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사 권능으로 신의 사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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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폭식마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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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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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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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내가 흑막이라고? (3)

DUMMY



바예지드를 만나고 돌아온 셀림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후우···.”


바예지드는 떠났으니 이제는 이쪽도 영지 마니사로 떠나야 할 차례다.


하지만 출발해야 할 황자가 계속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자 보다못한 누이 미흐리마 술탄이 다가와 핀잔을 주었다.


“셀림, 왜 그러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네가 그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다 불안해 하잖아. 왜, 바예지드가 뭐라고 하든?”

“걔가 저한테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그냥 술이나 한잔 하고 왔어요.”

“그럼 대체 왜···아, 그러면 그 이야기는 확실히 했지? 후궁도 아니고 그냥 아무한테나 씨를 뿌렸으면 조용히 있을 것이지 왜 그렇게 못 드러내서 안달인 거야?”


바예지드의 사생아 이야기가 나오자 셀림은 또다시 한숨을 뻑뻑 내쉬었다.


미흐리마 술탄이 짜증스럽게 눈쌀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좀! 제대로 말을 해보라니까?”

“그냥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입니다. 세상에 형제들에게 골육상쟁을 강요하는 법을 가진 제국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계승한 로마에도 그런 법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셀림, 그러면 넌 바예지드에게 황위를 양보하고 싶어? 네 아들과 함께 손잡고 무덤에 들어가는 게 네가 바라는 소원이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이런 잔혹한 짓만 그만두자는 거죠.”


물론 말은 이렇게 했어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건 셀림도 잘 알았다.


지금 오스만 파디샤의 절대적인 힘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황제가 될 후계자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상황을 물리적으로 만들어 놓는 오스만의 국법 덕분이다.


당장 저기 기독교 국가들의 왕과 비교하면 파디샤가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셀림, 동생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픈 건 잘 알아. 하지만 네가 그렇게 약한 태도를 보이면 나는 널 도와줄 수 없단다. 막말로 나는 너나 바예지드 누가 파디샤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는 어차피 여자니까 신변에 아무 위협을 받지 않거든.”

“그렇죠. 그래서 누님께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미흐리마 술탄은 쉴레이만의 딸 중 가장 총명했고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슬람 세계에서 지성인의 상징인 페르시아어에도 능통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업적을 칭송하는 문장을 종종 페르시아어로 써서 기행문 형식으로 엮어냈다.


그리고 쉴레이만은 이걸 아주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에는 언제나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인 뤼스템 파샤가 과거 오스만의 대재상이었기 때문에 이 부부의 권력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게다가 미르히마의 말마따나 그녀는 셀림이 황제가 되든 바예지드가 황제가 되든 상관이 없었다.


둘 다 자신의 친동생이고 여자인 미흐리마는 잘못될 일이 없었으니까.


다만 정치적인 면을 따지고 들어가면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미흐리마 술탄의 입장에서는 자기 주관이 또렷하고 누이의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바예지드보다는 셀림이 훨씬 더 구워삶기 쉬웠으니까.


실제로 미흐리마의 목표는 셀림을 파디샤로 만들고 남편인 뤼스템을 종신 대재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셀림의 성격상 일단 파디샤로 올려만 두면 절대 공신들을 쳐낼 수 없을 테니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예지드가 경쟁구도에서 탈락해줘야만 한다.


미흐리마라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닐진대 친동생을 사지로 밀어넣는 게 기분이 좋을리가 있겠는가.


다만, 냉정하게 봤을 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미흐리마는 친동생을 한명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과 두고두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동생이 남는 게 서로를 위해 더 좋지 않을까?


‘그런데 저놈의 저 성격이 문제네 진짜.’


지면 자신이 죽는 상황인데 대체 왜 마음을 독하게 먹지 못하는 거지?


아주 이 세상에 착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줄 알겠네.


저런 성격이라 셀림을 지지하기로 한 거였지만 이럴 땐 그저 화가 날 따름이다.


