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 헌터의 셀프육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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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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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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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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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심공(4)

DUMMY

정신 차리자.

아라크네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결혼해도 살 수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부터 떠올려보자. 둘 사이에 아이는... 아직 없군. 다행이야.'


천만다행으로 아들이나 딸은 아직 없었다.

결혼당한 와중에도 그것만큼은 필사적으로 막아낸 것 같다.

별로 기특하진 않다.


'이 새끼, 누구 멋대로 결혼하고 난리야?'


만약 아이가 생겨버렸다면 대참사였다.

그 시점에서 내가 과거에 개입하면, 아이의 성별이 바뀌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과거를 바꾸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엔드 포인트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결혼의 자세한 경위는 자그마치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년 동안 헌터 생활로 열심히 돈을 모았던 나는 여유자금으로 사업을 한 번 해보기로 한다.

내 헌터 활동으로 인한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사업가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자신감이 있었다.

완전히 근거없는 자신감도 아니었다.

그건 헌터 관련 사업이었으니까.


몬스터 장비 제작 공장.

헌터로서의 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우리팀과 네메시스 길드에서 원자재를 공급받아서 가공한 뒤에 팔아먹는 사업.

헌터생활로 생긴 인맥을 이용해서 장인들도 끌어모으고, 번듯한 생산공장도 세웠다.

대출을 좀 받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원인불명의 화재가 공장을 전소시키기 전까지는.


'다시 생각하니까 지옥같네.'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공장 설비 전체와 희귀한 소재들이 거의 다 불타버렸다.

3년 동안 목숨 걸고 일했는데, 하룻밤만에 빚쟁이가 된 것이다.

던전의 자택도 압류당해서 사이카의 집에서 지냈다.


화재가 발생한 뒤엔 3일 밤낮으로 술만 마셨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 쳐도.

나를 믿고 도와준 동료 헌터들과 투자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괜찮아요 강운 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런데, 그 때 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도와준 것이 바로 사이카였다.

그녀는 격하게 항의하던 본가로 찾아가서 가주 자리를 빼앗아버리더니...

가문의 여유자금을 모조리 내게 투자했다.


덕분에 공장 설비를 다시 복구할 수 있었다.

아예 전보다 훨씬 더 크게 지어줬다.


그 뒤로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일이 잘 풀렸다.

다른 헌터들이 앞다투어 찾아와서 재료를 공급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사이카의 미담 덕분에 바이럴 마케팅도 제대로 됐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았을 정도.


그렇게 1년 정도 지나자, 사이카의 본가에서 호출이 왔다.

단단히 각오하고 갔는데도 각오가 모자랐다.


"본가의 비전 검술을 외부인에게 유출하다니..."

"비전이라뇨? 그냥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고서잖아요."

"직장 동료라곤 하지만, 다 큰 처녀의 집에 무작정 얹혀살다니..."

"요즘 스미가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지 아는가? 한국인 남자에게 홀려서 집문서까지 갖다바쳤다는 소문이 파다하네!"


사실 완전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이카의 자택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으니까.

회사의 마케팅 팀에서 사이카의 이름을 지겹도록 팔아먹은 것도 있었다.


이대로 가면 할복이라도 시킬 것 같았는데...

결국 사이카가 그날 밤 나한테 청혼했다.

나는 그렇게 결혼당했다.


'... 당할만 했군.'


여자가 날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거절하는 게 가능하겠나?


다행히 결혼생활 자체는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좋아도 되는가 싶을 정도.


사이카는 내게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기를 죽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응원해주고, 인정해주고,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말도 언제나 조곤조곤 상냥하게 해준다.


전에 이혼이니 뭐니 들었던 때와는 천지차이였다.


"서방님?"

"나, 나갈게요."

"후훗, 갑자기 웬 존댓말이신가요? 옛날 생각나네요."


겨우 회상에서 깨어나 거실로 나가자 엘리자와 사이카가 보였다.

