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운명을 비틀고 떼돈방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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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봉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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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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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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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불길에 의해 바뀐 운명적인 물길(9)

DUMMY


이방을 질타하는 방수근의 고함치는 소리가 관아를 들었다 놓는 듯했다.


“이방 나으리! 소인이 받을 떼돈을 가장 잘 알면서 무슨 양심에 찔리는 일을 저질렀기에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단 말이오!”


당황하는 이방이 찔끔하는데, 서명수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라? 간에 붙고, 쓸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서명수가 노발대발했다.


“여봐라! 감히 강을 거느리고 다스린다는 망발을 지어낸 것도 모자라, 관원을 능멸하는 저놈을 매우 쳐라!”


형리들이 번갈아 곤장을 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은림은 사색이 되는 장손을 위해서라도 할아버지가 뜻을 굽혀 곤장만큼은 피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곤장은 오히려 방수근의 성질을 폭발시켰다.


“사또 나으리! 선량한 백성의 등골을 빼먹어도 유분수요, 억지도 한계가 있사옵니다!”


“뭐, 뭐라!”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핑계로, 차라리 벼룩이 간이라도 내먹어야겠으니 떼돈을 포기하라 이르십시오!”


“저, 저런 발칙한 놈······”


“할아버지!”


고함을 내질러 형리들을 주춤거리게 만든 방태산이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 할아버지 곁으로 오며 울부짖었다.


“할아버지! 비세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시라구요!”


“넌 나서지 마라!”


“우리가 언제부터 떼돈에 목을 매고 살았냐구요! 무조건 비세요!”


“닥쳐라! 내 죽을지언정 없는 잘못을 만들어 탐관오리의 관용을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건물의 모퉁이에서 지켜보는 은림이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해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쏟는데.


그 시각, 이방의 아들 문식이가 수문장인 동헌의 앞마당.


작은할아버지 방수태와 함께 안을 기웃거리던 태천이가 말했다.


“작은할아부지 진짜 안 들어가요?”


“성화 좀 부리지 마라.”


“신임 사또 멱살을 잡고 족쳐서라도 떼돈 받아낸다고 그랬잖어요?”


“쓸데없는 총기는 좋아가지고······.”


“뭔 말이래요?”


“니 형님과 할아버지가 떼돈 잘 받아 나올 테니, 제발 보채지 좀 마라.”


“진짜래요?”


“기다렸다 장마당에 가서 국밥에 막걸리 한잔······.”


군침을 삼키는데.


수문장이 부리나케 쫓아 나오는 이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안에 불났어요!”


숨이 턱에 닿는 이방이 수문장에게 다그쳤다.


"야, 문식아!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왜요, 아버지?”


“아가씨께서 쓰러져 정신을 잃으셨다.”


“예에?!”


“빨리, 빨리! 어서 달려가 용한 의원부터 모셔오란 말이다!”



***



방안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영롱하게 빛나고.


시녀 옥단이가 방구석에 주저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다.


“은림아, 은림아! 제발 눈 좀 뜨거라. 제발······.”


무남독녀가 잘못될까 봐 신임 사또가 있는 애를 다 태우는데, 이방의 아들이 용한 의원을 모시고 왔다.


“어의라도 모시러 한양까지 갔던 게냐!”


사또의 나무람에 아들 대신 이방이 대답했다.


“고정하시옵소서, 사또 나으리! 읍내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만, 어의 못지않사옵니다. 괜히 용한 의원이겠습니까?”


“어서, 어서!”


신임 사또의 다그침에 무남독녀를 살피고, 진맥하던 용한 의원이 진단을 마쳤다.


“어찌 된 겐가?”


“예, 사또 나리. 아무래도 한양 천 리 먼 길을 걸어서 내려오시느라 쌓인 노독이······.”


“노독?”


“예, 사또 나리!”


“어찌해야 좋겠는가?”


“며칠 푹 쉬시면 쾌차하실 것이옵니다. 너무 심려 마시옵소서, 신임 사또 나으리!”


“정말 믿어도 되겠는가?”


“우선은 아가씨께서 푹 쉬시게 자리부터 비켜주시지요.”


시녀 옥단이만 남기고 모두 방을 나가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앉는 은림이 한숨부터 길게 내뿜는 순간이었다.


“아가씨······.”


비명이 터질 듯한 옥단이의 입을 은림이 재빨리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거듭 숨을 크게 몰아쉬고 말했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구나.”


“아가씨!”


“쉿!”


손가락을 입술에 세우는 은림은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방태산과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할아버지! 비세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시라구요! 우리가 언제부터 떼돈에 목을 매고 살았냐구요! 무조건 비세요!