‘역시 어쩔 수 없지. 저 인간한테만 맡겨두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지게 생겼으니.’


안 그래도 요새 바예지드가 각성이라도 했는지 아버지가 부쩍 관심을 많이 보이던데 여기서 더 앞서가게 놔뒀다가는 진짜로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마니사로 떠나는 동생을 배웅해준 뒤 그녀는 바로 남편인 뤼스템을 찾았다.


“당신도 돌아가는 상황은 알고 있죠? 이번에 바예지드가 아마시아에서 공을 세우게 둬서는 절대로 안 돼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셀림 전하께서는 별다른 계획이 없으시답니까?”

“걔한테 그런 게 있겠어요? 애초에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든 해야죠. 저번에 손을 써둔다고 하지 않았나요?”

“물론입니다. 준비는 해두었으니 실행만 하면 됩니다.”


바예지드에게 당했던 굴욕의 울분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지 뤼스템의 눈은 숨길 수 없는 분노로 가득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쪽이 괜히 시비를 걸었다가 역으로 털린 거지만 그런 진실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그때 당한 굴욕으로 원래 대재상으로 복귀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계획에 대폭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무리 쉴레이만이 사랑하는 딸의 남편인 뤼스템을 총애한다고 하더라도 디반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한 사람을 대재상으로 지명할리가 없지 않나.


이건 아무리 쉴레이만의 사랑을 받는 딸과 아내가 나선다고 하더라도 안되는 일이다.


“바예지드 그 새···아니, 전하는 아마시아에서 절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 겁니다.”

“자신 있는 거죠?”

“물론이죠. 다만 이건 당신의 허가가 필요한 사안이긴 합니다.”

“제 허가요? 뭔데 그래요?”

“아마시아 사람들은 여전히 무스타파가 억울하게 처형당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분노를 확실하게 폭발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계속해보라는 아내의 눈짓에 뤼스템은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바로 그 믿음이 맞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주는 겁니다.”



* * *


아마시아로 가는 길 내내 바예지드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혹시 장거리 여행이 힘들어서 짜증이 난 건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고대에서 장거리 부임지로 떠나는 여정은 애초에 쾌적할 수가 없다.


비행기나 자동차는커녕 철도조차 없었던 시대에 편안한 장거리 여행은 존재할 수가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황족이니 뭐니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바예지드가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 같지는 않았다.


“아마시아에서 벌어질 일이 걱정되시는 겁니까?”

“···글쎄. 그래서 그런 걸까···그냥 계속 술이 마시고 싶네.”

“셀림 숙부님과의 일 때문인가 보군요.”

“역시 우리 조카님은 속일 수가 없구만.”


바예지드가 축 쳐진 건 시점상 수도를 떠난 뒤부터였다.

그리고 수도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은 그의 형인 셀림.


그냥 단순히 기억을 되짚어만 봐도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다.


“셀림 숙부님도 바예지드 숙부님을 죽이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거 같더군요.”

“그렇겠지. 세상 어느 미친 놈이 이복형제도 아닌 동복형제를 죽이고 싶을까? 물론 이복형제도 죽여서는 안 되지. 안 되는 건데···이 놈의 나라는 너무 문제가 많아. 너도 알겠지만 나나 지한기르는 무스타파 형님과 사이가 좋았단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제나 꺼림칙한 마음이 있었지.”


하긴, 내가 저 입장이었어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긴 하다.

이렇게나 사이가 좋아도 결국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죽여야 하는 걸까라는 마음과.

에이 설마, 우리는 다르겠지라는 마음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는 게 바로 오스만 황자들이 필수적으로 거쳐가야하는 성장통이었으니.


“그럼 숙부님 역시 셀림 숙부님의 목숨을 빼앗고 싶지 않으시다는 거군요.”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죠. 뜻대로 하세요.”

“···어?”

“아까 보니까 같이 술 마시는 얼굴이 똑같이 죽을상이더만. 나중에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거 같은 짓은 하는 거 아닙니다.”


