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사 권능으로 신의 사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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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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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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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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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흑막이라고? (2)

DUMMY



1554년.

유럽과 오스만 제국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일어난 소소한 사건으로 서로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우선 유럽은 신성로마의 황위를 둘러싼 내전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여기에 잉글랜드에서 여왕과 펠리페 황자의 결혼을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나 바깥쪽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오스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년에 유력한 황위 계승자였던 무스타파가 처형당하며 황위 계승 구도가 셀림과 바예지드의 양강구도로 좁혀졌다.


여기에 건국된 지 이제 막 50년이 지난 동방의 신흥강자 사파비 페르시아 제국과 오스만의 갈등이 또다시 불거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파비 제국을 건국한 이스마일 1세의 숙원은 페르시아 제국을 다시 부활시켜 모든 이슬람 국가를 시아파로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스만 제국이 수니파의 칼리파를 자처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사파비 제국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오스만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오스만은 사파비 제국과 연달아 전쟁을 벌였으나 커다란 피해만 입혔을 뿐, 숨통을 완전히 끊지 못했다.


사파비 제국은 오스만을 견제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과 동맹을 맺는 등 끊임없이 오스만의 신경을 긁었고 쉴레이만 역시 유럽보다 사파비를 더 없애버리고 싶어했다.


사실 이건 예전부터 꾸준히 반복되어 온 역사였다.

카톨릭이 이슬람보다 개신교를 더 싫어하고 수니파가 기독교보다 시아파를 더 혐오하는 건 너무 당연한 현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쉴레이만조차 사파비 제국을 완전히 뿌리뽑는 건 무리였다.


쉴레이만 대제와 사파비 제국의 타흐마스프 1세는 1532년과 1548년 두 차례에 전쟁을 했으나 그때도 완전한 결판은 보지 못했다.


물론 훨씬 더 국력이 강했던 쉴레이만의 오스만은 나름대로 전술적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작년에는 황자인 무스타파가 처형당하며 이래저래 분위기가 어수선해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킬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것도 대강 정리가 된 상태.


쉴레이만은 이 사실을 고지하고 정식으로 바예지드를 총독으로 부임시킬 겸 그를 황궁으로 초대했다.


물론 진짜 목적은 아들의 진의를 캐내려는 것이었지만 바예지드는 쉴레이만의 의도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왜냐. 애초에 숨기고 있는 진의라는 게 없었으니까.


“바예지드, 최근 네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도 쉬지 않고 들려오더구나.”

“저도 언제까지 사고만 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울라마들과도 부쩍 자주 만난다고 하던데 그때마다 파디샤는 신께서 내려보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꼬박 꼬박 덧붙인다지?”


황제란 곧 신이 내려보낸 통치자이니 그 권위를 의심하거나 반발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쉴레이만은 이걸 바예지드가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게 진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데 바예지드는 아무리 봐도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연기든 아니든 뭐가 중요하겠는가.


오히려 연기라면 더욱 더 좋다.


바예지드가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고 최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방증이었으니까.


물론 아흐메드에게 확실히 정신교육을 받은 바예지드는 아버지의 칭찬을 받았다고 들뜨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욱 더 겸손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낮추며 말을 아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네 어머니도 네가 드디어 철이 들은 것 같다면서 기뻐하더구나. 수도를 떠나기 전에 자리를 만들어줄테니 인사라도 하거라.”

“감사합니다.”


제 아무리 친자식이라고 하더라도 남자는 파디샤의 하렘에 출입이 불가능하니 반드시 허락을 맡아야만 한다.


물론 바예지드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더 후계자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강조할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건 곧, 형을 죽이는데 도움을 달라는 말과 같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칭찬을 들었으면 반응이 올 법도 한데 여전히 담담한 바예지드를 바라보던 쉴레이만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러면 너도, 셀림도 다시 영지로 돌아가거라. 특수한 상황이라 수도에 오래 머무는 걸 허용해 주었지만 영지를 너무 오래 비워두는 건 좋지 않으니까. 어차피 나도 곧 사파비를 정벌하기 위해 출진해야 하니 너희가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예. 안 그래도 이번 달 안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오스만의 황자는 본래 차기 황자를 결정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지방에서 자신의 영지를 돌보는데 힘써야 한다.


이번에는 무스타파의 처형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터져서 모두가 부랴부랴 올라왔지만, 아직은 그 때가 온 게 아니다.


