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버둥 치는 놈(2)

날아오는 볼트는 빠르고 컸다. 소구경 대포급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건 당연히 내 장벽으로 막힐 것은 아니었다. 원래 나노 능력자들의 장벽은 소화기를 보호하는 사양이지 공성병기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몸을 움직이기에는 늦다. 총알로 맞추는 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결과를 내겠지만 명중시킨다는 보장이 없다.
볼트가 장벽에 도달한 순간, 나는 아직 적당한 사이즈가 남은 에어로젤 그래핀 블록을 머리에서 발사했다.
에어로젤 그래핀 블록은 공기만큼이나 가볍고 부피가 크다. 그러다 보니 발사라기보다는 앞으로 잠깐 날린 것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성공적으로 볼트에 맞았다.
파삭! 내구 한계에 돌입한 블록은 부서지고, 남은 에너지가 내 몸으로 날아온다. 올라간 버클이 그놈의 볼트의 경로에 끼어들어 한 점에 집중될 에너지를 버클 사이즈로 변환해 내 몸으로 전달시킨다.
퍼억!
"욱?!"
간만에 맞은 타격다운 타격이다. 그냥 피부와 근육에 박힌 것이 아니라 내장에 약간의 이상을 초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단련되었다 해도 이런 타격에서 복귀하려면 격한 호흡이 필요하다. 거친 호흡속에서 고통을 억누르고 마음을 다스리며 앞을 노려본다.
"헉······ 휴우우우······."
침착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너어어어?! 능력자도 웬만하면 이걸로오오 죽는데에에에에!"
표정은 아직 완전히 갈무리하지 못했지만, 억지웃음을 띠며 똑바로 선다. 한 두 번 다친 것도 아니고, 피해의 정도는 대충 알 수 있다. 나중에 고생할 수는 있어도 당장 죽을 피해는 아니다.
"······또 맞으면 죽을지도 몰라. 어때, 하, 한 번 더 쏴볼까?"
약간의 허세지만 괜찮다. 놈이 바로 핸들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보자마자 매누발리스타(Manuballistra, 소형의 발리스타)를 발사하는 건 생각도 못 했지만, 저건 힘이 좋다고 해서 연발로 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레가 아니라 손으로 들고 다니도록 개조한 것 같으니 조준이 자유롭겠지만, 여전히 장전은 도르래를 돌려 시행하는 수밖에 없다. 괴력에 맞춰 기어비 정도는 조절했겠지만, 그래도 코킹 레버 수준으로 빠른 재장전은 무리겠지.
"너어어어! 거기이 기다려여어어어어!"
내가 미쳤냐.
나는 놈을 향해 손가락을 향했다가 잠깐 혀를 차야 했다.
"비켜!"
내 앞으로 아무 생각이 없다는 듯 겹겹이 쌓이는 노예들의 무리.
인질? 아니, 저 새끼가 노예를 인질로 생각할 리 없다. 본인이 그렇다면 나도 똑같이 봤을 것이고······
그냥, 장벽이다. 미친 새끼.
"······"
말은 없다. 호릴드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웅성거리면서 모이는 수많은 노예.
"비키라고!"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나마 호릴드라면 유들유들하게 받들어 모셨을까.
하지만 이들은 내 말에 움찔할 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킨다.
"미친 새끼. 네 명령을 듣겠냐아아아아? 어어어?"
저 길게 늘이는, 누군가를 놀리는 듯한 싸구려 말투가 들릴 때마다 사람들이 움츠린다. 습관 형성을 위해 오랜 기간, 사람들의 이빨을 뽑아왔다. 아무것도 못 하는 유약한 인간들로 자기 세상을 채웠다.
빌어먹을.
차라리 노예들이 비명이라도 질러주면 좋겠다. 앞에 온 내가 뭘 할 것인지에 대한 공포는 없고, 자기들의 뒤만 신경 쓰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짜증 났다.
됐다. 마음을 고쳐라 케이운.
시계를 붙들고 그 적막을 마음에 채운다. 여유, 너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다.
"아아아? 그렇다고 더 말도 안 해에에에? 삐졌어어어어?"
빌어먹을 새끼. 다잡으려던 마음가짐이 조금 흔들렸다. 저 새끼. 어떻게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선택지 중 하나는, 고르기 싫지만 있다. 이대로 쏘면 된다.