나 역시 처음부터 저딴 법은 마음에 안들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오스만 제국의 형제 살해는 17세기 초반에 사라지게 된다.


메흐메드 3세가 새로운 파디샤로 즉위했을 때, 무려 19명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철도 들지 않은 동생들은 자신들에게 닥칠 운명도 알지 못한 채 황제로 등극하는 형에게 축하를 건넸다고 한다.


그때 동생들의 인사를 받는 황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메흐메드 3세는 차마 동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아무리 권력이 안정화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을 죄다 죽이는 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딴 병신 같은 법률은 바예지드가 가만히 내버려둬도 내가 뜯어 고치고 만다.


이건 단순히 도덕심이나 정의감만이 아니라 내 평판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신의 사도로 군림하고 기독교와 이슬람을 통합할 사도가 형제 살해의 관습을 용인했다?


이건 나중에 정상적인 시대가 되면 두고두고 까일 수밖에 없는 결점으로 남게 될 게 뻔하지 않나.


“하지만 황권 안정화를 위해서는 경쟁자를 제거해야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텐데···.”

“그딴 것보다 백배는 더 효과적인 황권 강화법이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그게 무슨···아아, 그렇지. 맞다. 네가 있었구나.”


그래. 신께 선택을 받은 신의 사도가 직접 세운 파디샤가 떡하니 있는데 세상 어느 미친놈이 황제의 권위를 침범하려 하겠는가.


혹시라도 그런 놈이 나오면 모두의 앞에서 내가 즉사기로 보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일단 이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이겨야 합니다. 승자가 베풀면 관용이지만 패배자가 짖는 건 추한 목숨 구걸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럼 숙부님이 이제 뭘하셔야 하는지는 알겠죠?”

“그래. 청승은 그만 떨고 그 시간에 승자가 되기 위해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려보라는 말 아니냐. 하긴 네 말이 맞다. 살아남고 싶으면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녀야지 혼자 비운의 주인공이라도 된 인간 마냥 감상에 빠져 있는 건 군주의 자격이 없는 거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씁쓸하게 웃던 바예지드는 이내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기지개를 쭉 폈다.


“어디, 그럼 우리 형님의 따까리들이 아마시아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아마시아의 현 상황은 어떤가요? 폭동이 나기 일보직전인가요?”

“그 정도는 아니다. 진짜 폭동이 났으면 내가 총독이 아니라 토벌군의 대장으로 왔겠지. 내가 알기로는 무스타파 형님을 따르던 관리들이 현재 임시로 행정을 도맡아 하는 중이라는데 내가 도착하면 정식으로 인수인계를 받을 거다.”

“그럼 그때쯤 폭동을 선동하는 놈들이 나오겠네요.”


이건 내가 미래 예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아는 게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흐름이었다.


총독이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임무에 실패했다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무엇이겠나.


세수가 박살이 나거나 폭동이 일어나는 걸 막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수에 혼란을 주는 건 외부에서 사람을 몇몇 보낸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는 아주 손쉽게 일으킬 방법이 많았다.


그러니 지금은 우선 폭동이나 반란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대비하는 게 정석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마시아에 도착하자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주르륵 나온 환영행렬의 분위기가 참으로 심상치 않았다.


아마시아 지역의 관리관들과 지방군 지휘관, 그리고 명망 있는 시민들이 바예지드를 환영하기 위해 쭉 모여 있었다.


그런데 이거 환영식이 맞긴 한 거지?


“바예지드 전하. 부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와아아.”


악기도 연주하고 축하 행사도 하고 있긴 하지만, 누가 봐도 억지로 텐션을 올리고 있는 게 빤히 보이잖아!


그래도 명색이 새로운 총독의 부임이니 취임 절차는 완벽하게 지켜졌다.


행정, 사법, 군사 분야의 책임자들이 모두 나와 새로운 주인을 반겼고, 시민들도 새로운 총독의 면상이나 한번 보자는 분위기로 쭉 늘어서 있었다.


