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에이전트가 계약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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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민수珉洙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3
최근연재일 :
2024.07.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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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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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7. 승리의 묘약 (8)

DUMMY

〔전국체육대회, 3일차〕


오전 9시.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의료지원팀 천막 앞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선수들로 인산인해였다.


-나 일부러 7시에 온 건데 앞에 스물이나 있더라니까요? 맨 앞은 새벽 5시부터 기다렸데요.

-근데 울산일보 기사 그거 진짜에요? 치트키 조언.

-대회 기록만 몇 명을 만들었는데, 효과가 분명하단 거죠.

-수백명 시도해서 몇 명이면 사실 확률 낮은 거잖아요.

-그 몇 명에 내가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요.

-무서운 게 뭔지 알아요? 왔던 사람은 무조건 다시 오고 있단 겁니다. 저기 멀리 뛰기 신기록. 저기는 투포환 신기록. 저기는···응? 정의호 아니야?


이들이 줄을 서고 있는 이유는 아파서가 아니라 어제부터 화제로 떠오른 현수의 컨설팅을 받기 위함이었다.

의료지원팀 책임자 최우정은 그 앞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눈치 빠른 지환 씨가 조장 대기열 따로 관리하죠. 선재 씨랑 하나 씨는 간호사 테이블 보조. 은미 씨가 저를 보조하는 거로.”


이틀간 손발을 맞춰 왔기에 인원 배분은 무리 없었으나 문제는 공익 에이전트에게 잔뜩 몰린 선수들이었다.

최우정은 테이블을 놓기 위한 공간을 정리 중인 현수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 어떻게 할 거예요? 한 명당 5분씩만 해도 점심까지 못 움직여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죠.”

“지금 현수 씨, 선수들 사이에서 스포츠 테이프 느낌인 거 알죠? 안 붙이면 나만 손해.”

“그 오해는 풀 겁니다.”


현수는 자리 세팅을 끝낸 뒤, 천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진짜 아픈 분은 여기 남고, 공익 에이전트의 경기 지원 컨설팅이 필요한 분은 저 공터로 모이세요.”


그러자 200여 명의 선수 대부분이 공터로 이동을 시작했다.

삽시간에 썰렁해진 천막 앞을 보며 최우정이 혀를 내둘렀다.


“이봐, 이봐.”

“너무 그렇게 보지 마세요. 아픈 사람이나 경기전의 불안감을 지우고 싶은 사람이나, 둘 다 운동 좋아하는 선수들입니다.”

“와. 우리 조장님 하는 소리 좀 들어봐요. 이 정도면 스포츠 슈바이처상 줘야 하는 건데. 일단 우리라도 박수.”


대학생 봉사자들이 최우정의 말에 진짜 박수를 쳤다.


잠시 후.

현수는 잔디 위에 서서 그제와 어제, 눈에 익은 선수들을 콕 집어 앞으로 불렀다.


“안창현 선수.”

“네!”

“강근우 선수.”

“네!”

“송강준. 박인혜 선수.”

“네에!”


대회 성적이 괜찮은 선수들이 앞에 줄지어 서자 모여있던 선수들이 술렁였다.

저들만 컨설팅해주고 가겠다는 거 아닌가, 선수들이 걱정하던 찰나. 현수가 입을 열었다.


“필드하키 안창현 선수는 허리를 편안하게 하는 스트레칭을 익혔습니다. 허리가 찜찜한 분은 이쪽으로 붙으세요. 멀리뛰기 강근우 선수는 허벅지에 특화된 루틴을 알아요. 단거리 송강준 선수는 종아리. 단거리 박인혜 선수는 무릎······.”


어제까지 공들여서 봐주었던 선수들에게 부위별 맞춤 루틴을 서로에게 알려 달라 부탁하며, 현수는 덧붙였다.


“운동할 때 드는 노력은 사실 잘 드러나지 않죠.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충분한 훈련을 하고 이 대회에 나오셨습니다. 강근우 선수가 기록을 세우고, 송강준 선수가 메달을 딴 건 그 노력 때문이지 제가 마법을 부려서가 아니에요.”


현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모인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다만. 아픈 걸 숨기고 경기 뛰려는 사람은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부상이 지금껏 해온 노력을 정의한다면 그건 너무 아깝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현수는 이때부터 컨설팅이 아니라 진료가 필요한, 몸값이 10초 안쪽으로 요동치는 요주의 선수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의료지원팀 줄에 서세요.”

