바로 돌보기나 하겠는가?
하지만 120미리 암반 청정 고름에 달 표면 마냥 깊게 파인 발바닥은 이 이상의 거리는 절대 허하지 않겠다며 게 걸음도 용납치 않았다.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어떻게든 여기서 끝장을 봐야 했다.
부디 겉과 속이 다르기를 바라며 신장 적출 당할 것 같은 분위기의 병원 현관문을 열어 젖혔다.
의외로 더 관리 안 된 내부.
거기에 더해 알 수 없는 황량함.
역시 바램과 다르게 겉빠속촉 치킨마냥 겉망속조졌다.
“저기요?”
“······”
“여기 진료 안보나요? 저기요···..?”
대기 중인 환자는 물론이고 어떻게 된 병원이 원무과 직원도 간호조무사도, 간호사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점심시간은 한참이 지났건만 이 병원에는 개미 새끼 한마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셨나? 저기요···.”
낡아서 곧 떨어질 것 같은 화장실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진료실로 짐작되는 한평 남짓한 공간에도 문이 반쯤 열린 체 아무도 없었다.
혹시 문을 열때 삐걱이던 게 원래 그런게 아니라 잠긴 문이 체급이 깡패라고 강제적으로 열려 버린게 아닐까?
하지만 경박스러운 코 고는 소리가 낮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니었고.
“주무시나?”
주사실인지 수술실인지 그 경계가 오묘한 그 곳에는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웬 노인 한 분이 코 골고 자고 있었다.
“노숙자가 왜 여기에? 여기 뭐하는 곳이지?”
그는 또 밤 귀가 얼마나 밝은지 내내 소리칠 땐 코 골며 잠만 잘 자더니 빼꼼히 문을 여는 소리에 화들짝 깨며 내게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그딴 개지리는 등장 씬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하얀 가운을 걸치며 내게 상상도 못할 반전을 안겨주었다.
“누구?”
“환자요.”
“무슨 일?”
“진료요.”
“아하! 그럼 접수부터 하자고!”
불 흐르듯 뚝뚝 끊기는 이 부자연스러운 대화는 대체 뭐 란 말인가?
그리고 대답이 일반적이지 않는건 둘째 치고 왜 의사양반이 가오 떨어지게 여기서 이러고 자빠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여기 모든게 수상하기 짝이 없고 어떤 것도 일반적이지가 않다.
이 병원 원장이 이 모양이라 망조가 든게 아닐까?
나는 이때라도 절뚝이는 발을 최대한 다독여 뒤돌아 도망쳤어야했다.
“직원분이 안 계시는데요?”
“어어, 그것도 내가 해!”
본인이 접수하고 본인이 대기 없는 환자명을 부르고 또 잘 보이지도 않아 5미터 뒤에서 내 환부를 돋보기 안경을 쓴 채 오만상에 입꼬리를 무릎까지 내리고 내려 볼 때, 늦었지만 그때라도 도망쳤어야 했다.
“아픈데가 어디야? 여기?”
“아니요. 거긴 제 젖꼭지입니다만.”
“그럼 여기?”
“이게 종기처럼 보일 크기입니다만, 나름 우악스럽게 소중한 생식기인데요!”
그 눈으로 기어코 병명을 알아냈다는 데에 놀랄게 아니라 인민들도 기립박수 할 혁명적인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음, 환부에 뭔 짓을 한 거야? 뜸이라도 떴어?”
“아니요. 티눈밴드를 써 봤는데 효과가 없더라구요.”
“사마귀가 너무 커. 이런 건 이런 조잡한 걸로는 택도 없어!”
“사마귀라고요?”
하지만 난 티눈이 아니었다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그만 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시기를 놓쳐버렸다.
사마귀라는 말에 이 고난의 결정적 주동자만이 쌍빠큐 사이로 아련히 떠 올랐을 뿐이다.
‘티눈이라 했던 놈 누구냐?’
‘네놈의 배 같은 형제란다.’
‘돼지?’
‘네 형! 항상 남처럼 멀다가 명절엔 남보다 못한 네 형! 하긴 유전자 코드가 같은, 같은 똥 배이기는 하다.’
여하튼, 사마귀에 티눈 제거밴드를 붙였으니, 치료가 될 턱이 있었겠는가!
‘저기요 설명서에는 사마귀도 티눈처럼 치료 된다했습니다요. 그건 단순히 너무 커서 안된 것뿐이라고요! 이 남탓하기 좋아하는 상습 책임 이관 정신승리자야!’
그래서 지금까지 영 미덥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신뢰가 갔다.
의사 자격증은 이로써 검증이 된거나 다름없다.
딱 여기까지는.
당장 관짜도 이상하지 않을 중환자스러운 의사가 환자를 본다는 게 퍽 의심스러웠으나, 자신감 찬 그 확진은 이 모든 불안을 종식시킬만한 힘이 있었다.
“이거 레이져로 조지면 금방 나으니까. 걱정하지 말더라고.”
간단한 치료법에 개꼬름한 병원 인테리러는 이미 잊히고 단단한 믿음으로 굳혀 가고 있었다.
그랬었는데.
“그런데 말이야······”
으응?
그런데라니?
여기서 반전의 대명사인 그런데가 나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보시다시피 우리 병원에는 간호사도 없고 간호조무사도 없고 그래서···.”
으응?
그래서라니?
여기서 여지의 대명사인 그래서가 나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래서 치료가 안된다는 걸까?
“자네가 간호사 역할을 대신해 줬으면 하네.”
“제가요? 전 환잔데요?”
정말 쌩뚱맞은 역할 전도적 퀘스트부여에 그만 난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
“별거 없어. 그냥 잘 보이게 그리고 움직이지 못 하도록 잡고만 있으면 돼!”
“쉽게 말씀하시기엔 제 자아가 손과 발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어허, 별거 아니래도 그러네! 눈 딱 감고 내 발 아니다 생각하고 그렇게 잡고 있으면 돼! 그렇게만 해 준다면, 원래 사마귀는 보험처리가 안되는데, 반값에 티눈으로 보험처리까지 해 주겠네.”
다른 어떤 현혹에도 부동심이던 대접받으며 정상적으로 치료하고 싶은 마음이 반값과 확진 명 불법 조작이란 덫에 음식에 치근댈 때처럼 꿈쩍꿈쩍거렸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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