진짜로 이 정도면 작은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윽고 아까 가장 앞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중년의 관리가 정중하게 예를 취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바예지드 전하, 신의 이름은 아트마자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임시로 이곳의 산작 베이를 대리하고 있었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권한을 온전히 전하께 양도하고 저는 원래의 임무로 물러나겠습니다.”

“그래. 자네의 원래 임무가 무엇이었나?”

“···이전 총독님을 보필하며 행정 부처 전반을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이전 총독의 비서 역할을 했었다는 말이네.

그럼 이 사람이 아버지의 심복 중 하나인가?


어쩐지 아까부터 쭉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은 웃고 있지 않더라.


하지만 바예지드도 이런 반응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트마자에게서 넘겨받은 문서를 펴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이 보고는 안쪽에서 따로 듣기로 하지.”

“그럼 피곤하실 테니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하는 게 좋겠군. 솔직히 힘들어봐야 나를 맞이하느라 환영 준비에 애쓴 자네들이 더 힘들텐데 내가 우는 소릴 내서야 쓰겠는가.”


바예지드의 말에 이번 총독님은 열정이 넘친다고 감동하는 이는, 물론 나오지 않았다.


모두 ‘얼씨구 애쓰네’라는 표정을 필사적으로 숨긴 채 영혼없는 맞장구를 치는 게 느껴졌다.


진짜로 여기 사람들은 아버지를 믿고 따랐나 보네···라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일단 새로운 황족이 왔으면 최소한의 환영하는 척은 할텐데 이건 너무 성의가 없지 않나.

이건 이미 누군가가 바람을 넣어놓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


그러니 바예지드도 지금 당장 도시의 실권자로 보이는 아트마자와 독대하려는 것이고.


“그런데 전하, 옆에 계신 분은···아드님이십니까?”

“비슷한 거다. 이 아이도 옆에서 이야기를 같이 들을 테니 너무 신경쓰지 말고 일단 안으로 안내해주게.”

“예. 그런데 그렇게 얼굴을 가리고 계시면 덥지 않으십니까?”

“얘가 피부가 너무 약해서 태양빛을 받으면 얼굴이 심하게 상할 수 있어 이러는 것이니 괘념치 말게나.”


아트마자는 바예지드가 후계자 교육을 위해 나를 데리고 다니는 거라 생각했는지 별다른 반응을 더 보이지 않고 우리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이곳이 총독님께서 집무를 보실 공간입니다. 혹시 배치를 바꾸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혹시 형님께서 머무시던 때의 배치와 완전히 동일한 형태인가?”


무스타파의 이름이 나오자 아트마자의 눈가가 일순간 파르르 떨렸다.


이후 짧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고개를 숙이며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즉시 시정···.”

“아니. 됐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형님께서 쓰시던 물건이나 가구가 있다면 절대 치우지 말고 그대로 두도록. 아, 그리고 형님께서 쓰시던 방은 앞으로 이 아이가 쓸 테니 그렇게 알게나.”

“전하께서 쓰시는 게 아니라 아드님께서 쓰실 거라는 말씀입니까? 그 방 그대로?”


일순간 아트마자가 복잡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충성을 바치던 주군이 생전 쓰던 방을 그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는 원수의 아들이 쓰는 게 어찌 기분이 좋을까.


이제 더 볼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머리에 쓴 치렁치렁한 두건을 벗기 시작했다.


“숙부님, 이제 제가 말할테니 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는 게 아트마자도 더 쉽게 우리를 믿을 테니까요.”

“그래? 그럼 네가 좋을대로 하거라.”

“···예? 숙부님? 아드님이 아니라···그럼 이분은 전하가 아닌 다른 황족분의···어?”


지금 이 세상에 바예지드를 숙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던 아트마자는 두건을 벗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대로 석상처럼 자리에 굳어졌다.


역시. 수도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그는 내 얼굴을 바로 알아보는 모양이네.


“···어···어어···서, 설마···아니···이게 대체···.”