“저는 무릎만 조금 뻐근······.”

“지환 씨!”

“네!”


한명 한명 강제로 최우정에게 보내고 있던 현수는 그러다 선수들 틈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정의호와 마주쳤다.


“어라? 정의호 선수?”


들켰구나, 하고 고개를 서서히 든 정의호가 멋쩍음과 당황이 겹친 표정으로 현수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김현수 과장님.”

“갑자기 예의를 갖추시니 당황스럽네요. 우리 민사 소송 해야 하잖아요.”

“민사까지는 그것이 으음······.”


뻘쭘한 표정의 정의호가 옆에 같이 있는 조성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콕콕 밀었다.


“저, 정의호 선수가 등이 불편하다고 해서요. 의료지원팀에서 실질적인 교정 작업은 김현수 과장님이 전담하신다고······.”

“음, 그렇긴 하죠.”

“아까 김현수 과장님이 앞으로 불러낸 선수 중에는 등 관련된 루틴을 아는 선수가 없습니다.”

“그거는 상체 루틴 잘 아는 투포환 구정길 선수에게 물어도 되는데. 아니지. 따로 빼는 게 괜찮을지도. 정의호 선수가 등 집중 루틴 대표 하시죠? 여기 수영선수도 꽤 있으니.”


정의호가 의문 섞인 눈으로 현수를 보았다.


“저희 소송 오가는 사이인데요?”

“그거야 그렇지만, 대회 공익 에이전트가 선수 차별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


옆에서 난처한 기색으로 어찌해야 하나 싶은 얼굴이었던 조성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이 이렇게 대범할 수가 있나.

현수는 정의호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등 근육 교정 받으시겠어요?”

“정말 통증이 줄어드나요?”

“거의 그럴 거예요.”

“할게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부드러웠던 현수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엎드리세요.”

“예?”

“엎드려야 조치하죠.”

“어, 엎드려야 조진다고요?”

“조치요, 조치.”


어제부터 현수의 기에 팍 눌린 정의호였기에 단어까지 헛것이 들렸다.

불안해 하던 정의호가 이내 공터의 잔디밭에 엎드렸다.

현수는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아. 정의호 선수 혹시 해병대 명언 아세요?”

“그게···뭔데요?”

“고통은 순간이다.”


꾸욱.


“으어어어억!”

“참아요.”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저릿함이 전신을 관통하자 정의호는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뒤늦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마저도 너무 아파 머리가 새하얘진 탓에 말을 잇지 못했다.


1분 뒤.


현수는 손을 떼고 말했다.


“이거 한번으론 답도 없네. 조금 있다가 다시 누를 거니까 잠깐 숨 돌리고 계세요. 선수 분류 마저 하고 올 테니.”

“다, 다시요?”


현수가 다른 방향으로 사라지자, 정의호는 다급히 조성식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좀 해봐요, 조 팀장님. 이거 완전 개인감정이잖아. 이러다 오늘 초상 치르겠어요.”

“저도 별 대책 없는 얼굴로 안 보이십니까?”


*


오전 11시.


-10분 뒤 여자 대학부 200m 결승입니다.


서우연은 200m 경기를 앞두고 트랙 옆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관객석 여기저기서 엿보이는 관심의 시선은 여전히 숨을 가빠오게 했으나,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되새기며 깊은 호흡을 들이켰다.


“힘든 걸 견디고 나면 강해져. 마음도 다르지 않아.”


그렇게 공익 에이전트가 해준 말을 되새기며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하고 있던 때였다.


“우연아.”


육상 코치가 옆에 낯선 남자를 끼고 다가왔다.


“인사드려. 노블 스포츠에서 오셨어.”

“어디요?”

“안녕하십니까, 서우연 선수. 노블 스포츠의 조성식 팀장입니다.”


서우연은 조성식이 건넨 명함을 받아 들고 물었다.


“제가 이런데 관심 없어 하는 거 모르고 오시진 않았죠?”

“절대 서우연 선수에게 부담을 드리려고 찾은 게 아닙니다. 연예 기획사 쪽에서 찝쩍댔다는 사정도 들었고. 저희는 그저 한국 육상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우연 선수가 제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그 부분은 이미 충분한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니 필요 없습니다.”

“네? 어떤 에이전시가 접촉을······.”