식탁 위에는 정갈한 아침식사.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며, 회상을 계속했다.


사이카는 아이를 간절히 가지고 싶어했지만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낸 것 같다.

둘 다 헌터로 활동하고 있다보니,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기도 했다.

아이를 양육하려면 최소 한 명은 헌터 일을 그만두는 게 맞으니까.


그럼에도, 사이카는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아침에 엘리자가 동생을 가지고 싶대요."

"속지마라. 그런 말 한 적 없다 휴먼."

"그치만 갖고싶지 엘리자?"

"발도 자세로 그런 소리 하지마라 사이카."

"사이카 씨..."


내가 말리려 하자 사이카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러고 보니 서로 호칭이 바뀌었겠다.

실수했다 싶어서 잽싸게 말을 바꾸자 겨우 진정한다.


"아니, 여보."

"화... 화나신 줄 알았네요. 이 이야기는 그만할게요. 죄송해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외출을 준비하고, 느긋하게 나갔다.

오늘의 첫 일정은 공장 방문.

바아란의 주민들이 우리를 보곤 인사했다.


"오, 사장님. 오늘도 온가족 외출이에요?"

"두 분은 아직 신혼이신가봐요."


사이카는 좀 걷기 힘들만큼 찰싹 붙었다.

결혼 6년차가 맞는가 싶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다시 잠들 때까지는 쭉 이렇게 지내야 하니까.


'적어도 이혼 소리 들을 걱정은 없겠네.'


공장 설비는 무척 깔끔하게 잘 되어있었다.

실력 좋은 헌터 장인들은 물론이고, 신입들도 설비를 빌리고 있다.


헌터 장비 제작은 숙련공의 역할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아예 장인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역시 장사는 수수료 장사가 제일이다.


'이건 나중에 또 써먹어도 괜찮겠네.'


천천히 점검을 마치고, 훈련장에 들렀다가 쇼핑하러 갔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뭘로 할까요?"

"사이카. 추천 메뉴는 가지 소고기 볶음이랑 미역국이다."

"좋네."


사이카는 가지 하나도 그냥 사질 않았다.

좀 비싸다 싶으면 바로 옆 마트로 간다.

가만히 보면 다같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다들 우리처럼 살면 내수 경제는 망하겠네."

"에이, 그건 장사꾼들의 헛소리죠."

"휴먼. 후식도 골라라. 그새 체중이 좀 줄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놀랄만큼 즐거웠다.

사람들이 이런 안정감 때문에 결혼을 하는 걸까?


'이게 이혼률 20%의 한일전인가...'


나중에 재산분할해도 내가 이득이다.

어차피 빚밖에 없었으니까.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는 꽤 오랜만에 수세미를 잡아봤다.


"설거지 31레벨의 힘을 보여주지."

"음? 휴먼. 너는 그런 거 한 적 없잖나? 헛..."


휘리릭!


천하의 엘리자도 깜짝 놀랄만한 속도.

접시들이 빨려들어가듯 건조대에 안착한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좀 무섭다.


'검술이 16레벨인데, 설거지가 30레벨을 넘으면... 설거지로 몬스터 잡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됐지만 굳이 시험해보진 않기로 했다.

소파에서 노닥거리고 있자 사이카가 은근슬쩍 다가왔다.


"서방님, 엘리자 재우고 안방으로 갈까요?"

"쟤는 잠 안 자는데요..."

"전원을 꺼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 못되게 굴진 말죠."


내가 바랬던 삶.

아직은 가질 수 없는 삶.


직접 해보니까 알겠다.

아직은 결혼 같은 걸 할 수 없다.

벌써 과거로 돌아가기 싫어지고 있으니까.


만약 중간에 현재가 한 번 더 바뀌거나 한다면 버티기 힘들 것이다.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고백하기로 했다.

어차피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게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사이카 씨. 사실... 저는 사이카 씨가 좋아하셨던 그 남자가 아닐 수도 있어요."