누구를 먼저 돌려보내고 늦게 보내면 말이 나올 수 있으니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바예지드와 셀림이 동시에 수도를 떠나는 게 옳다.


“그럼 어디로 갈 생각이냐? 본래 너의 영지인 발칸 반도로 돌아갈 건가?”

“아닙니다. 폐하께서 새로 내려주신 아마시아를 먼저 갈 생각입니다. 형님께서 돌아가신 뒤 민심이 흉흉해졌으니 제가 가서 수습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바로 가겠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느냐?”

“자신보다는 그저 최선을 다해 폐하께서 내리신 시험에 부응하려는 생각입니다.”


아마시아는 수도 코스탄티니예에서 동쪽으로 약 15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바예지드의 영지인 발칸 반도쪽과는 완전히 정반대 방향에 있기 때문에 어느쪽이 보다 급한지 중요도를 따져 경로를 짜야만 했다.


바예지드가 아마시아를 먼저 가기로 했다는 건 그쪽의 민심을 달래는 게 우선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진짜 철이 들었다고 판단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래. 이게 시험의 일환이라는 걸 알았다면 됐다. 훌륭히 해낸다면 나도 너에게 그만한 상을 내리마.”

“알겠습니다. 그런데 폐하, 그···주제 넘은 말일 수도 있지만 한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그래, 좋다. 저번에 세운 공로가 있으니 무리한 게 아닌 수준에서 하나쯤은 들어주마.”


지금의 대화 흐름으로 봐서는 아마시아를 안정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물질적 지원을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심 어디까지 허용을 해줄까 고민하던 쉴레이만은 이어진 바예지드의 말에 진심으로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무스타파 형님의 모친 마히데브란 술탄께서 부르사로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듣자하니 제대로 된 돈도 받지 못하고 빈곤하게 살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래도 폐하의 은총을 받아 혈육을 낳았던 분인데···그런 분이 빈곤하게 살아가는 건 돌고 돌아 폐하의 권위에 먹칠을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예지드가 이런 부탁을 하는 건 당연히 조카인 아흐메드를 위해서였다.


굳이 표현은 하고 있지 않지만 친할머니가 부르사로 쫒겨나 하루하루를 궁핍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이런 건 이쪽이 미리 처리해둬야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바예지드의 속내를 알리가 없는 쉴레이만은 진심으로 놀랐다.


애초에 바예지드나 셀림과 마히데브란은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는 완벽한 남이었으니까.


“···마히데브란이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을만큼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나는 그런 보고를 받지 못했는데.”

“무스타파 형님이 그렇게 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다들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너는 왜 굳이 그런 부탁을 하는 거지? 혹시 무스타파의 어미를 잘 대우해주는 걸 널리 알려 아마시아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냐?”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이건 과연 진심일까 아니면 연기일까.

반응을 보면 진심일 거 같기는 하지만 쉴레이만은 계속해서 바예지드가 새롭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게 네 부탁이라면 들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 나도 내 후궁이었던 여인이 굶어 죽었다는 말이 들려오면 마음이 찝찝할 테니까.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도록 해두마.”


하나뿐인 아들과 귀여운 손자들을 모두 잃어버린 여인에게 무슨 삶의 낙이 있겠느냐마는 그러니 더욱 더 이 정도의 대우는 해줘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알려줬으니 나도 너에게 하나만 말해주마.”


쉴레이만은 이번만큼은 이 나라의 황제가 아닌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밖에서 만든 아이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하더라도 네 영지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신경을 써주거라. 그런 사소한 불협화음 하나가 나중에 어떤 골치거리가 될지 모르니까.”

“···예? 바, 밖에서 만든 아이요?”

“허허, 그렇게나 옆에 끼고 다녔다면서 아직도 그런 연기를 하다니. 이제보니 네 심계가 보통이 아니구나.”


모르고 보면 꼼짝없이 속아넘어갈 정도로 정말 완벽한 연기가 아닌가.


쉴레이만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핏줄에서 자신과 똑 닮은 아이가 나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자, 잠깐만요! 아버지, 제가 무슨 아이를 만들었다는···.”

“그래,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한번 해보거라. 나는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적어도 본심을 감추는 연기력 하나만큼은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닌 거 같다.


저 황당함으로 가득한 눈빛과 목소리를 좀 보라.


어떻게 저렇게까지 실감나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나중에 비결을 물어봐야 할 듯 싶다.



