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버둥 치는 놈(1)

공장 중 가장 위압감이 드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저걸 보는 순간 '아, 저기 대가리가 살겠구나?' 하는 감이 딱 오는 곳.
그렇다 해서 아직 말짱하게 바닥에 붙어있는 공장 건물들과는 다르다. 본래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 중 일부가 겉에 보강재를 더덕더덕 붙여가며 버텼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뭔가 여러가지로 기워 보강된 그 건물에는 뭔가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A자 모양의 장식마저 붙어 있어 그야말로 세기말 적인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뭐······ 지금 시대 기준으로 저건 권력의 과시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녹슨 철과 조금 썩은 나무가 드러난 것이 멋지다기보다는 조금 흉물스럽다.
건물 아래에는 하품하면서 꾸벅거리는 한 놈이 있었다.
놈은 오면서 봤던 일반병사들과는 달리 특공대들이 입고 있던 회색의 옷 중에서 좀 나쁜 것 같은 수준의 옷을 입고 있다.
내가 발소리를 들리지 않게 걷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놈은 내가 다가갈 때까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일단 수문장 같은데, 이러다 걸리면 노예로 떨어질 것 아닌가?
"야, 이 세기말 건물 같은 게 너희 군단장 사는 곳이냐?"
"뭐야, 웬 놈이 말을······ 침입자?!"
생긴 것도 좀 어벙해 보여 혹시나 뒤에서 이야기 걸면 아무 생각 없이 답이라도 줄까 했지만, 놈은 나름의 엘리트였던 모양이다.
재빠르게 나를 보고 어디론가 달려가려고 했다. 퍼뜩 정신 차리고 움직임으로 옮기는 속도는 상당히 괜찮았다. 저래서 여태 노예로 떨어지지 않았나 보군.
팍!
"억!"
아음속 탄환이 정강이뼈를 부러뜨리다시피 발사되었다. 놈은 자기도 모를 각도로 꺾인 다리로 넘어지고, 지나친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터뜨리지 못했다.
팍!
실수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놈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한 발을 다시 쏴 줬다.
"쉿. 그리고 대답하면 살려주지."
"억······ 으억······ 그, 그래······. 저, 저기가 군단장님······ 사는······ 으어······ 아아아아악······."
내 위협 덕에 외치지도 못하고 바닥을 구르면서 바둥거리는 놈에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나는 그 건물로 걸어 들어간다.
효율을 따지면 약속을 어기고 죽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찝찝하니 그냥 지킬 것이다. 놈이 어떤 수단을 통해 불러도, 바깥으로 돌며 응원을 불러도 큰 문제는 없다.
어차피 물리적인 전투력을 권력으로 바꾸려면, 어디선가는 과시적인 형태로 힘을 보여야 할 것이니. 그냥 관중이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해도 될 것이다.
어떤 놈이 온다고 해도 내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 테니.
"뭐, 뭐냐?!"
애초에 건물의 높이는 꽤 높고, 그 내부 곳곳에는 알루드 카렉의 부하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것 역시 내가 힘을 과시할 타이밍이 된다.
"어스름파수대의 케이운이다."
"뭐?! 아니 대체 어스름파수대는 또 웬······"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저 새끼 침입자 아냐?"
조금 소란이 일자 건물의 공터로 와장창 몰려온 놈들이 있었다. 꽤 커다란 공터가 있고, 곳곳의 계단에서 몇 놈들이 꾸역꾸역 내려오고 있다.
아마 여기 놈들은 알루드 카렉의 측근.
정말로 감화된 충성심을 가진 놈들이 있을 수도 있고, 가장 사태를 잘 파악하는 기회주의자 놈들이 있을 수도 있다. 대놓고 아부를 잘해 자리를 차지한 놈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로 아까운 인물이 그저 유능하다는 이유로 발탁되어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에게 면접을 볼 여유까지는 없다. 너희가 눈치가 있다면 알아서 해라.
나는 당당하게 쳐들어가며, 공포를 줄 테니까.
"맞아 침입자."
"아니 씨발, 대체 뭔데 이렇게 뻔뻔하게······ 좋, 좋아. 그럼 대체 왜 왔는데?"
"암살하러."
"······누구를?"
나는 질문한 놈을 좀 멍청하게 바라봐야 했다. 내 표정을 보고 우르르 몰린 다른 놈들도 내게 물어본 앞의 놈을 다 같이 바라봤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넌 그걸 대체 왜 묻고 자빠졌냐'는 얼굴이었다. 누굴 죽인다는 답이면 뭐가 바뀌는 게 있나?
