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운명을 비틀고 떼돈방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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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봉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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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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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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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불길에 의해 바뀐 운명적인 물길(7)

DUMMY


방태산은 필요 이상 말이 많은 덕만이를 넘겨짚었다.


“덕만아, 너 할아버지 아시면 십 년 감수하실 큰 사고치고 한양에서 줄행랑친 거 맞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보던 덕만이가 볼멘소릴 했다.


“너야말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사과하려는 사람한테······.”


“사과?”


“그래! 바우덕이 같은 재주도, 대목장님 같은 솜씨도 갈고닦을 길이 없다고 못 박았던 일까지 다 사과할게.”


“먼저도 말했지만, 나 벼슬 같은 건 꿈에도 바라지 않아! 진사 나리 덕분에 면천하면······.”


“야, 방태산!”


“사과 같은 거 필요 없다니까.”


“그게 아니라 너 여태 오 진사를 믿냐? 바우덕이처럼 얼마든지 천민의 숙명을 바꿀 세상이 열리는 판국에······.”


방태산은 천민의 숙명을 바꾼 바우덕이가 문득 생각나 고개를 돌리다가 범바위에 시선이 걸렸다.


“범바위 첨 보냐?”


할 말이 많고 마음이 급한 덕만이의 볼멘소리에 바우덕이 생각을 접던 방태산은 다시 범바위를 바라보았다.


방태산은 철부지 떡보로 놀림 받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산딸기를 많이 따주었다는 정분 아씨의 보약 감으로 살무사를 잡았던 일이 생각났다.


―니가 뭔데 우리 어머니 보약 감을 챙겨!


고마워 어쩔 줄 몰라도 시원찮을 판에 눈에 쌍심지를 켜는 반쪽 양반, 오 진사의 외손자 권세출이 거듭 침을 튀겼다.


―내 말 안 들려? 니가 뭔데 우리 어머니 보약 감을 챙기냐고!


방태산은 어머니의 보약 감을 버린, 반쪽 양반이라고 놀렸던 오 진사의 외손자가 궁금해졌다.


훌륭한 무사가 되어 좋은 말을 타고 외가에 다녀갔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아니었다.


‘그래, 한양에서 만났던 칼잡이······.’


은림 낭자의 호위무사를 자칭했다가 망신만 당했던, 그 칼잡이의 찢어진 눈매와 날카로운 콧날에 남아 있었다.


방태산을 멍석말이로 몰아넣어 맞아 죽게 만든 어릴 적의 그 모습이······.


“야, 방태산! 너 진짜 범바위에 뭐 숨기고 있는 거야?”


덕만이가 핏대를 올리는 바람에 칼잡이로 성장한 반쪽 양반 생각을 떨치는 방태산이 얼버무렸다.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 관두고, 할아버지 뵙고 인사부터 드리자.”


방태산이 자리를 뜨려는데, 앞을 가로막는 덕만이가 침을 튀겼다.


“우리가 떼돈방석에 앉아 벼슬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단 말이야!”


“진짜 계속 봉창 뜯을래?”


“나 참, 미치겠네! 내가 대목장님 허락받기 무섭게 왜 불원천리하고 달려왔겠어?”


“어쨌든 내려온 건 잘했어. 난 너만 돌아왔으면 됐어. 떼돈방석······벼슬 같은 소리 그만해.”


“태산아!”


“제발 그만하자!”


“경복궁 다시 짓는데 들어가는 궁궐재목감을 우리 만지산에서 조달하기로 결정이 났단 말이야.”


“경복궁을 다시 지어?”


믿기지 않는 방태산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도 첨엔 너무 놀라 너처럼 멍했었어. 불길이 우리한테 더 좋은 물길을 열어 준 거란 말이야!”


“불길은 또 무슨 소리야?”


“니가 대목장님 구한 그 불길 말이야. 만약 화재가 없었다면······.”


“덕만아!”


“사실이잖아?”


“사실이고, 오실이고 간에 내 앞에서 불 얘긴 다시 꺼내지 마.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니까!”


“미안하다. 방화범으로 누명 썼을 때 심정이 얼마나 두렵고, 참담했을지 나로서는 짐작도 못 할 일인데 말이야.”


눈치를 보던 덕만이가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께 말씀 못 드렸구나? 아시면 십 년 감수하실까 봐······.”


“능지처참을 당할뻔했다는 말씀을 어떻게 드려?”


“알았어. 나도 명심하고 입조심 할게.”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가자. 무척 기뻐하실 거야.”


“그 전에 너한테 먼저 꼭 할 말이 있어.”


“됐어. 지난 일은 다 잊고 열심히 뗏목 타면 돼.”


“아니야, 태산아! 나 너랑 평생 뗏목 타러 내려온 거 아니야.”


“나랑 평생 뗏목 타러 온 게 아니라고? 그럼 뭐야? 너 혹시 한양에서 진짜 큰 사고 치고 얼렁뚱땅 넘어갈 잔꾀 부리는 건 아니지?”


“태, 태산아!”


펄쩍 뛰는 덕만이의 모습이 아무래도 수상쩍은 방태산은 미간을 좁히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



그림 같은 주막 신선옥.