* * *



오스만에서는 지방 구역을 산작이라고 부르고 이곳을 다스리는 관리를 산작 베이라고 칭한다.


오스만의 황자들은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중요성을 지닌 산작을 통치하도록 지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옆에 붙어 이들을 교육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차면 황자들이 직접 지역을 통치하며 행정, 사법, 군사 문제를 모두 총괄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거의 작은 왕과도 같은 존재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역 관리들도 최선을 다해 그런 황자를 밀어주었다.


자신들의 지역을 다스리던 황자가 파디샤가 되면 거의 99% 확률로 수혜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황자들이 일방적으로 지방에서 군림하며 왕 놀이만 즐기는 건 아니다.


황자들도 자신들이 해당 지역을 얼마나 잘 통치했는지에 따라 중앙에서의 평가가 갈린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로마의 후계자라고 자처하는 오스만 제국답게 황자들의 권력다툼의 끝은 대부분 내전으로 흘러갔다.


여기서 자신이 다스린 지역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해두지 못했다면 전투를 해보기도전에 끝장이 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황제가 되지 못하면 죽는다.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지역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니 지역을 통치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 간단한 도식 덕분에 황자들은 자신들의 지역에 나름 진심인 편이었고, 자리를 비우더라도 그리 오래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바예지드와 쉴레이만이 독대가 끝나자마자 아마시아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이 와중에 내가 바예지드의 사생아라는 오해를 산 듯 하지만 솔직히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옆에 찰싹 붙어 다니면 그런 의혹을 받지 않는 게 이상하지.


이걸로 정적들이 실컷 헛물을 켜준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나중에 때가 되면 해명하면 그만이니까.


심지어 해명할 방법도 너무 쉽다. 그냥 내가 누구인지 밝히기만 하면 그걸로 끝난다.


반대 세력이 그 어떻게 트집을 잡더라도 무스타파의 아들인 내가 바예지드의 사생아가 되는 건 불가능하니 말이다.


덕분에 내가 아마시아로 떠나는 대규모 행렬에 합류해도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뜨끈뜨끈한 케밥에 꿀을 곁들인 카이막까지 내왔다.


안 그래도 성장기라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는데, 대접받은 음식은 피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터키요리답게 음식은 내 입맛에도 딱 맞았다.


내가 과거에 와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게 있다면 유럽 서북쪽이 아닌 남동쪽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현대와는 다르게 지금 시대 유럽의 식문화는 처참함 그 자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베네치아 정도라면 몰라도 잉글랜드 같은 곳으로 떨어졌다면···으으,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네.


여하튼 이렇게 잘 먹고 푹신한 마차 위에서 누워 있으면 어떻게 되겠나.


금새 식곤증이 도진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곯아떨어지기 직전,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퍼뜩 눈이 뜨였다.


“형님, 어인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평소와는 다르게 냉기가 풀풀 날리는 바예지드의 목소리다.

그런데 형님이라?


나는 잠이 확 달아나서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오늘 보면 언제 또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데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왔다.”


마차의 바깥에서는 곰처럼 튼실한 풍채의 금발 청년이 바예지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바예지드가 형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이제 이 오스만 제국에 딱 한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저자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원역사에서 쉴레이만의 뒤를 이어 파디샤가 되는 쉴레이만 휘렘 술탄의 3남.

현 마니사의 총독이자 훗날 주정뱅이 파디샤로 악명을 떨치는 셀림 2세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그럼 이제 얼굴 봤으니 가시면 되겠네요.”

“너무 그러지 말거라.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술이라도 한잔 하는 게 어떠냐?”

“그놈의 술은 엄청 좋아하시네. 쯧, 그럼 한잔 주시죠.”


바예지드는 툴툴 거리면서도 얌전히 셀림이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지금 시기는 아직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한 때도 아니었으니 견제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어도 악감정 자체는 크지 않을 것이다.


특히 셀림 2세는 개인적인 성품은 너그럽고 관대했다고 하니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하지만 이렇게 착한 황제가 악명이 높은 건 그가 능력적으로 쉴레이만에 비해 너무나 모자랐기 때문이다.


셀림 2세는 역대 파디샤 가운데 최초라 불리는 타이틀을 두개 가지고 있었는데 이게 내용이 하나같이 시궁창이었다.


첫번째는 오스만에서 군을 직접 이끈 경험이 없는 첫번째 파디샤라는 점이고.


두번째는 본인의 손으로 대재상에게 전권을 가져다 바친 역대 최초의 파디샤라는 점이다.


