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운명을 비틀고 떼돈방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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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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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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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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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불길에 의해 바뀐 운명적인 물길(1)

DUMMY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눈을 의심하던 권무기가 가정 먼저 핏대를 세웠다.


“좌포장! 조정의 대소신료들이 국사를 논하는 자리에 어찌 능지처참할 방화범을 끌어다 놓은 겐가!”


“고정하시옵소서, 대감! 시국이 시국인 만큼 소인은 좌상대감의 명을 받자올 뿐이옵니다.”


“뭐, 뭐라?”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권무기가 김병학을 쏘아보며 얼굴을 붉혔다.


“좌상대감!”


“말씀하시오, 권 부제조.”


“당장 저 방화범을 국문장으로 끌어내시오!”


“무슨 증좌로 저자가 방화범임을 그리 단정하시는 게요?”


“그야······국문을 열어······.”


“국문을 열고 모진 고신에 의해 자백을 받아내면, 된다는 생각 외에 납득할 만한 증좌가 있는가 말이오!”


정곡을 찔린 권무기의 말문이 막히는데.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김병학이 분명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죄 없는 백성을 모진 고신에 의해 방화범으로 몰아넣어 민심이 등을 돌릴경우 심기일전, 도모해야 하는 경복궁 중건이 어떤 난관에 봉착할지 모르는 바······.”


반격할 말이 없는 권무기의 눈치를 보던 중신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좌상대감! 지금 경복궁 중건을 다시 도모하시겠다는 게요?”


“언제 포기한 적이 있었소이까?”


“재기불능인 국사를 고집하시는 저의가 뭐요! 국가재정은 바닥이 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건 말건······.”


“그렇소이다. 역사의 장에 공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좌상대감의 욕심이 불을 보듯 훤하외다!”


보다 못한 서명수가 언성을 높였다.


“닥치시오! 좌상대감께 그 무슨 망발인 게요?”


그런데 가장 믿고 의지하는 죽마고우 대사헌 이두학이 초를 치고 나왔다.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소이다.”


“대사헌!”


“이 사람은 좌상대감께서 개인적인 야망을 위해 국가재정을 파탄 내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우를 범하실 분이 결코 아님을 믿소.”


“그럼 대사헌께서도 포기에 찬동하시는 게요?”


“지금은 방화혐의자에 대한 처결이 우선이란 말이오.”


꿇어 엎드린 채, 벌벌 떠는 방태산을 보던 김병학이 좌포장에 일렀다.


“내 직접 물을 것이니 고개를 들라 이르게, 좌포장.”


좌포장의 지시에 따라 겨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방태산에게 김병학이 추궁을 시작했다.


“듣거라. 조서에 따르면 너의 고향이 강원도 정선인데 맞느냐?”


“예에······.”


“천 리 밖 두메에서 하필 화재가 일어나던 날 경복궁 현장에 와 있었던 연유가 무엇이더냐?”


“하······할아버님 명을 받고······치······친구를 데리러 왔사옵니다.”


“좌포장!”


“예, 좌상대감!


“증인을 대령하라.”


좌포장의 명을 받은 포졸이 데리고 들어오는 덕만이를 보는 순간이었다.


“목도소리 잘하는 놈······”


하며 반색을 하는 신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사명수와 은림까지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김병학이 방태산에게 물었다.


“네가 보았다는 발화지점은 덕만이의 숙소에서 멀다. 오밤중에 왜 그곳에 갔느냐?”


“예! 빨리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소인도 모르게 갔사옵니다.”


“굳이 오밤중에 고향으로 가고 싶어진 연유가 무엇이더냐?”


“······.”


대답을 못 하는 방태산을 쏘아보는 권무기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였다.


“두려워 말고 오밤중에 고향으로 가고자 했던 연유를 말해 보아라.”


능지처참할 방화범을 신문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하듯 좌의정이 부드럽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얼굴을 붉히고 있던 권무기가 좌의정을 향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좌상대감!”


“어찌 그리 언성을 높이시는 게요, 부제조?”


“소인은 입이 열두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방화범 놈을 끝까지 싸고도는 좌상대감의 연유가 궁금하외다.”


방태산은 의아해졌다. 분명히 조금 전 감옥으로 죄 없는 백성이 걱정되어 찾아왔던 대감이었다.


―억울하게 사지가 찢기고, 모가지가 뽑히는 백성이 있어서는 아니 되기에 왔느니라.


참으로 고마워 큰절을 올리고 싶었던 대감의 위선이 느껴진 방태산은 덕만이와 나누었던 말이 스쳐 갔다.


―나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지 않는 천민이잖아? 하지만 덕만이 네가 날 도와주면, 뗏목으로도 팔자 고칠 수 있어.


―너 설마······할아버지도 포기하신 오 진사 나리 옛날 약조를 믿고 한 말은 아니지?


―아니. 난 진사 나리 약조 믿어.