장손이 그토록 울부짖었건만.


할아버지는 죽을지언정 없는 잘못을 만들어 탐관오리의 관용을 받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못 박았다.


낮술까지 취한 아버지의 태형을 멈춰 할아버지를 살리는 길은?


고육지책!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은림은 엿보던 건물의 모퉁이에서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신임 사또의 본분을 망각, 생트집으로 태형을 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 쓰러져 버렸던 것이었다.


어리둥절함이 가시지 않는 옥단에게 은림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다니는 절이 있느냐, 옥단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절은 왜 찾으세요?”


“아버님을 위해 불공을 드리고 싶구나.”


“오밤중이구먼요!”


“지금 당장 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좀 멀어서 그렇지······정암사 적멸보궁에 많이 가요.”


“적멸보궁이라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절이 아니더냐?”


“암튼 한양에서도 불공드리러 많이 온다니깐요!”


“고맙다. 그만 나가 자거라.”


옥단이가 하품을 하며 나간 뒤에도 은림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방태산의 할아버지가 태형을 당하면서 했던 항변들이 귓전을 맴도는 때문이었다.


―사또 나리! 선량한 백성의 등골을 빼먹어도 유분수요, 억지도 한계가 있사옵니다!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핑계로, 차라리 벼룩이 간이라도 내먹어야겠으니 떼돈을 포기하라 이르십시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은림이 거듭 한숨을 몰아쉬었다.


마음이란 넓게 쓰면 세상을 다 품고도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다는 달마 대사님의 가르침이 새삼 가슴을 쳤다.


‘아버님의 마음을 잡아 드려야 해······.’


호사가들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고도 남을 아버지의 좌천을 유배로 못 박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의 골이 헤어날 수 없을 지경으로 깊은지도 몰랐다.


아버지에게 경복궁 중건은 그야말로 인생을 걸었던 대역사였고, 방태산과 할아버지는 그 역사의 명운을 걸머진 몸이었다.


그들과 의기투합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치도곤을 가하다니, 낮술을 핑계로 무마하기에는 엎질러진 물처럼 치명적이었다.


‘방태산과 할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놓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 은림은 땅이 꺼질듯한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던 은림은 술독에 빠진 아버지를 모시고 한양을 떠나기 전, 많은 가르침을 받은 대사헌 이두학이 생각났다.


―장손이 너와의 인연 때문에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대도,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 어느 할아버지가 대를 이을 장손을 빠지면, 뼈도 못 추린다는 황새여울로 밀어 넣겠는가.


이제 문제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세상 어느 손자가 죄 없는 할아버지에게 태형을 가한 탐관오리를 위해 목숨을 걸겠는가 말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은림의 마음인 양 짧게 타는 촛불이 눈물 같은 촛농을 주르르 흘리고 있었다.



***



조선 제일의 목재상을 꿈꾸는 오정태는 목멱산(木覓山 : 남산)에 올라 경복궁을 바라다보았다.


‘경복궁은 한반도에서 가장 좋은 명당자리······’


백두산에서 발원한 대간맥이 한북정맥(광주산맥)의 간맥으로 뻗어내려 도봉산을 이루고 북한산에 닿는다.


그리하여 북한산 줄기의 북악산은 경복궁의 주산이 되어 백두산의 정기를 전하고.


좌청룡, 낙산과 우백호 인왕산이 경복궁을 감싸 안는 가운데 남쪽의 목멱산(남산)이 살짝 가려주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제 270여 년을 폐허였던 경복궁이 중건되면, 법궁의 정기가 남산을 통해 조선팔도로 뻗어나갈 터······.’


생각만으로도 사지에 힘이 솟는 오정태는 몸을 돌려 고향 하늘로 멀리 시선을 날린 채, 생각을 굴렸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은 변해도, 돈이 전부인 세상은 절대 안 변하니 두고 보라는 얘기다.


아버지 오 진사의 뜻을 받들어 조선 제일의 목상을 꿈꾸던 오정태는 마음이 바뀌었다.


―당분간 집에 내려올 생각은 말고! 용한 의원 찾아 명약 지어 병든 누나도 보살피고······.


―누나 가슴앓이야 매형의 무관심과 세출이 큰어머님 구박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


―애초에 시집보낸 애비 죄가 크다지 않더냐?


아버지가 누나를 권력자의 첩으로 들이밀어 뒷배를 둔 것은, 삼대독자를 조선 제일의 목상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입들은 이구동성이었다.


귀하게 자란 삼대독자가 세상 물정 모른 채, 나무 장사하다가 아버지가 벌어놓은 재산 다 들어먹는 일은 시간문제라고.


