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공무야(3)

"카, 카니스! 너, 도둑년! 도둑년이 왜?!"
카니스는 부당한 대우에 꽤 익숙한 편이었다. 카넥 군벌령의 조그만 소매치기, 좀도둑. 부모 없는 고아.
그 고아가 군벌령의 무정부 상태라는 소란 속에 온 신관, 엔텔라의 주머니를 털려고 했다가 붙잡혔다.
내용은 조금 복잡했다. 그녀는 어쩌면 손을 씻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녀의 이야기에 측은함을 느낀 노부인이 그녀에게 기회를 줬다.
그렇다고 결코 온실의 화초처럼 키웠다는 건 아니었다. 엔텔라는 사람이 바르게 크기 위한 역경이 필요하다 강하게 믿는 사람이었으니까.
엔텔라가 역경을 어렵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돌이 소매치기에 좀도둑, 고아라면 그 사실을 같은 신전 기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후보생들에게 알리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 부당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도하던 놈 중 하나가 이 앞의 바인 힐반이었다.
"배교자 새끼가 못 하는 말이 없어? 도둑질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물론, 그녀가 부당함을 받아들였다는 건 아니다. 애초에 보통은 배교하고 도망친 배신자 새끼에게 그 말 들어가며 참을 정도로 성격이 좋기는 힘들다.
"왜, 왜 네가 여기에!"
"내가 할 말이야! 당신, 어째서 검은 용에?!"
"내, 내가 무슨 거, 검은 용?!"
카니스는 억울했다. 이 멍청한 반응을 보이는 놈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살아온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걸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야 지금?
"······아니, 그냥 수사적인 질문이었어. 하긴, 배교자면 검은 용에 들어가기 쉽겠지."
"젠장 맞을 년!"
카니스는 어이가 없어졌다.
"와······. 아니 됐어 배교자. 너희에게는 바칠 기도조차 없어."
"이이, 이, 이단을 부정하는 거겠지. 미친 교단 같으니!"
이단만이 아니라 배교까지 한 놈이 하는 말은 더 이상 듣기 힘들었다. 카니스는 고글을 쓰고 양손으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교단이 미쳤을 수도 있지. 그래도 검은 용 보다는 덜 미쳤어."
"닥쳐! 그냥 빠져나가겠다는 걸 기어코 쫓아와 죽이려 들어? 미친 광신도 놈들이!"
얼핏 말이 되는 소리 같지만, 이것도 개소리였다.
"여신님에게서 능력을 받아놓고 도망친 놈이 할 소리야?"
놈은 내부 교인의 아들이다. 그건 자진해서 신전 기사의 후보가 될 수 있는 자격이지, 징발 조건은 아니다. 그에게는 신전 기사가 아니라 내부에서 그냥 교인으로 사는 길도 있었다.
능력을 받을 수도 있는 후보자를 사퇴하고 평신도가 되는 길도 있었다. 사실상 외부인이 되면 코덱스 교단에 몸을 담았다 외부에 알릴 필요도 없다. 코덱스 교단은 심지어 십일조도 바치지 않는다.
"다른 것으로 갚을 기회도 주지 않은 것들이!"
"검은 용에 몸담은 새끼들에게는 그런 기회 따윈 필요 없어!"
"내가 검은 용에 가지 않았으면 기회를 줄 것처럼 말하냐!"
카니스가 할 말은 거기서 끝이다. 그건 솔직하게 말하면 사실이니까. 신전 기사가 배교하게 되면 결국 몸담기 가장 좋은 단체는 검은 용이다.
이게 교단이 검은 용과 적대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서는 좀 억울한 점도 있다.
"······난 당신을 쫓아 온 거 아니야. 아니, 사실 교단에 당신을 쫓으라는 말 따위는 없었는데."
"······"
"아니, 생각해 보니 진짜 당신 왜 여기 있어?!"
"모른다!"
"이런 씨······"
"너도 알잖아! 검은 용의 말단은 그런 거 몰라!"
카니스는 묘한 복수심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맙소사.
"당신 말단이야?! 세상에······"
저도 모르게 히죽거리는 미소가 번진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복수는 비참한 꼴로 몰락한 상대를 만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뭐가 세상에냐?!"
"아니, 기껏 배교하고 한다는 게 딱가리 짓이야?"
"미친······ 나도 검은 용 따위가 되고 싶은 거 아니라고! 심장 안될 거라고!"
그건······ 좀 재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카니스는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날카로워진 것을 느꼈다.
"······빠져나가기 위해 발톱이 된 거라고?"
"그래!"
"능력 가진 채 도망가겠다고?"
그건 용납할 수 없다. 어차피 죽여야 할 배교자 놈이잖아?