“에이전시는 아니고. 공익 에이전트 김현수 조장님이요.”


조성식이 순간 말문이 막힌 표정이 됐다. 오늘은 어딜 가나 공익 에이전트 얘기뿐이었다.


“그분이 하는 건 대회니까 가능한 임시 에이전트 활동입니다. 저희 노블은 서우연 선수의 미래를 말씀드리는 거고요.”

“뭐가 다른가요? 그리고 저는, 미래를 맡기더라도 김현수 조장님 같은 분에게 맡기고 싶어요.”


휙 몸을 돌려 대기석으로 가는 서우연에게 육상 코치가 소리쳤다.


“너 노블까지 이렇게 대하면 나도 가만 안 있어! 지원 끝이야!”

“진정하십시오, 코치님.”

“성질 보셨죠? 성적이나 내고 나대면 몰라.”

“아유. 선수분들은 종종 예민해지지 않습니까.”


육상 코치가 막말을 내뱉자, 조성식이 오히려 그를 말렸다.


-200m 여성 대학부 결승. 선수들 준비해 주십시오.


3번 레인에 자리한 서우연은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잡은 멘탈이 육상 코치의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사이, 다른 레인으로 걸어가던 박인혜가 서우연 앞에 섰다.


“코치님 너무하시네. 신경 쓰지 마요, 서우연 선수.”


서우연은 놀란 얼굴로 박인혜를 바라보았다. 같은 종목 선수에게 따뜻한 말을 들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 고마워요 언니. 아니, 선배님.”

“언니 좋다. 예쁜 사람 괴롭히는 건 보통 못난 애들이 그러잖아요. 나는 서우연 선수 팬이거든. 열심히 하는 게 너무 자극돼. 오늘 아침에 김현수 조장님이 그러시더라고. 우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충분한 노력을 해온 사람들이라고. 공감 가죠?”

“네···. 아주요.”

“같이 힘내자고요.”


박인혜 선수가 저렇게 배려심 있는 사람인지 몰랐던 서우연이기에 자신이 얼마나 좁은 시야로 육상을 마주했는지 반성하게 됐다.


가슴에 가만히 손을 올린 채, 서우연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를 초라하게 하는 건 저들이 아니다.

내 마음이다.


서우연은 더욱더 단단해진 결심으로 스타트 자세를 잡았다.


-On your mark!


서우연은 출발선에 발을 고정시켰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이번엔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다. 설렘과 기대감이 온몸을 감쌌다.


-Get set! Go!

삐이!


번개처럼 튀어 나간 서우연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집중력으로 트랙을 밟았다.

주변의 소음, 관중의 함성, 하다못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육상 코치의 시선조차도 삽시간에 희미해졌다.


커브를 돌아 직선주로에 돌입한 서우연은 자신의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육상이 이토록 고요한 스포츠였던가?

결승선이 가까워져 오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서우연은 마지막 힘을 짜내 앞으로 몸을 던졌다.


탁!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서우연은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1위. 강원 서우연 23.99]


한 번도 뚫지 못했던 24초의 벽을 넘은 것도 모자라,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첫 1등이었다.


“이거 꿈 아니지?”


서우연은 기쁨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와아! 서우연!

-서우연 금메달!

-서우연! 서우연!


*


오후 1시.


유정하는 입구부터 카메라가 잔뜩 보이는 복도로 빼곰 고개를 내밀었다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벽에 붙었다.

어제 금메달을 따고 저녁까지 생전 해보지 않은 인터뷰를 무려 다섯 번이나 했다.

엄마는 동네잔치를 벌인다며 좋아했고, 여자 친구는 화상통화 너머에서 30분이나 울었다. 자신이 더 엉엉 운 건 비밀이지만.


“유정하 선수.”


때마침 들려온 목소리에 유정하의 표정이 환해졌다. 현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과장님.”

“이정도로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네. 괜찮아요?”

“모르겠어요. 떨려요.”

“음.”

“그래도 물에 들어가면 나아질 거예요.”


유정하의 손끝이 떨리는 걸 발견한 현수가 말했다.


“정의호 선수가 얄밉긴 해도 물속에서 잘하는 게 하나 있어요.”

“어떤걸요?”

“시선.”

“시선?”

“너무 물만 쳐다보지 마요. 거기서도 하늘 맑은거 똑같이 볼 수 있잖아요. 물 안이건 밖이건, 유정하 선수 응원하는 사람들은 항상 같은 마음으로 응원할 겁니다.”