잠시 동안 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보를 뇌가 이해하는 걸 실패했는지 한참이나 입만 뻐끔거리고 있던 그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어···어떻게, 어떻게···분명 무스타파 님이 그렇게 되시고 아드님들도 전부···.”

“신께서 도와주셨지. 여기 계신 숙부님께서도 힘을 보태주셨고.”

“세상에···진짜, 진짜 아흐메드 도련님이 맞으십니까? 오오오! 신이시여! 살아 계셨군요! 정말로 살아 계셨어!”


얼마나 감동했는지 눈물을 펑펑 흘리던 그는 이윽고 바예지드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전하의 자비로움을 몰라 뵙고 크나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저의 무지함을 꾸짖어 주십시오!”

“자네들 입장에서는 내가 죽일 놈 중 하나인 게 당연한데 그런 걸로 화낼 만큼 속이 좁지 않네. 오히려 마음을 그렇게 빨리 돌려주니 고맙군.”

“제가 아흐메드 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으니까요. 세상에···폐하께서 처형을 명하셨는데도 도련님을 숨겨주셨다니. 대체 이 은혜를 저희가 어찌 갚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는 바다보다도 더 깊은 사정이 있는데···이건 천천히 알려주겠네.”


아무리 무스타파를 따르던 충신들이라고 해도 내가 신의 사도라서 함께하고 있다고 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하겠지?


역시 여기서도 모두가 나를 믿을 수 있게 증거를 보여줄 필요는 있을 거 같다.


“저기, 아트마자. 사람들이 숙부님을 보는 눈빛이 생각보다도 좀 더 어둡던데 혹시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예? 아아, 그러고보니 모르고 계시겠군요. 사실 바로 그저께 말을 타고 이곳에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수도에서 조금 늦게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전속력으로 말을 달리면 느릿느릿 움직이던 우리를 앞지르는 건 문제도 아니었겠지.


“혹시 누구였는지 알려줄 수 있어?”

“오르한이라고 했는데 아마 가명인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자가 가지고 온 증거들 때문에 이미 준비를 끝내둔 환영식을 엎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 대체 무슨 내용이었길래?”

“무스타파 전하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이 바로 그분의 이복동생들인 셀림 전하와 바예지드 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야, 머리 좀 썼네.

딱 바예지드만 지목하면 신빙성이 떨어지니까 은근슬쩍 셀림까지 같이 끼워팔기를 한 건가?


어차피 셀림은 이곳에 올 일이 없을 테니 분노는 오롯이 바예지드가 다 뒤집어 쓸 거라는 계산이었겠지.


증거야 뭐 뤼스템이나 휘렘 술탄이 저지른 일들을 그대로 셀림과 바예지드가 한 것처럼 꾸며놓으면 되는 거고.


하지만, 놈들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깟 종이 쪼가리보다 수만배는 더 강력한 증거가 여기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아트마자, 지금부터 그 오르한이라는 자와 비밀리에 만나서 바예지드 숙부님에게 복수하고 싶으니 그쪽에서 뭘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봐줘.”


저들이 바라는 게 이 도시에서 폭동이나 반란이 일어나는 거라면 원하는 장단에 맞춰 한 곡조 뽑아주지.


단, 그 노래는 너희들을 위한 장송곡이 될 것이다.
















작가의말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도 평일에 가능할 때 가끔씩 연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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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흐디 +11 24.05.27 3,659 182 17쪽
24 사도와 황족 (5) +13 24.05.27 3,855 19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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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도와 황족 (2) +19 24.05.24 4,291 203 21쪽
20 사도와 황족 +12 24.05.23 4,546 209 14쪽
19 모든 걸 받아가겠다 (4) +17 24.05.22 4,541 214 17쪽
18 모든 걸 받아가겠다 (3) +16 24.05.21 4,283 218 15쪽
17 모든 걸 받아가겠다 (2) +13 24.05.21 4,514 197 14쪽
16 모든 걸 받아가겠다 +15 24.05.20 4,811 210 16쪽
15 내가 흑막이라고? (5) +20 24.05.19 4,804 22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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