인체는 물론 꽤 좋은 바리케이드가 될 수 있다. 점성을 가진 장애물을 지나가는 과정에서 내 총격의 회전 속도는 줄어들고, 놈에게 도달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 명을 쏘아 맞힐 때마다 한 명씩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 줄여 나가면 된다. 내 능력과 총알은 충분하다.
죽여도 될 사람들일까? 어차피 너무 깊게 세뇌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기 힘들 사람들. 인류 멸망의 앞에서 제대로 된 생산성을 발휘할 타이밍조차 가지지 못할 사람들······
아니. 자기 합리화를 해야만 양심이 상하지 않을 희생자는 이미 잘못된 희생자다. 다른 수단을 모두 찾지 못한다면 모를까, 선뜻 죽여도 될 사람들은 아니다.
평면으로 부족하면 입체적으로 어찌 될까? 다행히 이곳의 천장은 높다. 저기에 매달리면 사선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다 돼간다아아아? 다들 비킬 준비 해라아아아?!"
장전이 끝나간다라. 천장에 그래플링 건으로 매달리면 매누발리스타의 탄을 피하기 힘든 자세가 된다. 그건 나라도 쉽게 버틸 수 없다.
별수 없나.
"좋아. 그럼 내가 내려가서 기다리지."
"아아아앙?!"
"아, 엘리베이터는 내가 망쳐둘 테니, 내려오려면 이 계단으로 내려와야 할 거다."
"그럼 내가 미쳤다고 내려가냐아아아아?"
"밥은?"
"뭐?"
내 답변에 놈은 처음으로 길게 늘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당황이 목소리에 느껴졌다.
그래, 네놈의 끔찍한 방식에 내가 졌다. 이 무식한 요새는 나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그 벽이 내 양심을 깎는다. 너의 농성은 성공적이다.
그러니 물러난다.
"난 요 아래층에 내려가서 네놈이 식량이 떨어져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거다."
"시간을 끌겠다고오오오?!"
말만이 아니다.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계단까지 도달했다.
"그래. 얼마나 버티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이 저 바깥에서 살던 어스름파수대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극단적인 방법도 있다.
저 미친놈이 겉보기대로 야만인이라, 아예 노예들을 잡아먹겠다고 하는 경우다. 어쩌면 진짜로.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거라면 어디 한번 해 보라지.
그쯤 되면 내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우길 수 있다.
뭐, 설마하니 그 정도로 미치기는 쉽지 않다. 말투는 완전히 미친놈이었지만 설마하니······
"안돼에에에에! 저놈을 잡아아아아!"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구나. 다행이다.
놈이 나를 쫓기를 원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은 노예들 뿐이다.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인력.
애초에 잡는 것부터 무리다. 훈련과 실전으로 단련된 나를, 겨우 노예, 그것도 즐거움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던 노예들이 잡을 수 있을 리가.
내가 아래층으로 뛰어간 다음, 이미 깨져 판자로 유지되고 있는 창 바깥으로 몸을 내밀 때까지, 아래층으로 비척거리면서 내려온 사람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그는 너무 먼 거리의 반대편에 있는 나를 보고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바깥으로 상반신을 내민다.
나름 펜트하우스를 꾸미고 있는 놈의 8층 창문은 유리창이었다.
문명 시대의 것이 남아있었을 리는 없다. 저건 놈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 만들어 달아 넣은 사치품이다.
휙! 탄두를 갈고리로 바꾸고 지붕에 걸어 넣는다. 그리고 바깥으로 빠져나간 나는 그대로 벽에 대해 수직 방향으로 몸을 크게 날린다.
몸을 뒤로 날리면서 로프를 따라 능력을 사용, 내 몸이 빠른 속도로 상승한다. 상승과 동시에 주어진 힘에 따른 최대 진폭에 도달한 내 몸은, 짧아진 진자를 따라 조금 부족한 에너지를 가지고 앞으로 뛰쳐나간다.
쨍그랑!
유리창에 닿자마자 로프에서 손을 뗀다. 산산이 부서지는 유리들 틈바구니로 몸을 한번 회전하며 착지한다.
"뭐, 뭐야아아아아?!"
아까 그놈이지 뭐긴 뭐겠냐.
유리창의 파편이 걱정되어서라도 이번에는 입을 열고 떠들지는 않았다. 거대한 갑옷이 매누발리스타를 내 쪽으로 돌려 조준하려고 한다.
늦었다.
탕!