저 멀리, 카메라를 세팅 중이던 촬영기사가 유정하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유정하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화답하다가 현수를 보았다.


“과장님은 볼 때마다 근사한 말만 하세요.”

“네? 뭐요?”

“그래서 멋져요. 헷.”


-남자 고등학생 자유영 800m 결승 준비해 주세요.


선수들이 복도에 서기 시작했다.

유정하는 현수에게 결연한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잘할게요. 안 다치고.”


*


오후 6시.


공익 에이전트 활동 이력을 작성 중인 현수에게 최우정이 시원한 음료가 담긴 병을 내밀었다.


“오늘도 고생요.”

“어, 감사해요.”


음료를 한 모금 넘긴 현수가 팔 스트레칭을 쭉 뻗으며 말했다.


“으으. 운동 부족인가 봐요. 벌써 지치네.”

“아침부터 그리 몰렸는데 안 지치면 사람 아니죠.”


다시 목록 작성을 시작한 현수에게 최우정이 물었다.


“영입하려는 선수가 유정하죠? 수영에서 지금 엄청 화제인.”

“네.”

“오늘도 금메달 땄던데. 선수 보는 안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운이 좋았던 거죠.”

“운? 거기 지금 선수만 200명째 기록해 놓고?”

“은퇴하고, 에이전트 되고. 그러면서 이것저것 진짜 운이 좋았습니다.”


현수는 가볍게 웃었다. 테니스공에 얻어맞은 뒤부터 숫자를 보기 시작한 일은 아무도 믿지 못할 거다.


“어쩌면 저 같은 선수 돌보라고 테니스 신이 쫓아낸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긍정적인 건 참 보기 좋지만, 사람이 너무 고지식해 보인단 말이지.”

“그런 말 처음 듣는데요?”

“현수 씨는 본인이 정한 기준을 절대 안 어겨요. 맞죠?”

“맞기야 하지만······.”

“저번에 그 뭐야, 실업팀 이사한테 무시당하는 거 나 뻔히 봤는데. 복수 안 하고 싶어요? 거기 나와서 지금 꽤 잘 나가잖아요. 이대혁 선수까지 맡고.”

“복수와 정의는 헷갈리기 쉽습니다. 나서지 않아도 통쾌하게 갚아줄 기회는 많다고 봐요.”

“이봐, 이봐.”


최우정은 현수를 안쓰럽게 보았다.


“윤 교수님이 현수 씨 저한테 인계할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껏 수없이 부서진 선수를 봐왔지만, 이놈처럼 지독하게 조각을 붙이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이놈···이요?”

“그 부분은 제가 맛깔나게 강조하느라. 실제로는 김현수 군이라고 하셨어요. 암튼, 저 매사에 진지한 버릇 해결 못 하면 김현수는 결국 부서진다. 난 또 그래서 볼 때마다 농담을 얼마나 던졌다고. 그런데 한번을 안 웃어.”


현수가 문득 깨달았다는 표정이 됐다.


“그 실없는 수다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어요?”

“시원하게 웃어줄 걸 싶죠?”

“그거는 좀······. 저도 웃기면 웃습니다.”

“허, 자존심 상해.”


-현수야! 밥! 밥!


천막 밖의 부름에 현수가 외쳤다.


“안상현! 나 정리할 거 남았어!”


이 소리에 천막으로 들어서던 안상현이 최우정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강동체고 테니스부 코치 안상현입니다.”

“어우, 씩씩하셔라. 반가워요, 최우정이에요.”

“현수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얘기 많이 안 했는데?”

“했어.”

“안 했어.”


현수와 투덕거리는 안상현을 지켜보던 최우정이 물었다.


“상현 씨?”

“넵!”

“현수 씨 쓸데없이 진지하다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얘는 진지 빼면 시체죠. 고딩 때부터 그랬는데.”

“심각하네. 나라도 계속 농담 던져야겠어.”

“···하지 마세요.”


최우정은 퇴근을 위해 겉옷을 입으며 말했다.


“주치의로서 농담은 처방입니다. 거절 불가. 그럼, 내일 봐요. 상현 씨도 반가웠고요.”

“들어가십쇼!”


최우정이 천막을 나가자 안상현이 현수의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말했다.


“저 누나 너무 매력적이다.”