좁은 소견머리에 다 때려치우고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나가 불쌍해지는 순간, 오기 같은 것이 뻗쳤다.


황새여울이 막고 있는 궁궐재목감을 한양으로 끌어올려, 떼돈방석에 앉지는 못할지언정 누나의 병만은 고쳐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좋다는 약, 소문난 의원이 있는 곳이라면 삼수갑산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고.


세월이 가는 줄도 몰랐던 어느 날부터 백약이 무효라는 누나의 기침병은 거짓말처럼 좋아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애가 남다른 오정태는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란 칭찬이 한양 바닥에 자자했다.


게다가 아버지도 포기한 듯한 난공불락의 황새여울이 뚫리는 날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처음 경복궁 중건을 위한 궁궐 재목 조달을 아버지가 막았을 때, 좋아한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오판이었다.


의문의 화재로 막대한 궁궐 재목이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경복궁 중건 자체가 물 건너갈 위기를 맞이했고.


대왕대비마저 궁궐재목감 조달이 불가능한 현실을 못 박는 바람에 재론의 여지조차 없어진 경복궁 중건!


따라서 만지산의 무진장한 적송 또한 헐값에 팔리거나, 고목이 되어 썩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런데 황새여울 덕분에 보존된 궁궐재목감이 역사의 잿더미로 남을 뻔한 조선의 상징, 경복궁!


만백성이 큰 복을 누린다는 그 경복궁 중건의 대역사를 다시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대화재에 의해 바뀐 운명적인 물길은 오정태가 품은 꿈을 위해 흐르는 듯했다.


세상이 바뀌면서 상갓집 개로 소문났던 대원군은, 왕실의 존엄과 권위회복을 위해 경복궁 중건을 지상과제로 못 박았고.


영건도감의 제조에 오른 매형 권무기는 황새여울을 뚫기 위해 왕비를 배출한 가문의 민성집과 손을 잡고 현지로 내려간 마당이었다.


―천지가 개벽해도 돈 싫어하는 권세 없고, 대궐 같은 저택에 살고 싶은 고관대작들 욕심만은 불변! 다른 걱정은 하지 마라.


아버지 오 진사의 말처럼 이제 죽음의 급류, 황새여울 뚫을 걱정은 끝!


경복궁 중건 이후를 준비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굳어지는 오정태의 눈빛은 무서운 야망으로 이글이글 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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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화. 드러나는 비밀(1) 24.07.18 8 0 12쪽
78 78화. 증거인멸(3) 24.07.16 13 0 12쪽
77 77화. 증거인멸(2) 24.07.15 14 0 11쪽
76 76화. 증거인멸(1) 24.07.12 14 0 11쪽
75 75화. 생사의 갈림길(8) 24.07.10 23 0 11쪽
74 74화. 생사의 갈림길(7) 24.07.08 20 0 12쪽
73 73화. 생사의 갈림길(6) 24.07.05 21 0 11쪽
72 72화. 생사의 갈림길(5) 24.07.04 19 0 12쪽
71 71화. 생사의 갈림길(4) 24.07.02 24 0 11쪽
70 70화. 생사의 갈림길(3) 24.07.01 17 0 11쪽
69 69화. 생사의 갈림길(2) 24.06.30 17 0 11쪽
68 68화. 생사의 갈림길(1) 24.06.29 16 0 11쪽
67 67화. 간악한 음모(9) 24.06.28 19 0 11쪽
66 66화. 간악한 음모(8) 24.06.27 17 0 11쪽
65 65화. 간악한 음모(7) 24.06.26 16 0 11쪽
64 64화. 간악한 음모(6) 24.06.25 13 0 11쪽
63 63화. 간악한 음모(5) 24.06.24 22 0 11쪽
62 62화. 간악한 음모(4) 24.06.23 20 0 11쪽
61 61화. 간악한 음모(3) 24.06.22 23 0 11쪽
60 60화. 간악한 음모(2) 24.06.21 19 0 11쪽
59 59화. 간악한 음모(1) 24.06.20 26 0 11쪽
58 58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3) 24.06.19 22 0 12쪽
57 57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2) 24.06.18 28 0 11쪽
56 56화. 난공불락의 황새여울(1) 24.06.17 31 0 11쪽
55 55화. 떼돈방석과 벼슬(3) 24.06.16 32 0 11쪽
54 54화. 떼돈방석과 벼슬(2) 24.06.15 25 0 11쪽
53 53화. 떼돈방석과 벼슬(1) 24.06.14 38 0 12쪽
52 52화. 벽조목 쌍수목걸이의 비밀 24.06.13 24 0 11쪽
51 51화. 인연과 악연(4) 24.06.12 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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