여기에 마지막까지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데 후궁들과 함께 목욕하러 갔다가 미끄러져서 뇌진탕에 걸린 게 그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위였다.


성품 자체는 좋은 축에 속하는데도 최악의 파디샤 중 하나로 악명이 자자한 걸 보면 암군은 폭군만도 못하다는 말이 사실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그는 마차 밖으로 쏙 튀어나온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술을 쭉 들이켰다.


“저 아이가 그 아이인가 보구나. 바예지드,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네가 저 아이를 정말로 생각한다면 그냥 숨겨두는 게 좋지 않았을까?”

“내가 장담하는데 형님은 내 마음을 절대 모릅니다.”

“왜 모르겠느냐. 아비로서의 마음은 너나 나나 똑같은 것을. 물론 애정이 가는 아들에게는 뭐라도 더 하나 해주고 싶겠지. 하지만 만일의 경우라는 게 있지 않느냐. 네가 저 아이를 곁에 둔 순간부터 너와 저 아이는 운명공동체로 엮이게 된 거다.”

“···그게 바로 제가 바라는 겁니다만.”


셀림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는 이해가 간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네 아들인줄 아무도 몰랐을텐데 왜 굳이 드러내서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게 하느냐는 뜻이겠지.


바예지드가 권력싸움에 밀리게 되면 그의 아들들 역시 싸그리 다 처형 당하게 될 운명이었으니까.


“바예지드, 그건 네 이기심이다.”

“···진짜 미치겠네.”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토해낸 바예지드가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두건을 쓰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직접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가 셀림은 전혀 나를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당당하게 나가는 게 제일이다.


나는 마차에서 나와 셀림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숙부님.”

“···숙부? 아아, 그렇지. 숙부가 맞지. 아직 어린 네게 이런 이야기를 듣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황족의 피를 이어받은 이상 이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내가 참으로 면목이 없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건 거짓말도 뭣도 아니다.

셀림은 명실공히 내 숙부가 맞으니까.


다만 그게 바예지드가 아닌 무스타파를 통해 엮인 관계일뿐.


셀림은 씁쓸하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보니 무스타파의 차남, 다시 말해 이 몸의 동생이 되는 아이가 셀림에게 처형을 당했다고 했었지.


이미 어린 아이가 처형당하는 걸 본 경험이 있는만큼 이쪽으로 PTSD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나는 바예지드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혹시 황족의 숙명이라는게 황태자가 되지 못하면 전부 죽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그래. 그렇지.”

“저는 그래도 끝까지 가족들과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가족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함께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셀림은 씁쓸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하아···잔혹하기 짝이 없는 전통이로다.”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실린 감정은 명백한 죄책감이었다.


그래. 확실히 야만스러운 전통이긴 하지.


그러니 이 순진한 조카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안타깝다는 감정을 종종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마차 위로 오르며 슬며시 웃었다.


셀림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바예지드와 한번쯤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부하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뻔하다.

‘네가 황실의 씨를 아무 곳에나 뿌린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적당히 나대라’ 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셀림은 마냥 그렇게 독하게 나가기에는 본질적으로 마음이 유약한 사람이다.

아직 어리디 어린 조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봤으니 분명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터.


그럼 자신들이 황제로 올려야 하는 주군의 나약한 모습을 본 자들은 과연 어떻게 나갈까?


당연히 자신들 선에서 바예지드를 끌어내리려 애를 쓰겠지.


마침 바예지드에게 있어서 사지나 다름없는 아마시아라는 곳으로 이쪽이 알아서 걸어가주고 있지 않나.


여기서 공작을 걸어오지 않으면 저놈들은 오스만의 제위를 노릴 자격조차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사지로 걸어들어오는 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 될 테니.


애초에 지고 싶어도 질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자, 그럼 누가 가장 먼저 낚시줄에 걸려서 올라오게 될지.


결과는 아마시아에서 확인해 보기로 하자.






작가의말

오늘은 연참입니다


내일 오전 10시에도 오늘처럼 변함없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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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모든 걸 받아가겠다 (3) +16 24.05.21 4,288 218 15쪽
17 모든 걸 받아가겠다 (2) +13 24.05.21 4,520 197 14쪽
16 모든 걸 받아가겠다 +15 24.05.20 4,817 210 16쪽
15 내가 흑막이라고? (5) +20 24.05.19 4,811 2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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