못해도 이놈은 그렇게 아까운 놈은 아닌 것 같다.
"그거, 정말로 물어봐야 했냐?"
놈은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다시 물어왔다.
"······우리 군단장님?"
"말고도 죽일 가치가 있는 다른 사람도 있나?"
"어······ 부 군단장님도 있고, 감독관님도 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이 친구. 하지만 아군으로 삼기에는 좀 그래.
"좋아. 그럼 그 둘도."
"······야이 병신······ 그만 떠들고 공격해!"
아래층에 있던 놈들의 지휘 체계는 엉망이었던 모양이다. 앞에 나와 말하던 놈 말고 뒤의 놈 중 한 놈이 외친 말에 놈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그건 좋은 선택이 되지 못했다.
타타타탕!
"아아아악?!"
"으악!"
공간이 좁다 보니 냉병기로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쇠뇌를 가지고 있는 놈의 숫자가 극도로 적었다. 그나마도 일방적인 전투는 더더욱 쉬워진다.
"저, 저 새끼를 막아!"
"도망쳐!"
상반된 명령이 터져 나올 정도로 지휘 체계가 엉망인 건 덤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는 통에 상황 파악이 살짝 힘들어진 효과는 있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마구잡이로 놈들을 쓰러뜨리고, 박살 내는 도중 위에서 조금 중무장한 녀석 하나가 더 내려왔다.
"시끄럽기에 내려왔더니! 너 이 새끼! 침입자 놈! 죽여 버릴 테다!"
중무장 중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면갑이 붙어있는 투구.
부유한 군벌의 간부 중에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많다 보니 장벽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하면 갑옷 같은 비싼 건 맞출 수도 없고.
그러니 면갑까지 붙어 있는 놈은 보기 드문데, 놈은 로마식의 깃이 올라간 투구에 마스크 헬멧(Galea)을 붙여둔 것이다.
갑옷도 재미있다. 하넬 드록스가 입었던 세련된 방호복은 아니고 요즘 기술로 엮어 만든, 조금 조악한 품질의 비늘갑옷(Lamellar armour)이다. 제대로 된 로마풍도 아니라 흉내 내 만든 것이 바깥의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함께 괴상했다.
거기에 들고 있는 무기는 쇠뇌. 차라리 냉병기든가, 아예 돌격소총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다른 의미로 어울렸겠지만 아쉽군.
"네가 감독관이냐?"
"죽여주마!"
의외롭게도, 놈은 쇠뇌를 발사하며 나에게 달려든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목소리도, 말투도, 몸집도 무식해 보이지만, 보이는 대로 멍청한 놈은 아닌가.
나 같이 장거리에서 총격을 가하는 놈에게는 높은 방호벽을 세우고 돌진하는 것이 그나마 좋다. 화력으로는 어차피 나를 이길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화력을 좀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고, 정신 나간 방호력의 로봇 갑옷을 날려버릴 정도의 연사력을 가진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타탕!
"으윽?!"
일부의 총격은 놈의 장벽에 막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쇠뇌의 볼트 정도라면 장벽을 뚫더라도 저 단단한 갑옷으로 막히고 끝나겠지.
그러나 내가 쏘는 건 총이다.
타타타탕!
"어, 어억!"
높은 연사 속도로 두들기면 장벽의 효과는 저하되고, 진짜 총알이 그까짓 갑옷을 뚫고, 튕기면서 몸에 박혀 들어갈 것이다.
녀석이야 허무하게 쓰러졌지만, 솔직히 갑옷은 나름 멋졌고, 괜찮았다. 나중에 갑옷 만든 기술자는 좀 찾아봐야겠군.
이 결론은 당연했다. 놈들에게는 나라는 놈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오히려 전술 선택이라도 잘했다는 건 칭찬해 주고 싶었다. 죽었지만.
하긴, 알았다 해도, 놈들에게 선택지는 도망가거나, 항복하는 것 외에는 없을 것이다.
"하, 항복!"
"으아아아! 살려, 살려줘!"
그리고 그 정보를 이제서야 파악한 놈들은 그에 맞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좋다.
그들은 내가 원하던 공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퍼져나갈 것이다. 위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건물 벽을 타고 울렸다.
"병력, 병력을 모아!"
"전투 노예들도 전원 소집해! 전선에 아직 나가지 않은 놈들 모두!"
이제 슬슬 필요한 메시지 전달에는 성공한 것 같다. 더 이상 느리게, 과시하면서 전진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칸에 다가가 안전 열쇠에 손을 뻗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겠지만, 문은 수동으로 수월하게 열렸다. 관리라도 된 것처럼.