일단 장벽은 첫발의 속도를 충분히 저하했다.
탕!
"내가 정면에서 안 덤빈 건 말이지,"
두 발째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갑옷에 도달하고, 스파크가 튀긴다. 놈의 몸이 흔들린다.
타탕!
"내 양심이 상하기 때문이야."
세 발, 네 발, 에너지를 잃은 장벽이 제 역할을 못 하자 갑옷에 제 속도로 도달한 총알이 놈의 팔을 튀긴다. 어깨를 흔든다.
타타탕!
갑옷은 날을 가진 냉병기의 날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적당한 속도로 떨어진 쇠뇌의 화살을 곡면으로 튕겨낼 수도 있다.
하지만 초음속의 납탄을 막을 수는 없다. 지나치게 빠른 운동 에너지가 강철로 만들어진 방벽 한 지점에 때려 박히면서 회전하고, 꿰뚫는다. 일단 강철이 찢기고 나면 맨살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네가 입은 그까짓 깡통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어."
쿵!
놈의 장벽에 지나치게 소모되던 에너지는 놈의 괴력도 저하한다. 거대한 매누발리스타가 바닥에 떨어졌다. 놈은 상처를 입었는지 자리에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알겠냐, 이 중세 마인드 놈아?"
놈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건틀릿을 벗었다.
왼손, 오른손. 그리고 투구를 벗는다. 투구 속에서는 어떻게 봐도 보통 사람 같아 보이는 사십 대 정도의 사내가 있었다. 입가에 혈흔. 핏자국이 턱에 괴여 뚝뚝 떨어진다. 한쪽 눈도 충혈되어 있다.
원망에 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알루드 카렉은 여전히 부들거리는 손으로 흉갑의 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품 안에 숨겨뒀던 작은 권총을 내 얼굴에 향하며 입을 열었다.
"잘났다, 너. 웁!"
쉰 목소리로 말을 마치기 전에 피를 울컥 뱉으며 쏜 총알은 겨냥도 떨리는 통에 내 몸에 제대로 맞지도 않았다.
타타타탕!
엉뚱한 곳으로 튀어 나가는 자동권총의 연발 속에서, 나는 놈의 몸에 손가락을 겨눴다.
"아니, 난 잘난 놈이 아니야. 그러려고 발버둥 치는 놈이지."
"으아······"
타타탕!
장벽도 만들지 못하고, 놈의 목, 가슴, 배에 구멍이 뚫리며 내 얼굴로 놈의 피가 튀었다.
놈은 마지막으로 불만이라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건 말이 되지 못한 소리로 끝나고 말았다.
씁쓸한 독백이 될 말의 불완전 연소를 참지 못한 나는 상대 없이 말을 이었다.
"뭐, 내가 계속 못나면 인류가 망하지만. 빌어먹게도."
세상은 나에게는 무능할 자유를 주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도 알아서 움직인 말이었지만, 이건 그냥 독백이 아니었다. 다짐이다. 나는 자세를 고치고 시계에 손을 댔다. 괜찮다. 시계는 여전히 고장 나 있다.
저쪽에서 엎드려 있던 노예들이 어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필요한 전략 목표의 1단계는 끝냈다. 내가 원래 잘하고, 잘 할 수 있는 잠입과 무력 충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언제나 하던, 몸에 배긴 일일 뿐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를 이행할 때다. 이건 나에게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알루드 카렉이 수집한 듯한, 비상용으로 사용할 법한 쿠크리 나이프 같은 것이 보였다.
그걸 알루드 카렉의 시체로 가져와 그 목에 '발사'했다.
촤학!
시체인 상태로도 아직 굳지 않은 피가 튀기는 그로테스크한 광경 속에서 노예들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꺄아아아악!"
"어마아아아!"
사람이 죽었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노예 중 일부가 소란을 일으키려 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내는 노예를 바라보며 천장을 가리키고 총알을 발사했다.
타타탕!
"다들 조용히 해!"
일단 크게 목소리를 지르자 그나마 한 명이 기절하고, 한 명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들거리며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운이 좋았다. 솔직히 더 나쁠 수도 있었으니.
이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얼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사람들의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너희, 혹시 알루드 카렉의 차기 통치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있나?"
아무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물론 본인이 나서리라 생각한 건 아니다. 있다고 해도 저 아래에서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놈들이겠지. 나는 한숨을 쉬고 알루드 카렉의 머리를 주웠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