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를 줄이고 군대를 키워라(2)

능력자는 일반적인 감옥에 가두기 힘들다.
그나마 강철로 된 철창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일부의 능력자는 가둘 수 있지만, 중앙이라면 모를까 변경에서는 그마저도 쉽게 구하기 힘들다.
해결책 중 하나는 옛 문명 시대의 시설을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지하 창고에 강철 문 같은 게 있다면 좋은 장치가 된다.
끼이이익.
용하게도 지금까지 제법 잘 작동하는 강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간수용 의자와 책상처럼 보이는 것이 비어있는 것이 보였다.
위에서 혼란이 생겼으니 동원되었거나, 도망갔겠지.
열쇠는 그대로 문 벽에 걸어둔 상태였다. 그걸 들고 문을 열었다.
"후, 후······"
내부에서는 건장하게 생긴 청년에서 장년 사이의 사내가 푸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오자 멈추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완전히 몸을 세운 그는 나를 보고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못 보던 얼굴인데?"
그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다. 아까 푸쉬업 할 때도 그랬지만. 뭐, 당연할 것이다. 권한 제한 수갑을 앞으로 차고 있으니 그렇겠지.
권한 제한 수갑은 의외로 문명 지대 이곳저곳에 좀 풀려있다. 많지는 않아도 능력자는 세상에 있고, 그 능력자들을 이런 식으로 가둘 일은 종종 발생하니.
"오늘 처음 왔으니까. 네가 소렌브지? 바깥의 소란은 못 들었나?"
"여기 방음이 잘 되거든. 너무 잘되어서 뭐 부탁할 것 있으면 문을 신나게 두들겨야 하지. 그나저나 너는 신입 치곤 태도가 건방진데?"
"내가 오늘부터 군단장이거든."
"······재미있는 소리를 하네."
"······"
그 소리 할까 봐 쪽팔린 걸 알면서도 쿨하게 던졌던 흉물스러운 대가리를 주워온 것이다. 놈의 발치에 그걸 던졌다.
"······이건 어디서 보던 얼굴인데?"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 했지만 그건 너무 허세다웠다.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렇겠지."
내 태도에서 내가 실력을 앞세워 기선 제압을 하려는 게 목표는 아니라고 느꼈는지, 놈의 태도가 조금은 무너졌다.
"······내 참. 진짜 대가리를 쳤어? 난 항상 그냥 꿈만 꾸던 건데."
꿈이라 말하니 좀 그럴싸하지만, 그 정도로 작정하고 덤빈 것 같지도 않은데.
"꿈을 이루어 줘서 고맙나?"
"살아갈 꿈을 빼앗겨 슬픈데."
말은 그랬지만 놈은 조금 후련하다는 표정이다. 기본적으로 그냥 반항아에 그치는 자기가 뭔가 제대로 된 걸 하지는 못했을 것 정도는 인정하는 모양이다.
"네 꿈을 빼앗은 새 군단장에게는 좀 쓸만한 부하가 필요해."
"특히 알루드 카렉에게 반발심이 있는?"
"있었던."
바닥에 떨군 놈의 머리를 툭 하고 쳐 보였다.
"······그래. 있었던. 여하튼 그래."
"내가 본 바로는 여기 땅에 있던 놈들이 이가 빠진 꼴을 좀 봤거든?"
"그렇겠지. 말만 좀 잘못해도 이 꼴로 만들어 두니까."
"그러니 반골 정신이 좀 있는 네놈은 좀 마음에 들긴 하는데······ 일단 네 실력 좀 봐야겠다."
"허?"
"내가 여기에 딱 붙어 있을 수가 없거든. 그래서 여기 대관만 세워두고, 자리를 한동안 비워야 한단 말이지."
"······그래서?"
"그런데 대관으로 세울 사람이 전 노예였던 여자야."
"나보고 여자 노예 밑에 들어가서 호위 노릇이나 하라고?"
그녀가 이제 노예가 아니라든가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놈은 그것 정도는 알고 빈정거리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래. 일단 그런 능력이 있는지부터 좀 보고. 무슨 무기를 사용하지?"
일단 수갑 열쇠를 놈에게 던졌고, 놈은 받아 자기 손목을 꺾어 능숙하게 풀었다.
"······바깥 간수 대기소에 있는 것."
놈은 손목을 문지르며 턱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바깥에 나가 간수의 책상 옆에 세워진 검을 보았다. 자잘하게 톱날이 세워진 특주 품이다.