방태산은 자신을 방화범으로 몰아넣으려는 권무기가 오 진사의 사위란 사실을 아직은 몰랐다.


오 진사가 양반 부스러기들과 합세해 만지산의 궁궐재목감이 경복궁 뗏목으로 잘려 나가는 것을 막은 사실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궁궐 재목 조달을 방해한 오 진사를 만나 천민의 굴레를 벗고 싶은 마음이 앞서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말을 어떻게 이실직고하겠는가.


“오밤중에 고향으로 가고 싶어진 연유가 무엇이더냐? 당장 이실직고 하지 못할까!”


권무기가 잡아먹을 듯이 다그치는 순간이었다.


천민의 굴레를 벗겨줄 오 진사의 허물을 드러낼 수 없는 방태산은 침착하게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뗏목훈련으로 잔뼈가 굵은 덕만이를 데려오라는 할아버지께서 걱정이 크실 것만 같아 한양에서 다리 뻗고 편히 잘 수가 없었구먼요, 대감님!”


권무기보다 좌의정이 앞질러 물었다.


“그럼, 고향으로 갈 길이 바쁜 몸으로 당장 타 죽을지도 모르는 화마를 뚫고 들어가 생면부지인 대목장은 어떻게 구했느냐?”


“소인은 그저······.”


머뭇거리는 방태산을 노려보는 권무기에게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좌의정이 다그치듯 말을 이었다.


“불길이 무서워 군사들마저 발만 동동 구르는 판이었다. 목숨을 걸고 대목장을 구한 용기가 참으로 궁금하구나.”

“불길에 갇히신 분이 친구 덕만이가 꼭 닮고 싶어 하던 대목장님이란 소릴 듣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는 방태산을 쏘아보는 권무기가 사정없이 다그쳤다.


“네 이놈! 우물쭈물하지 말고 당장 대답하지 못할까!”


“소, 소인도 모르게 뛰어 들어가······어, 어떻게 모시고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 뭐라······.”


말문이 막히는 권무기를 보던 좌의정이 은림에게 조용히 물었다.


“누군가에 맞아 불길에 타 죽을지도 모른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청년에게 물을 끼얹어 깨운 것이 사실인가?”


“그러하옵니다.”


“소신 또한 불길로 뛰어들어 대목장을 구해내는 청년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사옵니다.”


서명수 부녀의 증언에 유구무언인 권무기는 먼산바라기가 되어 쓰디쓴 입맛만 다셨고.


―불길에 갇히신 분이 친구 덕만이가 꼭 닮고 싶어 하던 대목장님이란 소릴 듣는 순간······.


방태산의 말을 되새기는 대소신료들은 조선 최고의 도편수, 대목장을 구한 방태산의 용기와 우정을 극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고 있었다.



***



밤이 깊어가는 운현궁.


대원군의 처소에서 대사성 이두학이 독대하고 있었다.


“죄 없는 백성의 희생을 막고 화재를 정쟁에 이용하려는 무리를 잠재운 좌상의 지혜가 참으로 빛났사옵니다, 저하!”


대원군이 끄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아무리 좌상과 서명수 제조가 저하의 곁에 있다 한들 경복궁 중건을 다시 도모하심은 역부족이옵니다.”


“어쩐지 칭찬이 과하다 했거늘······.”


“부디 후일을 도모하소서, 저하!”


“후일? 후일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저하!”


“임진왜란 이래 후일을 도모하다 그냥 흘려버린 세월이 얼마던가? 자그마치 3백 년이 가까워지고 있네!”


“하오나 왕실의 존엄이, 왕실의 번영이 꼭 경복궁 중건에 달린 것만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저하!”


대원군이 빤히 보고만 있었다.


“더욱이 국가재정의 파탄으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릴 우려가 크나큰바, 그만 집착을 버리시옵소서!”


“뭐라? 집착!”


“그러하옵니다, 저하!”


대원군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저하!”


“여는 경복궁 중건에다 왕실의 존엄과 번영만을 옭아맨 적도, 조선이 영원하기를 굳이 결부시킨 적도 없노라.”


“저하!”


“오직 만백성의 자존심이 될 이 나라의 대궁전을 되찾아놓고 싶을 뿐이다. 이 나라 조선이 망하기 전에!”


“예에?!”


경악하는 이두학이 금방 반론을 꺼내지 못했다.


“바른말이라면 거침없기로 소문난 사람이 놀라기는······.”


“하, 하오나······.”


“세상천지 어디에 영원한 왕조가 있었던가, 대사헌?”


“저, 저하!”


“이 땅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계속했는가?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까지 말일세.”


처연함마저 느끼게 하는 대원군을 바라보는 대사헌 이두학은 반격할 말머리를 찾지 못했다.


반론을 포기한 듯 묵묵히 듣고만 있는 대사헌의 표정을 살피던 대원군이 말을 이었다.


“비록 왕조는 이름이 바뀌어도 백성은 민족이란 이름으로 늘 이 땅에 머물며 역사의 맥을 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할 터······.”