차라리 검은 용에 들어가고, 심장이 되어, 언젠가 일하다가 저도 모르는 일에 휘말려 자결하게 된다면 괜찮겠지만, 결국 도망가겠다고?
카니스는 바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바람을 포함한 가속으로 강화된 오른쪽의 단검이 번개 같은 속도로 찔러졌고, 놈은 급히 꺼내든 단검으로 그걸 겨우 막았다.
창!
조금 떨어진 위치에 불을 뿜어 공격하려는 틈에 다시 떨어지며 카니스는 왼손의 단검을 휘둘러 놈의 허벅지에 상처를 냈다.
촤학!
"악! 너, 너?!"
"난 아직도 당신이 도둑년이라는 이유로, 내가 단검을 훔쳐 갔다고 몰아세우는 측에 있던 거 안 잊었어."
대화 내용은 그냥 옛날 뭔가 빼앗아 먹은 작은 괴롭힘쟁이(Bully)에게 욕하는 듯했지만, 카니스의 공격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쳉! 촤학!
다시 왼팔. 화염 능력을 사용하기에는 약간의 교착 시간이 필요하다.
바인 입장에서 1초라도 근거리에서 상대가 멈추면 화상으로 끔찍한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카니스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의복이 잘 타는 옷이기라도 하다면 다른 기회도 있겠지만, 신전 기사의 옷은 내열성도 좋다.
"아아악! ······너, 네가 맞잖아!"
자신의 상황이 나쁜 것에 억울함을 토로라도 하듯 바인이 외쳤다.
"아니라고 했고, 정말로 아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지. 당신은 나여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진짜 억울한 게 누군데. 카니스에게 억울함은 항상 함께해 왔다. 그날의 것도 특별히 더 억울한 일도 아니었······
'네년, 더러운 도둑년이 굴러들어와서 신전 기사가 된다고? 어?!'
'너 맞잖아? 어? 이년이 어디 훔쳐놓고, 어디에 팔아먹었는데?'
모든 문제는 문제를 인지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카니스는 자신이 합리화하면서 씌워놓은 레이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건, 그녀에게 특별히 더 억울한 일이 맞았던 모양이다.
"네가 아니면 대체 누구인데?!"
진짜 억울했다. 이 와중에도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새끼는 진짜 죽여야 했다.
그래도 죽이는 것 보다 먼저 할 일은 있었다.
"나도 몰라. 관심도 없고. 아, 하나는 맞아······ 핫!"
쳉!
카니스는 갑작스래 뛰어들어 단검을 휘두르는 척 했다. 바인이 방어를 위해 팔을 휘두르는 것을 받아넘긴 다음, 금속 재질의 부츠 앞꿈치로 놈의 정강이를 강하게 찼다.
"아악!"
그리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진 놈에게 단검을 내밀며 전진했다. 바인은 목 아래에 겨눠진 카니스의 단검을 내려다보며 두 손을 들었다.
카니스가 단검을 슬쩍 위로 올리자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부들거리며 떨어뜨렸다.
그녀의 제스쳐는 당장 죽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드디어 '복수'를 눈앞에 둔 카니스는 잔인한 미소와 함께 그의 귓가에 다가가 소곤거렸다.
"난 다른 건 훔쳤거든."
"뭐, 뭐?"
"당신이 잃어버려서 기합받게 된 당신 겉옷? 그걸 훔쳐 숨긴 건 나야."
"뭐, 뭣?!"
"쉬······. 가만히 있어. 멍청이."
항복한 건 항복한 것이고. 우연한 기회에 작은 복수심을 채운 것까지는 좋았지만, 카니스는 더 이상 이 인간을 살려둘 수는 없었다.
"오래 안 걸리게 해 줄게."
배교자는 죽여야 한다. 카니스의 단검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걸 느낀 바인은 다급하게 외쳤다.
"씨발! 젠장! 사, 살려줘! 너는 원한을 갚았다며!"
"지금 내가 개인감정으로 당신을 죽이려는 줄 알아? 이건 공무야."
조금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아직 교단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는 착한 신도는 아니었으니까.
"내, 내 상관! 상관의 위치를 알려 줄게!"
착한 신도가 아닌 카니스는 그 말에 잠깐 멈춰야 했다.
단, 놈의 화염 능력을 감안해서 위치는 살짝 바꿨다.
"······그 새끼 이름이 메이브 틸렉이냐?"
"맞아!"
의무감이 강하지는 않다고 해도, 이 녀석은 죽어야 할 놈이었다. 그러나 그 정보는 그녀의 움직임을 잠깐 멈출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었다.
오빠의 원수. 최근에 놓친 오점.
하지만 문제가 있다. 카니스는 다시 자세를 바꾸고 바싹 단검을 가져다 댔다.
"······검은 용은 어차피 바로 움직일 거야. 그건 쓸모없는 정보야."