톱날검이라. 이걸 사용하는 능력자는 보통 진동 능력자일 건데.
이름이 가진 연약해 보이는 호칭과는 달리, 근접전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능력자이긴 하다.
검을 부딪치기만 하면 알루드 카렉의 그 튼튼한 풀 플레이트 아머조차 쉽게 절삭할 정도로.
놈에게 검을 주고 간수 대기소에 있던 다른 롱소드를 주워들었다.
나야 검은 전문이 아니지만, 써먹을 수는 있다.
"일단 솜씨를 좀 보자."
그는 한번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에게 즉각 검을 휘둘러왔다. 중립 자세에서 공격 이행까지의 간격이 짧다. 근접 전투 능력이라는 것이 조금 아깝지만, 훌륭하군.
원래라면, 강한 힘으로 쳐 오는 검에 대항하는 방식은 받은 공격에 거스르지 않고 궤적을 살짝 바꾸는 것이다.
그때 검의 접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서로의 힘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기본이 된다.
상대의 힘이 강하면 힘을 빼는 것으로 공격을 헛치게 만들고 자세를 무너뜨린다. 힘이 약하면 역으로 밀어붙여 공수를 전환한다.
하지만 놈의 검 궤적에 검을 세게 후려쳐 튕겨냈다.
쳉!
전제되는 부분, 상대와의 검이 접해있는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진동 능력자에게 검이 잘려 나간다.
예상외로 강하게 퉁겨졌을 것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자세를 잡고 다음 공격을 향해 온다.
"괜찮군."
진동 능력자는 많은 경우 대처 방법을 모르는 상대를 한 번에 썰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두 번째 합으로 이어지는 것부터 실전 경험이 좀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2합째.
창!
이번에는 내 자세가 그다지 좋지 않다.
뭐, 말로는 여유 넘치게 말했지만 사실 내가 불리했다. 저쪽은 근접전 전문가고, 나는 사실 검을 다룬 경험이 있기는 해도 그렇게 전문이라 보기는 힘드니까.
그럼 슬슬 이 교전을 중단할 때가 되었다.
놈이 내 무너진 자세의 틈을 놓치지 않고 비스듬한 궤도로 검을 내지른다. 내 검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곳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손을 검에서 3cm 이내의 거리에서 따라 움직이며 지속적으로 힘을 가한다.
그 힘이라는 건 내 몸에 접하며 연속으로 가속 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해진다.
검의 궤적을 따라 내가 손을 움직이는 동안 놈이 가한 힘의 방향이 내 몸의 외곽선을 훑고 바닥을 내려치는 방향으로 뒤틀린다.
콱!
"엇?!"
아무려면 이런 방어법을 본 적 없던 놈은 바닥으로 검을 내려치고 당황했다. 물론 내 오른손의 검은 놈의 목에 향해졌다.
"기본은 있군."
솔직히, 이건 진짜 허세다. 놈의 실력이 생각보다 더 좋아 당황했거든. 마지막의 방어 방식 역시 처음 본 놈만 당할 것이라 그닥 신뢰하기 힘든 수법이다.
그래도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 당당하게 말했다.
"너, 뭐냐?!"
"어스름파수대."
"······젠장."
반격이나, 비꼬거나, 무시할 것에 준비하던 나는 녀석이 보인 의외의 반응에 당황했다.
"······너 반응이 좀 이상하다? 보통 어스름파수대라면 내용을 의심하는데?"
아니면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유물 사냥꾼이었으니까."
눈에 불이 튀겼다. 어느새 놈의 검을 왼발로 쳐내고, 저도 모르게 놈의 멱살을 잡았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을 움직이게 될 것 같았다.
"이, 이봐! 난 그냥 너희가 흘린 걸 주워 먹고 다니던 하이에나라고?"
"······여기 온 건 얼마나 됐나."
"······4년 정도? 우리 대장이 천천히 사람들 끌고 움직여 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희가 너무 깊게 들어가면서 주워 먹을 것이 떨어지더라고. 괜한 경쟁도 생겼고."
내가 무시하려는 정보들이 나를 질질 끌고 가고 있다. 자각과 함께 검을 바닥에 떨구고, 놈의 멱살에서 손을 천천히 풀었다.
시계, 시계를 붙들고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경쟁이라. 그 말에 내가 알고 싶지만 당장 알아서는 안 될 정보가 담겨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정보를 알면 내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
"······어쨌거나 내가 무서운 줄 아는 놈이라면 얌전히 말 듣겠냐?"