"... 강운 씨."


사이카도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을 보곤 바로 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강운 씨께서 혼자가 아니란 사실은 진작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 그랬나요?"

"네. 양의신공을 너무 빠르게 익히시기도 했고... 저도 눈치가 없진 않은 걸요?"


역시 양의신공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처음부터 의식이 둘이라서 스킬의 습득이 너무 빨랐던 것이다.


사이카는 내 팔을 꽉 붙잡은 채 물었다.


"저를 처음 만나셨을 때부터 그러셨던 거죠?"

"맞아요."

"그럼 상관없어요! 저는 그 때부터 쭉 강운 씨의 편이니까요."

"..."


가슴이 울컥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이카가 자신있게 말했다.


"언제든, 어디서든. 강운 씨를 응원할게요. 해야 할 일을 하셔요."

"... 고마워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미리 사뒀던 수면제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침대로 가서 몸을 눕히자 엘리자가 쪼르르 다가와서 빤히 쳐다본다.

이 녀석도 대충 엿들었을 것이다.


"휴먼, 잘 자라. 다시 만나자."

"그래..."

"전에 결혼활동 갔던 건 계속 비밀로 해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으음?"


잠깐만.

이 녀석이 결혼활동 건을 어떻게 알고 있지?

이번에 생략된 10년에선 그딴 거 안 했는데?


애초에 결혼활동은 현재 시점에서 내가 직접 참가했던 행사다.

정작 말을 꺼낸 엘리자도 몹시 당황한 눈치다.


"이 기억은, 내 것이 아닌데... 아니, 내 건가?"

"엘리자?"


나는 약기운을 몰아내며 일어날까 싶었지만, 엘리자가 내 머리를 가볍게 눌렀다.


"걱정할 필요 없다. 다시 만나자."

"으응..."


뒤늦게 잠기운이 몰려든다.

설마 내 능력이 엘리자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끼친 건가?

그렇다면, 사이카에게도 가능할까?


'상태창이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지. 이걸 말하는 거였나...'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잠에 든 나는 가장 먼저 10년 전의 내게 신신당부했다.


[야, 불조심 해라. 결혼하지 말고.]


'불조심이요? 아, 알겠어요.'


대충 이 정도만 해둬도 괜찮겠지.

공장이 불타지만 않으면 안전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 자식, 뒷말은 대놓고 무시하네?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그냥 후렴구 취급이다.


죽은 숲에서의 사냥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엘리자를 자세히 살폈지만, 달리 이상한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1일차의 사냥을 무사히 마치고, 야영지에 하루를 끝냈다.

이번에는 괜찮겠지.



@



잠에서 깨어난 나는 눈을 뜨기 전에 기억을 재생시켜봤다.


'어? 뭔가 이상한데?'


내 예상과 다르다.

이번에도 사이카와 결혼했다.


사건의 흐름은 이전과 비슷하다.

장비 제작 공장을 세웠던 나는 불조심하라는 조언을 떠올리곤 화재를 막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립도시 알메이라로 향하던 회사의 교역선이 침몰해버렸다.

기적적으로 사상자는 없었지만 막대한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고...

고맙게도 그 때 나를 도와준 것이 바로 사이카였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했다.


'이거 어디서 봤던 시나리오인데?'


회상을 마친 나는 눈을 뜨곤 사이카를 쳐다봤다.

그녀가 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편히 주무셨나요 서방님?"


... 설마 내 공장, 니가 불태우셨습니까?

언제든 어디서든 응원해주신다면서요?


아, 이 여자가 그걸 기억을 못하는구나.

나는 하루 더 휴가같은 생활을 즐기고, 똑같이 고백한 다음 똑같은 답을 받곤 잠들었다.

오늘따라 엘리자의 눈동자가 한층 안쓰러운 느낌이다.



작가의말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까만하늘별 님, 정말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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