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1인 2역. 2.

계성기의 개소리 라이프 44화.
<1인 2역. 2.>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마취도 할거니까, 아마 느낌도 안 날걸? 대신 내가 한번에 뿌리 뽑아서 다신 재발하는 일 없도록 만들어 줄게.”
“이게 재발도 하나요?”
“풋내기들이 하면 그런 경우가 많지. 하지만 40년 내공의 사마귀 학살자인 난 다르지!”
마취제로 짐작되는 유리병을 노안에 뚫어져라 눈빛으로 제압하는 모습에 다소 신뢰는 잃었으나, 행여나 실수로 환자를 골로 보내까 서너번 확인하는 모습에 그래도 죽진 않겠구나 싶어 1인 2역을 수락하게 된다.
“이거 마취제가 맞나? 으음, 맞구먼! 어, 아닌가? 아, 맞구먼! 으잉···..아닌가?”
“저기 제가 한번 봐 드려도 될까요? 다름 아닌 제 몸에 넣을 거니까 꼭 확인하고 싶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 준비는 마무리됐고 양말을 벗고 수술대에 앉은 나는 간호사의 역할도 이행하기 위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하얀 족을 남인 양 꽉 움켜 잡았다.
무당의 양의신공마냥 자아를 둘로 분리하는데 성공한 나는 상충되는 두 감정의 혼란을 최대한 잠재울 수는 있었으나, 하지만 둘 다 처음이라는 휘몰아치는 걱정만은 그런 정신승리만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 잘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나 처음이 있기 마련이지. 걱정말게 다 잘 될 거야. 자넨 사람이 언제 죽는 줄 아는가?”
“혹시 잊혔을때라는 철학적인 답을 기대하신 건 아니겠죠?”
“당연히 아닐세! 애니에선 어떨지 몰라도 여기선 수술 중 똑바로 안 잡았을 때라네!”
분위기를 풀려는 장난스러운 농담에도 이어 알게 된 암담한 진실에 걱정만은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다.
“뿌리가 깊어! 쉽지 않은 수술이야.”
“저 선생님···.저 정말 괜찮을까요? 걸을 수 있을까요? 살 수 있을까요?
“원래 이런 경우는 한번에 치료가 안되는데, 걱정마! 네 발을 자르는 한이 있어도 뿌리를 뽑아 버릴 테니까.”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뿌리를 뽑기 위해 발을 자르다니요.
보통은 그 반대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수 없이 많이 봐온 나 일세. 걱정 꼭 붙들어 매고 그저 꽉 잡고만 있으라고! 3년만의 대 수술이라 나도 나름 긴장 상태이니까.”
그 말 때문에 더 불안해 지잖아요. 그건 그저 혼자만 알고 있었으면 안됐을까요?
번지점프대에서도 떨어지는 와중에 안전바를 채결하지 않았다는 직원의 농담에도 허허 웃어버렸던 내가 그 말에는 웃음기 1그램도 맺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리된 자아의 손은 맡은 역할에 충실히도 발을 꽉 잡고 있었고 고기 타는 냄새와 어느새 치료는 시작돼 있었다.
“꽉 잡아! 뭐하는 거야? 환자 움직이잖아!”
“아, 네네.”
“환자분 움직이면 치료 길어져요. 빨리 끝내고 싶으면 조금 아파도 참아야 됩니다.”
“아, 네네.”
지지직. 지지직.
하얀 연기를 내며 타 들어가는 발은 치료중이라는 진실과는 별개로 내 몸이 불타고 있다는 현실에 정신이상 후유증후군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벅찬 일인데, 2역 중 간호사 역할을 수행하는 내게 의사가 불합리한 요구를 할 때마다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나로선 아주 죽을 맛이었다.
“거, 엄지 발가락을 들어서 꽉 잡으란 말이다, 환부가 잘 보이게! 처음도 아니고 아마추어처럼 뭐 하는 거야?”
“아 네네.”
“어허! 발이 자꾸 오무려 들잖아. 지지기 쉽게 쫙 펴라고!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
“저 선생님, 제가 배가 남산만하게 나와 그저 엄지발가락에 닿고 있는 것 만도 아주 버거운 상태입니다. 이게 현실 물리엔진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자세라구요. 너무 무리한 요구 십니다.”
“잡는 데 뭔 핑계가 그리도 많아? 잔소리 멀고 꽉 잡아.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이니까.”