방태산의 작은할아버지 방수태가 막걸리를 벌떡벌떡 들이켜는 술청.


처녀티가 나지 싶게 자란 산옥이와 밥을 먹던 산옥모가 술잔을 내려놓는 수태를 다그쳤다.


“수태 아재, 설마 내가 챙겨 준 쌀자루 다른 데 퍼 주고 딴소리하는 건 아니겠지요?”


산옥네의 다그침을 외면하는 수태가 수저로 밥을 듬뿍 떠서 입에 넣는 산옥이를 보고 딴청을 했다.


“몇 해 안 본 사이에 처녀가 다 됐구나. 허허허허.”


“작은할아버지도 참······.”


“아버진 읍내 큰댁에 갔냐?”


“아니래요. 나무 장사하러 한양 갔대요.”


지켜보던 산옥네가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수태 아재!”


“허, 그깟 쌀 말 가지고 유세 고만 떨지. 다 큰 산옥이 앞에서······.”


“얘 앞이라 부끄러운 줄은 아시우?”


“우리 형님께서 신임 사또 부임한 관아에서 받을 떼돈이 얼만 줄 몰라서 자꾸만 닦달하는겨?”


“어쨌든 관아에서 떼돈 나오면 그간 밀린 외상술값 다 청산하고······.”


“알았다니깐! 얘 앞에서······.”


“경복궁 뗏목 타러 구름처럼 몰려올 떼꾼들 다 우리 신선옥으로 끌어들이겠다고 한 약조도 꼭 지켜요!”


“얘 앞에서 사람 허풍쟁이 만들지 말래니깐!”


그때 수저를 놓는 산옥이가 웃는 낯으로 끼어들었다.


“저도 다 알아요, 작은할아버지!”


“다 알아? 뭘?”


냉큼 대답할 줄 알았던 산옥은 배시시 웃고만 있었다.


그런 산옥의 입에서 좋은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듯 수태의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나는 때였다.


“사람들이 작은할아버지 보구 허풍쟁이 심마니래요!”


“이런, 잡것들이······.”


당장 어디론가 달려갈 듯이 팔을 걷어붙이는 수태를 보던 산옥이가 얼른 다른 말을 꺼냈다.


“태천이 동생 깨진 코는 다 나았는지 모르겠네요, 작은할아버지?”


“우리 태천이 코가 깨졌다니, 아까 보니까 멀쩡하더구나.”


“그새 다 아물었나 보네요, 작은할아버지?”


“왜 깨졌는지는 모르지만, 못 믿겠음 직접 가 보렴.”


“가긴 어딜가? 곧 들이닥칠 손님 맞을 준비혀야제!”


“엄니!”


“태산이 보고 싶어 태천이 핑계 대는 줄 내가 모를 줄 아는겨?”


“아니야!”


얼굴이 빨개지는 산옥이가 내쏘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던 수태가 산옥네한테 물었다.


“우리 태천이 코는 왜 깨진겨?”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잘생긴 막내 손주 코가 깨졌다는데 안 궁금한 할아버지가 세상 어딨누?”


“어이구, 두 번만 잘 생겼다가는······술독에 빠져 헤엄치겠수!”


“뭣이여? 그럼 태천이 그놈이 벌써 술에 취해서 일이라도 저질렀다는겨?”


“그래요! 아주 고주망태가 돼서 코를 깼답디다.”


“뭣이여? 허 그놈 참······.”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던 수태가 느닷없는 말발굽 소리에 놀라 술청 밖으로 쫓아나갔다.



***



어른들이 뗏목을 엮지 않는 날이면, 방태산이 어릴 때처럼 가마소는 아이들 세상이었다.


여자아이들은 강변에서 구경하고.


물에서는 태천과 운섭 등 사내아이들이 장난감 뗏목으로 수군 놀이에 신바람이 나고 있었다.


지난날 형님처럼 목검을 잡은 태천은 뗏목의 앞에 서 있고.


뒤에서 노를 젓는 운섭과 옆에서 삿대질을 해대는 아이들의 일사불란한 동작이, 방태산의 어릴 적 노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그때 형님처럼 목검을 휘두르는 태천이가 소리쳤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나는 이순신 장군이다······.”


하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태천의 말문이 막혔다.


마치 태천을 공격하듯 말을 몰아 강변으로 달려오는 어른이 있었다.


민성집이 신임 사또 서명수를 감시하기 위해 잠입시킨 덕충이었다.


뒤늦게 놀이를 멈추는 아이들도 놀라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공격하듯 달려오던 말이 방향을 틀며 강변을 따라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시각,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가로지르는 행렬이 있었다.


경복궁 중건의 명운이 달린 궁궐재목감 조달을 위해 천 리 밖, 두메산골을 마다하지 않는 영건도감 제조의 호위와 떼꾼 보호.


더불어 훈련단의 호연지기를 명분으로 선두에서 말을 타고 가는 장도삼과 조교들······.


그 뒤에서 행군하는 박보와 수련생들의 끝에 권세출도 있었다.