“상현아.”

“응?”

“양궁 좋아하셔. 치고받는 운동은 다 별로래.”

“나 오늘부터 궁사 된다.”


*


《울산일보 - 전국체전 특집》


【감동의 순간들, 부상의 아픔들.】

【전국체전 3일 차는 많은 선수의 희비가 엇갈렸다.】


〈육상요정 서우연 생에 첫 금메달!〉

〈유정하 800m 금메달로 대회 2관왕. 고등부 선수 최초 5관왕 가능성 열려.〉

〈정의호, 일반부 800m 은메달로 간신히 체면치레. “주 종목은 모레부터.”〉


······.


〈대전 대표단 단체전 테니스 선수 양미령. 훈련 중 부상으로 출전 불투명. 예비 선수 긴급 호출······.〉


***


〔전국체육대회, 4일차〕


콰르릉―!


현수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음······.”


오랜만에 느껴지는 팔꿈치 통증에 눈 한쪽을 찌푸린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에는 익숙하게 맞이했던 친구였건만, 이제는 이 통증이 낯설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참기 힘든 거였던가?

일어나서 숙소의 커튼을 걷자, 비가 내리는 울산 거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리듬은 테니스공이 코트에서 튕기는 소리와 어딘지 닮아있었다.

현수는 통증을 달래며 천천히 팔꿈치를 어루만졌다.

20년의 테니스 인생이 남긴 상처와 근육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라켓을 쥐고 있던 손의 감각, 코트를 가로지르며 느꼈던 바람, 승리 직전의 샷을 때릴 때 찾아오는 벅찬 감정까지도.

아직 이 안에 남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알았어. 잊지 않을게.’


현수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오래된 친구는 어느새 사라졌고, 오른팔은 움직일 만 해졌다.


지이잉.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진동해 손에 들었다.


[저, 선생님······.]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정태리의 문자였다.

전국체전 참여로 PT 시간을 뒤로 밀었기에 그 때문에 연락한 듯싶었다.


[29일에 PT 잡았으니 확인하세요.]

[네······.]


왠지 시무룩한 느낌이 드는 대답.

항상 느낌표를 마구 붙이는 문자만 보내던 그녀였기에 현수는 의아해졌다.


*


오전 내내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야외 경기 대부분이 오후로 연기됐다.

덕분에 의료지원팀 천막은 상대적으로 한가해져 자연스레 수다 타임이 펼쳐졌다.


“오오. 지환 씨는 졸업하고 나이키 같은 스포츠 기업이 목표였구나?”

“예. 그런데 지금은 에이전시도 괜찮아 보여요.”

“그래? 이 와중에 혼자 바쁜 저 꼴을 보고도?”


최우정이 아침부터 찾아온 선수들의 요청을 해결해 주고 있는 현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요, 존경스럽잖아요.”

“존경까지?”

“선수들이 김현수 조장님을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셔서 그럽니다. 치트키에. 수호신에. 어디는 김현수 도핑이라고. 하여튼 조장님 만나고 싶어서 난리에요, 난리.”

“지환 씨 진지 과는 아닌 거 같은데. 내가 한마디만 조언할게. 김현수 조장처럼 살려면 사람이 기계보다 더한······.”


띠리릭.

휴대폰이 울려 손에 쥔 최우정은 발신자에 [윤이학 교수]라는 이름이 떠 있자 벌떡 일어섰다.


“네, 교수님! 네. 아, 그 환자가 출전해요? 어머. 실력이 그 정도였다고? 세상에. 저야 당연히 보조 가능하죠. 오늘은 여유도 있고. 네, 알겠습니다! 충성!”