이렇게나 파냈는데 아직 구만리나 남았다구요? 설마 진심으로 발 바닥에 구멍을 낼 생각은 아니시죠?
그 전에.
선생님 혹시 건망증이 있다거나 아니면 죄송스러운 말씀인데 치매끼가 있으신 건 아니죠?
다행스럽게 역활놀이에 심취해 계신 것 같긴 하나 조금 티라도 내 주시겠어요? 1인 2역하는 저는 헷갈리고 또 불안하니까요.
설마 제가 전에 근무하던 간호사랑 퍽 닮아 헷갈리시다거나. 아니면 선생님도 분리된 자아에 가상의 간호사를 만들 고 집도하고 계시는 건 아닌지.
근데 의사 자격증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런 내 마음속 질문을 알리 없는 의사 선생님은 아랑곳 않고 불편한 집도 환경임에도 아주 잘, 열심히도 환부를 조지셨다.
“환자분, 발가락 꼼지락 대면 레이져에 발가락이 절단되는 수가 있어요!”
“저···. 저···. 정말이요? 아, 알겠습니다! 간호사님 부디 꽉 잡아주세요.”
“아, 네네. 걱정마세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역할에 심취한 나를 다소 뚱한 표정으로 보는 것과는 별개로 마취를 조금은 과하게 투약했다 싶었드만 역시 정량이었던지 그에 걸맞게 환부를 깊게 파 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어쩐지 나보다 더 신나 보여서.”
“그런 거 아닙니다. 수술 잘하라고 맞춰 드리는 겁니다.”
“알겠네. 환자는 지금 처럼만 가만히 있어 주고 간호사는 잡은 그 위치를 더 꽉 붙들어 잡아!”
그렇게 신체의 일부가 탈 거 되는 듯한 소멸에 마취를 그렇게 했음에도 조금씩 고통은 커져갔다.
오락실 만능키인 전기 똑딱이 수준의 고통이 점차 커지더니 220V 콘센트에 젓가락 한 쌍을 때리 박은 고통이 환부에 전해졌다.
미숙한 간호사를 데리고 자발탱이 환자를 집도하게 해,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참아 보려했는데, 그때부터 더는 간호사의 자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사마귀 뿌리가 남아 있으면 재 치료를 해야 한다 했던가?
난 이 모든 걸 감당해도 그럼에도 이 치료를 지금이라도 당장 물리고 싶었다.
“아아아아! 아퍼요. 너무 아파요, 선생님! 이렇게 아플 정도로 파 내는 게 정말 맞는 건가요?”
“환자분 조금만 참아요. 다 되어 가니까. 간호사는 환자 꽉 안 잡고 뭐하는 거야?”
“아 난장이 할! 제발 그만 좀 하시라구요. 환자도 간호사도 다 저란 말입니다!”
“그렇게나 아파? 난 네가 이런 역할 놀이를 그저 좋아하는 줄만 알았지! 내 손만 닿아도 지랄 발광하는 너라서 아, 이쪽 페티쉬가 있구나 싶었으니까.”
“그게 제 페티쉬라도 의사선생님과는 무관한 일 이잖아요!”
어떤 연산과정을 거치면 절 그딴식으로 평가할 수 있······어엉?
선생님?
얼굴은 왜 붉히시는 건데요?
“그래서 못 견딜 정도야?”
“네! 너무 아파요. 보기만 해도 거슬리는 손톱 옆, 삐죽 솟은 그 굳은살을 뽑았더니 뇌신경까지 딸려 온 느낌마냥요.”
“뭘 그렇게 까지나? 너무 장황하고 엄살이 심한 거 아니야?”
“제 겐 그 정도란 말입니다.”
“그래? 그럼 조금만 더 참아봐! 다 왔으니까.”
그렇게 막무간애로 진행시키실 거면 대체 왜 물어보신 겁니까?
“간호사, 이번엔 최고 출력으로 빠르게 갈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꽉 잡도록 해 진짜 움직이면 발이 절단 날 수도 있으니까.”
“네에?”
“장난 아니다 이거. 난 이 수술에 의사 면허증을 걸었어! 환자가 치유되거나 병신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테니.”
제가 보기엔 평생 삭혀 온 화를 제 발에 푸시는거 같은데요.
“그냥 여기서 치료를 마무리 하시는게···.”