일단 떨어지자 놈은 자기 목을 만져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널 모셔야 한다면······. 뭐 좋다. 하지만 직속상관은 누군데?"
"휴리안 덴드라는 여자인데······"
내 말에 놈의 눈이 이상하게 빛났다.
"허? 아, 하긴. 그 아가씨는 나름대로 지휘 능력도 있던 전투 노예 중 하나였지."
거기서 보인 모습이 그냥 우연은 아니었나. 그녀가 처음 1층의 놈들에게 모습을 보일 때 자세를 세운 것이 생각났다. 애초에 노예라고 해도 전술 지휘관 역할이었단 말이군.
"······상관 명령에 반항했다는 이유로 위쪽으로 끌려갔더군."
내 말을 듣자 그의 얼굴에 혐오감이 번졌다. 물론 나를 향한 혐오감은 아니었다.
"아 씨발, 알루드 카렉 새끼가 그런 새끼니까 내가 반항심이 없을 수가 있나."
그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알루드 카렉의 대가리를 발로 퍽 걷어찼다.
솔직히 괜히 굴러다니거나 좀 더 분해되면 치우기 귀찮아지는 이유로 좀 말리고 싶었다. 뭐, 내 무게감이 사라질 수 있으니 참았지만.
"······어쨌든 좋아. 그 아가씨라면 상관으로 삼기도 좋고. 그 이상도 좋지. 헷."
그리고 놈은 내 눈치를 슬쩍 봤다.
"······혹시 내가 작정하고 꼬셔도 되나 대장?"
놈의 눈에 뭔가 재미있는 열정이 깃든 것이 보였다. 잘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 아가씨는 남자들 입장에서 끌릴법한 인물이긴 했다. 하물며 권력까지 쥔다면야.
"힘으로 억눌렀다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면 곤란하지만, 합의만 했다면 문제는 없지."
"오? 사실 외모만이 아니라 기품까지 진짜 보기 드문 여자인데. 설마 너 엄청 독특한 취향이라도 있냐?"
놈은 희색이 도는 얼굴로도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럽게 말을 해 온다.
"······아니."
그러자 놈이 입맛을 다신다. 자기가 어떻게 하고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더 높으신 분에게 우선권이 있겠지 하는 태도다.
아니, 이런 식으로 눈치 볼 줄 아는 놈이 어떻게 했길래 알루드 카렉 밑에서 개기다 여기 갇혔냐.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짬은 없어."
그런 곳에 신경 쓸 시간이 없는 건 사실이다. 놈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생긴다. 그놈 참, 얼굴 읽기 편하군.
어쨌거나 됐다. 너는 위에 올라가서 그 아가씨 호위하면서 꼬시든 말든 알아서 해라.
"······내가 아주 독특한 취향은 아니더라도 그 아가씨가 딱 맞는 것도 아니야."
아까부터 독특한 취향이라는 말에 조그맣고 입 험하면서도 어딘지 순진한 빨간 머리 아가씨가 어른거렸다는 걸 자신에게 속일 수는 없었다.
난 진짜 언제 왜 그 아가씨에게 꽂혔지. 특징을 나열하면 꽂힐 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어려 보이잖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주 독특한 취향이라 말해 마땅했다.
머리를 흔든다. 연애에는 시간과 신경이라는 비용이 들어간다. 마음고생하느라 정신을 심란하게 만드는 건 나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어쨌거나 그녀와 합의하면서, 노예를 줄이고, 군대를 키워라. 내가 내릴 명령은 그게 다야."
"노예를 줄이고······ 군대를 키워?"
"그래. 그 과정에서 필요한 건 휴리안 덴드에게 말했으니 그녀에게 듣고······"
잠깐 말을 쉬었다. 단서를 지금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쩌다 얻은 단서를 혹시나 잃어버리는 건 피해야겠지.
"······나중에 너에게 사람을 보낼 테니, 그 사람에게 네가 유물 사냥꾼 시절 알던 내용을 모두 말해. 특히 1년 전에 문명 지대에 나타난 놈들에 대해서."
"음? 그건······"
놈의 표정을 보고 알았다. 놈은 알고 있다.
"나에게 말하지 마."
놈은 입을 닫았다. 내가 무서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는 건, 아까까지 유들유들하던 놈의 굳어진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놈들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다. 아직, 아직은.
"······나중에, 내가 보낸 사람에게 말해."
하지만 정말로 알고 싶었다. 지금 당장, 그 무엇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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