그녀는 놈이 얼마나 쉽게 도망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손절하는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놈이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라면, 지금 알려준 위치에 간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카니스는 바쁘게 눈을 돌리는 놈 때문에 마음이 약해질 정도로 어수룩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토록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로 죽도록 해 주는 것이 그나마 자비이리라······
"저 폭탄 해제 법을 알려 줄게! 아악?!"
이미 경동맥을 살짝 잘랐다. 당장 작정하고 목을 붙잡고 지혈해야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수준이다.
"······폭탄?"
"내, 내, 내내 내 목?!"
"······그 정도면 아직 살 수 있어. 그보다 폭탄?"
지금까지도 검은 용은 폭탄 설치를 종종 해 왔다. 그것도 신전 기사가 가끔 유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거의 확실하게 통로를 폐쇄할 수 있는, 꽤나 강력한 물건이다.
그걸 못 믿는 건 아니다.
"벌써 설치했다고? 그런데 왜 들어왔어?!"
"모, 모모목!"
"말 안 하면 어느 정도까지 그으면 진짜로 죽는지 실험할 거야."
"······그······그래! 설치했어! 들어오자마자 쥐 떼가 덮치면 안 되니까! 설치해 놓고 들어갔다가 작동시키고 도망가면 폐쇄되게 하려고! 지금도 시간 간다?!"
"얼마나 남았는데?"
"모, 몰라! 들어올 때 한 5분 정도로 했어!"
시간이 빡빡하다. 카니스는 이를 갈았다.
"······내가 당신을 살려준다고 해서 끝날 게 아니야. 검은 용에서도 당신이 이 통로 폐쇄를 실패한 걸 알면 가만히 안 둘 텐데?"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제기랄! 살려, 살려만 줘!"
"······난 왜 이리 사람을 놔주는 일을 많이 하게 되지. 당장 불어!"
"오, 오오······너 네가 단검을 훔치지 않았다고 믿어줄게!"
카니스는 이 녀석이 자살하기 위해 그녀의 성질을 일부러 긁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미친 소리를 한 번 더 하면 내가 신전 기사가 되면서 정식으로 받은 이 단검으로 당신 목에 구멍을 뚫어 줄 거야."
"아아, 알았어! 알았어! 저, 저기의 전선을 끊으면 돼! 왼쪽 두 번째에 연결된 선이야!"
"좋아."
"왜, 왜? 말 했잖아?!"
카니스는 놈의 목에 칼을 향하고 일어나라고 까딱거렸다. 바인은 어쩔 수 없이 따라 일어나 비틀거리며 카니스와 함께 움직였다. 점차 폭탄에 가까워지는 동안, 그의 표정은 더더욱 창백해지고 있었다.
물론 카니스는 그 얼굴을 보며 확신을 가졌다.
"당신이 잘못된 걸 가르쳐줄지도 모르잖아? 당신이 옆에 있어야 제대로 말해 주겠지?"
"외외외,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야! 맞아! 이제 생각났어!"
카니스는 코웃음을 내고 퓨즈를 자세히 살폈다.
타이머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톱니가 째깍거리며 움직이고, 회로에 연결된 상태로 유지 관리를 위해 외부에 노출된 전선이 보인다.
전선에는 모두 시커먼 고분자화합물 피복이 입혀져 있는 것이 검은 용의 기술 수준을 알도록 해 주고 있었다.
이건 지금 와서는 문명 지대의 맹주 통치기구도, 옛 기술의 수집자인 코덱스 교단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소량으로는 생산할 수 있지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준비가 너무 많이 필요한 것이다.
그걸 그들은 사용하고 있다.
카니스는 씁쓸한 입맛을 느끼며 그 전선을 검으로 살짝 가리켰다.
"이거?"
"그, 그래!"
결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카니스는 검을 휙 베었다.
툭.
전선이 떨어졌고, 기기의 톱니가 멈췄다.
이게 또다시 속임수일까? 카니스는 바인의 표정을 힐끗 봤다.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
검은 용이 의외로 자기 부하들을 '버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본인도 모르는 속임수도 아닐 것이다.
망설일 시간은 없다. 그녀는 이제 저쪽을 보러 가야 할 것이다.
조금의 망설임 끝에 카니스는 결국 단검을 치웠다.
"······좋아. 가봐."
"고, 고맙다?! 저쪽 반대편 통로는 여기랑 다르게 막힐 거다?! 따라오지 마!"
바인 힐반은 그 말을 하고, 저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마른세수한 카니스는 일단 그녀가 저 멍청이를 죽이고 싶은 정도까지 싫어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래도 죽였어야 했다는 후회가 좀 있었지만, 이제 고민할 때는 아니었다.
그녀는, 최근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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