“닥쳐! 내 환자니까. 난 내 환자 절대 포기 안 해!”
“제가 의사를 포기하는 건데요.”
“시끄럽고 다시 잡기나 해!”
아닌 거죠?
정말 아닌 거죠?
히포크라데스 선서에 의거 참 의사의 사명으로 이 수술을 집도하시고 계시는 게 맞는 거죠?
“발바닥이 우리 마누라 뱃살만큼이나 두껍고만. 이 우라질 천하의 남편 알기를 개성기 보듯 소박맞을 그 여편네처럼 말이야.”
“네에? 제 이름은 왜?
“아무것도 아닐세! 내 나름 수술에 임하는 각오이자 주문일 뿐일세. 신경쓰지 말게나. 시집온 그날 내가 소박을 맞혔어야 했는데, 그날 눈에 뭐가 씌였었던 건지.”
“네에?”
“아닐세! 그저 고기 타는 냄새가 마치 새벽에 몰래 삼겹살에 혼술 하는 울 마누라가 생각나서 한 말이라네.”
어찌나 수술중에 TMI로 자기 이야기를 해 대시는지.
지루할 틈은 없었다마는 이게 병원의 가세가 기울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사마귀는 진즉이 뿌리 뽑혔는데, 말을 더 하고 싶어서 내 발을 더 지지고 있었는지도.
“선생님 이제 그만 하시죠. 귀에 피가 나는 건 둘째 치고 조금만 더하시면 국내 최초 발바닥 관통 피어싱도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요.”
“아이쿠야. 벌써 환부가 이만큼이나?”
벌써라니요?
발등 뒤로 히끗히끗 주변 배경도 보이는구만요.
여기 정신이상 독거 노인 보살핌센터 그런 거 아닌거 맞죠?
저 잘못 들어온 거 아닌 거 맞죠?
그때 문이 열리며 다음 희생자가 될 환자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체 불나방처럼 나와 같은 운명에 투신하는 게 보였다.
너는 알까?
여기서 지금 나가지 않으면 강제 자아 분열이라는 희대의 정신병을 그것도 병원에서 얻게 되리라는 걸?
“저기요? 여기 오늘 진료 안하나요? 휴무인가요?”
“거기 원무과 테이블에 이름과 증상 적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 환자 거의 다 끝나가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건 전혀 내 알바가 아니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둔 환자 내정자와 의사의 잠시간의 대화가 이어지고 내 지지부진했던 치료는 소독이란 전환점을 시작으로 다이나믹하게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취의 여파로 아직은 아프지 않겠다마는 풀리면 혀 깨물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몰려올 수 있다는 설명을 마지막으로 진통제와 소독키트를 처방받고 이 잔인하고도 섬뜩한 역할극을 끝낼 수 있었다.
처음 나와 같은 의심의 눈초리로 다음 희생자가 주변을 살핀다.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다고? 그럼 앉을 수도 없겠네?”
“네 스스로 짜고 싶어도 손이 닿질 않아 할 수가 없어요. 이걸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그도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진료실이 아님에도 진료가 이어지는 야매스러운 풍경에 벙찐 그가 전 희생자인 날 위아래로 훑었다.
설마 이 딴 녀석이 간호사는 아닐테고.
“챙피해서 그러는데 혹시 여간호사님은 안 들어오시죠?”
“그런 걱정은 하덜덜 말고 따라 오게나.”
그럼에도 신속 진료라는 안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그는 마음이 동해버렸고 안타까워하는 내 표정을 보고 있음에도 진료실로 들어서는 우를 범해버렸다.
나는 그런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차마 못한 그 한마디를 눈빛으로 대신 전해주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쳐! 자넨 아직 늦지 않았어!’
잠시 직장 상사였던 그가 있어 감히 말 못한 그 한마디를.
그 병원은 마음 아프게도 다음해 어느날 상중이란 안내 문구를 마지막으로 더는 운영 되지 않았다. 그리고 걱정과 달리 사마귀는 재발하지도 그곳에 존재했었다는 흉터도 생기지 않았다.
“절 고쳐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부디 그곳에서는 역할 분담 없이 행복하시길!”
“뭔 소리여? 터가 안 좋은 것같아 병원을 옮긴 것뿐이고만. 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여?”
이러나 저러나 아무튼, 그는 내게 영원히 화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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