통화를 마친 최우정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자 안지환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오늘 테니스장 미어터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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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8. 홍보 전쟁 (1) +34 24.07.02 30,802 1,041 16쪽
52 7. 승리의 묘약 (12) +66 24.07.01 31,160 1,175 23쪽
51 7. 승리의 묘약 (11) +53 24.06.28 32,236 1,053 23쪽
50 7. 승리의 묘약 (10) +53 24.06.27 31,162 1,142 20쪽
49 7. 승리의 묘약 (9) +83 24.06.26 31,424 1,135 20쪽
» 7. 승리의 묘약 (8) +42 24.06.25 31,335 979 19쪽
47 7. 승리의 묘약 (7) +42 24.06.24 30,901 1,033 17쪽
46 7. 승리의 묘약 (6) +37 24.06.22 31,138 1,104 15쪽
45 7. 승리의 묘약 (5) +36 24.06.21 30,896 1,037 14쪽
44 7. 승리의 묘약 (4) +49 24.06.20 31,287 991 19쪽
43 7. 승리의 묘약 (3) +27 24.06.19 31,706 929 20쪽
42 7. 승리의 묘약 (2) +19 24.06.18 32,101 867 15쪽
41 7. 승리의 묘약 (1) +25 24.06.17 33,054 905 15쪽
40 6. 쇼 머스트 고 온 (11) +47 24.06.15 32,897 1,062 12쪽
39 6. 쇼 머스트 고 온 (10) +75 24.06.14 32,356 1,195 18쪽
38 6. 쇼 머스트 고 온 (9) +58 24.06.13 32,836 901 19쪽
37 6. 쇼 머스트 고 온 (8) +32 24.06.12 32,659 955 17쪽
36 6. 쇼 머스트 고 온 (7) +29 24.06.11 32,749 885 15쪽
35 6. 쇼 머스트 고 온 (6) +34 24.06.10 33,014 921 14쪽
34 6. 쇼 머스트 고 온 (5) +21 24.06.09 33,338 960 13쪽
33 6. 쇼 머스트 고 온 (4) +39 24.06.08 33,296 990 15쪽
32 6. 쇼 머스트 고 온 (3) +27 24.06.07 33,107 1,003 15쪽
31 6. 쇼 머스트 고 온 (2) +28 24.06.06 33,419 939 15쪽
30 6. 쇼 머스트 고 온 (1) +33 24.06.05 34,771 994 19쪽
29 5. 붉은 스위치 (5) +30 24.06.04 33,832 956 17쪽
28 5. 붉은 스위치 (4) +25 24.06.03 33,243 973 12쪽
27 5. 붉은 스위치 (3) +23 24.06.02 34,336 856 13쪽
26 5. 붉은 스위치 (2) +43 24.06.01 33,897 895 14쪽
25 5. 붉은 스위치 (1) +26 24.05.31 35,302 920 17쪽
24 4. 프로로 가는 길 (6) +88 24.05.30 35,649 922 12쪽
23 4. 프로로 가는 길 (5) +50 24.05.29 35,203 956 13쪽
22 4. 프로로 가는 길 (4) +28 24.05.28 35,607 1,042 13쪽
21 4. 프로로 가는 길 (3) +29 24.05.27 35,390 1,145 15쪽
20 4. 프로로 가는 길 (2) +24 24.05.26 35,420 1,042 12쪽
19 4. 프로로 가는 길 (1) +38 24.05.25 35,984 1,130 14쪽
18 3. 아마야구 축제 (8) +27 24.05.24 35,846 1,020 12쪽
17 3. 아마야구 축제 (7) +20 24.05.23 35,895 1,008 14쪽
16 3. 아마야구 축제 (6) +17 24.05.22 35,794 938 12쪽
15 3. 아마야구 축제 (5) +13 24.05.21 36,694 948 17쪽
14 3. 아마야구 축제 (4) +23 24.05.20 36,626 925 12쪽
13 3. 아마야구 축제 (3) +19 24.05.19 37,351 1,007 14쪽
12 3. 아마야구 축제 (2) +20 24.05.18 37,349 998 14쪽
11 3. 아마야구 축제 (1) +29 24.05.17 38,034 1,056 12쪽
10 2. 가능성의 영역 (5) +21 24.05.16 38,060 1,058 13쪽
9 2. 가능성의 영역 (4) +19 24.05.15 37,920 1,087 14쪽
8 2. 가능성의 영역 (3) +27 24.05.14 38,269 1,113 11쪽
7 2. 가능성의 영역 (2) +21 24.05.13 38,176 1,082 12쪽
6 2. 가능성의 영역 (1) +9 24.05.12 38,772 988 14쪽
5 1. 신입 에이전트 (4) +18 24.05.11 38,993 1,021 11쪽
4 1. 신입 에이전트 (3) +11 24.05.10 39,335 944 11쪽
3 1. 신입 에이전트 (2) +13 24.05.09 41,629 991 11쪽
2 1. 신입 에이전트 (1) +21 24.05.08 47,732 1,012 17쪽
1 프롤로그 +74 24.05.08 60,533 1,1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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