무료하게 보이는 다른 수련생들과 달리 권세출은 어떤 생각으로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협곡.


마상의 장도삼과 조교들은 협곡의 비경에 감탄하지만, 박보와 훈련생들은 행군이 힘겨워 경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권세출의 눈에서는 더욱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은림 낭자!”


권세출의 굳게 다문 입이 떨어지는 사이로 조용히 흘러나온 이름이었다.


어려서부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불덩이처럼 화끈거렸던 사람이었다.


하마터면 왕비가 되어 감히 쳐다볼 수도 없거나, 구중궁궐 후궁에 갇혀 그림자도 못 볼뻔한 사람이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한양에서 떠나보낼 때,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그녀를 곧 보게 된다는 현실이 꿈만 같았다.


말을 탄 장도삼과 조교들이 먼저 올라와 멈춘 언덕은 한양을 출입하는 길손들이 쉬어가는 아리랑고개였다.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의 넓은 공터로 올라와 멈추는 박보와 수련생들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권세출은 오히려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때 마상에서 지도를 살피던 장도삼이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것이 투구봉이다.”


조교들과 수련생들의 눈길이 돌아갔다.


“신라 화랑들의 자취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덕충 조교와 만나 투구봉 아래 진을 칠 것이다.”


역사의 고장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무예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중전마마를 배출한 여흥의 민성집 대감 덕분이란 말은 삼켰다.


김병석의 그늘에서 늘 몸을 낮추고 있던 민성집이 중전마마를 배출한 외척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외척이라면 이를 가는 대원군의 날개를 꺾기 위해 경복궁 중건을 저지하려는 김병석을 앞질러 꾸민,


떼꾼의 씨를 말리려는 흉계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서서히 말을 갈아탈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던 장도삼이 생각에 잠겼다.


―중건하려는 대왕대비의 의지도 확고하고, 저지하려는 안동의 의지 또한 그러합니다.


―경복궁을 통해 뻗어나갈 조선의 정기를 우려하는 일본도 안동과 같은 심정임을 곧 전해올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이실 겁니까?


―적을 이용해 적을 격파는 이간책, 이이제이! 우리는 차려진 밥상에 수저 얹는 격으로 조금 거들면 된다.


강화도에서 서신세문의 당주와 나눈 밀담을 되새기던 장도삼이 부리나케 말을 달려와 멈추는 덕충을 반갑게 맞이했다.


“덕충!”


덕충이 마상에서 장도삼에게 군례를 올렸다.


“고생하셨습니다, 교관님. 대감마님들께선 따로 오시는 모양입니다?”


“나중에 장군봉으로 오시기로 했네, 신임 사또는 어떠신가?”


“말이 아닙니다. 완전히 술독에 빠져 외동딸마저 이만저만 맘고생을 시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듣던 권세출의 눈이 번쩍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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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화. 드러나는 비밀(1) 24.07.18 8 0 12쪽
78 78화. 증거인멸(3) 24.07.16 13 0 12쪽
77 77화. 증거인멸(2) 24.07.15 14 0 11쪽
76 76화. 증거인멸(1) 24.07.12 14 0 11쪽
75 75화. 생사의 갈림길(8) 24.07.10 23 0 11쪽
74 74화. 생사의 갈림길(7) 24.07.08 20 0 12쪽
73 73화. 생사의 갈림길(6) 24.07.05 21 0 11쪽
72 72화. 생사의 갈림길(5) 24.07.04 19 0 12쪽
71 71화. 생사의 갈림길(4) 24.07.02 24 0 11쪽
70 70화. 생사의 갈림길(3) 24.07.01 17 0 11쪽
69 69화. 생사의 갈림길(2) 24.06.30 17 0 11쪽
68 68화. 생사의 갈림길(1) 24.06.29 16 0 11쪽
67 67화. 간악한 음모(9) 24.06.28 19 0 11쪽
66 66화. 간악한 음모(8) 24.06.27 17 0 11쪽
65 65화. 간악한 음모(7) 24.06.26 16 0 11쪽
64 64화. 간악한 음모(6) 24.06.25 13 0 11쪽
63 63화. 간악한 음모(5) 24.06.24 22 0 11쪽
62 62화. 간악한 음모(4) 24.06.23 20 0 11쪽
61 61화. 간악한 음모(3) 24.06.22 23 0 11쪽
60 60화. 간악한 음모(2) 24.06.21 19 0 11쪽
59 59화. 간악한 음모(1) 24.06.20 26 0 11쪽
58 58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3) 24.06.19 22 0 12쪽
57 57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2) 24.06.18 28 0 11쪽
56 56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1) 24.06.17 31 0 11쪽
55 55화. 떼돈방석과 벼슬(3) 24.06.16 32 0 11쪽
54 54화. 떼돈방석과 벼슬(2) 24.06.15 25 0 11쪽
53 53화. 떼돈방석과 벼슬(1) 24.06.14 38 0 12쪽
52 52화. 벽조목 쌍수목걸이의 비밀 24.06.13 24 0 11쪽
51 51화. 인연과 악연(4) 24.06.12 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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