“하, 하오나······.”


“대사헌,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서운하다니요? 갑자기 어인 말씀이온지 모르겠사옵니다, 국태공 저하!”


“대사헌과 죽마고우인 제조 서명수를 강원도 정선으로 내려보내는 선에서 화재의 책임추궁도 마무리 지을 것이니······.”


“서 제조 없이 가능하시겠사옵니까, 저하?”


“도편수 대목장이 건재하거늘······.”


“하오나······.”


“이미 내린 결정. 더는 토를 달지 마시게, 대사헌!”


거역할 수 없는 좌천이었다.


대원군의 처소를 나온 이두학은 영건도감으로 가는 길에 거듭 한숨을 몰아쉬었다.


‘저하의 뜻을 어찌 전하면 좋단 말인가?’


이두학은 대왕대비의 한을 풀어주려는 죽마고우 서명수의 집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명수에게 있어 경복궁 중건은 인생 그 자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명수는 꿈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경복궁 중건!


그 명운이 달린 궁궐재목감 조달을 위해 밤을 잊은 채,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좌천을 통보할 말문이 열리지 않는 죽마고우를 반기는 서명수의 목소리에 기쁨이 넘쳤다.


“대사헌, 궁궐재목감은 얼마든지 있네. 이제 하나도 걱정하지 말게.”


“삼수갑산을 염두에 뒀다면, 그만두게.”


“뭐라? 삼수갑산에 무진장한 궁궐재목감을 그만두라니?”


“천 리 밖이 아닌가? 그 소문난 오지에서 육로로 아름드리 궁궐재목감을 운송하는 일일세.”


“그래서 포기하자는 말인가?”


“저하의 뜻이네! 영건도감 일은 오늘로써 다 접고, 강원도 정선으로 부임할 채비나 서두르게······.”


이두학이 전하는 대원군의 뜻을 듣던 서명수가 우려한 대로 펄쩍 뛰었다.


“좌천도 유분수지!”


“이보게!”


“차라리 칼을 물고 죽을지언정 나로서는 저하의 뜻을 따를 수가 없네!”


“칼을 물고 죽다니! 젖도 물기 전에 어미 잃고 자란 은림인 어쩌고 그런 망발인가, 지금!”


“내 분명히 말했으니 그대로 저하께 전하게.”


“조정으로 복귀할 길은 얼마든지 있네. 지금으로서는 최악의 곤경을 극복하시려는 저하의 뜻에 따라······.”


“다 집어치워!”


격분한 서명수가 탁자의 문서들을 쓸어버렸다.


이두학은 국태공 저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죽마고우가 야속하고, 안타까웠다.


‘은림이를 믿는 수밖에······.’


죽마고우의 재기를 위해 생각이 많아지는 대사헌의 눈에서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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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화. 증거인멸(2) 24.07.15 12 0 11쪽
76 76화. 증거인멸(1) 24.07.12 13 0 11쪽
75 75화. 생사의 갈림길(8) 24.07.10 23 0 11쪽
74 74화. 생사의 갈림길(7) 24.07.08 19 0 12쪽
73 73화. 생사의 갈림길(6) 24.07.05 21 0 11쪽
72 72화. 생사의 갈림길(5) 24.07.04 19 0 12쪽
71 71화. 생사의 갈림길(4) 24.07.02 23 0 11쪽
70 70화. 생사의 갈림길(3) 24.07.01 16 0 11쪽
69 69화. 생사의 갈림길(2) 24.06.30 16 0 11쪽
68 68화. 생사의 갈림길(1) 24.06.29 15 0 11쪽
67 67화. 간악한 음모(9) 24.06.28 18 0 11쪽
66 66화. 간악한 음모(8) 24.06.27 16 0 11쪽
65 65화. 간악한 음모(7) 24.06.26 14 0 11쪽
64 64화. 간악한 음모(6) 24.06.25 12 0 11쪽
63 63화. 간악한 음모(5) 24.06.24 21 0 11쪽
62 62화. 간악한 음모(4) 24.06.23 19 0 11쪽
61 61화. 간악한 음모(3) 24.06.22 20 0 11쪽
60 60화. 간악한 음모(2) 24.06.21 18 0 11쪽
59 59화. 간악한 음모(1) 24.06.20 25 0 11쪽
58 58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3) 24.06.19 21 0 12쪽
57 57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2) 24.06.18 27 0 11쪽
56 56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1) 24.06.17 31 0 11쪽
55 55화. 떼돈방석과 벼슬(3) 24.06.16 31 0 11쪽
54 54화. 떼돈방석과 벼슬(2) 24.06.15 24 0 11쪽
53 53화. 떼돈방석과 벼슬(1) 24.06.14 37 0 12쪽
52 52화. 벽조목 쌍수목걸이의 비밀 24.06.13 24 0 11쪽
51 51화. 인연과 악연(4) 24.06.12 26 0 11쪽
50 50화. 인연과 악연(3) 24.06.11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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