혹시나 해서 자세히 문틈을 관찰하니 기름칠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나? 조금 당황해 반대쪽을 바라보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놈들, 도르래를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수동으로 운용 중이었다. 하긴, 노예라는 동력이 있었지.
물론 수동 엘리베이터는 어디 고대의 권력자들이나 쓸 것이지 효율을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긴 한데······ 어쨌거나 놈들이 그렇게 쓰든 말든 나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나는 갈고리에서 로프를 떼어내 등 뒤에 달고, 허리춤에 걸어두었던 작살에 로프를 바꿔 걸었다.
팍!
엘리베이터로 수직으로 뚫려있는 통로 저편에 작살형 그래플링 건을 발사한다.
콱!
박힌 작살에 달린 로프를 감으며 몸을 수직 상향으로 끌어올렸다.
엘리베이터로 끝에 해당하는 층까지 도달했다. 6층. 이건 아마 최상층은 아니다. 천장에는 놈들의 '수동 엘리베이터'가 막고 있었다.
바깥에서 봤던 기억에 따르면 이 건물의 높이는 이보다는 조금 더 높았다. 아마 8층 정도.
옆의 '당기도록' 되어 있는 쪽으로 다시 그래플링 건을 사용하면 못 올라갈 것도 없긴 한데······ 괜히 묘기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여기는 한산하니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큰 문제는 없다. 대부분의 '병력'은 나를 막으려고 1층으로 내려갔거나 2층의 계단에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벌집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1층으로 정찰을 보내고, 안전을 보장받은 다음 들이닥치겠지.
그래 놓고도 내가 그래플링 건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를 테니, 바깥이나 뒤질 것이고.
시간은 충분하다. 나는 여유롭게 주변을 확인하며 전진했다.
원래 건물은 문명 시대에 있던 사무실이다. 물론 그때의 기술 수준도 터무니없이 높았다.
필요하다면 사무실에 놀라운 장치들을 설치하고, 자동으로 벽이 움직이고, 필요한 곳에 계단이 생기도록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보통은 안 그랬다. 일하는 데 필요가 없는데 그런 비용을 들여야 할 이유는 없으니.
여기도 그냥 공장 돌아가는 데 근처에서 관리하고 회의하기 위한 장소였으니 놀라운 기믹 같은 건 없었다.
즉, 정직하게 저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놀라운 비밀 통로 같은 건 따로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알루드 카렉이 보고를 듣기는 했을 것이다. 1층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동안 건물주가 보고받지 않았다면 여러 사람 노예로 굴러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함정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층계를 올라간다. 내 감각에도 특별한 건 잡히지 않았다.
아무 문제 없이 또다시 한 층.
함정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것 봐라.
발소리. 싸우기 위한 인원은 아래로 다 보내지 않았나? 전력의 축차 투입은 멍청한 짓일 텐데? 소식이 도착하는 속도 차이가 있어 일부의 병력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든가?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마침내 8층에 올라온 나는, 넓은 공터 한 가운데 두세 단을 올린 곳에 있는 '왕좌'가 비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앞에는 새카맣게 몰려있는 힘 없는 눈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눈에 들어온 바로는, 그들 대부분이 여자였다. 일부 남자도 있기는 했지만, 그 남자들도 유약해 보이는 남자가 대부분이다.
자세히 볼 생각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지만 대부분 그나마 외견이 젊다. 그리고 모두가 나쁜 영양상태 기준으로 비교적 아름답다.
이들의 용도 구분이 어렵지는 않았다.
복장은 모두가 하얀 순백의 의상이다. 꾸며지기까지는 못했지만 의도적으로 청초한 분위기를 남긴 듯 했다.
"젠장."
입 맛이 쓰다.
그냥 둔 것이 아니다. 놈은 자기 즐거움을 위해 모은 노예들을 일종의 바리케이드로 삼았다.
"와, 왔습니다!"
"잠깐 비켜어어어어!"
놈이 외친 말에 노예들이 우물쭈물하면서도 좌우로 갈라진다.
그 끝에는 제대로 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면갑조차 내린 형상이 손에 거대한 쇠뇌, 거의 발리스타에 가까운 것을 들고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어떤 놈이 왔나 했더니······ 한 놈? 하아아안 놈? 그냥 저 한 놈에게 지금, 내 군대가, 뚫린 거냐? 어?!"
놈은 말을 마치고 나에게 바로 그 거대한 쇠뇌, 아니 소형의 발리스타(Manuballistra)를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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